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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를 아십니까? - 11

비라는 것이 시도때도 없이 내려서 길을 걷다가 비가오면 남의집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칠때까지 기다렸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길을 가곤 했던 기억이 있으시겠죠... 기억도 가물가물한 국민학교 고학년시절 인가 중학시절 여름철로 기억됩니다만 집 대문을 나서 골목길을 획 하고 돌아 서는데 같은반 창호가 절 부릅니다. 왜? 창호야!! 창호의 눈길이 머무는 곳엔 파란 비닐우산 한 다발이 담장에 기대여 세워저 있었고 뻘쭘한 창호는 저에게 부탁하길 신작로 극장앞에 옮겨 주었으면 고맙겠다고 부탁을 하는데 거절할수가 없어 그러마 하고 비닐 우산을 들어다 주었습니다. 소낚비 속에 행인들은 마치 뒤집힌 개미굴의 개미들 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속을 창호는 "우산이요 우산"이라고 외치면서 우산을 팔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저는 극장 처마밑에서 창호의 부탁으로 우산뭉치를 맡고 있는데 하필 저의 큰 누님에게 발견 되어 연락 받고 나오신 어머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어머닌 창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건으로 창호의 비맞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 주시던 모습이 선 합니다. 모든 물자가 귀하기만 했던 60~70년대는 웬만한 도시의 부유층이 아니고는 번번한 철제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대부분 1회용에 불과한 비닐우산을 쓰고다니는 것이 일반적이 였답니다. 또한 형제가 많은 집에서는 학교다니는 아이들도 우산이 모자라 둘 셋이 함께 하나의 우산을 받치곤 했습니다. 그 시절의 철제우산은 고급품이여서 아벗님의 바깥출입으로 쓰셨기에 여간 조심스러울수가 없었습니다. 비닐우산을 쓰고 앞서 가는 행인(여자)이라도 보이면 염치불구하고 그 좁은 우산 속 으로 파고들던 기억 있으신지요? 바람에 뒤집히고 잘 찟어지는 비닐우산조차도 귀해서 비가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웬만하면 그냥 비를 맞고 학교를 다니곤 했습니다. 또 그시절엔 비가 그치면 어김없이 골목마다 소리치며 다니는 우산 고치는 아저씨께 부서진 우산을 고치곤 했습니다. 그랬던 우산이 지금은 가족수 보다 더 많은 숫자의 우산이 집집마다 현관구석에 가득 차 있어 집 나설때 가지고 나갔던 우산을 얘사로 잃어버리고 돌아와도 아까운 줄 모르는 세상이니 ~원... 제가 아주 어렸을땐 비닐우산도 없었고 종이에 기름을 먹이고 살대가 많은 기름 종이 우산도 있었습니다. 부서진 우산 살을 잘 다듬어서 연도 띄우고 고무줄을 칭칭 동여매서 고무줄 총도 만들던 파란 비닐우산 월님들은 기억 하십니까? 지난 장마철 출근길에 초등학생 녀석이 우산이 고장이라도 났는지 신경질적으로 우산을 내동댕이 치는 모습을 보니 웬지 씁쓸 하더라구요. 그 파란 비닐우산을 때리는 빗소리와 그리고 한쪽대가 부러져 버린 초라한 우산을 꺼내지 못한 기억들... 내리는 비의양을 견디지 못해 비닐이 폭삭 주저앉아 버리거나 뒤집혀 버리곤 했던 추억의 우산... 어린 소년들이 "우산이요 우산"을 외치면서 목이 쉬도록 팔던 그 파란 비닐우산을 기억하시는지요?? 여러분!! 추억속에 파란 비닐우산 ........"그때를 아십니까"??..............끝... 감사합니다.^___________^* 오타가 많죠 ㅎㅎㅎ 에구~ 눈이야!! 공짜 없습니다. 다녀가셨으면 흔적 팍팍 남기십시요 ㅎㅎㅎ ※ 금요일 밤낚시 다녀 왔는데 새벽에 입김을 보았습니다. 출조시 방한 장비 꼭 챙기시고 환절기 감기 조심하십시요...

반가버요 권형님!

산골촌놈인 전우산 모르고 국민학교 시절 보냈습니다.

우의라곤 비료푸대가 전부였죠

비료푸대 비스듬히 잘라서뒤집어 쓰면 책보따리만 안젖으면 만사 오우케이 였죠

겸정 고무신 손에 쥐고 신작로 달리던 아이 눈에 선합니다.
비이야기에서 조금 비쳤지만
비닐우산은 시골아이들에겐 사치였지요
기름먹인 종이로 만든 우산이 실제로는 더 고급이었을텐데
그래도 비닐우산이 가볍고 아이들에겐 더 인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국민학교땐 비닐우산을 사용해 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무거운 삿갓 키 적은 저는 삿갓을 쓰면 상체는 삿갓속에 갇혀버리고
종아리 아래만 보였지요

그래서 비가 싫어지기도 하였습니다만...........
붕어와춤을님^^
죄송한 예기지만 전 책보(책보따리) 기억에 없습니다.
비료포댄 더 더욱이 없구요...
시골출신 동료들은 가끔씩 비료포대며 책보예기를 합니다만...죄송합니다.

봄봄님^^
예 시골출신 동료들은 이따금식 삿갓예기를 합니다만.
전 역사책에서만 본듯합니다.
혹 띠밭터에 출조하실 요량이면 명경지수님 통해서 연락한번 주십시요...감사합니다.
띄밭은 거의 매주 출조를 합니다
한주 걸르는 때는 명경지수아우님과 자연지로 출조를 하구요
권형님 시간나는 데로 언제건 연락 주십시요

그러면 채바바님,붕춤님,명경지수아우님등등하여 대구인근의 분들
한꺼번에 상면할 기회를 가지실 수 있을 겁니다
누가 .. 놓친 열차와 추억은 아름답다했나요

권형님의 글로 이아침이 행복합니다 ^^
권형님의 글 옛날생각 나게합니다 저도고향이 경북영양이라서 (청송 보호감호서근처)
아주깊은 산골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변했지만 그때는 책보따리 어께에매고 학교다녔습니다
그때는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주는 우유가 딱딱한 덩어리였습니다..............
정말로 잠시옛생각에 잠겨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비가오면 비닐우산 생각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찾아볼수도 없겠죠

비료푸대 가장 완벽한 우산이였죠 그당시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잘맞는 우비......

아침부터 옛추억에 잠겨 듭니다
안녕하세요 권형님...

저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비료포대는 기억에 없네요..

하지만 파란색 비닐 우산은 어릴때 많이 써봤습니다..

시내쪽으로 나가면 우산파는 아저씨들도 많이 봤구요..

아련한 추억 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파란 비닐우산 기억이 새롭네요^^

서너개 있는것은 누나들 냅다 먼저 가져가고

저는 헛간(농기구 등을 넣어두는 창고)에 가면

논과 밭에 쓰는 하얀 비닐이 많이 있었지요.

양팔 가득 벌린 만큼의 길이로 자른다음 가운데 머리 들어갈 만큼의 구멍내어

뒤집어 써고 허리에 까만 고무줄 두르면 비가오나 눈이오나 만사 걱정 없었지요.

그라고 깔끔한 마무리.....

머리에는 붕춤님 말씀처럼 비료포대 이거이 와따지요.^^

늘 행복 하시옵고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 합니다.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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