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갔다.
12월이었다.
덜렁 남아 있는 달력 한 장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새삼 억지로 나이를 먹어야 한다는 안타까움도 내포되어 있었다.
낙엽이 굴러다니고 찬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겨울은 메마른 남자를 공허하게 한다.
어제 오후에 전화로 윤 혜림의 부탁을 전하기 위해 대구에 온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퇴근 후 차를 몰아 P호텔에 도착을 했다.
커피숍 카운터에서 사람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하자 아가씨가 안내를 했다.
중년신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사내가 손을 내 밀었다.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마주 보고 앉아 명함을 같이 주고받았다.
명함에는
“법무법인 ○○, 수석 변호사 , 신 OO”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가씨가 차 주문을 부탁하자, 나는 커피를 그는 녹차를 주문했다.
그가 먼저 입을 뗐다.
“담배 하십니까?”
“예.”
같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연기를 뿜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법인이 Blue Bird그룹의 한국내 법적인 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Gina Yoon회장님의 국내 법정 대리인이기도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Gina Yoon회장님의 지시로 대구를 급하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갑작스럽게 전화를 드려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말은 죄송하다고 했지만, 지극히 사무적으로 들렸다.
주문했던 차가 나오자 차를 마시며 그가 본론에 들어가길 기다렸다.
“대리인의 업무는 그분을 대리해서 권한을 위임받아 집행하기도 합니다만, 오늘처럼 전달할 내용들도 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단순하게 전달하는지 핵심에 접근하기 위한 의도적인 말을 하고 있었다.
차를 마신 후 담배를 다시 물었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윤 혜림의 신상문제 인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듣고만 있다가 먼저 말을 붙였다.
“윤 회장님은 잘 계시는지요?”
“예, 미국 본사에 계십니다. 지난주에 통화를 했습니다.”
다행히 혜림의 신변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물건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장소가 곤란하다며 자리를 옮기자고 제의를 했다.
그가 앞장서고, 뒤따라 호텔의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파에 앉길 권했다.
그는 가방을 열더니 제법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 소파의 탁자위에 올렸다.
입구가 밀봉된 노란색 봉투를 개봉하라면서 먼저 건네주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일본에서 혜림과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사진을 챙겨 봉투 속에 담았다.
이번에는 신 변호사가 봉투를 직접 개봉했다.
“이건 선생님 댁의 영식과 영애에게 회장님이 보내는 물건입니다.”
“내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물건이라니요?”
“저는 아까 말씀을 드린 것처럼 회장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얼핏 보니 은행 예금증서 인 것 같았다.
“이것은 스위스 ○○ 은행에 개설된 영식과 영애 두 사람의 개인 예금증서입니다.
금액은 현재 우리 환율로 환산하면 대략 300억원씩 토털 약 600억원이 입금되어 있습니다. 또, 서울과 부산 및 지방에 소재한 윤 회장님의 토지와 부동산도 두 자녀 분 앞으로 양도한다는 유언장은 저희 법무법인에서 발생일 이전까지 보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보호자인 이 선생님께 알려드리고, 전달하기 위해 만나자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그것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건 선생님께 단순히 전달만 해드리는 것 입니다. 선생님 댁의 영식과 영애 앞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법적인 모든 소유권은 그분들에게 있습니다. 만약 수령을 하지 않으신다면, 우리 법인에서 보관을 하다가 윤 회장님이 지정하신 2005년과 2007년에 본인들에게 직접 전달을 합니다. 그리고 이건은 금융실명제와도 전혀 무관하며 국내외 법적인 문제가 모두 검토된 사안입니다. “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이런 내용을 미리 알았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겁니다. 윤 회장님께 전해 주십시오. 호의를 받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꼭 전해 주십시오. “
완강하게 거부를 했다.
그는 종이를 내밀며 봉투 1개 수령만 서명을 부탁 했다.
사진 수령에만 서명을 하고 자리에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돌아서려는 나에게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법인에서 그때 까지 보관을 하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십시오.”
목례를 하고 성큼성큼 걸어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변함없이 계절이 바뀌고 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친구들과 유료 낚시터에서 손맛을 보고 와서 그녀의 메일을 받았다.
윤 혜림과의 모든 일은 아릿한 지난 추억의 앙금으로 남아 있다가 되살아났다.
새삼스레 내가 늙어가고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묘한 자연의 섭리를 느끼고 있었다.
추억의 밑바닥에 잠겨 있던 판도라 상자를 5년 전에 열정을 잠재우고, 침잠시키지 못해 스스로 개봉을 했었다.
잡지 기사를 보고 메일을 보낸 게 잘못이며, 일본에서 그녀를 만나지 말아야 했었다.
첫사랑은 마음속에만 존재하면서 지친 삶을 가끔씩 뒤돌아 볼 때, 한모금의 청량음료 역할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추억 속에 평생 동안 그냥 남아 있을 것을…….
메일을 보는 순간, 이사실로 인해 가족들이 받을 심리적인 충격을 생각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을 위해 숨은 자리에서 당신과 같은 궤도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많은 지난날의 추억이 뒤엉켜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담배를 빼 물었다.
연기는 하늘거리며 물 컵 속의 잉크방울처럼 실내에 번져갔다.
반쯤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직장의 홈페이지에 접속을 했다.
이달 말에서 다음 달 말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OO국제 교류 심포지엄 참가 희망신청서를 작성하여 발송을 했다.
인사부서 담당자에게도 이번 행사에 참가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개인 메일을 보냈다.
확정된 사실은 아니지만, 전화기를 들고 한참 동안 고민을 했다.
목소리를 들으면 늪에서 헤어나기가 힘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번 귀국 에는 출장관계로 만나지 못한다는 내용과 아이들의 문제도 시간이 더 필요 할 것 같다는 메일을 그녀에게 발송했다.
잠시 한국을 떠나 있고 싶었다.
지금 당장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었다.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 갈 것이다.
두 아이는 성장 후, 결혼을 하면 내 품을 떠나 개인의 삶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 내외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공원의 나무그늘 아래에서 할머니로 변한 아내에게 등을 긁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때 나의 고백이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빌어 전하고 싶다.
먼 훗날 내 아이들은 지난 아버지의 첫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윤 혜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할까?
그건 지금 현실에서 내기준의 잣대가 아닌 자식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윤 혜림.
같이 동행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이름.
그녀가 많은 양보를 한다고 해도, 같은 궤도로 움직일 수는 없는 삶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맺어지지 못한 원인에 대해 누구의 책임과 잘못도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안타까움과 이별을 감수하고 적응하는 훈련은 많은 경험을 통해 해왔다.
사람의 운명.
단지 미물이 아닌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이 작용한다고 애써 믿기로 했다.
누군가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내게 있어서 젊은 날 윤 혜림과의 첫사랑은, 동성로 연가로 죽는 날 까지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ND
무더운 여름날 시작을 했습니다.
이 좋은 사이트의 한 부분을 어쭙잖은 잡문으로 혼자 도배를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의 부족한 글을 읽고 조언과 댓글을 주신 월척 회원님과 낚시 동호인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사이트 운영자이신 월척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모든 분들께서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이나 개인의 일상에서 좋은 일 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입질! 기다림. 드림
동성로 연가(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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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입질!기다림님의 좋은글 다시금 볼수 있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
수고 하셨고 행복한 나날들 되십시요..
결실의 계절 가을입니다.
주위 모두가 풍요로운 것 같습니다.
주말 오후에 낚시를 갖다왔습니다.
낚시를 좋아하지만 완전 초보입니다.
저는 낚시터 분위기가 좋아 낚시를 다닙니다.
초보의 변명입니다.
하하하.......
새벽에 물안개를 보면서 마시는 커피 맛이 그렇게 좋더군요.
항상 좋은 글이라고 과찬을 하셔서 얼굴이 붉어집니다.
건강하시고 편안하신 나날이 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입질!기다림님! 안녕하세요.
다 읽어보지 못하고 축하를 한다는것이 "어불승설" 같아 보입니다.
장문의 글을 작성 한다는것이 쉬운일은 아닐겁니다.
그것도 무려 20회씩이나 말이죠. 어지간한 열정이 아니면 힘던 일이지요.
자격은 없지만 "동성로연가" 무사히 집필 마치심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울러 "투데이베스트" 에 선정 되심도 축하 드립니다.
늘 건강 유의 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기를,,,,^*^
그사이 다녀가셨네요.
경산시 남산면 소재 요리지에 출조 하신 화보 조행기를 잘 보았습니다.
사진 처리가 압권이었습니다.
항상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편안한 조행길이 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가슴속에 묻어둔 사랑... 많이 불안했었습니다
혹 첫사랑이 상처가 되지 않나해서요
뒤돌아볼때 한모금의 청량음료 역할이라는 아련한 추억...
우리네 삶의 공감대이겠지요
우연히 낚시site에서 월척을 건지듯 좋은글 접했습니다
장문의 글을 쉽게 읽게 해주신 입질기다림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또 기다릴께요 다른 좋은글 기대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오랜만입니다.
저는 오늘 처백부님 장례식 참석으로 장지인 영천 화산쪽에 다녀왔습니다.
사람의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다가 저수지가 보이면 얼굴이 돌아갑니다.
제가 알고 지내는 지인은 이게 중병이라고 합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더군요.
저 경우에는 바쁘게 살다가 짜투리 시간이나 주말에 낚시를 가면 정신적인 편안함과 달콤함을 느낍니다.
그동안 격려와 과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편안하신 날들이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