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떠났다.
그리고 노인이 절뚝거리며 떠나버린 저 들의 끝에는
어느새 우리가 지샌 밤만큼이나 신비스런 여명이 아침노을과 함께 찾아왔다.
이미 힘들게 시간을 낸 나의 밤낚시는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그 어떤 밤낚시보다도 꽉찬 조과를 얻었다.
한동안 여운에 빠져있던 몸을 털고 일어나
아침 연무와 이슬에 젖은 낚시대를 걷어 들인다.
한 대...한 대...
어제 밤, 내 인생에 작은 역사를 만들어 준 놈들.
마지막으로 잠시 고민을 하다 살림망을 들어 보았다.
"푸드드득..."
50이나 되는 대물메기를 보다
노인의 흑메기가 떠오르자 피식 웃음이 났다.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던 놈을 물에 넣자
뒤도 안돌아보고 허둥지둥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이번에는 검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갑옷을 걸친
대물 붕어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내 생애 다시 한번 이런 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사진이라도 찍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 놈이 나에겐 전설이 되어주겠군...'
조용히 녀석을 든 채 물가에 가만히 담궈 본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던 놈이 조용히 꼬리짓을 시작한다.
'가라. 내게 찾아와 주어 고마웠다.'
언젠가, 그 노인이 만났던 것처럼...
세월이 흐른 뒤에 또 다른 전설이 되어주길 바라며
가만히 손을 놓아 주었다.
천천히...천천히...나의 아쉬움을 아는지
녀석은 가만히 그 자리에서 가슴지느러미를 한동안 움직이다
이내 머리를 조용히 물쪽으로 돌리더니
우람한 등을 보이며 물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흡사 노인과 함께 있었던 그 밤의 어둠 속으로 다시 나를 이끌듯이...
이슬 내리던 그 새벽에 젖어 들었던 신비의 전율로 인도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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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돌덩이가 움직이는 소리.
그것이 처음에는 환청인 줄 알았다.
고개를 돌려 조금 떨어진 곳을 바라보니
그 곳은 바로 봉구의 낚시줄이 놓여있는 부근이었다.
“드르륵”
환상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 돌이…
아니 저 돌을 눌러 논 줄이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줄은 이미 무생물이 아닌 것처럼...
서서히 강쪽으로 꿈틀거리며 기어가듯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온 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봉구를 부르려하니 어느새 봉구는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저 검은 낙동강의 심연을 향해 뻗어있는 줄을 두 손으로 쥐어들었다.
봉구가 줄을 감는다 싶자 갑자기 줄이 팽팽해지며
봉구의 몸을 앞으로 휘청이게 만들고는
오히려 봉구를 낙동강으로 끌고 가려는듯이 물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저씨!”
여분이 별로 없는 줄이 묶어놓은 나뭇가지마저 부러뜨리려 할때서야
비로서 정신을 수습한 나는 도구를 내동댕이치고 봉구에게로 달려갔다.
봉구의 앞에서 두 손으로 줄을 감아쥐었을 때서야
난 온 몸으로 놈의 괴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생애 처음 만나는 미지의 생명체의 괴력.
그 것은 머리카락까지 나를 공포에 곤두서게 만들만한 것이었다.
저 깊은 검은 밤의 강속에서 놈은 묵중하게 요동치고 있었고
그 엄청난 힘은 고스란히 줄에 전달되어 나의 두 손을 자를듯이 파고 들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쳤는데도 오히려 밀리는듯 했다.
모래속 깊이 우리의 발이 파고들었음에도
놈은 우리 둘을 한꺼번에 강속으로 끌고가려는 듯
조금씩, 조금씩 우리는 강앞으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몸에 감아!!!!!!”
다급한 내가 소리를 지르자 봉구는 내 뒤에서 강의 반대쪽을 바라보고
흡사 소가 쟁이질을 하듯 온 몸에 줄을 둘둘 감아대기 시작했다.
손이 불타는 듯이 너무 아팠지만 놓을 수가 없었고
대신 나의 몸은 줄다리기를 하듯 줄을 잡은 체
땅위에 거의 눕다시피한 상태가 되었다.
두 사람과 강속의 제왕과의 생사를 건 싸움.
처음에 들었던 두려운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떻게든 이 싸움에서 놈을 이겨야만 한다는 동물적인 본능만이 꿈틀댔다.
저 깊은 강 속에서 놈의 움직임은 줄을 타고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놈은 고개를 강심으로 돌리려 좌우로 흔들어댔고
그럴 때마다 땀과 모래로 범벅이 된 우리의 몸도 덩달아 흔들렸다.
나 역시도 온몸에 줄을 동여매고 놈과 버티기를 한지 이십여분이나 되었나.
어깨와 팔을 조이는 줄 때문에 흡사 힘줄들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프던 몸이 감각을 잃어가고 입에서는 단내가 나기 시작할 즈음,
일말의 희망을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줄이 조금씩 우리에게로 끌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아아~~~~”
봉구가 괴성을 지르며 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저 마른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남아 있었을까.
한 발, 두 발….한 없을 것 같은 줄이
조금씩 우리의 발 밑에서 말리기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을 무렵.
“파아악!!!~~ 첨벙!”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놈이 수면을 박차고
라이징을 하는 소리가 들리며 동시에 우리의 몸도 고꾸라졌다.
모래사장에 처박혀버린 고개를 들어
우리는 무릎으로 기다시피하며 필사적으로 줄을 붙들었다.
다시 물속으로 구렁이처럼 빨려들어가는 줄을
거의 구르다시피 잡는 봉구를 보며
나는 줄끝을 잡고는 사력을 다해 강변 언덕위로 뛰어 올라갔다.
사람 몸통만한 미류나무밑둥에 허겁지겁 줄을 단단히 동여매는 그 시간이
마치 한나절은 걸리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칠흙 같은 강변에서의 전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강도, 하늘도, 땅도 구분이 안되는 그 어둠에서
오직 봉구와 나의 땀에 젖은 호흡만이 그 밤의 어둠을 적시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간이 이제 그 끝을 보이려하고 있었다.
몇번인가 육중한 놈의 덩치가 수면에 부딪치는 파장음이
흡사 바로 앞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마침내 잠잠해진 것을
줄을 통해 전달되는 손끝의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나도, 봉구도 탈진할대로 탈진하여 쥐가 나기 직전이었지만
갑자기 저 밑바닥에서 남아있던 마지막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다 왔어!”
이 먹물같던 밤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허연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멧비둘기를 한 입에 삼킨 놈의 뱃가죽이리라.
마침내,
정말로 마침내…
놈은 태어나 처음으로 육지위에 그 몸을 드러내게 되었다.
털썩.
강물이 닿지 않는 곳으로 놈을 올려놓고는
나는 다리가 풀려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보고야 말았다.
그 전설같던 이야기가 결코 허구가 아니었음을...
공포스럽게 꿈틀대는 놈의 몸길이는 2미터는 너끈히 되어 보였고
놈의 아가리는 세수대야보다도 크게 벌려져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저 밤보다도 컴컴할 것 같은 미끄러운 등거죽의 끝에는
수면위로 잠깐만 보아도 섬찟할 것 같은 거대한 지느러미가 붙어 있었다.
밤에 본 놈의 모습은 너무나 괴기스러웠다.
강을 군림하던 물속의 제왕이...한 낱 인간 두 명에게 잡힌 것이 분했던지
놈은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쉴 새 없이 수염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놈의 입언저리에 있는 4개의 길고 두터운 수염이 아니었더라면
놈은 틀림없는 낙동강의 괴물….이무기 그 자체였으리라.
이것이 바로 낙동강의 흑메기란 말인가.
옆에서 아직도 줄을 놓지 않은 체 헐떡이던 봉구가
조용히 줄을 놓고 근처에 있던 작살을 쥐는 것이 보였다.
조금은 비틀거렸지만 나는 그때 소년인 봉구의 등에서
이유는 모르지만 거대한 한 사람의 남자를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봉구는 작살을 들고는 놈의 바로 곁으로 다가섰다.
잠시 멈칫한 그 짧은 순간에 봉구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지친 놈의 분노에 찬 눈길은 아마 그 때 열일곱살 소년의 눈과 마주쳤으리라.
마침내 두 손으로 작살을 높이 든 봉구의 팔이
놈의 머리를 향하여 내려 꽂히는 순간,
“퍽!!!”
"아악-!!!"
몸을 뒤트는 건 저 괴물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봉구의 몸도 저 멀리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작살이 놈의 머리에 꽂히는 순간,
놈 역시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며 꼬리로 봉구의 몸을 강타한 것이다.
“봉구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흙투성이가 되어 멀거니 바라본 나는
벌떡 일어나 봉구에게로 달려갔다.
털부덕 거리며 놈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다시 강물에 뛰어들려하는 것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봉구를 일으켜 세웠지만
워낙 꼬리 힘이 강한 탓이었는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으으….윽”
“봉구야! 괜찮니? 봉구야?”
잠시 후 반쯤 넋이 나간 봉구의 눈이 희미하게 떠지는가 싶더니
봉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급히 나를 뿌리쳤다.
“메기! 메기! 내 메기가….”
검은 빛 낙동강으로 시선을 돌렸을 땐
이미 놈의 마지막 남은 꼬리짓과 허연 포말만을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안 돼-! 메기! 메기!”
서둘러 허둥대며 봉구가 줄을 당겼을 때
그 줄의 끝에는 풀어진 매듭만이 포탄에 터진 포신처럼 나부낄 뿐…
그 날, 둘만 아는 그 여름밤의 그 시간.
낙동강의 흑메기만큼이나 검푸른 강위로 소년의 울부짖음이
저 신비하고 적막한 먹빛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
.
.
.
.
.
이것으로 나의 이야기는 끝이다.
또한 낙동강에서의 추억도 그 후 서너번 더 그곳엘 갔었지만
더 이상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마도 다음해 그 곳을 찾았을 때 더 이상 봉구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들은 이야기지만 소년의 어머니가 그 해 겨울 돌아가시고
둘만 남은 그 형제들은 어느날 홀연히 그 곳을 떠났다 한다.
가끔 봉구를 떠올리지만
지금은 어느새 사십 후반줄에 들어섰을 봉구의 모습대신
여전히 내게는 열일곱의 까무잡잡한 그 소년만 기억될 뿐이다.
다시 한번 그 때의 전율스런 기억을,
그 밤의 흑메기를 내 평생 만날 수 있을까.
또한 그 낙동강의 흑메기는
저 깊은 심연에서 아직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은 곳곳이 개발되어 전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낙동강.
그러나 그 때의 낙동강은 오늘도 사람들이 모르는 신비를 품고
세월의 속도만큼 어딘가에서 너울지며 흐르고 있으리라.
.
.
.
.
낙동강……
괴물………
그리고 소년.
--------------------- 4편이나 되는 장문,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낙동강, 괴물, 그리고 소년-4(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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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놈에게 월척앱을 소개하며 들어왔더니 뎃 되었네요
감사희 잘보겠습니다ㅠㅠ
다 빠져가는 목부터 집어넣고 잼있게 읽겠습니당~^^
기다린 보람이 있내요.
잼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추천 꾹~~~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로 올리는게 보통일이 아닌듯하네요
스토리 전개를 아주 재미있게 잘하셨네요
잘 읽 고 갑니다
2탄도 올려주실꺼죠?
저도 봉구가 보고싶어 지네요..^^
고맙습니다...
글솜씨가 뛰어나네요^^
너무 고맙습니다 ^^
그동안 연재를 하시면서 애독자들의 정성어린 리플에 부담이 많이 되셨겠지요...
그 부담감 때문에 서둘러 엔딩을 하신것은 아니신지???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아무튼 연재하시는 내내 가을장마로 인하여 출조도 못 하고 지루한 시간들을 "물나그네'님의
소중한 추억의 조행기로 대신해 주셔서 즐거웠습니다. 추천 드릴게요 꽝!
고맙습니다
추천 한방 쏘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봉구가 어디로 갔을까 궁금 해 지네요~~~ㅎ^^
미지의 생명체와의 조우...그리고 사냥본능...
이러한 것들이 조사님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좋은 쪽으로 흥미있게 봐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있네요. 모두 안전하시기 바라고
또다른 날에 또다른 추억의 조행 만드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얼마전 루어 낚시로 136센티 짜리 메기를 잡아서
증명 사진 까지 담은 분을 만났는데요...
땀이나네요
시간 날 때 천천히 읽어 볼께요.*^^*
잘 봤습니다ㅡ
지역은 틀리지만 기회가 되도 낙동강에선 낚시 안 할랍니다ㅡ
메기 무서워서요ㅡㅎㅎ
고생하셨읍니다ㅡ
가슴속 한켠에 고이 두실 만한 이야기를
수고를 감수하고 기꺼어 꺼내어 주셔서 흠뻑 빠져버렸네요
갈때마다 생각이 날것 같네요..
헌데 제 채비로는 턱도 없을것 같은데요..ㅎㅎㅎ 흑메기..
후회 했을 겁니다. 나두 낚시를 30수년을 했지만 너무큰건 절대 집에 가져오질 않습니다(방생) 어느 일간지에 난 기사입니다만
27~8년전인가 전방 모부대 에서 아마 한탄강 인걸루 생각 납니다 소대원들이 어마 어마한 고기를 잡아서 부대 회식 하고나서 연일 대형
사고가 난 기사를 본적이 있네요. 지금쯤 그 점보 메기 잘 살아 가고 있을겁니다.아픈 추억을 뒤로 하면서 말입니다
전설 같은 조행기 잘 읽고 갑니다
흑 메기 으 ㅡ 익
과분함에 감사드립니다.
슬슬 싸늘한 계절이 오네요. 바쁘다 보니 낚시대 던지는 법도 까먹고 사는 요즘입니다. ㅜㅜ
댓글과 추천 주신 모든 님들, 소원하시는 어복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 꾸벅.
재미잇는글 잘`~보고 갑니다`~
노인과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