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비누거품을 만들어 문지르고 샤워기 꼭지를 틀어 거품을 씻었다.
타월로 닦고 나오니 혜림은 속옷을 입은 채, 깔아 놓은 흰 담요에 화장 솜으로 무엇을 하다가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흰색 담요에는 빨간 매화꽃처럼 붉은 선혈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얼굴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잠시만 좀 돌아 앉아 있어 주세요.”
“왜?”
그녀는 나의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화장 솜을 화장지 싸서 휴지통에 버리고, 타월을 담요위에 깔았다.
내가 자리에 눕자 그녀는 일어나더니 욕실로 향했다.
시간이 흘러가는 그 자체가 안타까웠다.
시간이 멈춘다면 시계의 초침을 본드로 붙여 고정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둘은 지난 이야기와 지금까지 서로가 모르고 있었던 가족이야기도 진솔하게 나누었다.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며, 내 스스로의 다짐도 했다.
한 여자의 남자로서 어떤 책임감도 같이 느꼈다.
혜림의 아버지 고향은 함경도이다.
6.25사변 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버지는 전쟁으로 결국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냥 공무원이라 했는데, 미국 대사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시고 정년이 가깝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실향민인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고 했다.
외가댁이 대구에 있고, 혜림은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친가 쪽 친척은 없고, 무남독녀라서 외로움을 많이 타며 자랐다는 이야기를 했다.
혜림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물적인 본능이 살아서 다시 굼틀거리고 있었다.
두 번째 요구를 했을 때, 그녀는 당겨와 응하면서도 눈을 홀렸다.
두 젊음은 처음 맛본 과일 맛에 탐닉하고 있었다.
서로의 가슴을 모두 열고, 많은 이야기와 과일 맛을 음미하다가 새벽녘에 살포시 잠이 들었다.
코끝이 간질간질하고 겨드랑이가 간지러워 눈을 떴다.
벌써 커튼사이를 통해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혜림은 먼저 일어나 화장까지 마치고 난 뒤, 화장솔로 코끝과 겨드랑이를 간지럼 태우고 있었다.
쳐다보니 미소 띤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계를 쳐다보니 귀대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았다.
여유를 가지고 아침식사를 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간단하게 해장국으로 해결하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다행히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10여분 뒤에 있었다.
“식사를 그렇게 적게 하고 버스를 탈수 있겠어?”
“괜찮아요. 시간이 바쁘지 않으세요?”
“아직 1시간이 남아있어. 택시를 타지 뭐.”
“가서 바로 편지를 드릴게요. 군 생활 남들도 다 하잖아요. 건강하게 엉뚱한 생각 말고 잘하세요.”
“혜림아! 이젠 확실한 등기를 내가 했으니, 흔들리면 안 돼. 알았지?”
주먹을 쥐고 때리는 시늉을 하며 눈을 홀기고, 주위를 살폈다.
출입문에서 버스표 개찰을 하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며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주위 사람이 없으면 껴안고 포옹을 하고 싶었다.
얼굴 모습을 마음속 깊이 각인하기 위해 그녀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윤 혜림 정말 죽도록 사랑한다. 기다려줘.”
“귀대 시간이 늦겠어요. 몸 건강하세요. 편지 드릴게요.”
그녀는 개찰구를 빠져 나갔다.
버스에 오르며 뒤돌아보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도 손을 살짝 들고 고개를 숙이며 버스에 올랐다.
읍내에서 택시를 대절해서 귀대를 서둘렀다.
정문 위병소에 도착을 하니, 10여분 지각이었다.
귀대신고를 했다.
지각에 따른 체벌로 오리걸음을 하며 연병장 한 바퀴를 돌았다.
오리우는 소리와 군기확립을 복창했다.
오리걸음을 하면서도 머릿속의 생각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가고 있을까?
위병소에서 혜림과 인사를 나눈 동기생들의 입을 통해, 내 관물 대에 부착된 사진보다도 실물이 훨씬 멋있다고 내무반에 소문이 나있었다.
고참들은 은근히 약 올리는 소리를 내가 들으라는 듯 했다.
“왕년에 애인이 없는 사람이 있었는지 대한민국 육군 병장에게 물어봐. 다 있었다고.
상병을 달고 병장 달아봐라. 어느새 고무신 거꾸로 신고 달아나 버렸어.
약혼했다는 수송부 신 병장 봐라. 상병 달고 탈영했다가 잡혀와 감방살이 좀했지.
다 그런 게 남자와 여자의 사이야. 안보면 멀어지는 거야.”
고참의 확신에 찬 이야기를 들어도 우리는 예외라고 생각을 했다.
면회를 왔다가 무사히 잘 갔는지 궁금한 마음에 먼저 편지를 보냈다.
그날 경험이후, 내게는 많은 변화가 왔다.
지금까지 만나 웃고 떠들며 장난기 어린 농담도 했지만, 한 줄의 편지글을 쓰도 신중하게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며, 마음속의 내용을 적고 있었다.
그녀와 한 몸이 되었다는 현실에 책임감을 생각했다.
앞으로 내 삶에 있어서 그녀와 함께 하는 무지갯빛 청사진을 하루에 수십 번씩 그렸다가 지웠다.
주간 초소 근무를 끝내고 내무반에 들어오니, 학수고대하던 편지가 와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편지글은 당신에서 시작되어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부와 중간에는 감동받았다는 그 내용이 또 들어 있었다.
편지는 하루 종일 나만이 가지는 자투리 시간에는 암기를 할 정도로 보고 또 보았다.
저녁 식사 후, 개인 시간에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항상 내게는 기다림이라는 의미가 생활 속에 깊이 각인이 되어 있었다.
편지를 보낸 후 답장을 목이 타게 기다렸지만, 이번 답장은 열흘이 넘어 받아 볼 수 있었다.
글 내용에서 아버지의 정년에 따른 가족과의 갈등 문제가 짧게 언급이 되어 있었다.
당신, 사랑,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눈에 띠게 줄어들었고, 글의 흐름이 다분히 일상적인 내용을 서술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묘한 기분과 함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동성로 연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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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Site를 찾은지 얼마안되는 사람인데요
이렇게 좋은 글들이 많은줄 몰랐어요
시간가는줄 모르고 ... 10편 기대합니다
월척 사이트는 낚시인들의 정보공유를 지향하는 열린 공간입니다.
요즘 어디라도 환경문제에 대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만, 월척의 환경문제 계도와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오프라인의 모습들이 마음에 와 닿기도 합니다.
아이디가 여성분 같기도 합니다만, 단비님은 낚시를 좋아하시는지요?
늘 좋은 나날이 되시길 빕니다.
강태공들의 세상낚는 넓은 마음은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