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고향에 한 번도 안 가요?
라고 아내가 물었을 때 그는,
글쎄... 내가 왜 그랬을까?
라고 대답했다.
글쎄... 내가 정말 왜 그랬을까?
두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데,
이십팔 년이면 나를 기억하는 이 아무도 없을 텐데...
눈물 나도록 행복했던 날들은 희미한 아쉬움으로 남았고,
죽도록 아팠던 순간들은 이제 책갈피 속 이파리처럼 박제되었는데...
그래, 가보자, 진주.
라고 그가 말했을 때,
TV를 보고 있던 아내가 리모컨으로 설날 풍경을 껐다.
설날이었나 봐. 초저녁이었어.
고 1이면 열일곱 살인가?
아버지는 납치 사건 때문에 며칠째 외근 중이었고,
엄마와 여동생은 진주 터미널에 외갓집 식구들 마중을 갔었고,
누나들은 선생님께 세배드리러 갔었지.
나는 베스 ㅡ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야. ㅡ 와 집에 남았었어.
나는 드라이버로 전화기를 분해하고 있었지.
집 전화가 며칠째 고장이었거든.
아, 그때는 내 취미가 그거였어.
라디오ᆞ벽시계ᆞ전축 등을 수리했었지.
물론, 한 번도 성공하진 못했지만.
뭐 하여튼 전화기를 만지고 있는데,
우와 ! 띠리링 ! 그때 전화가 온 거야.
네~. 육칠삼삼입니다~.
죽이지? 삼십팔 년 전의 전화번호를 기억하다니 말이야.
어떻게 기억하냐고?
6733. 육고기에 칠을 하면 맛이 삼삼해.
기발하다고? 사실은 그 아저씨가 가르쳐 준 거야.
그 아저씨가 누구냐고? 나도 몰라.
그냥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끌렸어.
이상하게 끌렸어...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하자.
네~. 육칠삼삼입니다~.
라고 말을 했지만, 상대방은 아무 말이 없데?
그때 베스가 컹컹 짖어대는 거야.
베스 ! 베스 ! 통화 중이잖아 ! 조용히 해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 말이 없더라고.
이상하다~. 전화 온 게 아니었나?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상대가 말을 했어.
베스... 강아지 이름인가?
아주 먼 데서 말하는 듯한 낮은 목소리였어.
네. 아저씬 누구세요? 아버진 안 계신데요?
베스... 며칠 전에 변소에 빠졌었나?
아저씨가 어떻게 아세요? 아버지 친구예요?
그가 또 말을 멈췄어.
쫑긋, 귀를 기울여봐도 가는 숨소리만 들렸었지.
얼마 후, 그가 말했어.
아버지께 꼭 화장실 뚜껑을 만들어 달래라.
네. 저도 그럴려고요.
6733. 육고기에 칠을 하면 맛이 삼삼하지.
우와~. 아저씨 천재 같아요 !
맹랑하구나. 밝아서 좋다.
늘 그렇진 않아요. 자주 우울해요.
힘드니?
뭐가요? 아... 사는 거요?
그래.
글쎄요. 뭐... 그렇죠.
그래도 꿈꾸는 걸 멈추진 마라.
희망이...
희망이, 라고 말을 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
내가 왜 이러지? 왜 모르는 사람에게 주절대고 있지?
아저씨, 그만할래요. 아버지한테 뭐라고 전할까요?
잠깐만, 한 마디만 할 테니 뒤 문장을 연결해 봐라.
말씀하세요.
사랑이 유치하고, 라고 그가 말했고,
희망이 천박하다, 라고 내가 대답했어.
또 그가 말을 멈췄어.
쫑긋, 귀를 기울였더니 낮은 흐느낌이 들렸지.
아저씨, 울어요?
아니다... 네 이름이 뭐니?
피러요.
그... 그래, 피러야.
네.
힘들다고 생각 마라.
네.
언제나 그렇듯, 그랬듯이 말이야.
네.
지금 뭘 해야 하는지만 안다면 지금은 우리에게 아주 근사한 순간이란다.
네.
외롭겠지만, 잘 살아내라.
네.
울고 있니?
네.
왜?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요. 근데요, 아저씨.
말하거라.
나는, 내 인생은 외로울까요?
아마도. 하지만 즐기게 되겠지.
네.
이만 끊을게. 외롭겠지만, 잘 살아내거라.
네. 아저씨도요.
당신처럼 이상한 사람이었네.
그랬지. 근데, 내가 이상해?
응. 이상해. 그것도 많이.
정말 이상한 건, 전화기는 고장이었어.
무슨 말이야?
고친 게 아니었어. 불통이라 결국 새로 샀거든.
# 너무 길어 두 편으로 나눕니다.
저는 뭐 여전히 붕어 괴롭히며 잘 살고 있습니다.

524.7230. 삼십여년전 친구네집 전화번호인데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본가전화9353
차번호 9352
핸펀번호 9351였던게 생각납니다.
건강하시고요..
보고 싶네요!!
하긴 먼산보고 돌아가라 란 어느분의 말씀처럼 한박자 쉼표는 지혜라 하더군요!
잘 계시지요?
생각 없이 읽다가 다시 글쓴이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여전히 꽃미남에 미소도 아름다우시죠?^^
잘 계시죠?
우리 집에 설치된 동네 첫 다이얼 전화기.
두 개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릴 적 산이며 들로 참으로 많이 쏘다녔습니다.
온갖 상상과 계획과 이웃의 얼굴,죽은 개 등
그 모든 것을 소재로
허공에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어머닌 지금도 말씀하시지요.
" 못하게 하니 이불 속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그 짓을 하더라 "
그때 이상한 놈 취급받으며 손가락으로 펼쳤던
'자문자답'의 배회가
아직도 유효하며 계속 됩니다.
근데 좌삼삼국에 우삼삼은 머였죠?ㅎㅎ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되길 기원드립니다.
참고로 제 전번은 파리한마리 죽었다 입니다
오리요리집에서 전화번호 팔라고 연락왔던기억이 ...
보고싶어용 ~~~~^^
진주 참 좋은곳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