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그 노인은 늘 앉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매주 마다 빠지지않고 출조하다시피하는 내게
단순히 현지인으로 간주한 촌로의 등이 굽고 백발이 성성한 그 노인은
그다지 신경을 두게 하는 대상은 아니었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일주일전 이 곳에서 대를 세우기는 커녕
불과 2,3초의 짧은 순간에 초리대끝에서 원줄을 잘라먹고 도망간 그 놈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자하는 데에 온 신경이 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매주 올 때마다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수로의 저 끝에서 짐을 들고 논둑위로 올라서면
저 멀리 그 노인의 낡고 심지어 얼룩까지 군데군데 있는 파라솔의 끝이 벼이삭위로 보여
내게는 일종의 네비게이션과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굽은 어깨, 바짝 마른 체형에 나이에 비해 큰 키. 허리가 안좋은 지 약간 어색한 걸음...
나이는 아마 일흔? 여든쯤 되셨을라나...
그냥 농사만 짓던 촌로는 아닌것처럼 보이는 백발의 그 노인.
'도대체 저 분은 어디에 사시는 분일까...
식사는 하고 낚시를 하시는 걸까?'
그러나 태생적으로 숫기가 없고 늘 아침에 도착해 저녁식사전에는 집으로 돌아가야만하는
짧은 일정의 낚시를 해야하는 내게는 누군가와 말을 섞는 다는 것 자체가
별로 달가운 일이 아니었기에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는 것이 부담이었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그 날은 정말 간만에 하루밤의 밤낚시가 허용된 날이기도 하였다.
서둘러 늘 앉던 자리에 그날따라 특별히 더 신경을 써서 8대를 장전하고
8월의 습기머금은 대지와 더운 공기속에서 땀으로 범벅이 된 옷이 말라갈 즈음에서야
나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 그제서야 노인이 안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 아프신 건가?'
이런!
하필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밤을 새워볼 참이었는데
이 사람발길 안닿는 오지에 컴컴한 밤에 혼자일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슬쩍 신경이 쓰인다.
그러나 어쩌랴, 얼마만에 얻은 시간인데...
시간은 어느덧 흘러 불타오르는 석양이 제 빛을 잃어갈 즈음
케미를 하나하나 꺾어 그렇게 고대하던 밤낚시를 준비하려 할 때였다.
"오늘은 밤낚시 하시나?"
갑자기 등뒤에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왔는지 그 노인은 낡은 낚시가방과 접이의자를 들고 내 뒤에 서있었다.
"아, 예....안녕하세요? 오늘은 낮에 안보이시길래 어디 아프신가 했습니다."
"아프기는...허허. 좀 일이 있었지. 재미 보게나."
"네, 어르신"
왠지 모를 안도감. 아마도 밤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저 노인과 말한마디 나누어 보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늘 동반출조인으로 자리매김했었었던 것일지도 모르리라.
시간이 흘러 가끔 간헐적으로 노인이 있는 자리에서는 가래침을 뱉는 소리만 들려오고
예상과 달리 찌불은 올라올 생각을 않는 무료한 시간이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슬슬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하는 생각에 보조가방으로 손이 가려는 그 순간.
정 중앙에 위치한 3.6칸대의 찌불이 꿈틀거린다.
'저긴 특별히 큼지막한 새우를 달아 논 자린데...'
잠시 한마디 꿈뻑하고 올렸던 찌는 다시 원위치를 하고 만다.
다시 올리리라...그 때 그 얼굴만 보여주고 달아난 그 놈일까?...
젠장 벌써 1분은 흘렀을텐데 왜 다시 반응이 없지?...잔챙이가 못삼키는 거 아냐?...
별의 별 생각을 다하며 기다리다 3,4분이 흘러도 반응이 없자 허탈해진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어둠속에서 라이터로 조심스레 불빛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붙이는 그 순간.
그 불너머 나는 또다른 불을 보았다.
정 중앙의 찌불이 마치 승천하는 것처럼 공중으로 올라오는 것을.
잽싸게 손을 낚시대에 갖다두고 챔질준비를 한다.
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오르다 잠시 멈칫하는 가 싶더니 다시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더....'
어둠속에서 저정도의 높이면 아마 몸통부근까지 거의 다 올라왔으리라 생각되는 순간에
이제 찌불은 마치 도깨비불처럼 사람을 홀리듯 옆으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한다.
"휘익~~~!!!"
걸었다. 큰 놈이다.
이것이 붕어라면 아마 새기록을 갱신할지 모른다는 직감이
순간적으로 손끝을 타고 뇌로 전달된다.
어둠속에서 그려지는 직선과 곡선의 조화.
물속의 대상과 뭍위의 인간이 펼치는 생존의 본능.
물속의 생명체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목숨을 건 저항을 하며 얼굴을 보이지 않고
나는 오로지 물속을 파고드는 푸르스름한 케미의 위치를 눈으로 쫒고
온 신경을 100% 낚시대의 텐션을 유지하는데 집중시킨다.
'이 앞의 갈대에 감으면 끝이다.'
우우웅.....끼긱...끽...낚시대와 줄이 울어댄다.
채비는 걱정이 없다. 이 날을 위해 재무장하지 않았던가.
놈이 올라온다. 저 케미가 물속에서 다시 밝아지며 떠오르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걸까. 그 1분의 시간이 마치 한시간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침내 케미가 공중에서 흔들린다. 뜰채를 준비할 시간이다.
"여기 뜰채 있네."
어느새 곁에 와있던 걸까. 노인이 내게 땅바닥에 던져두었던 뜰채의 손잡이를 건넨다.
대물일수록 뜰채질은 남이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란 걸
노인은 알고 있던 것일까. 나는 한 손으로 낚시대의 텐션을 유지하며 뜰채를 받아들었다.
"첨벙!"
어둠 속에서 놈이 머리를 내미는가 싶다가 다시 몸을 뒤집을 때. 노인과 나는 보았다.
그 놈은 붕어라는 것을. 적어도 내가 생애 보았던 최고의 덩치를 지닌 놈이라는 것을.
놈이 붕어라는 걸 안 순간, 나는 땀구멍마다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갑작스레 맥박이 더욱 빨라지고 호흡은 발정난 개처럼 거칠어진다.
힘이 빠지도록 놈이 수초쪽으로만 파고들지 않도록 제압하며 좌로 우로 낚시대를 움직이다가
마침내 놈이 체념을 했는지 물위에서 등을 보이며 유영을 하고있을 때
조심스레 뜰채를 물에 담가 준비하고 있다가 놈을 수초를 피해 뜰채쪽으로 유도 해본다.
"됐다!!!!!!!"
마침내 놈의 몸뚱아리를 육지로 끄집어 내본다. 어찌나 무거운지 뜰채가 꺽어질 듯 휘어진 채.
숨을 헐떡이는 놈의 모습. 해냈다. 근 두어달. 빠짐없는 매주의 출조에 놈을 만났다.
"엄청난 대물이구먼, 축하하네."
비로서 노인이 건넨 축하인사에 정신을 차리고 크기를 가늠해 본다.
놈의 빵은 나의 한뼘이 훌쩍 넘고 놈의 길이는 두뺨하고도 10센티는 족히 남을 듯하다.
말로만 듣던 오짜는 족히 되고도 남으리라.
조심스레 살림망을 꼭 묶어 놈을 가두고 나서도
나의 흥분과 헐떡이는 숨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이게 꿈인지, 생신지...내 생애 어쩌면 단 하나뿐일지 모르는 대물을 품에 안다니!!!
담배를 물었으나 떨리는 손이라 그런지 담배불을 붙이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축하하네. 내가 낚시를 제법 다녔지만 이런 큰 붕어는 처음 보는구먼, 허허..."
이 순간 누군가가 이 현장에서 지켜보았다는 것이 왠지모를 뿌듯함을 더해주게한다.
그 것이 이 노인 한명뿐일지라도 내게는 역사의 증인(?)이 되어준 노인에게 갑자기 감사한 마음까지도 들게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제가 이런 놈을 잡을 지는 몰랐습니다."
몇 번의 붕어에 대한 놀라움과 방금 전 일어났던 일을 되풀이하며
아직도 잊어버리기에는 아쉬운 전율에 과장섞인 자랑과 흥분을 토해내고 나니
슬슬 잊었던 시장끼가 몰려옴을 느꼈다.
"어르신, 시장하시죠? 저녁을 아직 안드신 것 같던데..."
"아닐세, 슬슬 가려고 했네. 덕분에 좋은 구경 잘했네."
극구 철수한다는 노인 분을 자리에 앉혀드리고는 준비해간 막걸리 한통을 꺼내들고
장조림과 김밥, 김치에 보잘 것없는 축하잔치를 열었다.
한창 대물을 낚은 도취감에 빠져 혼자 거의 떠들다시피할 때였다.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노인이 갑자기 막걸리 한통을 다 비워갈 때쯤 입을 열었다.
"자네, 나이가 어떻게 되나?"
갑자기 왜...혹시 내가 결례라도 했나싶어 조심스레 대답한다.
"예, 올 해 마흔다섯입니다. 어르신."
"음...그래. 허허 참..."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아마 자네 나이쯤 되었겠지. 살아있다면...아니 어딘가 살아 있겠지."
"....무슨....사연이 있으십니까?"
"............"
어색한 침묵을 잊으려는 지 노인은 막걸리 한통을 새로 따서 잔에 부은다.
"....자네와 있으니 예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는군. 그 때와 너무도 비슷해...거 참..."
"............?"
"그 때와 비슷한 계절이구먼, 그러고 보니...허허"
도대체 이 노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네. 엉뚱한 질문같지만 자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민물고기가 무어라고 생각하나?"
이 무슨...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시나 싶었지만 나는 잠시 고민해 본다.
"글쎄요? 잉어 아닐까요? 길이로만 따지면 장어?"
"하하하...자네 말도 맞지. 그러나....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
잠시만 앉았다 간다던 노인.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노인과 나의 대화는 그 깊은 밤을 내내 지새우게 만들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날 밤의 노인과의 대화.
어렵사리 제자리를 찾은 케미불빛이 그 노력도 소용없이 주인을 잃고 흔들리고 있을때
노인의 기억은 향수를 찾아 30여년전으로 호롱불처럼 흔들리며 떠오르고 있었고
나 역시 노인의 이야기를 따라 홀리듯이 그 세월의 그 사건의 날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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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여년 전.
날만 추워지면 잦은 기침이 나고
한번 기침이 나면 쉽사리 멈추지않는다 싶기를 여러 날.
아내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끌려가다시피한 병원에서
뜻하지않게 난 폐병이라는 병명을 얻고 말았다.
이리도 쉽게 폐렴에 걸리나.
지금이야 좀 누워서 병원에서 주는 밥 얻어 먹으며는
한두달이면 낫는 병이지만… 당시로서는
그것이 그리 쉽게 나아지는 병은 아니었었다.
그 지리한 치료가 어느새 봄을 넘어서 초여름을 맞이 할 무렵에
의사는 공기 좋은 곳으로 잠시 요양을 가라고 권하였다.
변두리지만 가난에 찌들은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자라온 내게 아는 시골이 있을리 만무한데
아내는 경북의 외삼촌댁을 추천하였다.
처 외삼촌댁이 그리 맘편한 곳은아닌데…하면서도
별다른 대안이 없어 옷가지 몇개 들고 떠 밀려간 그 곳.
그 곳에는 신비를 품고 흐르는 낙동강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른 새벽을 알리는 산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낯설게만 느껴지는 아침을 맞이했지만
어느새 아침산보마다 발목을 적시우는 찬 이슬의 촉감이 좋아지기 시작하였고,
강변근처의 논둑을 서걱대며 걷다보면
나의 심폐를 가득 채우는 건강한 산소의 향기.
발끝에서 놀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개구리들이 텀벙대는 소리에
마치 천식처럼 잦았던 기침이 사라져버릴 것같은 착각에도 빠지곤 하였다.
우스운 일들도 있었다.
동네 꼬맹이들과 얼굴이 익자
흡사 이중섭화백의 은지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때 안탄 장난꾸러기들이
선사해준 처음 보는 선물(?)들.
놈들 딴에는 내 몸이 안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모양이었다.
낮잠자다 일어난 내 방의 문턱에 어느날 놓여진 깡통. 그 속에는
시커멓게 구워진 개구리들이 잔뜩 들어 있어 혼비백산한 적도 있다.
또 한번은,
이 놈들이 냇가에서 잡아 온 다슬기를 억지로 몇 개 먹고는
거의 사흘 내내 하늘이 노랗도록 설사를 한적도 있고…
아마, 서울에서 자라 길들여진
내 병에 지친 몸뚱아리에 그러한 것들은 갑작스러웠으리라.
그 놈들중의 우두머리는 누가 뭐래도 봉구라는 소년이었다.
바로 내 추억의 한쪽을 영원히 마르지않을 운명처럼 적시운
그 시간으로 이끈 것도 바로 그 봉구였다.
소년?
어쩌면 소년이라기엔 뭣한... 나이가 제법든 17살의 봉구였지만
늘 검게 나뭇거죽처럼 그을린 얼굴과 그 속에 푹 파묻힌
알아보기 힘들게 쭉 째진 눈이 만들어내는 녀석의 순진무구한 미소를 보다보면
나는 늘 예닐곱살의 소년 얼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기에
언제나 봉구는 나에겐 철없는 소년처럼 보였다.
녀석은 언제나 하나뿐인 낡은 운동화보다 고무신을 즐겨 신었고
빨래도 안하는지 언제나 한여름에도 같은 옷이었다.
심성이 너무 착해 십년이상 차이나는 꼬맹이들과도 잘 놀아주었고,
어쩔 때는 오히려 그 놈들에게 놀림을 받아도 헤벌레 웃으며 받아주던 봉구.
요즘같은 세상에는 바보로만 보이겠지만 나는 안다.
녀석의 더러운 외모만큼이나 깨끗한 녀석의 마음을...그 아픔을.
녀석과 나는 불과 일년도 안되는 인연이었지만
나는 그 일년의 세월을 지난 수십년의 조행보다도 똑똑히 기억한다.
아니,…..똑똑히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그 한 여름밤의 몇분뿐일런지도 모르지만.
이 촌락에 온 지 일주일이나 되었나.
문득 헛간 한켠에 기대어 서 있는 가느다란 대나무 하나가
마침내 나를 낙동강의 귀퉁이로, 심연 속의 그놈에게로
안내하길 기다리기라도 한 듯 눈에 띄었으니……
그 대나무는 처 외삼촌이 자작하신 낚시대였다.
예전에도 몇 번인가 아버님을 따라,
친구들을 따라 낚시를 다닌 적이 있던지라
매일이 차츰 무료해지던 나에게 그것은 흡사
요즘 어린이가 컴퓨터게임을 만난 것마냥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부터 긴 여름 해가 질무렵이면
피라미등으로 은빛처럼 빛나던 낙동강의 이름모를 한 귀퉁이는
하루종일 나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요즘 올라오는 글들이 없길래 간만에 예전글을 편집해서 올려 봅니다. 조금 길어서 나누어 올립니다.-----------------
낙동강, 괴물, 그리고 소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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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2
추천 한방 꾹~
다음편이 기대 됩니다.
기다리는걸 엄청 싫어하는데
계속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담 편이 많이 기다려집니다
눌르고 가요
손에 땀이 차네요..
다음편이 기대 ..
기대하고 다음편 기다리겠습니다
글을 너무 잘쓰시네요.
다음 편이 기다려집니다.
좋으신 글 잘 읽고 갑니다.'꾸벅'
잘보고갑니다
그 노인이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점점 빨려 드는것 같습니다 ^^
다음폄 기대 할게요 ^^
잘보고 갑니다.
다음편 기대 합니다.
중요한것은 다음편이 기대된다는거, 다들 같은 마음 이 겠지요???ㅎ
정확히 얘기하면 30프로 논픽션,
50프로 픽션, 나머지 20프로는 살을 보탠얘기입니다.
제가 오짜잡은 얘기가.......
슬프지만 픽션입니다요 ㅜㅜ
작업중이라 이따 밤이나 내일 2편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장하셨네요 다음편 기대할께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