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겨울 저수지
일요일,
감성돔을 잡으러 동해바다로 가는데 청송 진보를 지날 무렵 함박눈이 내렸다.
고현지 상류에 차를 세워두고 담배를 한 대 빼어 물고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물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몇 해전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이른봄에 월척을 수없이 솓아냈던 곳!
아직 얼음이 얼지 않은 저수지 위에 떨어지는 눈들이 물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물끄러미 저수지를 바라보는 내 눈에 텅 빈 저수지가 쓸쓸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봄, 여름, 가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파라솔을 치고 낚시대를 펴고 앉아, 추억을 낚고 낭만을 낚고 사랑을 낚다가, 근심을 버리고 슬픔을 버리고 휴지를 버리고 떠나갔다.
밤이면 파란 케미로 불을 밝히고, 케미불빛보다 곱게 물위에 내려앉은 별들은 바라보다가, 별빛보다 고운 반딧불이를 보면서 월척을 꿈을 불태우고 갔으나, 지금 눈 내리는 겨울저수지는 너무나 쓸쓸하다.
몇 해전 찾아간 고향마을,
할머니 산소에 들려 절을 올리고 마을로 들어가 보았다.
어릴 적 썰매 타던 시냇가는 그대로 있는데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살구꽃 곱게 피던 살구나무는 눈꽃을 피우며 서 있는데 내가 살던 초가집은 보이지 않는다.
형제들이 올망졸망 꿈을 키우며 살았던 초가집은 헐리고 벽돌집이 들어섰다.
동구 밖에서 눈을 맞으며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쓸쓸히 돌아오고야 말았다.
군에서 제대를 하던 해 겨울,
이른 아침에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창문을 열고 보니 밤새 눈이 내렸고, 깃을 세운 오바코트 위에 함박눈을 뒤집어 쓴 그녀가 서 있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실업자라서 모든 사람들과 연락을 끊고 변두리 자취방에 칩거를 하고, 1년 가까이 책과 시름을 하고 있는 나를 어찌 알고 찾아 왔을까?.
방안에 들어오라고 해도 말없이 문 앞에 서서 머리에 가득한 눈을 털지도 않고, 커다란 눈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솓아질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주머니 속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손에 쥐어주고 눈 속으로 뛰어가는 그녀를 나는 불러 세우지 못하고 바라보아야만 했다.
'결혼을 하기 위하여 시골로 가는 길입니다.
그냥 갈까 하다가 도리가 아닌듯하여 얼굴이나 보려고 찾아왔습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아픈 상처에 생채기만 날 것 같고, 값 싼 눈물을 보일까봐 몇 자 적었습니다.
그 동안 어려울 때에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가슴을 털어놓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첫사랑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훗날 길을 가다 만나거던 눈읏음으로 인사를 하고 맙시다.
행복하세요.'
대문에 서서 쪽지를 읽던 나는 그녀가 사라진 눈 내리는 길거리를 눈물과 함께 바라보았고,
텅 빈 저수지위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던 나는 잠시 지난날의 가슴아픈 추억으로 빠져든다. 눈이 올 때마다 되살아나는 슬픈 추억 때문에 눈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이 저수지 속에는 붕어들이 돌 틈이나 깊은 곳에서 겨울나기를 하고 있겠지.
또 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자리다툼을 하면서 모여들겠지.
그러나, 허물어진 시골초가집을 다시 볼 수 없듯이, 눈 속을 울며 떠난 그녀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눈은 내려서 저수지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나의 슬픈 추억들은 점점 되살아나고....(PIN)
눈내리는 겨울 저수지
-
- Hit : 5644
- 본문+댓글추천 : 0
- 댓글 6
어뱅이님!
어쩌자고 이런 가슴 짠한 글을 올려서 맬랑꼬리하게 만드시나요?
훌쩍~~
젊은 시절 그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음에 눈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으시는군요.
꺼이~~
어뱅이님 때문에 오늘 조행기 후편은 쉽니다.
도저히 이런 기분으로는 조행기 못 씁니다.^^
아!
군복무 시절 눈물을 흘리며 연병장을 가로질러 위병소 쪽으로 되돌아 가던
그녀가 생각납니다.
마침 그때 한참 인기 있던 유승범의 '질투'가 연병장에 울려퍼지고 있었는데....
뒷감당을 하실수 있는 글인가를 생각 해보심이...
사모님께서 보시는 날에는 한시즌쯤 물가에선 어뱅이님 모습을 뵐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까 심히 걱정이 됩니다.
저녘때
나는
홀로 바다에
섰다.
저 어리광을 부리듯한
푸른 물결에
마음은
드디어 무너져
가는가.
먼 바다 저쪽
흰옷의 신부는
등대같이 섰는데
나는 나를 살르어
불을 켜는가.
흰눈이 그읔히 쌓인 숲길을 둘이서 손잡고
언제까지나 걷고 싶다던 그녀가
유난히도 생각나는 밤입니다.
고왔던 눈웃음.....
그래도 조행기는 퍼떡 올리보소.
남자가 그만 일에 랠랑꼬리하면 안 되유.
아마 손가락이 아직 안 녹아서 그럴거유.
물사랑님!
걱정은 마시라요.
어뱅이 과거가 너무나 화려해서
울 마늘은 아예 신경 꺼고 살아요.
얼음이라도 얼어야 되는디...
입낚 망년회 합시다.
사또님!
좋은 시를 적어 주셨군요.
어슬픈 글의 꼬리를 달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십니다.
정식으로 올려 주시면 두고 두고 보겠습니다.
좋은 글은 많이 올려 주십시요.
어차피 조행기없는 계절이니까...
술이 웬수여~
김동리님 작품인데 정확하게 옮겼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너무 오래전이라서...
안동어뱅이님 찡한 글을읽고 그만
지난날이 생각나서 흑흑흑...
바쁜 일정 관계로 자주 들르지 못한 사이에...
많은 좋은 글들이 올려졌습니다...
어뱅이님의 글 가슴저리게 잘 보았습니다...
남자들이 이런 따뜻한 감성을 갖고 있단 걸...
여자들은 잘은 모르겁니다...
아마도요....
대부분 내색을 잘 안하시잖아요...
열분 즐일...즐상낚하셔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