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기억하시는모습은어떤모습
인가요???
문득 밑에글보다 떠오르네요.
지금은돌아가셔서뵐수없지만
27년에태어나셔서
13세에 일본강제징용끌려가시고.
6.25참전으로 군생활6년하시고
제대하시고
어릴때워낙가난해서남의집 머슴사셨던분.
제가 학교다닐때6.25참전중 부상당했음에도
유공자가못되어서
참전용사모임의 워드작성이나
서류를 제가해드렸고
이명박대통령때에 유공자되시고
지금 대전현충원에 계십니다.
그때는 그냥할아버지.
서류해달라면 귀찮아하는 철없는손자였는데.
제가커가면서보니
한사람의인생치곤 너무힘든 생이었다는
생각이드네요.
자주못찾아뵙지만
이젠편히쉬시길
존경스러운분이었다고
내가슴에남아있습니다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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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워낙 제가 어려서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기억을 못하지만 저희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저희집이 작은집이지만
제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많은 사랑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ㅎ
참 저희 아버지도
국가 유공자 십니다
월남참전 고엽제 피해를
입으셔서 상이군경 2급
판정을 받으신지가
20여년 되어 갑니다
자주못가서 안타깝습니다.
유독손자가하나라 저만이뻐하셨는데
대우가 너무 빈약함에 화가 납니다.
독립유공자와 참전유공자님들의 대접이 더 좋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작과 배추가 생각납니다..
어려 기억에 할아버지는 복덕방서 마작을 하시거나 가을 김장철에 배추장사를 하섰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가 어느정도 추억을 쌓을 무렵인 초딩 5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습니다..
그후 두번밖에는 뵌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를 생각할 작은 기억이라도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돌아가신지 거의 30년쯤 되었네요..
일본이라면 치를 떠셨던...
그렇게 중1때 돌아가셨죠.
20년 째 벌초해드리는 손주에게 그 흔한 로또 1뜽 번호 한번 안 주시는 매정하신 분.
올해는 저수지가 잘 보이게 잡목도 다 쳐내드렸건만...^^;
안줄까요 ㅋㅋ
유공자 대우가 너무 빈약해요.
할아버지 독립유공자 아버지 참전용사 근데 저는~~~~~~~~~~
그시대에 태어나신 분들은 일본에 6.25에
힘드신 생을 사셨던분들인듯합니다
요즘 항일운동에 관한 책을 보구있는데
역사가~~외곡투성이 ~~~~ㅠㅠ
왜 일케 웃겨요 ㅋㅋ
이름도 군번도 그흔한 사진한장
남기지못한체 후손들의 자유와
삶을위해 산화하신 순국선열을
절대잊으면 안되지요ㅡ
"나라잃은 백성은 상가집개만도못하다"
요즘 세계적인 이슈인 난민들을보면
이말이 가슴에닿습니다ㅡ
아마 돌아가셨겠죠..
경찰들 와서 아무나 이름데라고 해.
마을이장이 동네 젊은 남자들 이름 적어서.
낸게 보도연맹원으로 올라간거라네요..
동경유학 하시고 고등학교선생님으로 재직중,
외할머니 만나서 결혼하시고,
울엄마 뱃속에 있을때,
보도연맹으로 무고하게 희생 당하셨습니다.
울모친은 무남독녀이자 유복녀이고,
외할머니는 20살이란 나이에
울모친 하나만 보고 70년 가까이 사시다가,
작년 3월에 평생 소원이셨던
단, 한번만이라도 외할아버지 만나는거
못이루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무고하게
보도연맹원으로 잡혀가실때도,
경찰들이 몰고온 트럭에,
하루만 잠깐 어디갔다온다고, 말하시고,
흰삼베옷 입고 나가시며,
손 흔든게 마지막이 될줄이야
누가 알았을까요..
잡혀가시고 면회갈 기회가 있었는데,
20살 나이에 임신한 몸으로
도저히 부끄럽고, 엄두가 안나서 못갔는게,
돌아가실때까지도 한이라고..
그때당시에 마을에 버스가 있는것도 아니고,
걸어서 꼬박 이틀은 가야 할 거리였다네요..
몇년전인가 외할머니 살아계실때,
울모친이 "엄마, 나중에 저승가서 아부지 만나면..
얼굴 알아볼 수 있나?"라고, 물었더니..
외할머니가 " 당연하지, 한번에 딱 알아볼 수 있지, 내가 그거만 바라고 살았는데, 성수(저)랑 똑같이 생겼지..근데, 너거아부지는 젊은 모습 그대로 일건데, 나는 하얗게 늙어서, 너거아부지가 내로 알아볼지 그게 걱정이다..."
가끔 외할머니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면,
가슴도 먹먹하고, 눈물도 찔끔나옵니다..
정이 많으시지는 않았지만 돌아가신 뒤에 남기신 일기장 보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다시는 동족상잔이 없기를 간절히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