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붕어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식구 모두를 그냥 몽땅 '붕어'라고 부르는데 나로서는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군요.
정확히 말해서 난 '붕'입니다.
붕어에서 '어'는 물고기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물사랑님을 '김진태 인간'이라고 부르면 기분 좋겠습니까?
아무튼 난 '붕' 이니까 앞으로 붕이라 불러 주세요.
물론 내 친구 잉어는 '잉'이라고 불러주고요.
가물치는 뭐라고 부르냐구요? 그야 물론 '가물'이죠.
새벽녘, 물을 박차고 뛰어 오르는 내 모습을 보고 붕 뜬다고 해서 붕어라고요?
천만의 말씀.
난 인간들 처럼 길고 쓸모 없는 손 대신 근사한 지느러미밖에 없어서 몸에 기생충이 붙으면,
힘차게 뛰어 올랐다가 수면에 꽝하고 부딪치면 얼마나 시원한데요.
몸에 수초라도 엉키면 당신도 한번 해 보세요.
난 집이 없습니다. 불쌍하다구요? 천만의 말씀!
자기 집도 없이 남의 집에 세들어 살고 평생 아파트 한 채 마련하려고 허리 부러지게
일하는 인간이 불쌍하죠.
난 마음에 들면 가다가 아무데나 픽 쓰러져 자면 되는데 불쌍한 인간이라는 족속이 나처럼
했다가는 행려병자 취급 받던지, 외박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당하니 안됐군요.
할 일 없이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논다고 날 비난하지 마세요.
나도 바쁜 몸입니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그 만큼 위험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고
그 사이 사이에 먹이도 찾아야 하니 바쁠 수 밖에요.
무리 지어 움직이며 다른 붕어 친구하는대로 따라 한다고 겁쟁이라구요?
뭐 인간은 남 하는대로 하지 않나요?
듣자 하니 횡단보도 신호등에서 빨간불 일 때 한 사람이 막 건너려고 발을 내밀면
대다수가 저도 모르게 차도로 내려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남 하는대로 따라하는 인간도
겁쟁이라서 그런가요?
오늘은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오는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산책 도중에 잉어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완전 편집증 있는 애 같았어요.
지가 몸집이 그 만큼 크면 거물답게 대범하게 놀 것이지 쫄아서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거 있죠?
아무 데로나 다닌다고 피라미가 항의하겠습니까? 메기가 시비 걸겠습니까?
사실, 우리도 대충 다니는 길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뻑뻑하게 놀진 안습니다.
인간은 더 한 다면서요?
길을 만들어 놓고 그것도 모자라 노란줄로 중앙선 쳐 놓아서 서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면서
경찰이 잡는다구요?
기가 막혀서.....
인간 중에도 산에서 도 닦아 깨우친 사람은 그래도 흐르는 구름처럼 탈속한 기분으로
산다는데, 어쩌면 나도 깨우친 부류에 들지 않을까요?
더우면 더운대로 떠서 다니고 산소가 적어 답답하면 좀 더 숨쉬기 좋은 곳으로 흘러가고
그러다가 한 순간 욕심에 눈 멀어 먹음직한 미끼에 현혹되면 그대로 이세상 떠나는 거죠. 뭐....
오늘은 기분 잡친 날입니다.
어디가서 근사하게 식사 좀 하려고 했는데 왜 그렇게 소란스러운지
정신이 산만하고 불안했습니다.
조금 띨띨한 친구들은 뷔페 먹으러 간다고 나가서 아직까지 오지 않는 걸 보니
아마 끌려간 모양입니다.
'풍덩'하고 떡밥이 수면에 떨어지는 소리.
발걸음소리, 듣기 싫은 인간 군상들의 목소리... 정말 미치겠더군요.
내가 이래봐도 한가닥 하는 놈입니다.
하찮은 인간보다 냄새도 더 잘 맡고, 미세한 소리에도 더욱 민감하고, 냄새도 더 잘 맡고,
시각도 넓어서 난 내 코도 내려 볼 수 있습니다.
인간들 중에는 똥배 나와서 자기 발도 내려다 볼 수 없는 놈들도 있다면서요? 하하하..
웃기지도 않군요.
입장을 바꿔 놓고 당신이 철판에 귀 대고 있을 때 내가 철판 위를 망치로 내려치면 좋겠습니까?
이 지구를 인간이 전세 냈습니까? 그렇다고 칩시다.
그렇게 지구 전체를 통체로 전세 낼 만큼 통 큰 인간이 저수지 하나 양보 못합니까?
더불어 사는 세상 조용히 좀 삽시다. 원! 시끄러워서.....
어제 시끄러워 한끼도 못 먹었는데 오늘은 모처럼 만에 포식했습니다.
왠 놈이 밑밥을 마구 뿌리지 않겠어요?
엉뚱한데서 실종될 필요 없이 여유롭게 근사한 식사를 했죠.
저녁 무렵엔 꾼이랍시고 어떤 놈이 묘기를 부리더라구요.
떡밥을 한 곳에만 떨어뜨려 친구들과 식사다툼이 있게 만들었지만,
우리가 누굽니까? 붕어 아닙니까?
잘 의논해서 넘치는 떡밥을 사이 좋게 나눠 먹었죠.
꾼이라는 놈도 참 멍청하죠?
참! 그 놈은 콩알 낚시를 한다고 했는데 새벽부터 밤중까지 던지는 콩알도
쌓이면 한 가마니 되겠는데요.
적당히 떡밥을 주면 할 수 없이 친구들과 주먹 다짐을 해서라도 목숨 걸고
달려 들겠는데 워낙 밥이 많으니 죽기 살기로 싸울 필요가 뭐 있겠어요.
아~ 오늘같이만 매일 편하게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나 오늘 몇 번이나 끌려 갈 뻔했어요.
그렇다고 끌려간 건 아니구요.
어제 처럼 근사한 식사를 하려고 떡밥을 먹으려 하자 뭔가 반짝하고 물 위로 총알 같이
오르더군요.
순간 '감시6호 바늘'임을 깨닫자 소름이 좌르르 흐르더군요.
깜짝 놀라 쏜살 같이 도망가다가 내가 왜 이렇게 허둥대며 달리고 있지? 하고
생각이 들더군요.
내 기억력이 0.3초 거든요.
다시 그 자리에 가 봤더니 떡밥이 그대로 있더군요.
또 먹었죠 뭐.
다 빨아 먹고 가시 같은 것이 걸려 퉤퉤하고 밷으니까 뭔가 반짝하고 물위로
급히 오르는게 역시 바늘이었어요.
이젠 놀라지도 않게 되더군요.
자식! 어떤 놈이 낚시 왔나 본데 자기가 낚시했으면 몇 년 했으며
그 몇 년 동안 다른 생활 일체 하지 않고 오직 낚시만 했겠나요?
적어도 난 이미 먹고 자고 놀고 하는 생활 자체가 경력이요, 이러한 붕어 경력이
어언 3년인데 나를 당할 수 있겠어요?
차라리 내가 낚시하면 더 잘하겠습니다.
입질이 왔으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채야 하는 것도 모르면서
무슨 낚시를 한다고 앉아 있냐 말입니까.
몇 번 끌려 갈 뻔했지만 그 자식 떡밥 내가 다 작살 냈어요.
오늘은 참 희안한 경험을 한 날입니다.
분명 떡밥안에 바늘이 숨겨 있을 법 한데 이건 아무리 빨아도 흩어지지 않는게
'떡밥 맛 눈깔사탕'인 줄 알았어요.
그 뿐만이 아니예요.
수면 위에서 퐁당하고 떡밥이 떨어지는데 눈에 확 띄더라구요.
냉큼 쫒아가 받아 먹으려고 하자 너무 묽은지 다 흩어지더군요.
지미럴! 물에 다 흩어진 떡밥 몽땅 들이키다간 물배 터져 죽을까봐 관뒀지요.
어떤 놈은 다썩은 새비를 먹으라고 던지더라구요.
내 참 기가 막혀서..... 내가 거지입니까? 그런 걸 줒어먹게...
별별 이상한 살라미들이 많더군요.
내가 젖먹이 인가 떡밥에다가 분유을 타지 않나......
내가 환자인가 떡밥에다가 비오비타(영양제)를 타지 않나...
퉤퉤퉤~! 구역질 나고 밥맛 떨어지고 해서 지렁이 요리나 먹으려 했더니
다 죽어가는 것을 걸어 놓고 나보고 먹으라구요?
저도 자존심이 있는 붕어라구요.
우리 아빠가 말씀하시기를 뼈대 있고 영양가 높은 가문이라고 하셨는데
차라리 하루 굶기로 했어요. 잘 했죠?
오늘은 허기져서 눈에 뵈는게 없더군요.
그래서 왠만한 떡밥이면 받아 먹으려고 작정했죠.
마침 먹음직한 떡밥이 눈에 띄더군요.
냉큼 쭉 들이키니까 쪽~ 하고 딸려오는 맛이 일품이었어요.
아뿔사! 뭔가 이물질이 걸려서 밷고 보니 바늘이잖아요.
바늘이 작아서 망정이지 큰일 날 뻔 했어요.
자존심에 약간의 손상은 입겠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데
사실 내가 이물감을 느끼고 밷기전에 챔질이 와서 바늘이 입에서
빠져 나갔지요.
일전에는 어떤 놈이 큰 바늘을 써서 날 잡겠다고 별렀지만
그런 떡밥은 한 번 딱 물어 보면 금세 알아요.
이런 저런 경험을 통해 업그레이드 된 붕어가 탄생하는 거지요.
" 낼롬~~!"
오늘은 정말 약 오르는 일을 당했습니다.
소란한 곳을 벗어나 한적하고 환경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죠.
마침 그럴 듯한 떡밥도 드리워져 있어 안성맞춤이었는데
뭔가 그림자가 아른거려서 깜짝 놀랐어요.
제가 시력하나는 끝내주는거 아시잖아요.
그 놈은 날 볼 수 없겠지만 난 그 놈과 눈이 마주치자 온 몸에 불안감이
좌르르 흐르더군요.
내공이 안으로 갈무리된 고수 꾼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겠더라니까요.
만일 그 놈이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안았어도 난 골로 갔죠.
더 이상 붕어일기를 쓸 수 없을 뻔 했단 말입니다.
먹자니 불안하고 안 먹자니 먹고 싶고....... 이렇게 약 오르는 일이 세상에
또 있겠습니까?
일전에 내가 뭍 근처 수초에 머물렀을 때 인간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먹자니 불안하고 안 먹자니 먹고 싶을 때 먹으면 설사한다고 하던데요?
그게 고스톱이라는 인간 놀이라면서요?
하늘이 열린 태초이래 설사한 붕어로 역사에 남고 싶지 않아서
약오르지만 참고 그냥 와 버렸어요.
오늘은 하루종일 재미 있었습니다.
촛짜와 놀았거든요.
미끼를 물고 찌를 한 마디 오르게 하다가 놔 버리니까 그 놈은 냅다 채더군요. 히히히...
찌 오를 때 당황하던 모습은 코메디가 따로 없더군요.
찌를 계속 반 마디 오르내리게 하니까 아예 언제 채야 되는지도 몰라
허둥대던 모습이라니....
사실 오늘은 수온이 낮아 기분도 찜찜했었는데 기분 전환으로는 촛짜가 최고 더라구요.
물결이 치는 순간 물결 내리는 타이밍에 맞춰 떡밥 따먹기도 재미있었어요.
내가 재미 있게 노니까 친구들도 온갖 묘기를 다 부리더라구요.
한 애는 아예 찌를 올릴 만큼 올리던데 정말 간도 크죠?
찌가 몸통까지 오를 때 잡힐 각오를 했는데 촛짜는 낚시 교본이 무슨 법이라도
되는 듯 배운 방식대로만 채는 우를 범하고 말더라구요.
인간의 격언 중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는 말이 있다죠?
낚시터마다 또는 붕어의 기분에 따라 찌오름이 다르다는 걸 아셔야죠.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로마는 어디에 있는 저수지 인가요? 정말 궁금하다.....
난 붕어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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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 배웠는데.......
아주 표현력이 좋으시군여
ㅎㅎㅎ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