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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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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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26일 수요일. 어제 퇴근 후 낚시가방을 챙겨 차에 싣고 있었다. 아이들과 참외를 먹던 아내는 “내일 석가탄신일인데 낚시 가려고요? 다른 사람은 방생을 하러 가는데........” “내일 날씨가 좋아 병이 도져 자리에 누우면 어떻게 하려고......” 싱긋 웃으며 장비를 창고에서 꺼내 서너 차례 차에 옮겨 실었다. 월척사이트에서 읽은 어느 낚시 선배의 글이 항상 내 심연에 메아리치며 맴돌고 있다. ‘낚시! 죽어야 고치는 병’ 지당한 말씀이다. 월척이니 턱걸이니 498이니 하는 이야기는 내게는 너무 먼 당신이다. 아직은 무월척. 일상에 찌들려 살다가 공휴일이나 자투리 시간의 달콤함에 빠져 혼자 물가에 앉아 찌 놀림을 보고 별빛을 보고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덕지덕지 끼어 있는 땟자국과 상처의 흔적, 서운한 마음을 삭이며 머리 속에 헝클어진 마음의 매듭을 풀고 정리하며 물가에 앉아 있다. 찌들은 땟국물을 빼고, 맑은 정신 속에 귀가를 한다. 그리고 거울 속에서 초라한 모습의 사내 얼굴을 만난다. 거울에 담겨 있는 검은 수염의 사내. 한 여자의 지아비, 아이들의 아비...... 그렇게 잘난 것도 없고 무엇 하나 특별히 내 세울 것도 없는 남자. 이제 눈가에 주름이 늘어가고 신문의 작은 글씨는 초점이 맞지 않아 정확하게 볼 수도 없는 남자. 어느 교수의 투명한 언어의 잔상이 잉어의 비늘처럼 싱싱하게 내 마음 곁에 다가온다. “나이가 들어 먼 곳은 잘 보이고, 가까운 게 잘 안 보이는 건 이제 나이 먹었으니 너무 쫀쫀하게 앞에서 벌어지는 작은 상황을 보고 간섭도 하지 말고 인생의 깊이처럼 먼 것만 보라는 차원입니다.” 낚시! 입질! 기다림. 사람의 인생사도 입질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사람의 머리 속에는 집중하는 생각에 따라 시간의 톱니바퀴 자국이 박혀 있는 모양이다. 눈을 뜨니 새벽 3시다. 일어나니 단잠을 자던 아내가 “아니 벌써 나가려고요?” “응. 나가면서 내가 문 닫고 나갈게. 당신은 계속 더 자거라.” 세수를 하고 마음은 벌써 급해진다. 집에서 출발하여 반야월을 지나오는데 문이 열려 있는 낚시가게는 없다. 아내의 이야기처럼 모두가 방생을 하러 갔는가 보다. 어둠 속에 한가한 도로를 벗어나 송정을 지나는데 자주 들리던 가게에 불이 켜져 있었다. 미끼를 준비하고 커피를 마시는데 조사 한 분이 들어오신다. 같이 낚시 간다는 어떤 동질성에 눈인사를 했다. 물띠미 고개를 넘는데도 어둠은 가시지 않는다. 다음에 전개될 상황을 그려본다. 습관처럼 하양의 김밥 집에 들러 아침을 때우고, 점심은 김밥 몇 줄을 말 것이다. 은박지에 포장된 말랑말랑한 김밥봉지를 싣고 행선지를 향해 달릴 것이다. 주차 장소가 마땅치 않아 읍사무소 입구에 개구리주차를 하고 김밥 집에 들렀다. 입구에 앉은 한 사람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도 정수기에서 물을 한 잔 뽑아들고 자리에 앉아 청해놓은 우동이 나오길 기다렸다. 새벽에 먹는 우동은 국물 맛이 더 일품이다. 우동을 받아들고 젓가락으로 저어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다. 어릴 적 어른들이 뜨거운 국을 잡수시면서 시원하다는 말과 삼복더위에 우물물을 떠먹으며 물맛이 좋다는 말씀에 도대체 이해를 못하다가 요즘 그 말을 이해한다는 게 새삼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말이다. 그때 내 옆 테이블에 사람이 앉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행색이 너무나 초라한 노숙자의 모습이었다. 흰 머리카락, 땟자국에 절은 옷차림, 낡은 구두 속에 보이는 발등은 검어 보였다. “어이구! 배고파. 라면 한 그릇에 얼마요?”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젓가락질을 하면서 청각기능에 더 신경이 집중되고 있었다. 돌아서서 접시에 단무지를 담고 있는 아주머니의 대답을 내가 더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소리 나는 쪽으로 뒤돌아보면서 대답을 했다. “천오백 원요.” “퍼뜩 하나 끓여 주소. 춥고 배도 고프고 못 살겠다. 내가 고물 주워 팔아서 갚을게.” 그러니까 라면 값은 외상으로 할 테니 끓여 달라는 이야기였다. 뜨거운 우동 국물 한 모금을 마시는데 갑자기 목구멍이 탁 막혔다. 묘한 기분에 그 어른에게 다시 눈길이 갔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4시경. 새벽출근이나 낚시 가는 것도 아니고.......... 춥고 배가 고파 라면을 청하는 어른의 모습에 입 속의 우동 가락을 우물거리면서 어떤 생각이 온통 그물처럼 나의 뇌리를 휘감고 있었다. 다시 노인은 청해 놓은 라면이 나올 동안 TV를 쳐다보다가 약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김밥을 썰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지금 테레비 저거 유선이제?” “예. 유선 맞아요.” “할아버지! 자꾸 고생하시지 말고 아드님에게 용돈 좀 달라고 하세요.” 순간 나는 또 다른 혼돈에 빠지고 있었다. “자식놈은 키울 때지 말짱 헛 거야. 지 살기 바쁘다고 아비가 어디 보이나.” 처음에는 그냥 노숙하는 사람인 줄 혼자 생각을 했는데, 저 노인과 식당 아줌마와 대화과정을 들어보니 전혀 낯선 사람이 아닌 가족관계도 서로 알고 지내는 것 같았다. “아니 따님은 무얼 하세요. 아버지가 고생하시는데.......” “딸년도 소용없는 기라. 천만 원 급하다고 해서 주었더니 소식도 없어.” 주방에서 노인이 주문한 라면이 나오고 나는 우동국물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으로 포장해 놓은 김밥봉지를 받으며 만 원권 지폐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소리로 “저 어른 라면 값도 포함하세요.” 아주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에 나는 얼른 집게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하고 거스름돈을 받아 나오면서 “잘 먹고 갑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 걸음으로 차를 파킹한 곳으로 걸었다. 앞 유리창을 내리고 뒤로 후진하는데 둔탁한 소리를 듣고 고개를 더 젖혀보니 가만 서 있는 전봇대를 박은 것 같았다. 운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산업도로를 타고 영천 우회도로를 타고 가속 페달을 밟으며 속도계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어둠은 점차 묽어지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언젠가 신나게 과속을 하다가 찍힌 경험이 있다. 날아온 고지서에는 10㎞초과 3만원 벌금이었다. 영천진입로 곡선도로를 타고 있었다. 농산물공판장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긴 강가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조사의 모습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장비 가방을 내려놓고 담배를 물었다. 이슬에 촉촉이 젖은 풀을 밟고 그 자연 속에 사람이 서 있었다. 달콤한 기다림과 찌놀림을 생각하며 낚싯대를 펼치고 있었다. 피라미의 경박한 입질이 계속된다. 미끼를 전부 옥수수로 교체했다. 입질은 도통 없다. 애꿎은 담배만 잡고 있었다. 두어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미동도 없는 찌를 바라보다가 점방을 걷어야 한다는 생각의 끝에 봉착을 했다. 다시 보따리를 주섬주섬 싸고 가방을 짊어졌다. 이슬 젖은 풀잎을 밟으며 밭둑을 타고 강 상류로 향해 걸었다. 유채 꽃이 만발하던 상류는 꽃이 지고 대궁이만 튼실하게 자라 있었다. 다시 낚싯대를 펴고 있었다. 땀이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맥주 한 캔을 따서 몇 모금을 마셨다. 시원한 냉기가 식도를 타고 위벽을 긁으며 내려간다. 다시 낚싯대를 펴고 있었다. 입질을 기다리는데 소식은 없고 귓가에 환청이 심장의 고동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고물 주워서 갚을게...... 춥고 배고파...... 라면 한 그릇 얼마요...... 자식도 키울 때 자식이지......” 새벽에 들은 그 노인의 음성이 마음에 찰싹 들러붙어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 시골에 동생 내외가 모시고 있다. 물론 고향마을에 전답도 있고 선영도 거기 있다. 아버지는 태어나 내가 알기로는 6․25사변 때 고향을 떠나 결혼 후 자식을 키우고 자식들을 출가시킨 후 계속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계신다. 나도 부모님이나 홀로 계신 장인어른께 많은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 같다. 정말 키울 때 자식이었지... 명절이나 조상님의 제사 때나 얼굴을 내비치는 큰아들의 변변찮은 모습. 그때 강 건너 산 밑에 있는 건물에서 불경소리가 들려온다. 승용차와 트럭이 들어가는 게 보이고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게 보인다. 지금까지 그게 시골집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작은 암자인 줄 오늘 알았다. 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가 강가에 퍼져온다. 아침부터 어떤 마음의 굴레에 묶여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의 운신에 어떤 제약을 받는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낚싯대를 걷어 다시 짊어지고 차로 향했다. 목덜미는 땀으로 끈적거렸다. 트렁크에 장비를 싣고 차창을 반쯤 내렸다. 그리고 운전석 의자를 뒤로 빼고 경사각을 많이 준 채 뒤로 누웠다. 갑자기 잠이 스멀스멀 오고 있었다. 다리 아래 교각 사이에 파킹한 차에는 햇볕이 들지 않았다. 정말 수많은 생각이 아른거린다. 석가탄신일 나홀로 낚시 행각의 말미에 정신없이 깊은 잠에 떨어지고 있었다.

입질!기다림님 반갑습니다
읽는 내내 부모님 생각에 젖어봅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되십시요..^0^
입질!기다림님!
오랜만에 좋은 글 읽어봅니다.

고향에 홀로계신 어머니 생각 해봅니다.

즐낚하십시요!
공자님, 낚시꾼과 선녀님!
무척 무더운 날씨가 계속됩니다.
오늘은 중복입니다.
더위를 이기는 보양식 드시고, 즐거운 낚시를 하시더라도
안전한 취미생활이 되시길 빕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입질!기다림님. 우연히 잘 보았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거의 같은 경우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하양,새벽에 먹는 우동,라면,김밥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 생각에, 괴기란 놈도 효도(?)하려 간 것 같았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좋은글 보고 다른이들도 보라고 옮겨갑니다.
그럼..꾸벅.
가슴이 찡해집니다.
글쓰신지 4년이 지난 뒤에도 감동이 오는 글은
분명 좋은 글이겠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참 좋은 글이네여 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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