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꾼들에 도무지 자리잡기가 어려워 보였지만, 일단 왔으니 최고의 포인트라는 장군바위로 진입했다.
이럴줄 몰랐다. 아끼던 차의 바닥이 울퉁불퉁한 바위를 타 넘으며 그그극 소리를 몇차례 냈다. 바위에 배치 붙은 꾼들을 지나자 수몰된 버드나무가 밀집한 물골이 나왔지만 역시 자리는 없었다. 다시 차 바닥을 긁으며 장군바위를 빠져나왔다.
초입 물골의 조촌교를 지나 중류로 내려와 높고 커다란 다리를 돌아서 다시 장군바위 건너편의 폐가앞 포인트라는 곳까지 빙 돌아 보았지만 이 한몸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초봄인데도 대형의 원남지는 약간의 저수위를 보이고 있었고, 폐가쪽 앞에서 길게 휘어지며 뻗어나간 높다란 둑에도 낚시대들이 마치 가시나무의 가시들처럼 촘촘했다. 둑을 따라 양편으로 펼쳐진 낚시대들이 마치 현미경으로 보는 파리의 기다란 팔뚝에 난 빽빽한 침들 같기도 했다.
낚시꾼들은 계속 들어왔다.
이미 포화상태간 된 대형지를 뱅뱅돌다 다시 빠져나가는 차들과 들어오는 차들로 인해 산길을 깎아만든 좁은 길은 번밥잡했다. 차량을 돌리기 위해 주차돼 있던 사륜차의 주인이 낚시 중에 불려나와 차를 빼다가 바퀴가 빠지더니 아래의 폐가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꺼내려면 긴 로프를 걸어 뒹구는 개처럼 끌어올려야 될 것으로 보였다. 빠진 차량의 주인은 한숨을 쉬더니 장박 할 것이라며 흙을 깎아내리다 걸쳐진 차를 그대로 둔채 낚시하러 갔다.
먼길을 왔다가 그걍 돌아가기가 뭐해 구경이나 하고 갈 생각으로 둑길로 내려갔다.
둑의 안쪽은 수심이 적당했고, 왼편은 본류권으로 수심이 사 메터 이상이 나오는데도 그곳마저 이미 꾼들이 차지해 자리잡기가 어려워보였다. 한 꾼이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본류쪽에 자리잡고 구슬땀을 흘리며 삽질 중이다.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먼저 말을 걸어오며 어데서 낚시중인지 묻는다. 자리가 없어 대를 못피고있다 하자, 그도 아찜 일찍 왔는데 지금까지 자리를 찾아 헤메다 포기하고 생자리를 잡아 다듬고 있다고 한다. 주변으로 베어낸 1년생 잡목들이 널브러져 있고 높다란 둑을 깍는 게 토목공사 수준이다. 눈가에 흐르는 땀을 닦던 그가 말하는데, 근 수일 동안 대물이 스무마리는 넘게 나왔고 하루에 적어도 서너마리의 사짜가 나오는데 나오는 곳이 어디어디며 그 크기는 어떻고 저쩌고 하며 떠드는데 그의 눈빛에서 열망과 집착을 넘어 어떤 광기마저 느껴진다. 아마 수 많게 몰려든 꾼들에 의해 군중심리와 어떤 경쟁심마저 생긴 것일 게다.
-상렬의 새끼들!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던 그가 멀리 한쪽을 노려보며 뱉은 말이다.
그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니 한 쪽 직벽을 따라 돌아가며 장대들이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는데 마치 절벽에 대포 부대가 진지를 틀고 포들을 거치하고 있는 것같다.
-낚시터가 지기들 거도 아니고...
그의 말을 들으니, 초 봄부터 모 낚시점에서 자리를 선점하고 지들끼리 자리를 넘겨주며 붕어를 빼먹고있다며 욕을 바가지로 퍼붓는데, 그 모 낚시점이라는게 조금 전 내가 들렀던 불쾌한 곳인지라 자칫했으면 나도 그 상렬의 새끼가 될 뻔 한지라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둑을 따라 자리한 꾼들을 구경하다 해가 기울때쯤 걍 낚시를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마침 한 사람이 다가와 말한다.
-낚시 할려면 여기서 해요.
중년의 아저씨가 철수하려는 모양이다. 자기는 입질 한 번 받아보지 못했지만 이쪽은 나오면 사짜니 한 번 해보란다.
그말에, 그 분 옆 자리의 꾼이 얼른 자기 앞 받침대를 그 자리에 꽃아주며 내게 얼른 낚시가방을 가져오란다. 내 또래의 사낸데 싹싹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 난 치열하게 자리다툼이 벌어지는 초행의 원남지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원남지는 주로 장대에서 조황이 좋았고 그때도 대부분이 4칸 대의 장대를 여러대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난 은성의 수파32 두 대와 원다의 테크노스붕어 24, 28대 총 4대가 전부였다. 거의 모든사람들이 애용하던 오케이받침틀도 없었고 파라솔도 없는지라 장비는 낚시가방과 의자 그리고 살림망과 떡밥이 든 보조가방이 전부였다. 따뜻한 파카도 없어 가을옷을 서너겹 껴입고 낚시를 다녔는데 그때 내 상황이 경제적으로 매우 좋지않았었다.
IMF로 하던 일을 중단하고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둘째아이가 태어난지라 아이 우유값도 걱정하던 시절이었다. 힘들었던 그때 현실을 도피하고 고통을 잊고자 더욱 미친듯이 낚시를 다녔는데, 그 당시 최고의 낚시대이던 손잡이가 각진 두 대의 노랭이 수파와 원다 테크노스붕어를 무척이나 아꼈었다. 지금도 하룻밤 낚시에 무거운 좌대에 텐트며 온갖 장비를 서너번에 옮기고 자리잡다보면 그때 간편하게 낚시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운 좋게 자리를 잡자 네 대의 낚시대를 모조리 펼치고 그 개노므 낚시가게 주인이 원남지에 특효라고 선전했던 두 가지 떡밥을 섞어 밑밥질을 하고 낚시모드로 들어가는데 해가 기울자 웬 아줌마가 나타나 온 저수지를 돌며 돈을 걷어갔다. 독사 아줌마라 불리는 낚시터 관리자였다.
독사 아줌마는 모든 사람에게서 돈을 받아갔는데 십여일이 넘게 장박 중이니 좀 봐달라는 사람이나 꽝쳤는데 또 오느냐며 불평하는 꾼들에게서도 얄짤없이 입어료를 받아갔다.
원남지가 유료터인 줄 몰랐던 내게 양어장도 아닌 일반 저수지에서 입어료를 낸다는게 좀 황당했다. 청소비 정도의 거부감은 없지만, 자연주의자로 철저하게 노지만을 다니던 나로서는 돈을 내고 낚시한다는 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자연과 멀어진다 여겼기 때문이다.
해가 기울고 어둑어둑 해지는데 근처 자리에 꾼의 교체가 있고 한 선수가 등장했다.
대단한놈이었다. 십 단 짜리 오케이받침틀 두 개를 소리내어 망치로 박더니 스무 대의 4칸과 5칸대 짱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대부분 3칸에서 많아야 서너 대의 4칸을 펴고 있었고 막 캐미를 꺾기 직전의 황금시간이라 모두가 낚시에 몰입하려는데, 낮에 어디어디로 빨리 오라며 일행을 부르던 통화소리가 요란하더니 결국 엄청난 놈이 나타난 것이다. 그 대단한놈이 더욱 대단한 것은 쇙쇙거리며 허공을 제압하며 날아가는 스무 개의 커다란 봉돌 때문이었다. 봉돌 한개가 10그람 쯤 되는 모양이다.
풍덩!
커다란 떡밥까지 대동한 봉돌이 물에 떨어질 때마다 릴을 투척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는 스무 번이 아니라 계속되었다. 아마 집어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낚싯대 스무대에 다섯번씩만 밑밥을 넣어도 100번의 풍덩소리와 100번의 파도가 몰아칠 것이다. 더 기가막힌 것은 봉돌이 절대 한 번 떨어진 곳에 다시 떨어지지 못하는 어설픈 스윙이라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불평의 신음소리가 점점 번져가자 그 대단한놈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밑밥질을 멈추었다. 하지만 스무 대의 낚싯대에 떡밥을 갈아대니 그 꼴이 가관이 아니었다.
그렇게 날이 저물고 아홉시쯤 되었을까?
후아아아앙-!!
어둠을 찢고 맹렬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둑을 울렸다. 스무 대의 대단한놈이 휘두르는 소리와는 비교가 않되는 엄청나게 위압적인 소리였다.
이어 찢어질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낚시터를 울렸다.
-이 시발! 몰상식하게 바로 붙어서 짱대를 휘두르면 어쩌자는 거야! 그거 몇칸이야? 여섯칸은 되것네!
악을 쓰는 사람은 그 대단한 놈이었다. 이어 여섯칸 짱대 주인의 고함이 뒤따랐다.
-니가 먼저 휘둘렀잖아! 누군 짱대가 없어 못하는줄 알아!
이어 다시 후아앙 하고 그 위압적인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이 시발이!
대단한놈이 더욱 화가 났는지 악을썼다. 짱대 주인도 지지 않았다.
-시발? 이 시발넘이 어따대고 악다구야! 신성한 낚시 망치...
그의 말은 온전히 끝나지 못했다. 대단한놈이 그에게 엉겨붙은 모양인지 투닥거리며 요란하게 구르는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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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는 이어 올리겠습니다. 글쓰기는 너무 어려워요.
불쾌했던 낚시가게와 원남지 대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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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까지 등장 흥미진진 하군요 다음편이
기대 되네요
아마추어는 아니신 듯..
기다리겠습니다.
다음편이 빨리 보고 싶어 집니다
87년 부터 매주 원남지만 드나든 나에게도 악착같이 돈을 받았었는데
가끔은 얼굴 확인 하곤 사과 한개 슬며시 쥐어주면서 고기도 안 나오는데 또 왔냐며 그냥 가기도...
지금 뭐 하시나 건강 하실런지
암튼 님의 글 솜씨 덕에 추억에 젖어봅니다.
한번 걸레는 양원한 걸레, 될성부런 떡잎... 왜 떠 오르는지 모르겠네
후편이 기대됨니다/^^
입질도 없고 이거 후속편이나 보면서 시름 좀 달랠까했더니...
요즘 월척에 고소미가 유행인가본데 고소 가능한지 로펌에 문의해봐야겠네요..
후속빙자낚시글게재혐의...
자자, 얼른 올려줘유ㅠㅠ
나도 이가 갈립니다.
저도 2002년에 아는 사람 따라 원남지 에서 낚시 시작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거의 장대만 피길래 처음 산 낚시대가 29 37 40 쌩초짜가말이죠(열번던져야 한번들어간다는)
지금은 28 30 32가 제일 편하네요 다대편성은 안하는편이라 최고많이핀게 섶다리확장형10단피고 4대가전부 거의떡밥위주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