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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구한 파격 인사

오늘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일입니다.

 

 

장군은 1545428일 한성부 건천동에서 태어나

1576년 다소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을 시작으로 관직에 나아갑니다.

 

이후 고흥 발포 수군만호, 함경북도 건원보 권관을 거쳤고

1587년 함경도 조산보 만호와 녹둔도 둔전관을 겸하게 됩니다.

이때 여진족의 기습을 예견하고 북병사 이일에게 수차례 병력지원을 요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고

이일은 오히려 이순신을 탄핵하여 장군은 파직 당하고 첫 번째 백의종군을 하게 됩니다.

 

이후 여진족 장수 우을기내를 잡은 공으로 사면되었고,

158912월 종6품 정읍 현감이 됩니다.

아마 정읍 현감 때가 장군의 생애 중 가장 평안하고 행복했던 시절일 것입니다.

 

 

일본을 정탐하고 왔던 통신사 중 황윤길은 반드시 일본이 침략할 것이라고 보고하였지만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일본은 절대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공언하였습니다.

서애 류성룡은 김성일과 같은 동인이었음에도 정파적 이익을 떠나 일본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해

선조에게 이순신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천거하였습니다.

 

6품 정읍 현감이 정3품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무려 7계급을 승진한 것이라

뒷말을 우려하여 부임하는 길에 고사리 첨사와 진도군수 등을 거쳐 초고속으로 승진하도록 하였습니다.

 

참고로 조선의 품계는 정1품부터 종9품까지 18품계인데

6, 5, 5, 4, 4, 3품을 한번에 뛰어넘어

곧바로 서남해안의 방어를 총괄하는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된 것입니다.

 

장군이 이미 두차례 종4품 만호를 역임하였으므로 어찌 보면 이해할 수도 있는 인사였지만

요즘 군대로 치면 중대장이 군단장이 된 격이며, 경찰로 치면 지구대장이 시도경찰청장이 된 격이라

파격 중의 파격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파격적인 발탁은 군내 서열을 깨고 주위의 질투를 사

군부 선배인 원균과의 불화 원인중 하나가 되기도 하였고,

오늘날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사이지만

결과적으로 훗날 임진왜란의 판도를 바꾸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조선의 3대 암군(暗君) 또는 혼군(昏君)을 꼽으라면

인조와 더불어 빠지지 않는 선조이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류성용의 천거를 받아들인 것을 보면

이때만큼은 나름 혜안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내용이 길어

모함을 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장군과

그를 구한 오리대감 이원익의 용기는 다음에 이야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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