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로우면서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현대시조 몇 편을 옮겼습니다.
천천히 음미해 보시길 바랍니다.
♣ 심부름 / 서 우승
미래사
가는 길에
내생만 한
꽃을 만나
스치는
눈 인사에
절이 하나
생겨나서
심부름
까마득 잊고
소풍 속에
노닌다.
♣ 목련 필 때 / 박영식
가뭇해진 성감대를
살살 좀 그래그래 바람아
아아아아...... 눈 감기는 칠흑 땅속
환각으로 몰려오는 빛 빛 빛
발 저린
하얀 순결을, 지 지금
터 터뜨리고 싶어
♣ 입적(入寂) / 이종문
그 하도
무덥던 날에
난분(蘭盆)이나
갈자 할 때
지네 새끼 한 마리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난분 쥔 손을 탁 놓고 기절초풍하는 판에,
환장컷네, 지네 새끼 저도 기절초풍하여 엉겁결에 팔뚝 타고 겨드랑에 쑥 들어와 혈압이 팍 치솟것네,
혈압이 팍, 치솟것어, 헐레벌떡 웃통 터니 아래통에 내려가서 거기가 어디라고 거길 감히 들어오네. 너
죽고 나 죽자 이놈 망할 놈의 지네 새
끼.........................................................................................................................................................................
마당귀에 툭 떨어져 이리저리 숨는 놈을 딸달이 들고 따라가 타악, 때렸더니,
윽-?.!, 하고 입적하셨네.
이것 참,
머쓱하네.
♣ 내가 나를 바라보니 / 조오현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 남해 보리암에서 / 김원각
소원 따위는 없고
빈 하늘에 부끄럽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그리움 되지 못한 몸
여기 와 무슨 기도냐
별 아래 그냥 취해 잤다
♣ 꽁치와 시 / 박기섭
포장집 낡은 석쇠를 발갛게 달구어 놓고
마른 비린내 속에 앙상히 발기는 잔뼈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낱낱이 발기는 잔뼈
가령 꽃이 피기 전 짧은 한때의 침묵을
혹은 외롭고 춥고 고요한 불의 극점을
무수한 압정에 박혀 출렁거리는 비애를
갓 딴 소주병을 정수리에 들이부어도
미망의 유리잔 속에 말갛게 고이는 주정(酒精)
일테면 시란 또 그런 것, 쓸쓸히 고이는 주정(酒精)
♣ 밥풀 떼기 / 한재인
배고파 허겁지겁 밥숟갈을 퍼 넣는다
모르게 나도 모르게 입가 어디 밥풀 하나
이 땅에 내가 붙은 듯 그렇게 붙은 모양이다
마주 앉은 아내가 웃으며 떼라 한다
앞 못보는 손바닥을 입 구 쪽에 갖다대니
집착은 체면을 떠나 손가락에 달라붙고
어쩔꼬 이 밥풀을 어디에다 풀어줄꼬
삼가 해탈이란 마른 밥풀 같은 것을…
살아서 찐득이는 삭신 밥상 끝에 또 붙인다.
※ 출처 :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꽃이 왜 붉으랴 / 권갑하
(권갑하 시인이 해방 이후 현재까지 발표된 현대 시조 중 울림이 크고
여운이 긴 명시조 100편을 가려 뽑아 시인만의 독특한 해설을 덧붙인
'한 권으로 읽는 우리 시대 명시조 절창 100편' 모음 시집 )
말로 다 할 수 있다면...
아부지와함께 / / Hit : 2599 본문+댓글추천 : 0
무릎을 탁! 쳤지 말입니다. ^.^*
오늘은 팔월 팔일! 쌍팔일!!ㅋㅋ
가슴을 쎄리 후벼팝니다.
뭔지 모르지만
좋습니다.
찌르르르
교양과 품위스러운, 분위기 있고...에! 또 뭐냐!.....
작품성 있고 수준 높은.....
막히지 않은 문화영화 상영 하는 곳이나
공유 들. 해 보시지 말 입니다요!!!!
오늘 날씨 후덜덜입니다ㅜ 더위 조심하시고 항상 안전! 하게 일하세요 선배님
모든 싯귀들이 선문답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갠적으로 밥풀떼기 싯귀가 맘에 속 다가옵니다
대구 많이 덥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세숫대야에 발 담그고 일간월척지나 만화책이나 소설, 시집 한 권 읽으면서 더위를 식히시라고^^
gkskrk님, 저도 예전에 남해 미조 쪽으로 조금 다녀 보았습니다. 지금은 바다낚시 가고 싶어도 못가는 처지입니다.
이박사님, "왜 어르신들이 옳지! 그러면서 무릎을 탁! 치시죠?" 물으니 "그럼 싸대기를 칩니까!"하더랍니다.^^
주다야싸님, 포장마차의 꽁치 안주와 소주가 급 땡기시지요?
소풍님, 소풍만 다니다 심부름도 잊었지요? 찌리리리…
두개의달님, 의상비 안드는 그런 예술(?)영화^^ 근데 구닥다리 폰이라 ㅠㅠ
복이굿님, 먼 날?1,2 쓰신 분께 갈챠 드리세요.ㅋㅋ
바람의향기님, 바람의 향기에 전해온 님의 댓글이 없었다면 글 올린 것을 후회할 뻔 했습니다. ⌒ ⌒
덕분에 좋은 시조 몇 편 보게 됩니다.
사춘기때 누구나 그러하듯이 저 또한 문학소년?이였을때가 있었습니다.
서점에서 기둥에 기대여 현대시집의 책장을 넘기곤 괜실이 주인공이라도 된양 쎈치해지고ㅎㅎ
올리신 몇편의 시를 보니 그때 생각에 피~식!!
안녕하시죠.
간만에 추억의 골목 귀퉁이에서 서성거리며 갑니다...씨-__^익
느끼지 못한, 경험치 못한,
그래서 더욱 새로운
세상을 봅니다.
그림자님
파트린느님
권형님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책
- 박기섭
아버지,라는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고
어머니,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
그 밖의 많은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
건성으로 읽었던가 아버지,라는 책
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
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
면지가 찢긴 줄은 여태껏 몰랐구나
목차마저 희미해진 어머니,라는 책
거덜난 책등을 따라 소금쩍이 일었다
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
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
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
서른 이후, 삶에 치여 습작은 멈추어졌습니다...
얼마전 딸아이의 권유에 극구 손사래쳤습니다.
감성도 사그러들고 섣부른 흉내는 낸다는 것은 더욱 싫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느낄 때 다시 써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시와 시인을 가진 나라입니다.
오래전에는 시 써서 관리를 뽑았던 나라 이기도 했고 한잔 마시면 누구나 시를 짓던 나라였을 겝니다.
글쟁이 들은 대개 어렵게 어렵게 시를 쓰고 남에게 본 마음을 내결듯 들키면서도 천명으로 알고 글을 쓰더군요.
기다린다고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느낄 때가 찾아 오겠습니까?
감성으로 쓰는 시를 좋은 시라 하지도 않겠지만 터무니 없게도 감성은 더욱 사그러들지도 모를 일 입니다.
물론 시인도 많고 시 같지 않은 시도 넘쳐나긴 하지요.
그렇지만 부족해도 혹은 부족한 듯이, 부족함을 알면서도 어쩔 수없이 나서야 하는 것이 삶이거나 시가 아닐런지요?
더 늦기 전에 따님의 말을 들으세요.
졸작으로 신춘문예 자체를 모욕시켰다는 자책감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깊이를 알기까지,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쓸 때까지,
응모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삼십여 년, 습작조차 하지 않다가 자게방에 글을 하나씩 올리며
옛꿈에 대한 그리움이 싹트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떠날 수 없음을 압니다.
주신 말씀, 참으로 크나큰 힘으로 다가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