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뒤 앵두나무에 드디어 봄이 마실 나왔다.
겨우내 추위에 떨던 가지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꽃망울을 달고 있고, 어느새 순해진 햇살이 볼을 스친다.
난 이봄을 위해 해야할 일들을 깨알같이 적어 놓았다.
화단엔 제일 먼저 채송화 씨를 뿌릴 테고, 뒤뜰엔 아욱이며 쑥갓을 골고루 심을 거라고.
그러나 아직까지 김장독도 꺼내 놓지 않을 만큼 게으름만 피웠다.
우사옆 양지쪽으로 길게 누워 새김질하는 소들의 모습이 나른하다.
무료해진 한낮에 방에만 있을게 아니라 냉이나 캐자고 호미를 들고나섰다.
어느새 그을린 논둑 밑으로 어린 쑥이 고개를 내 밀었다. 먼 산엔 잔설이 허옇고 들바람은 제법 차가운데....
뿌리 실한 냉이를 캐내면 코끝으로 봄 향기가 느껴진다.
내 가 밭둑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니 전깃줄의 까치도 덩달아 흥겨운가 보다.
까치는 영리하기도 해서 계절을 미리알고 집 짓기를 시작했다.
아침마다 '깍깍' 거리며 부산을 떠는 터라 아이들이 늦잠을 못 잔다고 짜증이다.
신선한 아침을 열어주는 까치소리로 내 마음은 늘 평화로운데 말이다.
비학골 산자락에 터를 고를 땐 이런 즐거움까지 기대했었던가.
비가 오시는 날엔 물안개가 자욱히 산허리를 감고 있고,
적당히 몸을 푼 햇살이 퍼지면 알몸을 조심스레 드러내는 모습이 참 신비롭다.
날씨에 따라 그윽하게, 때론 정겹고 화사하게 내곁에 다가서는 비학골 골 짜기.
아침마다 숲속에 대장간을 연 것처럼 온갖 새들의 부지런함이 있고,
싸리곷 향기가 부엌까지 스며들어 나는 또 작은 행복에 젖곤 한다.
이곳에 집을 짖던 그 해 봄에 장날마다 찬거리는 뒤로하고 꽃나무만 사다 심은 것이 제법 울타리가 되었다.
앵두나무는 다닥다닥 수선스럽게 꽃을 피우고 , 목련은 제멋에 겨워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배꽃은 또 어떤가 은은한 달빛에 젖어 까닭없는 눈물을 머금고 있고,
뒤뜰의 터주대감 감나무는 꽃목걸이 하라고 제살을 떨군다.
우리 집 큰애가 초등학교 3학년때 회초리 만한 묘목을 심었는데 제법 우람하게 컸다.
큰애도 이젠 어깨가 벌어지고 콧수염이 거뭇해 졌으니 이곳 비학골 산자락에
터 골라 지은 작은 집에서 내 아이의 나이 수만큼이나 봄을 맞이했다.
그 화사한 봄의 향기에 취한 나날이 내 삶의 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오늘밤엔 인천에 있는 친구들에게 주절이 봄이야길 편지로 할 것이다.
아! 이 비학골 골짜기의 봄 오는 소리를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창열고 소리를 볼 수도, 물오른 살구나무에게 속삭일수도 없는 이 향기들을!
비학골 봄소식(담아온 글)
-
- Hit : 4416
- 본문+댓글추천 : 0
- 댓글 10
산촌댁이란 아주머니의 글입니다
너무 참하고 맛깔스러워
담아 왔습니다
쭉쭉 뻣은 앵두나무 가지에 꽃피면 아름답지요.
봄봄님!
비 그친 봄밤의 공기가 상큼합니다.
내일은 어디로 물나드리 예정하시는지요?
봄봄님의 글을대하니 비학골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거 같습니다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시는 봄봄님이 넘 부럽습니다 ^^
봄봄님 사모님과의 전원생활 아름답게 행복가득 만드시고 건강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새집에 적응되고
마음이 안정되어 따뜻한 날씨가
물가로 유혹하는 때까지 좀 움추리고
있을 생각입니다만
모르지요 훌쩍 길 떠나고 싶은
역마살낀 인생 어떻게 마음이 움직일런지......
쿠마님 고맙습니다
전원생활하니 뒤에는 산,앞에는 논자락도
보이니 전원같은 분위기도 돕니다
드디어 선배님 곚절 봄이 왔는데요 실감이 안 납니다.
저희 하우스는 봄이 무르익었는데요. 밖은 크리스마스 분위기 입니다.
앵두꽃 이쁘고 이화는 월백하고
바야흐로 봄인데 말입니다.
저도 반드시 나이 조금 더 먹으면 산속으로 갑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한 아파트에 동거하는 꽃도
양지쪽은 제 시절을 만끽하는데
10미터도 떨어지지않은 음지에
있는 꽃은 꽃망울만 품고 잔뜩 움추려있습니다
삶도 그럴테지요
양지와 음지가 선명히 대비되는.......
봄을 봄이 묻어나게 묘사 했군요
좋은글 감사여~ 봄봄니~임~
감사합니다
아매 저 아지매는
프로문인인것 같습니다
나무와 먼산만 바라보고 있자니 답답하던차에
봄봄님 올리신 글보고 새삼 봄을 가슴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번주말은 회사동료중 낚시를 좋아하면서도 일에 묻혀서
거의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두사람을 반협박해서 청도로 가기로 했습니다.
세명이 가는 낚시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이번 낚시여행의 이름도
붙였는데요, 그 이름은 '삼부자클럽'
아들 하나씩 데리고 가기로 했거든요!
청도에 가면 선배님 계신곳과 조금은 더 가까워지네요!
몇주전만 하더래도 지금쯤은 명경지수만나러
동해안고속도로를 160-170킬로로 냅다 달리고
있을 시간인데
당분간은 낚시는 짬 내어 가까운 곳으로
다닐까 합니다
집에서 10분이 안되는 거리에 다리통만한
잉어와 4짜 떡붕어들이 득실거리는 참한 저수지가
하나 있습니다
분위기가 제가 좋아하는 쪽이 아닌 중대형지어서
자주 찾지 않는 곳이긴 하지만....
당분간
물가가 그리워 못견딜때
한번씩 나가 대를 드리워야지요
걸어서 5분도 안되는 지척에 손맛터하나 있구요
거긴 또 너무 웅덩이같이 작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곳이긴 하지만
어쩝니까
잉어 당길맛 그리워지면
한번쯤 담궈 보아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