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
그것도 산자락 끝 대롱이며 매달린 시골 일 수록
유년 추억의 호 불호를 떠나
마을 앞 실개천,산등성 골짜기 논 자락 끝의 둠벙 마다
마치 석류 알 박혀 있듯 수많은 단상이 있을 것입니다.
도시로, 도시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조상님들 조차 후손들 따라 이삿짐을 꾸리셨지만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벌초"라는 행사는
이제는 이름뿐인 명절을 대신하는 집안의 제일 큰 모임이 되었습니다.
물론 또 고향은 금방 생산이 중단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1년만의 고향 벌초길,형과의 동행이라 마음이 푸근합니다.
"회사일 많이 힘들지?"
"원래 무일푼으로 시작했는데 뭘"
호기롭게 큰 소리쳤지만 가슴 한쪽이 꽉 막혀와 얼른 화제를 돌립니다.
"형님! 어릴 적 탱자 가시에 곶감 빼 먹었다고 나 때린 거 기억 나요?"
"내가 언제?"
"그러고도 여태 발 뻗고 주무 셨소.그때 얼마나 서럽던지--"
"형님! 그건 기억 나요?"
"뭘?"
"소 먹이러 가기 싫어 소 입에 된장 바르고 물가 으슥한 곳에 매 놓았던 거."
"하하 그래. 그날 소 배 빵빵 하다고 집에 가서 칭찬 받았지."
어릴 적부터 형은 늘 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유달리 고풍스러운 집안 분위기를 배경으로 "종손"이라는 무게 감은
숙모들 조차 큰 조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했고
늘 아버지와 겸상으로 차려지는 형님의 밥상을 보며
우리와는 확연히 구별된 무엇인가를 은연중에 느끼며 자랐습니다.
세월이 지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족쇄"이였겠지요..
"집안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대 명제는 결과적으로 소심하고 우유 부단한
겁쟁이로 비쳐질 수 밖에 없었고 대학 졸업 후 자기 사업의 꿈 조차
"사업하다 잘 못 되면 선산,전답 다 날린다."라는 지엄한 아버지의 한 마디에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형님은 평소 늘 그래 왔듯 안전한 직장을 택하는 것으로
순종 했고요.
어쨌던 형님은 그 후로도 가끔씩 동생의 천방 지축을 부러워 했고
늘 골치거리인 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고향집 뒷산 같은 바람막이였습니다.
"요즘 낚시 다니냐?"
"에-휴 마음이 그래서 그런지 통 못 갔습니다."
"낚싯대는 가지고 있냐?"
"촌에 옛날 것 몇 대는 있을 겁니다."
"그라마 오늘 나하고 한번 가 보자."
"허어 참 별일이네 .형님이 낚시를 다 가자 하고--"
키 높이를 훌쩍 넘게 자란 제방 잡초도 이젠 기세가 한풀 꺾였습니다.
500평 남짓한 이 둠벙은 고속도로가 뚫린 뒤
경운기 하나 겨우 빠져 나갈 수 있는 굴다리 밖에 통행 수단이 없어
저 또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곳입니다.
"분위기 좋구나."
"허허 사실 이 맛에 낚시 다닙니다."
"나도 다음에 낚시 한번 배워 봐야겠다."
"라면 드실 라요?"
"그러자."
초저녁 피라미 입질도 잠잠해지고 가장자리에서 겨우 채집한 새우를 달아 봅니다.
멋진 찌 올림을 형님에게 선사 하고 싶습니다.
"야! 이 큰걸 붕어가 먹냐?"
"믿고 기다려 보소. 그라고 채라면 눈 딱 감고 들어 뿌소."
"안 추우냐? 옷 줄까?"
"형님이 추운 모양이네. 차에 가서 덮을 것 좀 찾아 볼 라요."
두어 시간 남짓 처량한 고라니 소리만 가득합니다.
물속 뿌리를 내린 듯 꼼짝하지 않는 찌가 야속합니다.
"많이 힘들지. 미안타 아무 도움이 못돼서---"
이 말 한마디 해주려 산속 까지 동행을 요청한 형님 마음 씀씀이에
지난 몇 개월 혼자 힘들었던 봇물이 터집니다.
멀리 고속 도로 차 소리가 한적해 질 때까지
주저리주저리 어리광을 부려 봅니다.
"내일 벌초 갈 건데 차 안에서 눈 좀 붙이소."
"아이다. 한 마리 멋지게 잡아야 안되겠나."
"엉덩이 안 아프나? 니가 의자에 앉아라."
"돌이 펑퍼짐해서 괜찮소. 누가 큰 거 잡나 내기나 합시다."
물안개와 함께 멀리 산자락이 뿌옇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형님은 하는 일이 좀 어떻소?
"그렇지 뭐. 쉬운 게 있냐?"
재작년 뜻하지 않은 구조 조정으로 엉겁결에 시작한 형님의 사업 안부를
이제 사 묻습니다.
고속도로가 또 차 소리로 가득해 지기 시작합니다.
"너한테 상의 할게 있다."
"형님이 나한테 그런 말 할 때도 있고 -.오늘 참 별일이네."
"아파트를 내 놓았다."
쏙 들어가는 입질에 빠가사리가 대롱 거립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답이 없구나."
"일단 아파트 정리하고 빚도 갚고 작은 전세를 얻을 생각이다."
"너거 형수는 직장 알아 보고 있다."
남은 새우 한 마리를 달아 말 풀 앞으로 던져 봅니다.
"인자 뭐 할끼요?"
"대출도 좀 내고 해서 시골 내려와 소 한번 키워 볼라고-"
"큰 놈은 이번 학기 지나면 군대 보내야겠다."
"작은 딸래미가 고등학생이라 가 대학 들어가마 너 거 형수도 내려 오고-"
"계속 이런 식이 마 과수원,논 지킬 자신이 없다. 전부 내 명의인데--"
"돈 벌어 고향 가려 했는데---"
금방 던진 말 풀 앞 찌가 살짝 맴을 돕니다.
"형님! 농사 지을 수 있겠소?"
"어차피 시골 와 부모님 모시고 살라 했는데 시간 좀 당긴다 생각해야지."
"내가 우 예야 되겠소?"
"안 그래도 니 머리 무거울 텐데 나까지 그래 미안타.애들이나 자주 좀 만나 조라."
"내가 더 미안 하요. 내 힘든 것만 생각했지 형님 이럴 줄은 정말 몰랐소. 미안 하요."
멀리 잉어인지가 풀쩍 띄워 오릅니다.
"형님 성격에 아무한테 말도 못하고 욕 봤소. 마음 편하게 잡수소."
"그라고 내려가 계시마 내도 한달에 두어 번은 가서 일 도울 끼요."
"허허 그래…그라자… 낚시도 같이 다니고 그라자."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말 풀 앞 찌가 꼬물꼬물 올라 오는 게 보입니다.
"어-어 -어 형님 찌 올라 오요. 빨리 채소!!!!"
저수지를 들어 올리는 힘찬 챔 질에 물오리가 푸드덕 날아 갑니다.
벌초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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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렀고
그 세월 동안 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남은 인생에는
또 어떤 부침이 있을지 모르지만
처음 가진 맘 변함 없이
그저 뚜벅 뚜벅 가 보리라 생각해 봅니다.
무거우면 우리 만날 때 하나씩 꺼내봅시다.
그대는 참 좋은 사람이요...
그저 열심히 살다가 가끔 되돌아보며 웃을수 있다면 그또한 행복이 아닐런지요.
두분의 앞날에 웃음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항상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쓸데없는 기우에 빠져들지요..
한참 애들은 커가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 해야 하는지에 고민하지만
단순한 생각뿐 어떻게 해야 할지....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가고 이런 글을 한번씩 볼때면
다시금 내자신을 돌아봅니다.
저두 위로 좋은 형님들땜에 집안 문제에 대해서는
큰 부담이 없지만 살뜰이 챙겨주는 형님이 있어 좋습니다.....^^
항상 지금이 힘들고 어렵네요...
지금도 인생에 있어 작은 언덕뿐이었음을 위해...오늘도 화이팅입니다
또다른 무거움이 분맹히 있을건데....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조심스럽게 글 남깁니다.....
연배이지만,
소풍님께는
참으로 배울것이 많습니다.
생각 깊이에
항상 뜨금해짐은
어쩔수없나봅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무없다."
요즘 이 말을 많이도 새깁니다.
이기고 견뎌내면 쨍쨍한 날도
바람 잘 날도 있겠죠.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편안하게 펼져 집니다.
각기다른삶을 살아온 형제.
생각은 다르지만 한곳을 응시하는 또하나의
동공은 역시 피할수 없는 형제인가 봅니다.
늦은시간에 편안한글 감사히 접합니다
님의 웃음소리는 이렇게 들렸습니다
그날,
몇 순배에 취한 체
전실에서 상자를 뜯고는... 아이고 이사람아.. 아이고 이사람아..
거실에서도 아이고 이사람아~
안방에서도 아이고 이사람아..
심지어 자다가도 그 말을..
다음날 딸아이의 전언입니다, 요즘도 가끔은 놀립니다 하하
십여년 전이라는 글, 위안으로 삼으며..
분명 담담한 필체로 쓸 것이라는 제 예측 또한 빗나가지 않았고요.
한 편으로는 형이 되었다가 또 한 편으로는 동생으로 앉아 있는 자신을 보면서
옛 추억 속으로 잠시 잠겼습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글 솜씨도 대단하시지만 형과 아우의 끈끈한 정이 듬뿍 느껴집니다.
더러 좋은 글 부탁드려봅니다.
건강하세요
외아들이고 누나와 여동생밖에 없는 저는
무한한 부러움을 글에서 느낍니다.
두분의 앞날이 무탈하고 형제애또한
깊어지기를 바래봅니다.
항상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고...
언제니 저에겐 든든한 바람막이였고..
세계적인 대기업에두 다니구,한창 땐 어깨에 힘들어가는
사업가이기두 했지요.
늘 집안의 큰 기둥역활을 하셨는데..
몇 해전 하시던 사업을 구조 조정하고..
동생에게 손을 벌려야 했지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뿌듯함보단
형의 어깨가 좁아지고 처진 어깨가
가슴을 메이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형에게 화이팅을 외치고 싶습니다.
형 화이팅!~
소풍님의 글을 읽고 너무나 처지가 비슷하여
발자취를 남깁니다.
잘 읽고 갑니다.
어느집이나 일반인은 그런거 같습니다
형의 어깨위에 올려진 짐의 무게를...
살아가면서 조금씩 알게됩니다.
오랜시간 그토록 이기적이라 미워했던 형님은
되려 제가 생각못할 큰 어른이었음을...
몰랐습니다.
행복하십시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젯밤 소류지에서 홀로 낚시중
한명뿐인 4살위 형전화를 받았슴미도.....
근 1년만인듯......
통화내용은
거짓말처럼 비슷한...^^;
잘보고 갑니다.
맨 마지막에 왜 절 찾으시는지요 ^^;;;
문학을 꿈꾸셔도 될듯합니다.ㅎㅎ
항상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많은것을 생각케 하는 글이군요
애뜻한 형제애가 부럽습니다
고향ㅡ
생각하면 늘 아련하고 가슴시린 곳이지요
예전에는 고향에 대한 노래가 참 많았는데
요즘은 시골에 애들이 없어
머잖아 고향의 의미도 바뀌겠지요.
잘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