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커피포트를 켰다.
물이 끓고 있었다.
기체가 시간 속에 흡수되고 있었다.
커피 향을 맡았다.
커피의 향과 맛은 변함이 없었다.
후후 불어 한 모금을 입에 물고, 혓바닥에 액체방울을 굴리며 맛을 음미했다.
구수한 향이 실내에 조용히 번져 가고 있었다.
실내의 조용한 분위기를 뚫고, 낭랑 한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노트북의 화면을 응시했다.
커피 잔을 놓고 마우스를 클릭 했다.
늦은 시간에 메일이 올까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려다가 내심 은근하게 기다리던 그녀의 메일이었다.
“중략..........정말 놀랍기도 하고, 기사화된 글을 직접 보셨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태평양에 빠져있는 바늘을 건진 심정입니다.
이 지구에 같이 살면서도, 그렇게 다시 만날 인연이 되지 않았는지.......
잡지사의 요청으로 인터뷰에 응했지만,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질 수 있다는 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에는 삼 년 전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대구의 동성로를 찾고 싶었지만 일정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일본 동경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달 말에 이란으로 갖다가 이 선생님의 일정만 되시다면 한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금도 대구에 계시는지요?
물론 결혼을 하셔서 아이들도 있겠지요?
메일주시면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항상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추신: 너무 정신이 없고 떨려 두서가 없습니다. 보신 후 바로 연락 주십시오.”
미국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일본에 같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지금 만난다면 어떤 감정이 서로를 지배할까?
20대에 만났다가 불혹이 한참 넘은 나이에 다시 만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고, 그 단절된 세월을 넘어 끊어진 철로의 복원처럼 새로운 감정으로 다시 연결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서로의 환경이 홀가분한 단신에서, 지금은 피로 맺어진 가족관계가 삶의 고리로 작용을 하고 있다.
현실을 뛰어 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은 심한 갈등 속에 노출되어 있었다.
머릿속에 실타래가 엉켜 복잡함을 느꼈다.
마시다만 커피 잔을 들었다.
커피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지금 이 시간 동경의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녀는 내가 한국에 있다고 생각을 할 것이다.
인생의 종착점에 도달하기 전에 한번은 반드시 만나야 한다.
왜 서로가 그리워하면서도 만나지 못했는지?
무엇이 발목을 잡아 대각선의 한 점으로 만나 다른 방향을 향해 멀어져야 했는지?
이 세상에서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서로가 가졌던 오해와 원망이 있었다면 만나서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졌다.
시계를 보니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도 지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메일함을 오픈해 놓고 있을지 모른다.
간략하게 지금 여기에 무엇 때문에 와 있다는 내용을 보낸 후, 발표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도 잠잘 시간은 길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금 정신이 없는 상황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지금 메일은 일본 동경의 OO호텔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D대학에서 열리는 OO관련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만나고 싶습니다.
오늘은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내일 일정을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쉬어야 될 것 같습니다.
편안한 밤이 되시기 빕니다.”
발송을 하고, 발표자료 마무리 작업을 마쳤다.
몇 시간 동안 수면을 취하고 싶었지만, 엎드렸다 모로 누워 뒤치락거리다가 잠에 빠졌다.
모닝콜을 받고 겨우 일어났다.
교육시간 중 몸은 강의실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있었다.
정신을 가다듬으려 노력을 하면 묘하게 마음은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었다.
점심은 햄버거 한 조각으로 때우고, 우리조의 조별 자료 수합을 완료했다.
서론과 본론의 발표는 엔타르씨가 하고, 결론은 내가 발표를 하면 질의에 대한응답은 스쯔끼씨와 셋이 공동으로 하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안개 속에 헤매면서 발표를 하고 일과를 마쳤다.
셋이서 간단하게 맥주 한 캔을 들고 발표완료를 자축했다.
스쯔끼씨가 2차 제의를 했지만 사양하고 숙소로 향했다.
프런트에서 맡긴 열쇠를 찾고 있는데, 로비에 손님이 기다린다고 했다.
짊어진 가방과 노트북을 세이프티 박스에 맡겼다.
로비를 둘러보았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동성로 연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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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가슴떨릴까.... 저도 첫사랑 얘기를 한번 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글재주가 조금만 있다면 저도 입질!기다림님 처럼 아름다운 얘기를 쓰고 싶은데..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
누구라도 알수없는 떨림이 함께하겠지요 ^^**
좋은글 접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편이 무척 궁금해 지네요.ㅎㅎ
다음편 기대합니다.
다시 만날때는 어떤 기분일까?
입질님의 글을 잘 보고있습니다.
짝사랑이던 아니면 풋사랑이든......
성인이 되어 생각할 때, 지난날 이성에 대해 묘한 감정을 느꼈던 아릿한 사랑.
그게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서적인 영양소라고도 생각합니다.
황순원님의 소나기를 나이가 들어 읽어 봐도 묘한 흔들림과 찡한 맛이 있듯이......
그믐달님, 단비님, 자연과사람님, 사랑의 그림자님!
얼굴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관심을 표명하시고, 격려에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들이 소망하시는 대로 잘 이루어지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