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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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시간(時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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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도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입추(立秋)가 지났는데 여름은 가을이 오는 것을 막아서고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계절을 잘못 찾은 아지랑이가 아스팔트 위에서 이글거리고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이 숨을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한낮 더위에 지친 화초들은 축 늘어졌다. 뜨거운 공기가 지나는 저녁이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햇빛에 눌려 처진 잎과 줄기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더위를 피할 요량으로 낚시 가방을 싣고 가까운 저수지로 향한다. 넓은 수면을 바라보면 더위가 한풀 꺾이리라는 생각으로 도착한 저수지에는 뜨거운 열기에 피워 오르는 수증기가 후덥지근하게 바람에 실려온다. 잠시 그늘을 찾아 앉으면 맑은 공기는 이내 신선함으로 코를 자극한다. 옅은 바람이 수면에 잔잔한 물살을 만들면 바람의 고마움에 답하듯 물결은 구름을 울렁이고, 나무를 움직이고, 또 하늘색과 물색이 섞여 은빛이 되었다가 저녁에는 다시 노을 빛으로 변모하는 자연의 요술을 선사한다. 낚시대를 드리우면 가느다란 외줄하나가 수중의 생물들과 인간을 이어주고 물 속과 인간의 교감(交感)을 찌의 움직임으로 대화한다. 점차 노을 빛이 회색 공기로 바뀌면 더위에 풀이 죽었던 온갖 생물들이 활기를 띠고, 풀벌레 소리와 소금쟁이의 사랑나눔, 한끼 식사를 찾는 왜가리의 여유롭고 한가한 날개 짓은 이제 곧 어둠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멀리 도심에서 오색 조명이 밤을 밝혀온다. 가로등만큼 많은 별빛이 저수지의 밤을 지킨다. 그믐이 가까워서 일까 한밤이 되어서야 달이 떴다. 한쪽이 움푹 들어간 달은 넓은 저수지에도 잠겨있다. 달빛을 시기하는 옅은 구름이 달을 가려보지만 물에 비친 달은 더욱 선명함을 간직한다. 주변 카페의 조명이 반사되어 수면은 화려하고 커다란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었다. 통기타 노래 소리가 밤 분위기에 젖어들고 소쩍새는 음악 소리가 좋은지 계속 울어댄다. 가느다란 줄 하나에 먹이를 달고 고기들이 물어주기를 바라고는 있지만 물 속 상황을 모르는 낚시꾼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입질을 기다리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해 보고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우리 주변의 무수한 일들을 머리 속에서 상상하기도 하고, 어릴 적 내 동무들 얼굴도 그려보고, 이름도 불러보고, 동요도 흥얼거려 보는 시간만큼은 잠시 낚시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월척(越尺)을 낚겠다는 마음은 나에게 찾아올 행운과 살아가면서 지니는 욕심의 일부분으로 남겨 두기로 하고 크게 숨을 몰아 쉬면 번뇌도 사라지고 세상을 포용(包容)하는 편안함 그 자체뿐이다. 낚시꾼은 고기를 낚고, 시간을 낚고 그리고 자연을 낚으면서 밤을 지샌다. 인근 사찰의 종소리가 고요한 저수지를 깨우고 농가의 닭 울음소리가 새벽 공기를 타고 길게 여운을 남긴다. 짙은 밤 공기가 여명에 밀려 점점 그 기운을 잃어가고 산과 나무가 다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어제와 같은 자리에 섰다. 저수지가 모든 사물을 품었다가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이다. 생물들이 아침을 맞이하는 움직임이 수면에 흔적을 남기고 생기를 발하는 숨소리가 저수지 주변을 분주하게 만든다. 저수지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다. 하룻밤에 여러 번 그 모습을 바꾸지만 자신을 위한 변화가 아니라 자연이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이행할 뿐이다. 다시 찾아올 모든 것들을 기다리며..... - 8월 둘째주 대구 인근 저수지에서......

구구절절 지당하신 말씀이로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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