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생각납니다.
10여년전쯤 중고낚시 장사른 할때였습니다.
매일 5시면 가게 문 닫고 투잡이던
통근버스 운행을 했습니다.
막~~~나가려는데 덩치크고 시커먼 놈이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놕씨 파라?*
다차고짜 반말을 합니다.
이런 씨덩이가 한국말을 누구한테 배운겨~~~
인상에 쫄아서 속으로만 말하고
쎄보이고 싶어서
*그럼 안팔면 뭐라러 가게 하냐~~~*했죠
*버스 운행가야하니 기다리던지 낼 오던지해라*
십중팔구는 물어만보고 가는경우가 많아 신경안썼죠
*8시에 오니까 기다리던지 낼오던지해라*
그리곤 바로 버스운행을 나갔죠
운행을 마치고 오니 그넘이 가게 문앞에 앉아서
울고 있더군요
제가 오길 기다리는동안 방글라데시에서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았다더군요
그렇게 웃픈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4년동안 저는 그놈의 호구였습니다.
형~~~메기잡게 루어대 빌려줘
형~~~숭어잡으러가게 훌치기대 빌려줘
형~~~고등어잡으러가게 찌낚시대 빌려줘
형~~~향어잡으러가게 향어대 빌려줘
씨덩이가 가게를 지 창고로 압니다.
맨몸으로 와서 집에갈때는 물괴기들고 집에 갔습니다.
호구에 시작은 어는 추운 겨울이 었습니다.
가게에서 숙식을 하던시절이었죠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에 눈이 많이 와 있더군요
밖으로 나가보니 30평은 되는 마당이 눈이 하나도 없이
정리되있었습니다.
가게 귀퉁이에 그놈이 빗자루와삽을 들고
땀에 흠뻑 젖은채 기대서있더군요
그날부터 저는 그놈의 벗어날수없는 족쇄에 채워진겁니다.
말이 족쇄지요
낚시가면 수발 다들어주고
눈오면 눈 다쓸어주고
힘든일있으면 먼저 달려와서 도와주고
친형제처럼 4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단 어느날 가게에 찾아온 녀석이
*형 이번달말에 방글라로 넘어갈거야
아빠랑 엄마가 많이 아파~~~*
서운하기도하고 개운하기도 했습니다.
*집에갈때 가져갈 낚시대 골라바
형이 선물할게*
와따 씨덩이 4년동안 호랭이 새끼를 키웠던군요
비싼거로만 고르는데 가오빠지게 안돼 할수도 없고
200만원어치는 뺏긴듯합니다.
그렇게 그넘을 보내고 한달여쯤지났을때
국제전화가 울리더군요
귀국하자마자 부모님이 지어준 짝이랑 결혼하고
연달아 부모님들도 돌아가셨다고
*형 방글라로 놀러와라~~~*
*내가 왕처럼 지내다가게 해줄게*
지금은 연락이 안되고 있지만
거시기 튼실하고 투망질 잘하고
찌5mm만 올라가도 챔질하고 루어대 들고나가면
팔뚝만한 가물치며 메기 들고오던 그놈이 너무 보고싶네요.
글을 너무 잼나게 쓰십니다.
소설 쓰시면 제가 일빠로 책사볼껍니다.
그래도 그치들 큰배스나 블루길도 잡아서
이쁘게 봐줍니다 ㅎㅎ
뭉실님 글 잘 싸네...
저도 그런 우즈벡 동생이 있었지요.
거시기 튼실하고 착하고...
보고 싶네요.
몇년 데리고 있었던놈 생각나게 하네요.
지금 제옆에도 그런 태국동생 3놈 있습니다
야들한테 들어가는돈이
한달에 수월찮케 드갑니다 ㅡ.,ㅡ
동생이랑 한국서 20년 돈벌고
부모님이 동네 땅 다사놔서
경찰도 쉽게 못건드린다네요
그놈 주유소에서 경찰차 기름대둔답니다
코리안드림의 표본이죠
슬픈이야기라 좀 더 생각해보고
올려보겠습니다
코시국지나가면 한번 다녀오세요
동네유지라고 하니
뭐랄까??
뚝배기 속에 장맛?? 아니구나 뚝배기보다 장맛`!!
나도 낑가줘요
막 굵고 크고 휘리릭 잘하고.. 또..ㅡ.,ㅡ;
눈치우느라 땀흘리며고마움의 표시로상대방의마음을 이해하려한 마음이 보이네요^^
방글라는 핵보유국 입니다..
좋은 일하신것입니다
방글라 가족여행 함다녀오시져
가셔서 뿌린 만큼 걷어 오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