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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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지금의 송가인 공원 갈대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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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군 지산면 앵무리.....

 

예전에는 낚시인들에게 앵무리 수로, 그리고 바로 옆 장구포 수로로 잘 알려졌고

이른 봄이면 남녘의 봄소식으로 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곳이죠

 

지금은 송가인이라는 무명 가수의 성공 덕분에 곳곳에 송가인 홍보물이 나붙고

앵무리 수로와 장구포 수로 사이에 있는 삼각주 모양의 밭에

조성된 '송가인 공원'이 랜드마크가 된 곳이죠

 

지난 주말에 이곳을 지나가다 30여 년 전 아내와의 작은 추억이 생각나 몇 자 올려봅니다.


 

때는 1990년 8월 하순

그해 봄에 어렵사리 화촉을 밝히고 첫 여름 휴가에 장인 장모님 문안차 처가에 갔습니다.

처가는 장구포 수로와 인접해 있고 송가인 마을과도 가끼운 곳입니다.

 

이틀 동안 장인 어른과 술잔도 기울이고 농사 일손도 좀 돕고나니 딱히 할 일도 없는 데다

지천에 널린 저수지와 수로를 향하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하여 아내를 살살 꼬드겨 가까운 수로로 낚시를 가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에는 내가 낚시를 좋아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낚시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었지만 워낙 천성이 어진 사람이라 순순히 내 뜻에 따라줍니다.

 

87년 회사 신입사원 연수 때 산 '흑곰' 그라스대 3대를 비료포대에 둘둘 말아 등에 매고

아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송가인 마을이 보이는 수로에 도착하였습니다.

지금은 포장도로가 시원하게 뚫렸지만

그 때는 달구지나 다니던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느라

엉덩이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한참 신혼 때라 마냥 설래고 행복했습니다.
 

포인트가 될만한 곳을 찾다보니 누군가 연안 갈대를 베어내고 낚시했던 반질반질한 자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때는 20, 25, 30대 편성에 가지바늘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

먼저 20대를 편성하여 지렁이를 달아놓고 아내를 삼각의자에 앉혔습니다.
 

오후의 역광이라 찌 보기가 힘든 상황에서

일어서서 나머지 대를 펴고 있는데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오빠~~~! 찌가 막 까딱거려~"

아내의 다급한 외침에 찌를 돌아보니 깜박거리며 끌고가는 것이 윗바늘에 입질이 온 것 같습니다.

"어~~ 빨리 챔질해! "

"어떻게?"

"그냥 힘껏 채~~"

긴 설명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아내가 두손으로 만세부르듯이 그야말로 힘껏 챔질을 해댑니다.

"쇄~~~액~~~"

"철부덕.....!!!"


 

8월 오후 햇빛의 눈부심 속에 무언가가 잠시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왼쪽 가슴을 강타하고 강렬한 통증이 뒤를 따릅니다.
 

가슴을 내려다보니 혼신의 힘을 다한 챔질에 7치붕어가 날아와

정확히 심장 부위에 바늘과 함께 꽂혀 퍼덕이고 있습니다.

 

살에 박힌 바늘을 빼내려는데 가슴에 매달린 붕어가 파닥거리는 통에 나머지 한 바늘까지 손바닥에 박히고 맙니다.

아프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지켜보는 아내 또한 어쩔 줄 몰라합니다. 

"오빠 어떡해...."

 

당시에는 경험도 부족하고 왼쪽 가슴에는 바늘이 박힌채 붕어가 퍼덕이고

오른손 손바닥 또한 바늘이 박혀 달리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라

왼손으로 오른손에 박힌 바늘부터 뺀 다음 왼손으로 붕어를 잡고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의 바늘을 빼냈습니다.

오른손바닥은 그나마 깊게 박히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왼쪽 가슴에는 제대로 박혀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꾹꾹 참아야 했습니다.

바늘을 뺀 다음에도 가슴과 손바닥은 쏙쏙 아리고 피까지 나는 데다

휴가에 맞춰 새로 산 티셔츠도 흉측한 구멍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아니, 적당히 챔질을 해야지 그렇게 막 채면 어떻게 해?" 라고 다소 언성을 높였더니

"오빠가 그냥 채라고 해놓고....." 하며 시무룩해집니다.

 

아차 싶어 바로 화해 모드로 들어갑니다.

"어.... 그정도로 세개 채라는 것은 아닌데, 암튼 괜찮아 좀 아프긴 하지만 견딜만 해"  

휴지로 대충 지혈을 하고 나중에 보복 낚금 당할까봐 아내를 살살 달래며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낚시를 하였습니다. 


그날 조과는 6~8치급 대여섯 수에 잡고기 몇 수였습니다.

 

아내는 종교적 이유도 있지만 그날의 민망함과 서운함 때문인지

그후로는 한 번도 낚싯대를 만져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낚싯터에 동행하여 나물도 캐고 고사리도 꺽고 산책도 하며

곁에 있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습니다. 

 


 

다시 2021년 3월로 돌아와서, 아내와 차를 타고 지나가다 문제의 포인트를 가리키며


"여보 세월 참 많이 변했다. 당신이 내 가슴에 붕어 패대기 친 게 엇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넘었네.

잡초만 무성하던 곳에 송가인 덕분에 공원이 다 생기고 말이야."

"내가 큐피드 화살에 가슴을 맞고 눈이 멀어 당신께 청혼했는데, 그렇게 낚시 바늘로 꿰어 확인사살까지 하고 싶었어?" 했더니

"그때 당신이 버럭 화를 내서 얼마나 민망하고 미안 했는지 알아?"라고 응수합니다.

"그래 내가 크게 잘못 했네. 근데 저기 갈대밭 말이야 지금 보면 그렇게 좋은 포인트도 아닌데

그때는 차도 없고 해서 가까운 맛에 저기 앉았던 것 같아."

"은퇴하고 시간 많을 때 당신과 꼭 저기 다시 앉아 그 때 일 얘기하면서 낚시 한 번 해보세"했더니


아내는 차창 너머로 예전의 그 자리를 바라보며 말 없이 피식 웃습니다.

 

 


 

 

추방이 너무 썰렁하여 올려 본 재미 없는 조행기였습니다.

송가인 공원 주변 사진 몇 장 함께 올려봅니다.

 

 

30년 전 지금의 송가인 공원 갈대밭에서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장구포 마을에서 송가인 공원 진입 전에 있는 장구포1교입니다.
오른 쪽은 평소 떡붕어 꾼들이 많이 찾는 포인트가 있구요.
 
 
30년 전 지금의 송가인 공원 갈대밭에서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예전 농작물을 재배하던 밭에 자리에 송가인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30년 전 지금의 송가인 공원 갈대밭에서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이곳에서도 꾼들이 장박을 하는 등 극성을 부리는 바람에 이렇게 진입이 차단되고 말았습니다. 
 
 
30년 전 지금의 송가인 공원 갈대밭에서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두 번째 다리를 건너면 송가인길이 나오고 1km가 조금 넘는 이 길이 끝나는 곳에 송가인 집이 있습니다.
 
 
30년 전 지금의 송가인 공원 갈대밭에서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빨간 원이 아내와 함께 했던 자리인데 떡붕어와 가물치, 잉어 등 잡고기가 자주 덤벼 그 후로는 앉지 않은데
지금도 꾼들이 발길이 자주 닿는 것 같습니다.

명작의 글을 잘읽고 갑니다.
백년이 넘도록 해로 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언젠가는 꼭 진도에서 한번 쪼아보고 싶군요
조기 현수막에 진도개 분양한다는데 분양바다 나올수 있나요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ㅎㅎㅎ
아련한 조행기가 마치 제것마냥 즐거웠네요~~~
저 또한 비스한 조행기가 아내와 함께 있어 잠시나마 추억에 잠겼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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