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가자!”
알고 지내던 목사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일요일은 목사가 대목이라 정신없이 바빠야 할 터이지만, 몇 해 전부터 교회 없는 목사가 되어 아마도 무료함에 낚시 할 생각이 났나 봅니다. 예배를 마칠 시간 쯤해서 오랜만에 전활 하셔서 대뜸 낚시가자고 하십니다.
여러 형편이 낚시 갈 형편이 못되었지만, 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지난 3월부터 날 풀리면 한번 낚시나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해 두었던 탓도 있었고, 그보다는 왠지 만남이 싫지 않은 사이라는 것이 한 두 사람쯤 있게 마련 아니겠습니까?
허름한 옷을 찾아 입는 제 모습에 한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봅니다만 평생 그런 눈초리 쯤 아랑곳하지 않을 것을 아내가 먼저 압니다. 즐기지 않는 것을 잘 알지만 김밥 보다는 나을 것 같아 햄버거 두 세트를 싸들고 허름한 연립주택에 사시는 목사님을 모시러 갑니다.
목사님 댁으로 가, 장비를 차에 싣습니다. 주로 릴 장비가 많은, 언제 썼는지 모를 먼지가 잔뜩 앉은 장비 들 사이에서 허름한 가방하나를 옮겨 싣습니다. 대길이가 어찌되는 물으니 칸반 하나 둘둘 하나 두칸반 두 개. 대를 보는 순간 어디로 갈까 하는 걱정은 다 사라졌습니다. 멀지 않은 저수지에 가서 메기나 몇 마리 잡자는 제안을 무시하고 짧은 대가 잘 듣는 만만한 터로 모시기로 함부로 결정 합니다.
꼼짝 말고 차에만 있으시라 해 놓고 지렁이와 캐미를 사러 낚시방에 들렸는데, 뒤 따라 들어와 바늘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립니다. 바늘은 저한테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굳이 등을 떠밀어 차에 채우고 터로 향합니다.
전날 비가 많이 왔고 그때까지 비가 다 개이지 않아 파라솔도 많이 보이지 않고 터가 아주 한가했습니다. 묶어 쓰려고 하신다며 바늘을 좀 달래시길래 감생이 2호 대여섯 개 쯤 챙겨드리고 자리를 봐드렸습니다.
그만 가보라 하여 제자리로 돌아와 저도 대를 폅니다. 대를 펴자 오후 2두시 경인데도 비가 채그치지 않은 흐린 날시 탓에 굵은 지렁이에 입질이 옵니다. 두 칸반이 찌를 힘차게 올려 챔질을 하니 물컹 옆으로 쨉니다. 대충보아도 척은 넘어 보이는 붕어가 올라옵니다. 하두 입질이 시원해서 기대를 걸었는데 걸어 올려보니 떡이었습니다. 요새 떡은 하는 짓이 토종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살짝 아쉽더군요. 잘하면 오늘 대박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잘 모시고 왔나보다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문득 잘 하고 있나 생각이 들어 목사님 자리에 가보니 낚시대 네 대를 부채살 처럼 펴놓고 물을 바라보라 보고 계셨습니다.
"뭐 좀 잡았어? 물소리 들으니 아까 좀 큰 놈을 올리는 것 같던데...” 반갑게 맞으면서 부드럽게 말씀을 하시는데,
낚시대에 찌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찌가 다 어디로 갔어? 하고 물으니, 대답이 없습니다. 맙소사! 낚시대에 찌가 없었습니다.
대를 들어보니 챙겨드린 바늘은 아예 쓰시지 않았고, 깎아 내지 않은 8호 봉돌에 바늘은 대충 보아도 감생이 6호는 되어 보이는 무시무시한 바늘이 2봉으로 매져 있더군요. 팔뚝만한 메기나 잡으면 모를까 예민한 입질을 보이는 붕어를 잡기에는 그 장비로는 물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기나 잡으러 가자고 하셨던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그보다 아마도 낚시한 적도 오래되고 급하게 가방을 옮겨 실으면서 찌를 잊어버리고 오신 모양입니다. 세상에 말씀을 하시지.
급하게 찌통을 꺼내보니 매달아 드릴만한 찌가 충분치 않았습니다. 대물찌 한두개와 어떤 것은 칸반 미만에나 맬 정도의 가벼운 찌가 하나, 내림찌가 한두개 있었고 20년 전에 이만원 주고 산, 그래서 기념품처럼 가지고 다니는 전자찌 하나. 다들 두칸 반 길이에 맬 만한 적당한 찌가 없었습니다.
지렁이와 캐미를 사러 들린 낚시방에서 그냥 한마디만 했으면 될 일을, 생각해 보니 바늘도 찌도 없이 낚시를 따라 나선 것을 낚시방에 들릴 때 알았는데, 제가 너무 설쳐 그대로 말없이 따라 오신 것도 같았습니다.
놔두라고 몇 번을 말리시는 걸 이렇게 저렇게 찌를 맞춰 바늘도 다시 매드리고 다시 대를 폈습니다.
몇 시간 후 제 자리로 조용히 와서 ‘가자!’ 하십니다. 살림망을 들어보니 크지 않은 작으마한 자라 두 마리와, 토종 붕어 세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만하면 되었지요, 충분한 조과입니다.
1980년 7월, 28연대 어느 중대 3소대 내무반장은 제2훈련소가 중에서 “관창의 어린 뼈” 하는 대목을 짙은 칠곡 사투리로 “관창의 어린 삐가”로 가르쳐 그 소대 사람들은 모두 작난처럼 “관창의 어린삐”로 소리 높여 불렀지요. 그 내무반장은 일요일이면 꼬박꼬박 기독교신자를 기독교환자로 불렀습니다. 논산훈련소에 가서야 비로소 기독교신자를 “기독교환자”라고 부를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군상이나 깨뜨리고, 절은 다 불 타 없어지라고 통성하는 수준에 있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실언이라고는 하나, 일본의 대 지진이 우상을 숭배해서 일어났다는 식의 말씀이 한나라의 종교지도자의 반열에 입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초파일날은 절에 가서 스님과 마주앉아 절밥도 얻어먹고 이번 크리스마스에 카드 보낼테니 답장이나 잘하라는 농담을 스님을 상대로 건넬 줄 아는, 예수가 어디 있는 자의 예수였더냐 낮은 곳에 임하신 분임을 어찌 모르더냐 굳은 일에 낡은 옷을 입고 꼬박꼬박 나타나는 목사, 두꺼비를 살리자고 토지공사를 향해 항의 할 줄 고 천막을 치고 단식을 할 줄 아는 목사. 자의반 타의반 결국 목회 하지 않는 목사가 되더군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도 말합니다. 아무개 같은 사람도 있는 걸 보니 기독교도 나름대로 괜찮은 종교 같더라고.
원불교 교무님 한분, 신분님 한분, 목사 한분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지내면 도대체 뭐하고 지낼까가 궁금 했는데 이 세 사람이 함께 단식을 할 때보니 노자를 읽고 자신의 종교적 입장을 떠나지 않고도 잘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를 일찍 걷어 늦은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이런 저런 말이 깊습니다. 사도바울의 초대교회 이야기며 기독교가 유럽의 표준이 되는 천년의 지배의 역사, 한해에 십만명이 넘는 죄 없는 여자들을 불태운 끔찍한 마녀사냥 이야기, 문예부흥기의 인간 중심의 전환. 다 알아들을 수없는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가 늦도록 이어집니다. 주로 이야기를 하시면 나야 듣기만 했지만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말썽꾸러기 괴짜 목사지만 신학대학 때는 뛰어난 성적이었고 책 읽은 분량도 남다르며 깊은 내공을 가진 도인 같은 신앙인인 것을.
헤어지기 전에 오른 팔에 엘보가 와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손수 제 팔을 주물러 주시며 엘보에 좋은 팔 체조를 가르쳐 주십니다.
건강하십시오, 목사님. 다음에 동출하게 되면 꼭 찌 매드리겠습니다!
일요일, 괴짜 목사님과의 동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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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자신의 종교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더군요
이것만이 길이고 진리이다 이런말 전혀없습니다
다만 묵묵히 자신의 신념에따라 행동하고 솔선하는것이지요
그런분들이 각 종교의 지도자가 된다면
우리나라의 여러종교들은 한층더 성숙하고 발전하리라 생각합니다
선배님 주변에는 참 좋은 분들이 많이 계신것 같습니다..
선배님.....상대리 말고 새우낚시할만한 곳은 주변에 없나요?
떡밥 갈기가 귀찮아서요.....제일 막내가 벌써 귀차니즘에 빠져 있어 죄송합니다...
가끔은 창피할 정도의 전도심을 발휘 하시는 분들이 있지요..
종교는 그저 종교이고..개인이 섬기는 신이라 생각 합니다.
서로 존중해줄 필요가 있지요..
동출 하신 목사님과 같은 종교인들이 많아졌슴 하는 바램입니다.
아주 좋은 친구를 두셨습니다.
즐거운 출조여행 잘 읽고갑니다.
건강 하십시요~
님의 글을 읽으니,너무 대조 됩니다
교회 큰것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기독교...
북한 처럼 세습하는 교회관행..
비정상적인 교회에 다니는 신자 또한 정상인지 의심이 갑니다
변함없는 사이가 되시길..
잘보앗습니다~~
항상 변함없는 사이가 되시길 바랍니다~
안출하세요~
*** 추억은 가슴에 쓰레기는 봉투에 ***
신앙도 삶도 훌륭해보이십니다.
파트린느님과 좋은 인연 계속되시길 바랍니다.^^
이젠 월척지 뻘물이 좀 갈앉앗겠지 싶어 들렸더만 횡재햇네요
건강하십시오, 목사님. 다음에 동출하게 되면 꼭 찌 매드리겠습니다!]
찌라도 몇 개 드리고 싶은 목사님이십니다
파린님 채바 허름한 연립주택에 한번 델고가줘유
그곳이 천당일거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