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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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로 연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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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훈련소에서의 훈련과 춘천에서의 대기병 생활을 거친 후 강원도 양구의 O사단에 배속되었다. 졸병 생활도 활기에 넘치는 시간이었다. 힘들고 피곤한 날들이 있어도 내 생활의 활력소는 항상 혜림의 뜨거운 편지였다. 고참과 합동으로 보초를 나가도 몸은 총을 들고 초소에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혜림의 곁에서 맴돌고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과 당신의 여자라는 목소리가 굳건하게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외로울 때는 그녀와 데이트를 하던 생각, 키스와 애무 등 늘 필름을 돌렸다가 되감길 반복 했다. 그녀 생각에는 항상 애틋하면서도, 꿀물의 달콤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견디고 헤쳐 나갈 수 있는 뚜렷한 목표와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과 목표는 단순하게도 오직 윤 혜림이었다. 내무반에서 가장 많은 편지를 받은 사람은 나였다. 크리스마스 행사 때 애인 사진 콘테스트에서도 일등을 했다. OO여자 대학의 메이퀸이라는 사실도 군대 사회에서는 많은 작용을 했었다. 군 생활이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신병이라 휴가증을 놓친 게 안타까운 일이었다. 겨울에는 제설 작업이 하루의 일과였다. 그 맵고 춥던 양구의 겨울도 꼬리를 보이고 있었다. 드디어 6개월의 군대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휴가 특명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특명이 내려왔다. 첫 휴가!! 꿈에도 그려보던 달콤하고 미칠 것 같은 단어. 첫 휴가를 간다고 고참들이 워커를 닦아 불 광을 내어주고, 군복도 칼날같이 각을 세워주었다. 휴가자 모두가 대대본부에 올라가 대대장에게 휴가신고를 하고 내려왔다. 내무반에 내려오니 고참들이 등을 떠밀었다. “빨리 가라. 갈 사람은 가야지.” 고참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행정실 김 상병이 나를 불러 세웠다. 꽃봉투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봉투를 보고 글씨체를 보지 않아도 혜림의 편지였다. 지난주에 편지를 보낼 때 조만간 첫 휴가를 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보고 싶으니 빨리 오라는 내용일 것 같았다. 마음은 두둥실 그냥 구름 속을 걷고 있었다. 봉투를 조심스럽게 개봉을 했다.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저께 날짜로 어머니와 같이, 한 달간 아버지가 계시는 미국으로 여행을 간다는 내용이었다. 휴가 일정을 미루고 싶었다. 학수고대하던 휴가를 받았는데, 그녀가 없는 휴가는 그냥 텅 빈 껍데기였다. 양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소양강 다목적댐을 빠져 나와 춘천을 경유 마장동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서울에서 입대 동기들과 한잔을 마셨다. 동대구역. 열차를 타고 내린 동대구역의 지하 시멘트 기둥은 전과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내가 이도시를 떠나 있어도, 이 도시의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동대구역 광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쌍쌍의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 사랑의 길을 걷고 있었다. 공허한 가로등아래 육군 일등병은 방향 감각도 상실한 채 그저 우두커니 서있었다. 나란 존재는 그저 한 점이라는 외로움에 떨어야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휴가가 내 곁에 왔을 때, 정작 있어야할 그녀는 없었다. 원망을 하다가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휴가 기간 동안 친구와 술을 마시고, 학과 선후배를 만나도 내 마음의 한구석은 비어 있었다. 몸과 마음은 고목나무 등걸처럼 굳어 있었다. 그렇게 휴가를 보내고 마음에 상처만 받은 채 귀대를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도착하던 편지는 두절되고 말았다. 매일 사랑한다는 말로 가득 찬 편지를 계속 보냈다.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귀대 후 소식도 없이 세 달이 흘러갔다. 사랑의 열병에 걸려 탈진할 것 같았다. 대대 ATT준비로 부대는 비상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위장망 보수작업, 전술훈련 등등 하루의 일과가 바쁘게 진행되다보니 하루 시간이 노루 꼬리처럼 짧았다. 밤에 보초를 나가 있는 시간이 더욱더 괴롭게 느껴지고 있었다. 한정된 테두리 속에서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보내는 건 군사우편뿐이었다. 보름간 야외 훈련을 마치고 귀대를 했다. 모처럼 내무반의 거울에 내 모습을 비쳐보았다. 검게 그은 얼굴과 수척해진 모습을 읽고 있었다. 처방은 나와 있었지만 치료약은 구할 수가 없었다. 편지 올 시간에 맞추어 자주 행정반을 들락 거렸다. 목욕과 세탁을 했다. 훈련 후 개개인의 정비 작업이 몇 일간 지속되었다. 토요일 오후 행정반에서 면회를 알리는 연락이 오면, 내무반은 온통 야릇한 흥분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면회를 올 사람이 없어도 기다림과 설렘은 모두가 공존하고 있었다. 애인이 면회를 오면 내무반 전우들은 면회 온 병사를 호위 하듯이 단체로 위병소로 내려갔다. 통닭 한 조각을 얻어먹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리만족을 하고 내무반에 올라왔다. 누구의 애인이 미인이라고 게거품을 물었다. 페치카에 우두커니 기대어 앉아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본부 이OO일병! 애인 면회와 있습니다. 행정반에 들러 증을 끊어 위병소로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때 까지 내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전우들이 함성을 지르며 내 곁으로 오기에 실제 상황인줄 알았다. 일계장 피복을 갈아입으면서도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애인? 아니 혜림이가 여기까지? 동기들 서넛이 따라 붙었다. 내무반에서 정문의 위병소까지의 거리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다 는 걸 처음 알았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너무 재미있는 글을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편은 언제 올라와요?
그리고, 실화 입니까?
어떤 글을 읽고 가기는 쉽습니다만, 흔적을 남기는게 어렵다는것을 잘 압니다.
다음글을 기다리시는 분이 계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더운 날씨에도 부지런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관심에 감사드리며, 더운 날씨에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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