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곤의 별난 낚시기행
붕어낚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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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계들과 신바람을 낸 오사카 (1)
다시로 스미에(田城 すみえ)는 오사카 아가씨다.
다시로 스미에를 만난 곳은 오사카 번화가 우메다(梅田) 상가 거리 이자가야
골목입구였다. 인천공항 발 간사이공항 행 ANA항공기를 탄 것은 9월
초순이었다. 특별히 볼 일이 있었거나 스케줄을 짜 놓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훌쩍 떠난 일본
가을로 들어서는 9월에 들어서면서 어딘가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국내 여행도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갈만한 곳은 대개 수해지역이다. 수해복구에 땀흘리는 속으로 한가하게 여행한다는 것도 주민에게 미안하다.
그러던 차에 카드회사 청구서와 함께 온 상품선전 팜플렛에 국제항공권을 파격적으로 싸게 판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6개월 무이자 할부라니 구미가 동한다.
전화로 물었더니 인천 간사이 왕복이 30만원이라고 한다. 지난 봄 편도만 34만원에 타고 갔던 간사이가 왕복 30만이라니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다. 현지 호텔 숙박요금도 이미 쿠폰을 끊으면 60% 할인이라고 하니 매우 파격적이다.
호텔 쿠폰과 티켓을 6개월 무이자 할부로 끊어 간사이행 비행기를 탔다. 호텔 쿠폰을 미리 끊을 때는 스케줄이 정확해야한다. 쿠폰에 기재된 날에 자지 않으면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을 떠날 때 호주머니에는 1,000엔 짜리 지폐 20장이 전부였다.
외국 여행을 할 때 대체로 현금을 소지하지 않는다. 현지에서는 카드를 쓰면 되고 현금이 필요한 경우는 현지 은행 자동입출금기에서 카드로 찾아 쓰면 되는 시대에 굳이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다.
인천 공항 면세점에는 현지에서 피우고 마실 면세 담배 세 보루와 양주 두 병을 샀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간사이공항에서 내려 전철을 타고 JR 오사카 역에서 내려 미리 쿠폰을 끊어 놓은 호텔에서 체크인 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4시간 전후다.
JR 오사카 역은 우메다 지역에 있다. 우메다 지역은 오사카의 번화가 가운데 하나고 특히 술집이 많은 지역이다.
호텔 객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JR 역 매점에서 산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천천히 걸어 우메다 번화가로 향한다. 우메다 술집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사람의 파도로 넘친다. 우메다 술집거리는 평소에도 사람이 많지만 금요일 저녁이면 인산인해다.
일본은 주 5일제 근무가 정착되어 있는 일본 술집거리는 금요일 저녁이 피크다. 우메다에는 젊은층이 즐겨 찾는 거리다.
우메다 이자가야 골목 입구에서 일단 정지해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찬찬히 주변을 살핀다.
오늘 밤 함께 술을 마실 상대를 물색하는 작업이다. 멀리 오사카에까지 와 혼자 술을 마실 생각은 없다. 그럴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오지도 않았다.
어깨에 카메라를 걸치고 손에는 시가지 지도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이상한지 지나는 아가씨들이 힐금힐금 바라본다.
오사카 지역 지리라면 지도 같은 건 필요 없을 만치 밝다. 지리가 밝으면서도 호텔 프런트에서 지역 안내 지도를 얻어 손에 들고 나온 것도 '난 외지 사람이오' 하는 걸 선전하자는 전술의 하나다. 낚시에 비유하자면 미끼의 일종이다.
적당한 대상을 찾아 살피는 사이 술집 골목 입구에 서 있는 3인 일조의 아가씨가 눈에 들어온다. 첫 타깃은 3일 인조의 아가씨로 정하고 찬찬히 살핀다.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본 세 아가씨 나이는 열 여덟 아니면 열 아홉 살. 아무리 많아도 스무 살은 넘지 않았다.
한국 같으면 자칫 미성년자와 관련된 어떤 법의 저촉을 받을 위험도 있을 것 같은 나이로도 보이지만 그런 일은 일본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분 이상 바라보고 있었지만 세 아가씨는 그 자리에 서서 자기들끼리 종알거리기만 한다. 오가는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종알거린다는 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말을 맞아 무작정 번화가로 놀러 나왔고, 누군가가 '난빠'해 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임에 틀림없다.
'난빠'란 남자가 여자에게 술을 같이 마시고 놀자 하는 식의 말을 거는 것을 뜻하는 일본 은어다. 어원은 잘 모르지만 원조교재라는 말이 등장했다는 것으로 보아 '난빠'는 원조교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은어'임에 틀림없다는 짐작이 간다.
세 아가씨에게 '난빠' 해 보기로 하고 접근한다. 실패한다해도 쑥스러울 것 없는 것이 일본 풍속도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밑져야 본전이다.
난빠 성공
"말 좀 물겠어요. 여기가 이 지도상의 어디죠?."
세 아가씨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는 우메다 지역 지도를 내밀며 유창한(?) 일본말로 묻는다.
일본 사람들의 특징은 친절이다. 친절한 국민성을 이용하자는 작전이다.
한 아가씨가 지도를 받아 두 친구 앞에 내민다. 세 아가씨가 지도를 열심히 살핀다.
가까이서 본 세 아가씨는 멀리서 본 인상 그대로 10대 후반이다.
"여기예요."
처음 지도를 받아 들었던 아가씨가 지도상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답한다.
지도를 보고 지점을 지시하는 사이 세 아가씨가 나를 힐끔거린다.
'이 아저씨 우리를 난빠하는 걸까?. 난빠라면 응할까 말까?'
나를 힐금거리는 아가씨의 눈길에 그런 빛깔이 느껴진다.
"여기가 노미야(술집) 거리인 모양이지요?"
"하이. 여기가 우메다 번화가예요. 이 안 쪽 상가거리 전부가 노미야예요."
처음 지도를 받아 든 아가씨가 친절하게 답한다.
이 아가씨가 다시로 스미에(田城 すみえ)다.
"누구 기다리세요?"
본격적인 난빠에 들어간다.
그걸 모를 아가씨들은 아니다. 여기서 누굴 기다린다는 답이 나오면 그건 당신하고 놀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다.
"아니예요. 주말이라 친구하고 그냥 나왔어요."
다시로 스미에가 친구의 눈치를 보며 답한다.
"다른 약속 없으면 좋은 집 소개해 줄래요. 오사카가 처음이라 동쪽도 서쪽도 몰라요."
다시로 스미에가 바로 답을 하지 않고 두 친구와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본다.
바라보는 눈길에는 자기 혼자 만이냐 친구도 끼워서냐는 빛깔이 느껴진다.
"친구들도 같이 가요."
"어디가 좋을까?"
다시로 스미에가 대답 대신 친구들에게 한 말이다.
자기들 셋이 함께 놀아주겠다는 답이다.
다시로 스미에 일행의 안내를 받아 들어 간 곳은 우메다 술집 거리에 있는 쯔루라는 이름의 이자가야였다. 쯔루는 테이블과 스탠드가 있는 선술집이다. 금요일 오후답게 가게에는 거의 자리가 없을 만치 손님이 차 있었다. 손님 가운데 반 이상이 젊은 층이고, 젊은 층의 대부분은 20대에 들어섰거나 초반이다. 손님 가운데는 남녀 짝보다는 여자끼리가 더 많다.
이것도 일본의 새로운 풍속도다.
일본 청주와 간단한 요리 몇 가지를 시키고 요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생맥주를 마신다. 첫 잔은 생맥주로 시작하는 것이 일본 젊은이들 식 주법이다.
"지금 하시는 말 어디 나마리예요."
세 아가씨 가운데 가장 어려 보이는 기누에가 묻는다.
일본말의 '나마리'를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사투리에 해당하지만 어디 억양이냐는 뜻이 더 강하다.
그때까지도 애들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건 간코구 나마리야."
"간코구? 처음 듣는 이름인데 동북지역이예요?."
기누에가 묻고 다른 두 아이도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간코구 몰라? 지난번 일본하고 월드 컵 같이 개최했던 나라."
"한국 분이세요?"
기누에가 놀라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로 되묻는다.
다른 두 친구도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기누에의 고함 소리에 주변에서 술을 마시던 아가씨들의 시선이 쏠린다.
"그래 나 한국 사람이야."
"일본서는 어디서 사세요?"
이번에는 또 한 아가씨인 미찌코가 묻는다.
한국 사람이라는 말에 일본 사는 재일동포 정도로 오해한 것 같다.
"일본 사는 한국인이 아니라 서울에서 왔어?"
"정말이세요?"
"그런 것 거짓말 할 이유가 없잖아."
명함을 건너 주며 말했다.
"와! 작가 선생님이네요."
세 아이가 동시에 감탄한다.
일본에서는 작가가 엄청 대접을 받는다. 사회적으로는 문화인으로 대접받는 신분이지만 작가는 돈이 많다.
"거짓말한다는 게 아니라 일본말을 너무 잘해서요."
마찌코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말한다.
"자신 있는 말만 골라서 하니 잘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야."
"일 때문에 오셨어요?"
"아니. 오사카에 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 그냥 훌쩍 온 거야."
"스바라시이."
스바라시이는 '굉장하다' '멋있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일본까지 오고 싶으면 올 수 있는 여유 있는 신분이 굉장하고 오고 싶다는 기분 하나로 외국까지 훌쩍 오는 생활 태도가 멋있다는 뜻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내가 외국인이고 작가라는 사실을 알면서 세 아이들은 더욱 친밀감을 보인다. 세 아이가 한국인에게 특별히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과 술을 마시고 조금 흐트러져도 다시 만날 일이 없으니 신경 쓸 것 없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그리고 알파도 있다. 외국에서 관광객이면 돈을 쓰려 왔다.
일본은 10년 째 불경기고 불경기 속의 젊은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놀 자금이 없다.
상대가 돈 많은 작가고 일본까지 돈 쓰러 왔고 '스바라시이'라는 표현을 할 만치 멋진(?) 남자라는 사실을 알면서 세 아이들은 더욱 친밀감을 보인다.
생맥주에 이어 한 사람 앞에 일본 청주 3홉을 마셨을 때 시간은 아직도 10시 전후였다. 일본 젊은이들에게 밤 10시는 초저녁이다. 주말 밤 즐기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우리 기타신지로 옮길까?"
기타신지(北新地)는 위락 업소가 들어 차 있는 오사카의 새로운 번화가다.
"기타신지도 아세요?"
"오사카는 여러 번 왔었어. 오사카가 처음이라고 한 건 세 사람이 너무 매력적이라 같이 술 마시자고 할 구실로 한 거짓말이었어."
내가 처음부터 자기들을 난빠의 대상을 삼았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것이 유리하다.
본격적인 작전
카타신지에서 찾아 든 집은 스낵바였다. 스낵바는 접대하는 아가씨도 있는, 우리의 카페로 생각하면 틀림없다. 일본 스낵바가 우리와 다른 것은 가라오케 기계가 설치되어 있고 세팅비라는 이름의 기본요금이 있다는 차이다.
세팅비라는 이름의 기본요금이 만만치 않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나지만 대개는 2,000엔이니 우리 돈으로 2만원이다. 가라오케 반주에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별도로 돈을 넣어야 기계가 돌아간다.
1,000엔을 넣으면 다섯 곡을 부를 있으니 바에서 노래 한 곡 부를 때마다 우리 돈으로 2,000원이라는 계산이다.
스낵바에서 노는 값이 이토록 만만찮으니 다시로 스미에 같은 어린아이들은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를 만난 것이 세 아이들에게는 행운이다.
이자카야에서 마시는 것으로 보아 세 아이 모두가 술에 강한 것 같다.
"술은 뭘로 할까?"
술을 묻는 것은 비교적 싼값에 해당하는 맥주는 아니라는 뜻이다.
"게이게츠 좋아하실 것 아니에요?"
다시로 스미에가 말하는 게이게츠가 어떤 술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게이게츠가 뭔지?"
"게이게츠 모르세요?. 한국 소주요. 여기선 그게 유행인데."
"글세. 처음 듣는데…."
다시로 스미에가 마마(주인 여자)에게 게이게츠 병을 보여달라고 한다.
마마가 들고 온 소주병에 '경원'이라는 한자가 표기된 라벨이 붙어있다.
그때야 다시로 스미에가 말하는 게이게츠가 한국 소주 '경월'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기서 이것 얼마 받아요?."
"우린 싸게 받아요. 5,000엔이에요."
병은 고급스럽지만 750mm 소주 한 병에 4만원이라니 그것도 싸게 받아 5,000엔이라는 마마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국내 같으면 3,000원이면 마실 소주를 5만원이나 주고 마실 생각은 절대로 없다.
5,000엔이나 주고 소주를 마시느니 조금 더 보태 스카치나 코냑을 주문하는 편이 작전상 이로울 것 같다.
"사실은 소주 좋아하지 않아. 게이게츠를 좋아한다면 몰라도 아니라면 코냑이 어때?"
"코냑! 와~! 스바라시이."
세 아이가 동시에 환호를 지른다.
일본에서 보면 경월소주도 코냑도 수입품이고 높은 관세가 붙어 있다. 이것은 한국 소주나 서구 양주나 값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1만엔인 500mm 병 코냑을 주문한다. 비싼 술을 주문하면서 마마의 눈빛도 달라지고 서비스도 한결 좋아진다.
언젠가 말했지만 유혹을 목적으로 여자를 술집에 데려 왔을 때는 비싼 술을 청하는 게 작전상 유리하다.
코냑을 마시면서 세 아이들은 내 기분을 맞추는 경쟁에 들어간다. 그런 아이들의 변화를 보면서 이제 누구를 찍느냐는 것만 남았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내 자신감이 과연 적중할까?
사진설명
1. 임진왜란의 원흉 풍신수길의 거성 오사카 성.
2. 오사카 성 외곽.
3. 이자카야 거리 야경.
4. 오사카 시가지에는 아직도 지상 전차가 다니는 지역이 있다.
5. 우메다 상가거리.
이종곤의 별난 낚시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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