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 들어서자 집사람이 저고리를 받아들곤 턱으로 가르키는곳을
따라가니 베란다 구석에 예전 24년전 아들놈 태어 났을때 기념으로
당시 돈푼께나주고산 14" 칼라TV가 애처롭게 놓여 있다.
얼마전까진 나름 자기 몫을 했던 놈인데 이젠 수명이 다 했는지 말성을 피우더니
안됐지만 퇴출대상이 된것이다.
텔레비젼 수상기...
세계에서 15번째.아시아에서 4번째로 우리나라에서 TV방송을 시작했답니다.
1966년 최초 금성사(L.G의 전신) 에서 국산 T.V는 '샛별"이라는 금성사 이름을 달고
흑백 진공관식 19인치 텔레비젼이 출시되었읍니다.
1964년 지금은 사라진 T.B.C TV. 1969년 M.B.C TV가 차례로 개국했고.
그 당시 텔레비젼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월부로 공급했으며 또 관계서류를 갖춰오면
추점을 통해서 공급을 했습니다.
1965년도 당시 저의 부친께선 서울에서 나름 큰 사업을 하시는 관계로
집엔 텔레비젼.전화기 그리고 부친의 사업상 자가용(始發 짚차)도 있었습니다.
특히 텔레비젼은 국산이 막 출시되던 시절이였고 목돈을 얹저 주어도 구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해서 저의집엔 부라운관이 타원형인 일산 도시바 19"TV가 있던걸로 기억됩니다.
2층집 옥상엔 남산 송신탑과 일직선으로 안테나가 서있었고 잘 나오지가 않으면
조금씩 돌려가며 전파를 잡기도 했습니다.
당시 동양 최대의 장충 체육관에서 김기수씨의 프로 권투나 김일씨의 프로 레스링이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대로변 전파상앞엔 구름 관중이 앞줄은 앉고. 또는 뒷줄은 서서 구경했곤 헀습니다.
장욱재 태현실씨 주연의 "여로" 그리고"아씨"의 연속극이라도 하는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안방을 점령하셨던 생각이 나고요. ㅎㅎㅎ
당시 아이들은 일본에서 수입방송된"황금박쥐"라는 만화영화에 환호성을 지르고
썬더스 중사가 기관총으로 독일군을 쓰러뜨리는 "전투"라는 외회 씨리즈물이 인기가 하늘을 찔렀으니까요.
식탁다리같이 긴 텔레비젼. 양손으로 부라운관 앞문을 양손으로 드르륵 열던 텔레비젼.
낯은 책상에 얹어 놓고 보던 텔레비젼. 여러분들은 어떤 텔레비젼이 기억나십니까?
강원도 골짜기의 군시절 .흑백 텔레비젼이 위문품으로 들어오던날 한호성이 생각납니다.
로터리 채널방식이 지나고 리모컨식 칼라텔레비젼이 나왔을땐 그 값이 지금의
40"L.C.D TV와 맞먹는 가격이라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지금은 각방마다 있는 TV. 거실엔 두께가 얇은 L.E.D TV가 떡하니 달려있고
그것도 모자라 전화기에 또는 자동차에 아니면 길바닥에 버려진 주인없는 TV까지...
여러분 영상매체가 부족했던시절. 가난한 우리의 6~70년대 그때 그 시절 그 흑백 텔레비젼의
넋을 잃은 추억이 여러분께서도 있으시겠지요...
여러분 어려운 과거가 있기에 풍요한 현재가 있지 않을까요?
그때를 아십니까 ?. 그 흑백 텔레비젼의 추억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그때를 아십니까 ?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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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들가기 전인거 같네요..
동네 만화방에 가서 10원주고 레슬링 보던 그때
그 흑백 TV가 생각 납니다...
그리고 얼마후 아버님께서 금성 TV 사 오셨지요..
그때 아버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ㅎㅎ
권형님 덕분에 옜날생각 해봅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그때를 아십니까?
愛讀하는 광펜입니다^^
70년도초에 장욱재(제?) 태현실 주연 '여로'를
'소리사' 쇼윈도 진열장에 틀어 놓은 것을 서서 보다가
차츰 부잣집에도 TV가 차츰 들어 서고 하여
마당 멍석에 앉아 보던 少時적 아련한 追憶이 떠 오릅니다....
TV 있던 부잣집 아들녀석 눈치를 많이 보았는데요
그녀석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권형님
옛 생각을 잠시 하게 하여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레스링 여로 아씨 황금박쥐 아톰 마린보이....
저도 10원짜리 한장들고 동네만화가계에서 하루종일 만화도읽고 저녁에는 T.V 시청도하고...
친구네집에 T.V가 있었는데 얼마나 유세를떠는지 더럽고 치사해서 안가게 되더라고요 아니 그친구가 저보고 오지말라고 하더라고요 유독 저만 멀리했습니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이런잡기에 능했던 저이기에 친구들의 구슬과 딱지는 모두 제손아귀에 들어오기때문에 그친구눈에는 제가 가시였나봅니다 그래도 쫀쫀하게 그거가지고 자식이치사하게...
권형님 잠시나마 어린시절을 회상해봤습니다
흔적남기고 물러갑니다 건강하십시요
지금생각하면 그때 그시절 일이하나둘씩 떠오르는게
아옛날이여 그리움만 남기는 추억입닏다 우리면배는 그래도 그때가그리운법입니다
지금은 너무삭막합니다 모든 문화가발달하고 모든게 변했지만
그때보다는 물가에 고기도없고 잡기도 힘드니 그때가 그리웁읍니다
옛일을 자주 떠올리게 글 부탁합니다
연식이 좀 되었을 것 같습니다.
50년도 중반에 태어나 주~욱 기억하며 자랐습니다.
권형님의 14"칼라 tv (당시 대한전선을 인수한 대우 제품)를
83년 결혼하며 두대를 사서 한대는 시골 집의 tv도 같이 교체했던 기억이...
가격이 아마 대당 24~26만원 정도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거의 한달 급여와 비슷?
덕분에 오래된 기억을 추억하고 갑니다.
그때 지금생각하면 걍 추억이지만 정말 그때는 그때가 싫었죠.
테레비도 없는 집!
전기도 6학년에 들어 왔어니~~~~~~~~~~~~~~
항상 좋은글 얻어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직 잘나오고 멀쩡한데...
아들늠 말이 바꿀땐 돈좀쳐준다하네요
물가헤매느라 저와는 별 인연없는 물건이지만 ...
아 옛날이요
제가 살던 곳에는 TV가 있는 집이 몇집 없어서 저녁이 되면
대청마루 한가운데 TV를 올려놓고 동네사람 다 모여서 마당에 멍석깔고
TV를 보던 기억이 납니다. 몇몇 체면을 중시하시는 어르신들 께서는 차마
마당에 앉지 못하고 담너머로 자라목을 하고 보시기도 했죠!
어릴때 집에 들여논 TV를 도시로 이사오고 나서는 버리지 못하고 병아리 사육장으로
사용했었습니다. 지금은 TV없으면 못살고 거의 중독 되다시피 되었지만
가끔은 어른들 틈에 끼어서 영문도 모르는 TV 프로그램 본다고 가슴 설레던 때가
그리워집니다.
우리 모교의 재단이사장이셨던 임장로님이었던 걸로 기억이 아슴프레 하구요
제 고향엔 전기가 71년도에 들어왔었으니 60년도엔 꿈도 못 꾸었지요
70-71년 대구 육촌형님댁에 잠시
기거하였을때 아씨(노주현씨와 김희준씨가 주연으로 나왔던걸로 기억이 납니다만...)
를 가끔,그리고 톰 죤스쑈
크립 리처드 한국공연시의 그 열광하였던 그림들이
주마등처럼 흐릅니다
저희집은 무척 가난햇습니다
티브이는커녕 라디오두 거의망가진거 들엇섯지요 ㅎㅎ
김일 레슬링 할때면 .. 돈10원을 아버지에게 받아들고 동생과 함께
테레비젼잇는집으로 가서 보곤햇습니다 ..
이때는 왠만큼 사는집이면 거의 티비 잇던시절인대두요 ㅋㅋ
김일 레슬링이 끝나기도 전에 주인이 나가라 하면 참 서글펏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또 눈가에 이슬이 맻힐라하네요 ㅠㅠ
지금도 가난은 벗어나지 못햇지만 .. 정말 가난햇던 그시절 .. 추억은 잊지만 .. 다시 돌아가긴 싫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