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후 복학을 하고 졸업을 했다.
취직을 하고 남들처럼 결혼도 하였다.
대학의 입학동기이면서 나이가 두 살 많은 동기생의 고종사촌 처제가 지금의 아내이다.
졸업 후 동기의 소개로 만나 연애결혼을 했다.
동서 사이가 되었지만 만나면 서로가 튀각퇴각 했다.
이유는 손윗동서의 예우 문제였다.
형님이라고 불러야 된다고 강요를 하면 처갓집 촌수는 개 촌수라고 받아쳤다.
단지 술값을 계산할 때는 형님이라고 예우를 한다.
그날도 만나자 말자 도토리 키 재기를 했다.
감정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편안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기도 한다.
모처럼 둘이 만나 저녁식사와 곁들여 한잔을 했다.
술값은 형님이 계산하고 나는 서점에 잠시 들러 여성잡지 두 권을 구입했다.
한 권은 아내에게 한 권은 동서를 통해 처형에게 선물을 했다.
연말에 발행되는 여성잡지는 신년가계부가 부록으로 끼워져 있어서 한 해 동안 선물을 한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계부를 사용하는 일 년 동안 처형은 자상한 제부로 기억할 것이다.
아내는 여성잡지를 새댁일 때 정기구독을 하다가 살림에 때가 묻자 정기 구독을 해지했다.
보던 잡지를 왜 끊었느냐는 질문에
“지면의 절반이 광고이고 기사의 내용도 선전하는 제목보다는 빈약하다.”
고 했다.
귀가를 하니 아내와 딸은 보이지 않았고 아들 혼자만 집에 있었다.
구입한 잡지를 화장대 위에 놓고 나오니
“아빠!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응, 먹고 들어왔어. 너는 먹었어?”
“예.”
“누나와 엄마는?”
“저녁 식사 하시고 백화점에 누나 옷을 사러 갔어요.”
오늘 외출한 우리 집 두 여자의 귀가 장면을 미리 예견할 수 있다.
대문의 벨이 울릴 것이다.
나와 아들 중 누가 먼저 나가서 문을 열 것이다.
먼저 들어오는 것은 아내일 것이다.
왜 딸은 오지 않느냐고 물으면 아내는 성난 표정에서 갑자기 웃는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자식을 키우다보면 머슴애와 딸아이의 요구 조건이 확연히 차이가 날 경우가 있다.
딸아이는 자주 유행을 따지며 옷을 사달라고 요구를 한다.
하지만 아들은 계절이 바뀌어 입을 옷이 마땅치 않을 것 같아, 제 엄마가 챙겨주기 위해 물으면 치수를 아니까 엄마가 사오라고 아예 위임을 해 버린다.
집에서 나갈 때는 모녀간에 사이좋게 나가지만 백화점에서 옷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의견충돌이 생기는 모양이다.
딸아이는 쇼핑백을 들고 엄마 뒤에 불만의 표시로 천천히 따라 오면서 무언의 시위를 할 것이다.
한참 있다가 성질이 풀리면 새로 구입한 옷을 입고 나와 패션쇼를 할 것이다.
나는 두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색상, 디자인, 모양 등이 뛰어나다고 칭찬을 한다.
곁들여 정말 잘 골랐다는 감탄사를 늘어놓는다.
딸아이는 나의 과찬에 만족해 한다.
아내는 아빠가 보시는 눈이 정확하다고 구입에 따른 불협화음 자체를 어물쩍 합리화 시켜 버린다.
가족들이 건강하고, 아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며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식구들 모두가 제 할 일에 충실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단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쇼핑을 다녀온 아내에게 던지는 이야기는
“모녀간에 가서 맛있는 것 도 좀 사먹고, 딸이 요구하면 시원하게 한번 들어 주지.........”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요구 조건을 다 들어 준다고 합시다. 결코 돈 문제가 아니에요. 원하는 것은 모두 이루진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면 안 돼요. 독립할 때까지는 부족함도 가르쳐야 돼요. 그래야 훗날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지요.”
“아이고, 쪼잔하긴....... 내 참.”
“우리가 자랄 때 항상 풍족했어요? 늘 부족하고 모자랐기 때문에 절약도 배웠잖아요. 그래야 성인이 되어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요.”
부부 사이 대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끝이 났다.
샤워를 마치고 스킨로션을 바르다가 아내의 화장대 위에 놓아둔 여성잡지 표지의 굵은 글이 눈에 띄었다.
“마감 전 특종!! 세계를 움직이는 청소년의 영원한 후원자, 재미교포 Gina Yoon 회장.
뜨거운 삶의 풀 스토리, 인터뷰 본지 독점공개!!”
잡지 표지를 보면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활자의 크기와 다양한 칼라로 편집의 묘를 살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서 잡지를 사거나 펼쳐보게 만든다.
표지 글의 내용을 보려고 목차를 찾았지만, 여성잡지의 목차를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웠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하다가 겨우 내용이 실린 페이지를 찾았다.
서서 펼쳐보다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내 젊은 날 열병에 시달리며 인생의 종말까지를 생각하게 했던 그 여자, 윤 혜림이었다.
그녀는 한복을 입고 우아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한복 고름에 걸린 노리개의 색상이 실물을 보는 것처럼 선명했다.
다른 몇 장의 사진은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과 서재에서 책을 보는 사진,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찻잔을 들고 여유 있게 웃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갔지만 사진을 보고 금방 그녀임을 알 수 있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잡지를 들고 서둘러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한참 사진을 보다가 담뱃재가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기사에 몰두했다.
출생과 한국에서의 성장 및 학창시절이 나오고, 주미대사관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은퇴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내 기억 속에서 단절된 후 그녀의 삶은 잡지기사로 복원하여 인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민을 떠난 그해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었다.
좌절에 빠져 한참 동안 방황을 했었단다.
어려운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생존의 끈은 조국이었다고 회상을 했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표현인 것 같았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동성로 연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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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음에 읽어 버렸습니다...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저도 이번 여름에 십년만에 만났습니다.
똑똑하고 현명한 여자라서 특별하게 살꺼라고 생각 했는데 평범한
아줌마로 두아이에 엄마로 살고 있었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리며 12편 기다리겠습니다..
오랜만에 님의 아이디를 접합니다.
그동안 건강하시고, 편안하신지요?
올해의 무더위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제 입추가 지났으니 한풀 꺾이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첫사랑!
모든 사람에게 항상 달콤하게 다가오는 언어가 아닐까요?
아내에게 잘못이야기 하면 그게 고삐가 되어 코에 걸릴 줄 알기 때문에 가슴에 자물통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니만........
하하하
항상 편안하신 날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1편부터 시작해서 주욱 읽었습니다.
세대가 비슷한것 같아요.
옛날에 휴대폰 없을때, 다방에서 사람을 많이 기다렸잖아요?
다방 전화번호를 적어 다녔지요.
정말 첫사랑 이야기가 맞아요?
다음글 기다립니다.
아이디가 긍정적이고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휴대폰이나 전화, 시계 등이 보편화 된 게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집 전화도 큰 재산으로 친 적이 있었지요?
요즘 젊은 분에게 이야기하면 웃겠지만.......
관심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