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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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의 진심 (眞心), 위안(慰安)의 시간.

늦가을,이맘 때면 마음속에 깊어지는 애련의 그림자들.
돌아갈 수 없는 추억들을 낙엽처럼 날리며
이른 아침에 나는 자동차로 바다를 건넙니다.
잠시나마 일상의 의무라는 사슬들이 내몸에서 툭,툭,끊겨나가는 바람같은 자유로움을 맛봅니다.
오늘밤 영시부터 새벽4시까지 나는 교동대교라는 이름의 다리를 건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나를 통제할 병사들이 바리케이트를 치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한채 이중으로 다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일탈의 자유는 금지의 것을 배반하는 달콤한 것이어서 의무의 시간을 막아주는 저 교각의 통제가 오히려 고맙기만 합니다.
지금부터 나는 하루를 보낼 양지바른 물가를 탐색하여 햇볕과 이슬을 막아주는 차양 넓은 파라솔을 칠 것 입니다.
안락한 의자를 가져다 놓고 받침틀 위에 소중한 낚시대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설치합니다.
깻묵가루가 섞인 떡밥으로 밑밥을 만들고 딸기향이 나는 글루텐을 숙성시켜 미끼용 떡밥을 준비해 놓습니다.
소슬바람이 가볍게 물가를 스쳐가는 수초언저리에 오색찌를 세우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파란 가을 하늘가로 북녘에서 건너온 철새들이 일정한 대열을 이루며 순정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때 쯤 담배를 한대 피워물면 금상첨화 일텐데 그냥 입맛만 다실 뿐 생각을 접습니다.
끊은지 오래 되었거든요^^.

여기는 강화도의 부속섬 교동도입니다.
예전에는 강화도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편을 이용해야 들어올 수있는 섬이었는데 2014년 7월에 연륙교인 교동대교가 완공되어 지금은 차편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신 민통선 이북지역이라 외지인들은 밤12시부터 새벽4시까지 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외에 시간은 해병2사단에서 교부하는 출입증을 소지해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지요.
이곳에 대물붕어터로 유명했던 ㄱ저수지가 있는데 오늘 내가 찾은 곳이 그곳입니다.

바쁜 일도 중요한 일도 없는 한없이 자유로운 바람같은 시간,햇살같은 게으름.
나는 내맘대로 굶을 즐거운 권리를 누리며 점심도 먹지않고 빈속으로 느릿느릿 산책길을 나섭니다.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 보니 저기 농로 옆의 연밭귀퉁이에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파라솔과 낚시대가 햇살 아래 고즈녁하게 보입니다.
저수지 옆의 둘레길을 무심하게 걷다보면 해안가에 인접한 군사분계선인 철책과 만나게 됩니다.
흉물스런 철조망에 다가가서 바라보니 잔잔히 흐르는 서해바다의 해수면 너머로 이북땅인 황해도 연백군(지금의 황해남도 연안군,배천군)의 땅이 맨눈으로도 확연하게 보입니다.
민통선 주변에는 애끓는 실향민들의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는데 무심한 철새들이 하늘길로 자유로이 오가고 철조망옆으로는 산국화가 샛노란꽃을 예쁘게도 피웠습니다.
살아 생전에 낚시를 좋아하시던 실향민인 나의 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가 즐겨찾던 낚시터가 강화도였거든요.
80년대까지만 해도 교동도는 외지인의 접근이 어려운 삼엄한 곳이어서 힘들게 교동도까지 왔더라도 일몰전엔 다시 육지로 돌아가야 했어요.
낚시하는 시간보다 북녁하늘을 바라보시며 눈물 지으셨을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젖어옵니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니 해가 많이 기울고 한낮에 불던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뒷산 숲속에 어둠과 함께 삶의 시간들이 낙엽처럼 가볍게 떨어져 쌓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트에서 사 온 족발과 아내의 정성이 담긴 도시락으로 놓친 점심과 저녁을 겸한 식사를 합니다.
아!! 물론~~ 좋아하는 소주를 곁들여서지요^^.
한잔 후에는 케미를 꺽어놓고 밤낚시 준비를 해야합니다.
벌써 노을녁에 준수한 씨알의 준척들을 대여섯수 잡아서 살림망에 모셔 두었습니다.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이슬처럼 내려 밤이 많이 깊었습니다.
저멀리 민가의 불빛이 내집에서 곱게 잠들어 있을 가족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피붙이들은 따뜻하게 잘 자고 있겠지요.
따뜻한 밥과 편안한 잠자리를 놔두고서 이게 무슨 청승인가 싶기도 합니다.
내가 늘 그리워하는 자유는 어찌보면 조금 춥고 배고픈 가운데 얻어지는가 봅니다.
그것이 내안의 공허와 갈망을 채워주는 위안이 아닌가 새삼 생각합니다.
조금 춥고 배고프더라도 가을 숲속에 내리는 어둠과 이슬처럼 나의 삶도 그렇게 짙고 향기로웠으면 좋겠습니다.
돌아갈 내집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되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묶인 자유의 몸.
돌아가고 싶지않은 애틋한 나만의 시간.

그래서 오늘 하루 나는 행복합니다^^.

2018.10.20.

낚시의 진심 眞心 위안慰安의 시간 (커뮤니티 - 추억의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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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참 좋네요..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에
눈가에 눈물이 고이네여

어려서부터 아버지랑 강화도 낚시
정말 많이도 다녔네요

겨울에는
얼음낚시 ....그리고 새벽 해장국 먹던 생각이 나네요

글 감사합니다
노멤버레인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아버지랑 강화도로 감포수로로 참 낚시 많이 다녔는데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세상 떠나신지 오래되었네요.
지금은 아버지 보다 더 많은 나이를 먹어 쓸쓸히 그때를 추억합니다.
사는게 다 그런가 봅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낚하세요^^~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군요~~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오로지 큰놈을 잡으려는 기록을 위한 눈에 핏발선 낚시가 아니라....
자연을 즐기고, 추억을 반추하며, 여유로운 낚시를 하시는 것 같아서
참 보기 좋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기는 낚시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예전 창후리에서 배 타고 새우깡 꺼내들고 던지면서 들어가던 생각이 나네요.
조금 춥고 허기지면 몸이 스스로를 때웁니다.
그 시간을 즐기십니다. 차분한 시간이며 정신도 좋아집니다.
예전에 산속저수지에서 홀로 낚시하다보면 무서움이 찾아오는시간이 있습니다.
뒷머리가 쭈삣해지며 최고조에 오르면 어느순간 무서움과 공포는 사라집니다.
그 후 찾아오는 평온감은 그야말로 잔잔한 수면과도 같습니다.
지금도 그 느낌을 맛보기위해 낚시를 생각하지만 현실이 허락치 않네요.
몸과 마음의 리듬, 호흡, 즐기시는것 같습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조무락님.
덕담 고맙습니다.
사실 눈도 침침하고 체력도 많이 떨어져 게으른 낚시를 하고있지요.
형편없는 조과를 감추기위한 변명입니다.ㅎ ㅎ~
추운 날씨 건강 잘 챙기시고 님께서도 즐낚하소서^^~.

5짜좀보자님.
세월이 흐르니 예전 강화도의 대물터들이 차로 오갈 수 있는 지척거리가 되었네요.
좋는곳에서 대물을 품에 안는 행복한 시간 되세요^^~.

쫌사님.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딱 님의 말씀대로 입니다.
평온한 자유 늘 꿈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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