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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번 찿아볼랍니다 권형님처럼 ..

충북 충주시 호암동 1통3반 105번지 이(김)종철씨... 갈래머리를 한 여동생이 울며 붙잡지만 미끈거리는 깜장고무신을 양손에쥐고 콧물을 팔께로 쓱 닦아낸 국민학교 5학년 작은아이는 꽁무니에 풀풀 거리는 먼지를매단 시골버스를타고 무전 (無錢)으로 집을 떠났었습니다 너무 조숙했었을까요 1년여를 섬을오가는 여객선에서 오징어나 소주를 파는 아이로 집나선 미아로 파출소급사로 농산물공판장 장사치로 그러다가 결국 머물게된곳이 녹번동 미아보호소였습니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운영하는 미아보호소인데 천주교교단에서 운영했죠 수녀님들과 한반에 2-30명씩 기거하며 교리를 배우고 부모찿은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도하고 끝내 부모를 확인못한 아이들은 입양되거나 멀리는 외국입양길에 오르기도했죠 저처럼 자발적가출의 경우 스스로 집주소를 말하지않기때문에 부모가 찿아올리도 만무하니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며 나이를 먹어가고 끝내 성년을 그곳에서 맞기도합니다 그곳에서 3개월여를 보내는동안 미국부모와 입양주선이있었고 입양주선후엔 미국부모로부터 후원물과 선물들이 오기시작했죠 그어린나이에 위기감이 들더군요 스스로 집을 나왔지만 영영 부모형제와 이별할수있다는사실이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텃세와 엄연히 존재하는 서열 맞기도 싸워이겨내기도 끝없이 해냈지만 결국 구석에 몰릴뿐 떼로 덤비는 덩치큰 형들을 이겨낼 재간이 없더군요 지금으로말하자면 입식타격방식의 그곳아이들과 .MNA방식의 혼합적인 전라도식 싸움방식으로 매일같이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그때 만난아이 ... 안타깝게도 그아이이름은 잊었습니다 나보다 두살정도 위였던것같았는데 역시 스스로 집나온 아이였죠 서로 미아보호소를 탈출하면 집에 연락해주기로하고 외웠던주소 .. 충북 충주시 호암동 .... 30년이 지난일이지만 그주소만은 아직도 기억이납니다 그친군 어디살고있을지 .... 사연많았던 제 삶의 이야기중 잊을수없는 사람이기도합니다 주소중 이종철씨..는 그친구 아버지성함이고 30년전 주소이니 아마도 지금은 그곳에 살지않겠지요 제가 43살이니 아마 45쯤되지않았나싶습니다 아마 그친구도 제어릴적고향 주소 전남 영암군....을 지금도 외우고있지않을까요 다행히 일년여만에 집에 돌아왔으니 일년간의 가출로 부쩍 자라 돌아왔었지요 지금 제아이에게도 말안들을때 말하곤합니다 불만있으면 집나가도 좋다 전 진심으로 아이가 이런경험도 해봤으면 합니다

이글을 보고 그분으로부터 바로 연락이 오길 바랍니다.

그 친구분 찾았다는 좋은 소식 기다릴께요. 은둔자님!
나이들면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은둔자님도 유년의 아픈 추억아닌 추억이 있었군요ㅠㅠ

세상은 좁습니다.

살아만있으면 만나는법!

님의 삶에 잊을수 없는 그 친구 상면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살아오시면서 힘든 시간들이 있었군요
친구분을 하루빨리 만나시길 기원드립니다.
지난 어려웠단 일들,
잊어버리진 못하겠지만 마음속 깊숙히 묻어두시고,
따뜻한 마음속의 친구분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
살아만 있으면 만나지 않겠습니까??
건투를 빕니다.
반가버요 은둔자님!

간절히 기도하면 만나지리라 믿습니다.

파이팅 하세요
은둔자님 반갑습니다

유년시절 이야기 잘 보았읍니다

가슴이 찡해오는군요

은둔자님은 어린시절에도 카리스마가 보여지는데요...

찾고자하는 지인을 꼭 상면하시길 바랍니다
불만 있으면 집나가도 좋다 ??

스파르타식 교육 이네요 요즘 그렇개 말할 수 있는 부모가 과연 ???

그리운이 ..상면하시어 회포 푸시기 바랍니다

저두 ... 꼭 찿구 싶었던 친구(어릴 때 여자짝궁) 찿았는데 .....
아니봄만 못하더라는 ^^
은둔자님의 여러 과거를 통해 은둔자님을 느끼네요.^^* 대단하십니다.

저도 앞만 보고 달려오다 이제는 옆도 보게되고 뒤도 돌아보게 되네요.

이제 조금은 저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나봅니다.

소홀했던 내 고마운 친구들, 가족들에게 연락해야겠습니다.


아이들 없이는 못 사시는 분이 그러다 진짜 나가면 어떻하실려구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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