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큰처남이 우리님에게 물었다.
“육자가 누굽니까?”
“몬테 회사에서 일하던 조우회 사람입니다.”
“아아 그 친구. 저도 기억이 납니다. 이제 대충 사건이 정리가 되어 가는 것 같네요.”
큰처남은 범인의 윤곽이 확인 되었다는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잠까 마주친 우리님의 얼굴은
한없이 어두워 보였다. 그것은 육자의 배신에서 오는 상실감이 아니라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져 버린 탓이었다.
우리들의 어두운 얼굴과 풀이 죽은 모습을 본 큰처남이 이해할수 없다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친한 사람의 배신 때문에 그렇게 상심하는 거야?”
“아니요. 육자는 그런 치밀한 일을 꾸밀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그저 제 위기를 이용해서 돈이나
뜯어내려 한 것일 뿐일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육자는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큰처남이 내게 조언을 했다.
“범죄들을 보면 그렇게 단순한 것들이 아니네.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것이야. 육자가
그런 일을 꾸밀 능력이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육자가 범인이 아니라는 단순한 판단은 버려야 되네.
육자가 정보원 내지 심부름꾼일 가능성을 배제 해서는 안되네. 어차피 범행이 단독범행은 아니야.”
“예, 형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핸드폰이 범인에게서 핸드폰이 걸려왔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돈이 다 마련 되었으면 돈을 가지고 납치 현장으로 와라. 혼자서 와야 된다는 걸 명심해라.”
“손을 다쳐서 운전을 할 수가 없소. 지인이 운전을 해서 움직일 거요. 걱정 말아요. 우리가족만
무사히 넘겨 받으면 됩니다. 당신이 걱정하는 일들은 없을 겁니다.”
“좋다. 일단 납치 현장까지 돈을 가지고 와라.”
전화를 끊고 나서 차사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초등학교 앞으로 갑니다. 이미 위치 추적기가 범인 차량에 부착 되었으니, 의심 받지 않게
한두대만 움직여 주세요. 그리고 범인차량에 사람을 붙여놓으면 될것 같네요.”
“예, 형님.”
우리님과 나는 돈이 든 가방을 들고 은행을 나섰다.
우리는 은행 앞에 주차해둔 차에 올라 탓다. 우리님이 운전석에 올라 내 대신 운전을 했다.
이제 범인이 이 돈가방을 어떻게 전달받고 그곳을 빠져나갈지 의문이 일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범인이 어떤 방법을 쓸지 알수가 없었다.
우리님은 범인이 육자라 는걸. 안 순간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님. 육자가 범인일까요? 아님 범인과 공범일까요.”
우리님은 대답대신 긴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럼 단순한 갈취범 일까요?”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고개만 가로 저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하세요.”
“아직은 모르겠어.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아. 만약 공범이 있다면 우리 주변의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 정도 치밀한 범행을 계획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해 보고 있어.”
“왜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공범일 거라고 생각하세요. 외부의 육자친구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그동안 느낀 바로는 육자는 폐쇄적인 사람이야. 우리 조우회에서 그를 끌어안았기에 마음을
열고 지낸 거지. 그와 이런 일을 공모할만한 외부의 지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힘들어. 자네도
한번이라도 육자가 친구를 만난다거나 친구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 본적이 있나? 아님 가족에 관한
일이라도……. 한 번도 없을걸. 나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의 말이 맞았다. 만나지는 삼년이나 되었고 근 이년이라는 세월을 내 밑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육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의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 들이 있는지 한 번도 들어보질
못했다. 그는 조우회 사람들과 상당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외 사람들과는 깊은 인연을 맺지
못하는 폐쇄적인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우리 주변에 공범이 있다면 그게 누구일까요?”
“그건 알 수가 없네. 하지만 머리회전이 아주 뛰어난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님의 아픈
과거를 대충 알고 그것을 이용해서 우리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어. 과연 이정도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육자님과 촌사람이 제일 친하게 지내기는 했어요. 촌사람이 영업직이라 나름 시간이 많다보니
연습장으로도 자주 놀러 왔고요. 촌사람과 통화해서 한번 의견을 들어 볼까요?”
“아니, 모든 가능성은 열어 놓아야 해. 일단 육자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겠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범인이 육자와 다른 누군가일 경우를 바라고 있네. 그것이 제일 쉽게 사건이 해결되는
경우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남초등학교 정문에 다와가 무렵 차사랑으로부터 문자가 날아왔다.
‘범인과 범인 차량이 아직도 그대로 시내에 있음?’
“육자가 시내에 그대로 있다는 데요.”
나는 우리님에게 문자내용을 알려주었다.
“예상하고 있었네. 범인이 돈을 넘겨받고 빠져 나가기 제일 좋은 곳은 시내 일거야. 많은 인파와
지하철 지하도 등일 얽히고 설혀 있으니까. 아마 돈을 넘겨받고 지하도를 통해 구 밀레오레쪽 출구로
빠져나갈 생각일 거네. 지금 목적지를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것은 혹시 모를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것이겠지. 이번 승부는 범인의 위치가 확인되는 순간 끝났다고 봐야지.”
“그럼 육자를 언제쯤 잡아야 될까요?”
“육자가 진짜 범인과 공범일 가능성이 있으니, 자네 가족들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줘보세. 오늘
밤까지는 그대로 두고 혹시 공범과 연락하거나 만나는지 추적해 보세.”
우리는 차를 처갓집으로 들어가는 길목 커피숍 앞에 차를 세우고 다시 범인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공범이 현장에 돈을 넘겨받기 위해 와 있을까 싶어 차에 앉아 그 길을
지나는 차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때 썬팅이 짖게 된 고급세단 한 대가 내 차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 차는 운적석 창문이 반쯤 내려져 있었고 중년의 한 사내가 운전을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차가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그 사내의 옆모습이 왠지 낯익게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 짧은 순간이라
그를 어디서 보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범인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전대병원 앞으로.”
범인은 짧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우리는 다시 차를 몰고 시내 쪽으로 향했다.
전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다시 범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행 앞으로 다시 오라는 전화였다.
역시 우리님의 말대로 돈을 넘겨받기 위한 곳은 시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드 밀러를 보니
오토바이 한 대가 조용히 우리차를 뒤 따르고 있었다. 금남로로 진입할 무렵 차사랑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범인이 지하도로 진입.’
그리고 범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까지 왔나?”
“도청근첩니다.”
“그럼 전화를 끊지 말고 내가 지시하는 데로 계속 움직여라. 일단 외환은행 앞에 차를 세우고 가방을
들고 혼자 지하도로 내려와라.”
나는 수화기를 든 채 차에서 내려 지하도로 내려갔다.
“지하도로 내려 왔습니다.”
“그럼 도청반대편으로 계속 걸어와라.”
“예. 가고 있습니다.”
여름방학 기간 중이라 그런지 지하상가는 평일인데도 인파들이 많았다. 우리가 미리 범인의 신상과
범인의 차량위치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그를 놓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인파와 출입구들
주변의 대형 건물들 그리고 지하철까지 연계된 공간에서 그를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미행하는 건
불가능 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가면 됩니까?”
“지하철로 들어가라.”
나는 그의 지시를 따라 계속 움직였다. 그가 지하철로 내려가라는 지시에 불안감이 일었다. 지하철은
우리의 예측과는 많이 어긋나 있었다. 지하철 표를 사서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했다. 너무 예민해진
신경탓인지 아니면 아직 차사랑이 애들을 철수 시키지 않은 것인지 걸어가면서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애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나를 따라 애들 몇 명이 지하철까지 따라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하철로 내려왔습니다. 지하철을 타야 돼는 건가요?”
“상무지구 방면으로 가서 내 지시를 기다려라.”
나는 상무지구 방면 지하철 승차 홈으로 내려갔다. 승차 홈에 도착하자마자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열차가 도착했습니다. 타야 되나요?”
“타지마라. 그리고 지금부터는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해라. 최대한 빨리 뛰어서 지하철을 빠져 나와라.
최대한 빠른 속도로 뛰어야 한다."
나는 범인의 지시대로 가방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돈 가방은 상당한 무게였다. 아직 붕대가 감겨진
한 손으로 핸드폰을 귀에다 가져다 대고 무거운 돈 가방을 가지고 뛰는 것이 힘에 겨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하상가로 다시 올라왔다.
“지하상가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럼 천변 쪽으로 움직여라 최대한 빨리.”
나는 잰걸음으로 천변 쪽을 향해 걸어갔다. 한쪽에 설치된 공중전화 부스에 사진으로 확인한 육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육자는 그곳에서 나를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일부러 시선을 육자의
뒷모습에 고정시켰다. 혹시 애들이 나와 같은 속도로 나를 뒤따라 올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신호를 보내고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멈춰. 바로 옆 충파 쪽 출구로 빠져 나가라.”
나는 그가 지시하는 대로 지하상가 출구 쪽으로 갔다.
“계단에 구걸하는 사람 옆에 가방을 놓고, 그대로 가라. 허튼짓 하면 알지.”
“알았으니 제발 가족들은.......”
전화가 끊겨버렸다. 나는 계단 중간에 엎드려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 옆에 가방을 놓아둔 체 그대로
지하상가를 빠져 나갔다.
지하상가를 빠져 나오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지하도를 빠져나오는
나와 마주친 여학생 두 명이 비명을 지르며 나를 피했다.
격렬한 움직임에 봉합했던 혈관 중 일부가 터져버린 것인지 붕대위로 붉은 피가 번져있었고
수화기를 들고 있었던 탓에 얼굴이며 온몸에 피가 범범히 되어 있었다.
나는 그늘에 주저앉아 숨을 고르며 우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님 충파 앞으로 와 주세요. 핏줄이 다시 터져 버렸나 봐요.”
붕대를 적신 피가 계속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 차사랑에게 문자가 나라왔다.
‘범인차량 이동 시작. 추적하고 있음.’
나는 차사랑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형님.”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져서 추적하라고 해줘. 위치추적기 붙어 있으니 놓치는 일은 없을 거야. 눈치
못 채게 멀리서.”
“예. 형님.”
나는 큰처남에게 차사랑 핸드폰 번호를 문자로 보내주고 전화를 걸었다. 큰처남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범인 차량이 움직이고 있네.”
“예. 알고 있습니다. 방금 전화번호 문자 찍어 드렸으니 그쪽으로 계속 위치 전송해 주세요. 큰형님
저 병원으로 다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핏줄이 다시 터져버린 것 같아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
“아니요. 우리님이 이리 오고 있어요. 형님, 절대로 육자 건드리지 마세요. 오늘 자정까지는 그대로
놔둬야 됩니다. 꼭이요.”
“알았네. 걱정 말고 빨리 병원으로 가.”
점심시간이 다된 탓인지 시내에 교통체증이 심했다. 우리님이 차를 이동해서 이곳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출혈 때문인지 자꾸만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신고를 받은 것인지 충파에서 갑자기 경찰관들이
뛰쳐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흐려지는 시야에 경찰관 둘이 나를 향해 급히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전대병원 응급실에서 의식을 차렸다. 의식을 차린 후 잠시 병원의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이렇게 모든 일이 끝나고 가족들이 돌아와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잠시 후 우리님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님 어떻게 됐어요.”
“아직 별다른 건 없어.”
“지금 몇 시쯤 됐나요?”
“밤 여덟시.”
“가족들은…….”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어.”
“육자는요?”
“연습장에 계속 머물고 있어. 큰일 날 뻔 했네…….”
나는 우리님 말을 더 듣지 않고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통화기록을 확인해 보았지만 별다른 내용들은 없었다. 나는 육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님이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육자에게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면 분명히 만류했을 것이다. 육자가 전화를 받았다.
“예 사장님.”
그의 목소리에서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는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연습장엔 별일 없지. 혹시 어디서 연락 온 것 없어?”
“예. 별다른 연락 없습니다. 사장님 몸은 좀 어떠세요?”
“응 몸은 괜찮아. 근데 가족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 아내하고 그 어린 것들이 겪고 있을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네.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만 빌고 있네.”
잠시 뜸을 들이더니 수화기 너머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육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그분들이 무사히 돌아오시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육자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최소한 내 가족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 마음만은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네. 그럼 전화 끊을게.”
“저 사장님.”
육자가 다급하게 전화를 끊지 못하게 나를 불렀다.
“왜?”
“상황이 이런데 이러기가 죄송한데,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워야 될 것 같습니다. 집안일 때문에 어쩔
수가 없네요.”
“꼭 가야될 일인가? 될 수 있으면 있어줬으면 좋겠는데…….”
“낼 점심때쯤 만나서 말씀드릴게요. 어쩔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응 그래 낼 만나서 이야기 하세.”
육자와 전화를 끊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지금 상황에서 계속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 힘든 일일 거라는 생각에 육자가 떠나
있으려 하는 건 이해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가족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육자가 납치사건과는 무관하게 공갈협박을 한 것인지, 아니면 범행에는 참여를 했지만 단순한
심부름꾼이나 정보원 역할만을 했기 때문에 그에게 가족들을 마음대로 돌려보낼 힘이 없는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곁에서 통화를 지켜보던 우리님이 궁금한 듯 물었다.
“육자가 뭐래?”
“집안 일 때문에 일주일 정도 자리를 비워야 겠다네요. 내일 점심 무렵에 만나기로 했으니 무슨
이야기가 있겠죠? 근데 다른 분들은 다들 어쩌고 계세요?”
“큰처남은 일단 육자핸드폰 통화내역을 조회해서 주변인들 자료를 수집하고 있어. 대부분 조우회
사람들하고 통화한 내역들이고, 조우회 사람이 아닌 낯선 번호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신상자료들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 차사랑은 계속 대기 중이고……. 그런데......”
우리님이 내게 해야 할 말을 망설이고 있었다.
“말씀 하세요.”
“사건 터지고부터 촌사람과의 통화가 아주 많아. 경찰에서 촌사람을 공범으로 보는 모양이야.
촌사람과 관련된 자료들을 파악하고 있는지 나한테 계속 전화가 와서 이것저것 물어 보고 있어.”
“촌사람이 나하고 통화를 할 수 없으니까 답답한 마음에 육자에게 계속 전화를 한 것이 아닐까요?”
“맞아. 근데 조사를 하다가 예민한 부분이 발견된 모양이야.”
“뭔데요?”
“이젠 경찰을 막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촌사람뿐만 아니라 자네까지 용의선상에 오른 모양이야.”
“뭐예요? 제가 왜 용의선상에 오른단 말이예요.”
“자네가 촌사람님 생각해서 촌사람에게 들어준 보험들이 문제가 되는가봐.”
촌사람은 보험 영업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촌사람을 도와줄 생각으로 연금보험이나 납입액이
큰 보험들을 몇 개 들어주었다. 그리고 촌사람이 실적이 부족해서 애타하고 있을 때 추가로 보험들을
몇 개 들어주었다. 촌사람과는 유독 친하게 지내고 있던 터라 열심히 살려고 하는 그를 도와주는
심정으로 그가 많이 어려워 할 때마다 그를 도와주고는 했다. 어차피 중도에 해지 하지 않는 한
큰 손실이 없는 상품들이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그를 도와주었던 것이다.
“자네 가족들이 모두 죽게 될 경우 자네가 받게 될 보험금이 백억 단위가 넘는데, 보험금으로 자네가
너무 큰 금액을 받게 되니 당연히 경찰에서 자네를 용의선상에 올리게 된 거야. 나야 자네가 촌사람을
도울 목적으로 보험가입을 많이 한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큰형님에게 자초지종을 잘 말씀드렸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자네 가족들이 죽게 될 경우 촌사람이 십억이 넘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최근에 보험 가입을 했다는 거야. 왜 피보험자를 자신으로 해서 그렇게 많은 보험을 최근에
갑자기 들게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래서 촌사람이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있어.
아마 경찰에서는 촌사람이 꾸민 일이거나 자네와 공모해서 이번 일을 벌였다고 의심하고 있을 거야.”
우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가 멍해졌다. 내 자신이 용의선상에 올라와 있다는 것보다 촌사람이
자신을 피보험자로 해서 고액의 보험을 들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촌사람이 범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촌사람이 보험일로 우리 집을 방문하는 횟수가 많다보니
조우회 사람 중에 아내와 가장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붙임성이 좋은 촌사람의 성격 탓인지 아내와 허물없는 사적인 대화까지 나눌 정도의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라면 나와 아내와의 연애시절의 이야기를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그가 범인일 거라는 확신을
더해 주고 있었다.
“지금 그럼 경찰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일단 촌사람 위치를 확인하고 사람이 붙은 모양이야. 그리고 육자를 감시하고 있어. 두 사람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예의 주시하고 있는 모양이야.”
“집사람이 납치되던 날, 촌사람이 일이 늦게 끝났다고 해질녘 다돼서 도착했으니 충분한 시간은
있었다고 봐야 겠네요.”
“촌사람을 의심하는 건가? 가능성은 열어 놓데 확신은 가지지 말게. 내가 제일 두려운 게 뭔지 아나.
이번일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야 한다는 거네. 그럼 이번일이 끝나고 나서 우리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잃게 되어 버릴 것 같아. 일단 모두에게 가능성은 두되 절대 성급한 확신은 갖지 마세.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인줄 모르겠지만 그동안 봐온 촌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나는 그의 말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럼 육자는요?”
“육자는 속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네. 그가 범인일수 있겠다는 생각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어. 하지만 촌사람은 그 느낌과는 다르네.”
우리님은 촌사람을 옹호하는 말을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촌사람에 대한 의구심이 사라지질 않았다.
나는 상황을 확인해보기 위해 큰처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큰처남이 나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을까봐 겁이 났다.
“깨어났나? 다행이네. 몸은 좀 어때?”
큰처남의 목소리에서 전혀 그런 부분은 감지되지 않았다.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서 무전소리와 사람들의 급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지금 범인이 집을 나선 모양이야. 일단 상황체크하고 통화를 하지.”
육자가 집을 나선 모양이었다. 조급한 마음에 그대로 병상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님 저 지금 나가야 되겠어요. 육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에요.”
우리 님도 그런 나를 말리지 않았다.
“그러세. 또 터질 수가 있으니 격하게 움직이면 절대로 안 돼. 알았지.”
우리는 응급실에서 나와 차로 이동했다.
차사랑에게 지금 상황을 체크해 보았다. 육자가 연습장을 나와 제2순환 도로를 타고 봉선동 쪽으로 이동
해서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고 했다. 우리는 차사랑이 일러준 번지를 네비에 찍고 봉선동쪽으로 차를
몰고 갔다.
아홉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지만 도로엔 차들이 많았다. 근처에 도착해서 건물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
큰길에 차를 세우고 큰처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
“이십 여분 전에 육자가 건물지하로 들어갔어. 지하에 바가 있는 모양인데 폐업한지 오래 된 곳인데
최근에 낯선 사람들이 들락 거렸데.”
“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앞으로 사십분만 더 기다렸다가 치고 들어 갈까해. 어차피 풀어줄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 풀어줬을거야.
그리고 지금 풀어주러 온 것이라면 한 시간씩 지체할 이유가 있겠어? 시간을 많이 준다는 것이 오히려
인질들을 더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어.”
큰 처남의 말이 맞았다. 만약 풀어줄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 풀어줬을 것이다.
큰처남의 마지막으로 한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더 이상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 치고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조바심이 자꾸만 일었다. 풀어줄 목적이 아니라면 혹시 죽여서 시체를 유기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끔직한 영상들이 떠오르며 가슴을 조여 왔다.
지금 정확한 판단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걸 경찰에게 맡겨 놓고 지켜볼 수밖에는 없었다.
피를 말리는 긴장감과 초조함 속에 조금씩 시간이 흘러갔다.
시계를 보니 아직 이 십여 분이 남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건물이 있는 이면도로 쪽으로 형사로
보이는 사내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고함소리들이 들려왔다.
무슨 변수가 생긴 것인지 건물에 진입키로 한 시간보다 이십 여분 먼전 경찰이 움직인 것이었다.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았다. 무슨 일인가 벌어진 것이 분명했지만 상황을 알수 없었다.
도저히 그대로 차안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 나는 차에서 내려 이면도로 쪽으로 가기위해 인도를
걸어갔다. 그때 수갑을 찬 채 한 사내가 이면 도로 쪽 입구로 쏜살같이 튀어 나왔다.
반대쪽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춰진 그 사내는 육자였다. 육자는 뒤쪽에 서있는 나를 보지 못한 체
그 달려오는 트럭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향해 몸을 던졌다. 고막을 찢을 듯 한 급브레이크 잡는 소리와
차량이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져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뒤따라오던 형사들이 망연자실하게
제 자리에 멈춰 섰다.
그중 한 형사가 무전을 보냈다.
“용의자 도주 중 차량에 충돌. 용의자 도주 중 트럭에 받힘. 엠브란스 현장으로 보내주기 바란다.”
나는 바로 눈앞에서 육자의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아니 그건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육자는 스스로
달려오는 트럭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뒤늦게 허겁지겁 달려온 큰처남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큰처남의 눈이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큰처남은 바로 뒤에 서 있는 형사들에게 몸을 돌렸다.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수갑까지 채운 용의자를 놓쳐…….”
한 형사가 고개를 푹 숙이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차에 태우려는데 갑자기 튀어나가버리는 바람에…….”
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큰 처남이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더니 정강이를 걷어차 버렸다.
그 형사는 얼굴을 감싸 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큰처남은 주저앉은 그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곁에 있던 형사들이 큰처남을 붙들고 그에게서 떼어 놓았다.
“니가 그러고도 형사야. 니가 형사야 이 새끼야”
“강 경장님 진정하세요.”
곁에 있던 형사들이 큰처남을 떠메다 시피 해서 경찰차량 쪽으로 데리고 갔다.
이면도로 초입에 세워진 경찰차량에는 십여 명의 사내들이 연행되어 있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게면 적어 하는 형사를 잡아 일으켜 주며 그에게 상황을 물었다.
“피해자 가족입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가족들은 발견이 되었나요?”
내 간절한 목소리에 미안함이 들었던지 그가 시선을 떨구었다.
“불법도박장 이었습니다. 가족 분들은 없었고요. 범인이 이렇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연행자들이 많아서 잠깐 방심한 것이…….
정말 죄송합니다. 강경장님한테 잘 좀 말씀해 주세요.”
그는 이야기를 끝내고 터벅터벅 되돌아갔다.
p.s 휴가 끝나고 복귀 했습니다.
근데 솔찍히 평좀해주세요. 별로 재미가 없나요?
2013 몬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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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먼저 답니다
휴가는..잘보내셨나요?
돈가방을..거지 옆에두고..까지
읽다가..
고마워 닷글먼저 답니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수가 없네요..
감사한글 잘보고 갑니다.
기대감 만땅,,,, 다음편은 언제 ㅋㅋ
휴가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기다리느라 목 빠질뻔한 1인입니다...^*^
육자가 말할수 없는 상황이 있을것 같은데요...
등장인물이 너무 비교적 적어서 다양한 예측 심리묘사가 적어서 인지 아직 공감대 형성되지 못한것 같습니다.
육자(제 닉하고 비슷한)는 벙카인것 같고 왠지 우리님이 전 냄새가 나는데... 암튼 긴박한 전개가 이제 부터 시작일것 같은데
좀 서두가 긴것 같아요
광주를 벗어나야지 않을까합니다. 장소와 등장인물 그리고 목적이 너무 쉽게 예상되기 때문일까요?
암튼 올드 보이시나리오를 천천히 생각하면서 글을 천천히 정독해보지만 왠지 목적이 서두에 나타나서 그런것이 아닌지...
암트 좀더 긴박한 뭔가가 필요할듯 합니다. 특히 여자가( 우리님의 특징인)나와야 할것 같은데요 이제 서서히 소희라는 인물이
나와야하지 않을까도 생각해봅니다.
휴가는 잘보내고 오셨는지요 여기를 하루에 두번씩 들랑달랑했는데 이제 퇴근시간에 감상 잘하고 갑니다.
여자는 약방의 감초인데 등단시켜 주세요
담편이 기다려지네요.
근데 아무래도 안좋은 결과가 나올듯하여 조바심이...
언제나 올라오려나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찌 이런 상상을 다하시는지...
두근두근 헙니다.
휴가는 넘일이고
선풍기한대로 몬테봄서
하루를 마감헙니다.
스릴렁가 드릴렁가 암튼
푹 빠져버럿당게요^^
감사합니다^^
긴장감이 점점 ~~
다음편으로 계속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