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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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경남 고성의 대가저수지에서....

장마가 끝나가는지 며칠째 흐리기만 하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
금요일 밤 퇴근을 하자마자 옷을 갈아 입고 낚시 장비를 챙겨서 고성행 직행버스를 탔다.
읍내에서 택시를 갈아타고 대가저수지에 내리니 벌써 밤 9시가 넘어서고 있다.
마을 입구의 느티나무를 지나면서 저수지를 둘러보니 캄캄한 호수 주변에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뭐야? 왜 이렇게 낚시꾼이 없어.혹시 혼자 밤새는거 아냐? 좀 섬뜩한데....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나는 마을 앞쪽의 도로를 건너서 칠흑같은 논둑길을 렌턴을 비추며 조심조심 걷는다.
즐겨 찾는 단골 포인트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논둑길 끝에서 왼쪽으로 도는데 어라? 작은 텐트가 한동 쳐져있고 어두운 수면위로 야광찌가 점점이 떠있는게 보였다.
...야... 그래도 이 고적한 산골에 한사람은 이웃해 있구나...
누군지 모르는 그에게 왈칵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자리에서 약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낚시대를 설치하고 나니 땀이 비오듯이 쏟아진다.
허공에 랜턴불을 비춰보니 약한 바람이 부는 눅눅한 대기속을 날벌레들과 박쥐들이 날아 다니는게 히끗 히끗 보이고 짙은 풀냄새속에서 젖은 먼지냄새 같은 비내음도 감지된다.
...이거...불안하다....비가 오면 안되는데.....
준척급 붕어를 두마리째 잡아서 살림망에 넣는데 목덜미를 파고드는 굵은 빗방울이 선뜻 선뜻하게 느껴졌다.
황급히 낚시가방을 뒤져 우산을 꺼내서 앞받침대에 묶는데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굵은 장대비.
순식간에 온몸이 흠뻑 젖었다.
급작스러운 한기에 부들부들 떨며 받침대에 묶은 우산을 땅에 박아 고정시켰다.
빗줄기는 시간이 갈수록 거세어지고 바람까지 불어 알량한 수제 파라솔이 무용지물이다.
온몸이 사정없이 비에 젖어 물큰하게 녹아내릴 지경이다.
낚시고 뭐고 당장 걷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버스는 끊긴지 오래고 이곳에는 공중전화도 없어 택시를 부를 수도 없다.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서 우산을 돌려가며 필사적으로 비를 피하는데 울고싶은 지경이었다.
....하이고 월급 받아서 뭐 했을꼬~ 이럴 줄 알았으면 술값 좀 아껴서 파라솔하고 우비나 장만해 두는건데...
우산을 묶은 앞받침대에 몸을 밀착시키고 개처럼 떨며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때 옆쪽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랜턴 불빛이 보였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받쳐든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랜턴 불밫으로 위 아래를 훑었다.
"아이고~ 이런 미련한 양반을 봤나.아니 파라솔도 없이 우비도 안입고 이 장대비를 어떻게 견딥니까?"
"그게...비가 안올줄알고...."
"그래도 장마철에 파라솔과 우비는 기본 아닙니까?
우하하하~ 이 우산 파라솔 좀 보소.안되겠습니다.이렇게 비를 맞다간 졸지에 갈 수도 있어요.우선 내 텐트로 잠시 피하십시다"
나는 풀죽은 짐승처럼 남자의 우산속으로 들어가 텐트로 향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들어선 텐트는 아방궁이었다.
텐트꼭대기에 캠핑등을 밝혀놓고 휴대용 가스난로까지 켜놓아서 보송보송 따뜻하고 아늑했다.
남자는 텐트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버너에 라면을 끓여 소주와 함께 내어 놓았다.
라면 냄새가 허기가 진 뱃속을 뒤집어 놓아 환장할 지경이었다.
"자~ 자~우선 한잔하시고 몸부터 녹이세요"
남자는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 주었다.
단숨에 소주를 마시고 라면의 면발을 넘기는데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고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감사합니다.생면부지의 중생에게 이런 큰 은혜를 베푸시니 생명의 은인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아이구~ 당치않아요.겨우 소주 한잔에 라면 한그릇인데 생명의 은인은 ...하하하~"
"어디서 오셨어요?"
"나는 창원 팔용동에서 왔습니다.형씨는 어디서?"
"아~ 네.저는 마산 서성동에서 왔습니다.Y양행이라는 제약회사에 다닙니다.주5일 근무라 금요일 밤에 낚시 왔지요"
나는 묻지도 않은 얘기까지 주절주절 읊어댔다.
"아~그래요.나는 경남은행에 다닙니다.골치 아픈 일이 있어서 털어버리려고 월차를 냈지요.근데 이 고장 분이 아니네요?"
"얘 서울인데 지방근무 때문에 내려와 있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장대비속에서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까지 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텐트 바깥에 무슨 인기척 같은것이 느껴져 랜턴을 비춰 보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불빛속에 비에 젖어 산발한 여자가 텐트입구에 서있는게 아닌가
"으..아~~아~~악~귀신~귀신~ 이다~"
내가 혼비백산하여 텐트구석으로 물러서자 남자가 떨어뜨린 랜턴을 집어들고 앞쪽을 비추어 보곤 멈칫하더니 배시시 웃었다.
"난 또 누구라고 은영씨구나. 그래 라면 냄새 맡고 왔구먼. 이리 들어와요"
여자가 거침없이 좁은 텐트속으로 들어와 곁에 앉는데 오랫동안 씻지 않은 듯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누더기 입은 몸에서 풍겨나왔다.
이십대 중반 쯤 되었을까?
마르고 키가 컸으며 얼굴 하관이 빠른데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야는 누군데 여개서 라멘을 묵고있나?"
아마 나를 두고 하는 말인거 같았다.
내가 어이가 없어 남자를 바라보니 눈을 찡긋하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아....나는 대충 짐작이 갔다.
....동네에 하나씩 있다는 그 미친년이군...
남자는 라면을 두개 더 끓여 그 은영이란 여인앞에 내 놓았다.
나무젓가락을 능숙하게 가르며 나를 쳐다보고는 "뭘 보노~~ 니도 라멘 묵고 싶나~ 한입 무바라~"
나도 남자처럼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 주었다.
라면 두개를 게눈 감추듯 비우고 소주까지 한잔 그득히 따라 먹고는 그녀는 금새 자리를 비웠다.
남자는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여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흘러 들어온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이 낚시터에 나타난지 꽤 되었어요."
"그래요? 나도 이곳이 단골낚시터인데 그동안 왜 못봤을까요?"
"미친년이 어딘들 안돌아 다니겠어요.그나저나 낚시꾼들에게 몸을 버렸다는 얘기가 있는데 저 불쌍한 것까지 손을 대니 나도 남자지만 참 씁쓸합니다"
밤이 깊어가는데도 비는 좀처럼 그칠 기세가 아니어서 우리는 소주 두병을 더 비우고 텐트에서 불편한 잠으로 아침을 맞았다.
눈을 떠보니 날씨는 말끔히 개었고 급격히 불어난 수위로 낚시짐들은 난장판이 되었다.
짐들을 정리한 후에 우리는 버스를 타고 고성읍으로 나왔다.
"밤새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선생님 어떻게 연락처라도 좀...".
"하하하~별 말씀을 낚시꾼 인심이란거 아닙니까? 은혜랄게 뭐 있나요.정 부담스러우시면 담에 낚시터에서 만나면 형씨께서 라면에 소주 한잔 내시지요"

그 후로 나는 그분을 만나지 못했다.
비바람 치는 험한 날씨속에서 전해주던 따뜻한 라면 한그릇.

그속에 담긴 깊은 마음.

고마운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1992년 그해 여름 경남 고성의 대가저수지에서 만난 창원 팔용동의 선생님 건강하게 잘 계신지요?

그해 여름 경남 고성의 대가저수지에서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그해 여름 경남 고성의 대가저수지에서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그해 여름 경남 고성의 대가저수지에서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낚시터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꾼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네요.
낚시란 인생의 조황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시겠습니다
글을 읽고 저역시 잊혀졌던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사람 살아가는 냄새~,,, ~ 훈훈한 글 잘 읽고 갑니다
회원님들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네요.
밥벌이 하느라 물가를 찾은지 오래되었네요.
짙어가는 가을빛 속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붕어가 보고싶네요.
회원님들 늘 건강하시고 안출하시길....^^~
각박한 시대에 가슴, 뭉클합니다. 선배님!
경남 창원옆 벚꽃으로 힘주는 진해 거주,
소물조사입니다.
1992년...... 아득하지만, 어제와 같은 20대초 시절.
늘 건강하시고, 기회됨 식사 대접해 드리구
싶군요~* 사람된 도리~* 감사합니다.
잡아보자3자님!
말씀만 들어도 고맙고 힘이나네요.
92년이니 그때가 제가 막 30대 초로 접어드는 총각시절이었죠.
지방근무 발령으로 마산은 처음 가본 고장이었는데 제인생에 있어서 가장 의미깊은곳이 되었죠.
지금의 아내도 마산에서 만나 가정을 꾸리고 평생가는 친구와 추억도 많이 만들었어요.
진해 벚꽃,마산 어시장,창원의 대로와 용지공원도 그립네요.
따뜻한 환대와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낚하시길^^~~
제가 94학번이니 한창 선배님이시네요

글이 곱네요

아기자기하면서 글을 풀어나가시는 전개가 곱네요

이제 만추의 시기에서 자릴 비우고 소복소복 함박눈 흩내리른 겨울이 옵니다.

겨울에도 아련한 추억많이 만드시고 행복하세요
동네에 하나씩 있다는 미친 ㄴ... 에서 뿜습니다...ㅎ
표현력이 대단하십니다ᆢ
작가하셔도 되겠어요ᆢ
끝까지 지루함없이 잘 읽고 갑니다ᆢ
그분도 어디선가 찌를 바라보고 계시겠죠ᆢ
절로 미소가 나오는 군요.^^
잘 보고 갑니다.
책한권 읽은 느낌이네요^^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참 좋은 글입니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갔으면 더좋았을것을...
건강하세요
이래 저래 해서 인연이 되지요
같은 낚시꾼으로보면 참 고맙지요
멋진인연 오래 간직하시길 바라며
아직 낚시꾼세계에서는 살만한 세상이지요 ㅎ ㅎ
마음이 넉넉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 좋은 대가지도 낚금 입니다 ㅠㅠ
81학번이니 얼추 비슷한 세대이실듯한데, 저는 소설의 한 장을 옮기신 줄 알았습니다...
제가 올해로 61세 환갑이니 딱 반생 전의 추억이지요.
chris5953님 맞습니다.
저도 81학번이예요.
밥벌이 이외의 시간을 늘 낚시터에서 보낸지라 이런저런 인연과 추억도 많지요.
공감해주시는 님들 덕분에 허접한 글이지만 올리는 맛이 있네요.
하나씩 풀어볼랍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저는 98년 IMF때 다니던 회사 짤리고 이 일 저 일 하면서 돌아 다니다가
어느 날 금촌 수로에 낚시 하러 갔다가 저에게 낚시대 펴라고 펴 놓은 대 한 대
걷어 주시고, 물고기 배만 채우면 안 되고 사람 배도 채워야 된다고 빵과 음료수를
건네 주시고 그다지 크지는 않았는데 제압이 안 되어 고생하는데 뜰채를 가지고 와서
젊은이가 낚시를 잘 하시네 하고 가셨던 그 분이 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생생하게 옮겨 적을 수 있을 지 모르겠는데 기회되면 저도 한 번 그 때를 떠올리며
사설을 풀어 보겠습니다^^
길다고 생각하고 읽었던 글이지만 눈 앞에 펼처지는 그 날의 날씨와 상황 주고 받으셨던
훈훈한 인정을 그려 내신 글로는 정말 간단 명료해 보입니다.
대가지 지금은 낚시금지 되어 아쉽습니다
글잘보고갑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진정한 추억의 조행기입니다.
라면에 쏘주라.....
굿입니다요.ㅋㅋ
이야~ 생생하고 훈훈한 글맛에, 라면 소주맛에 사람맛까지 버무려진 멋진 조행기..
감동입니다!
이런게 낚시고 글이고 삶인듯 합니다
신춘문예 출신이시지요! ㅎㅎ
우연히 대가저수지 검색 하다가 글 잘 읽었습니다.
92년이면 제가 고등학교 졸업 한 년도네요.
고향이 경남 고성 입니다.
고성에서 고등학교 졸업했고.
중학교 때부터 대가 저수지에서 낚시 많이 했었네요.
지금은 낚시금지 구역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추억 속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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