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

· 균형있는 게시판 사용을 위해 1일 1회로 게시물 건수를 제한합니다.

'붉은섬' 저수지를 아시나요?

혹시 붉은섬 저수지 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지하철 4호선 중앙역 뒷편 해안가와 만나기전 큰 저수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붉은섬 저수지 라고 불렀고 지금은 매립 되어 신도시가 들어 섰지만 그곳을 지나쳤던 협객 열차의 레일과 길거리 도로명을 나타내는 이정표에 붉은섬 길 이라는 도로명이 있는 걸루 보아 그 저수지 이름은 붉은섬 이 맞는듯 합니다~ 안산에서 산지 26년쯤 됩니다 아무것도 볼껏 없던 안산에 공단이 조성 되고 건물이 들어서고 지하철이 생기고~ 그러면서 저수지는 매립되어 그 자취를 이제는 찾을수가 없습니다 단지 그곳 근처 부두를 '사리' 부두라고 불리었고 협객 열차는 사리역을 통과 했으면 아버지 봉급날이면 아버지 어머니 손을 잡고 사리 부두에 나가 새우,오징어 튀김에 맛있는 회도 사주시던 기억이 나네요~ 붉은섬 저수지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가곤 있지만 수면적이 굉장이 넓은 저수지중 하나였습니다 논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논 밭 사이에 중대형 저수지가 하나 자리 하고 있었고 들어가는 도로는 비록 비포장이었지만 도로 폭이 넓고 많은 사람의 왕래로 비가 와도 질퍽 거리지만 큰 지장 없이 다닐수 있는 곳 이었습니다. 저수지 입구에 작은 매점? 같은 허름한 집이 있어 떡밥도 구매 할수 있었고 (백곰표 흰떡밥 : 울트라 킹왕짱 좋음 >.<)그집에서 겸업으로 매운탕도 하고 그랬습니다 저수지는 어디를 앉던 꼬기들이 방갑다고 인사하로 올라오기 바뻣구 아버지가 제 손위 쥐어준 글라스 로드대 한칸반도 채 안되는 바닥 채비 외봉바늘 하나에 떡밥을 코딱지 비비듯 손으로 빙빙 돌려 콩보다 조금 작게 해서 던저도 찌가 쑥쑥 올라오는 정도로 어자원이 풍부했던 곳입니다. 주말을 손 꼽아 기다리며 아버지와 함께 즐겁게 출조를 했던 곳이지요 로드대에서 방울 바람이 불기 시작한게 이때즘 같군요 (잘은 모르네요 ^~^) '방울'이라 불리었던 릴원줄 감아노은 원줄통에 끝에 바늘을 달고 미끼를 끼고 솔채를 이용 전방으로 기합소리와 함께 투척을 하여 뒷줄 견제로 팽팽 하게 한후 방울이 달리 뒷꽃이 같은 곳에 줄을 팽팽하게 해서 걸어노으면(릴처럼) 고기가 물면 사정없이 방울이 딸랑 딸랑 거리면 꼬기가 물었어~~!! 하고 신호를 보내 줄다리기 하듯 줄을 땅겨 고기를 잡곤 했답니다 보통 5~10 개 정도 투척을 하였고 미끼로는 찐감자를 아버지 께서 애용하셨으며 감자 넉넉이 가저가서 반은 먹고 반은 깍두기 썰기 하여 미끼로 이용하고~ 옆에서 대낚하다 방울이 사정없이 울리면 열라 빠르게 이동해서 줄 땡기고~ 감자를 이용하다 보니 보통이 월척급 이상이었고 진짜 힘좀 쓰는 잉어 놈들이 줄줄줄 올라와주던 좋은 저수지 였조 (방울을 하실때는 항상 목장갑을 끼시고 원줄을 당기셨조 안그러면 손 비어서 피난다고) 저수지 입구 반대편으로 가면 그곳에도 허름한 매점이 하나 있었으며 유독 그 주변에 조사님들이 많이 앉으셔서 낚시를 많이 하셨습니다 (매점앞 포인트 형성이라 해야하나?) 아버지 께서는 오늘 괴물 한번 잡아보시겠다고 채비를 꾸리셨고 매점에서 원자탄도 하나 구매 하셔서 (원자탄 아시조? 종이봉투에 담겨 있던 들깻묵 가루 떡밥 ) 긴 낚시대 3대를 다른 조사님들 사이에 앉으셔서 편성 하셨습니다 그 매점에서 볼때 전방 우측으로 물속에서 바위가 솟아오른 곳이 있었고 그곳에는 정말 어마 어마 하게 큰 몬가가 있다고 조사님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 했습니다 낚시대를 뺐겼다~ 줄이 터졌다~ 바늘이 뻐드러졌다 등등 바위 주변에 서식하는 알수 없는 물속 괴물을 걸어내기 위해서 많은 조사님들이 항시 그 매점앞 포인트에 진을 치고 계셨습니다. 원자탄을 진짜 원자탄만하게 바늘에 다시고 그 당시 그 무거웠던 글라스 대를 긴놈으로 3대나 피신 아버지 아버지 옆에서 짧은대 하나를 들고 마냥 잔챙이들과 준월척을 콩알 낚시로 걸고 있었을때 입니다 아버지의 기합소리 '엿차~~~' 쉬익 하면서 글라스 대가 하늘로 치솟습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릅니다 대가 위로 치솟아야 하는데 '어~~ 어~~ ' 소리를 내시면서 대를 세우시지 못하시는 거였습니다. 짧은 찰나 였지만 핑~~ 소리 와 함께 줄이 터져 나갔고 허~~ 하는 탄식 소리와 함께 알수 없는 정체감에 또 다시 놀라고 저걸 다음에는 잡아내고야 말겠다는 아버지의 소리와 함께 흥분에 들뜬 아빠 저게 모야?? 하는 제 목소리와 주변 조사님들의 눈빛만 남았조~ 진짜 물속에 몬가가 있다는걸 확인하는 순간이었조~~ 그뒤로 종종 그 포인트를 찾았지만 중형급 잉어들만 나왔을뿐 별다른 조과는 보이지 않앗습니다.. 계절이 흘러 늦가을인지 초겨울인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저녁 9시 뉴스(kbs 1 9번채널 )를 볼때 였습니다 (아버지 보시냐고 따라본것~) 뉴스에서 안산 붉은섬 저수지에서 초대형 잉어가 잡혔다고 뉴스에 나왔습니다 욕조통을 가득 매우는 정말 빅 사이즈에 어른 주먹 하나가 통째로 들락날락 할정도 정말 큰놈 이엇습니다 (이 뉴스는 사실입니다 하늘에 맹세코 9시 뉴스에서 제가 봤습니다) 그 뉴스를 보신 아버지가 '햐 ~!!! 저넘 이었구나 저렇게 큰놈이 있었구나 저넘이 저번에 줄 짤라간놈이야 저넘이~!' 자신이 못잡은거에 대한 아쉬움을 한참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지금 그 자리는 아파트와 상가 도로가 잘 정리된 신도시로 남았지만 그곳을 지날 때면 종종 원자탄을 달고 그 무거운 낚시대를 휘두르시던 아버지와 짧은대로 콩알 낚시를 하던 제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나네요~

다시는 돌아갈 수없는 그 시절, 그 정경을 이처럼 소상하게 기억하시고
재미있는 옛날 얘기처럼 도란도란 들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당시가 사람들도 순박하고 붕어도 착하고......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제가 20여년전 월급타서 제손으로 낚시대를 사서 들뜬 마음에 처음으로 낚시한 곳이 붉은섬입니다
설레였던 기억이 아른거리네요..
낚시대 핀지 30분도 안되 지렁이 미끼로 준척급 한마리 잡고 모기떼 성화에 낚시대를 접으니 낚시터
주인아주머니가 그렇게 금방가냐고.....입어료 깍아주던 기억도 납니다...
붉은섬 옆에 수로.....지금은 상가지역으로 바뀌었는데.....잉어가 많이 잡혔던 곳이지요...

안산.....사네 안사네 하면서 사는게 안산이랍니다...
언제 뵙고 소주한잔 나누고 싶군요...
그 근처에 붉은산 수로라고 초보조사 교육장도 있었지요. 추억을 되새겨주어 감사합니다.
안산내려온게 95년이니 한참되었네요...사리포구 사람북적이구 공터에선 석화구이가 유행할땐데...
아..종이 봉투에 들은 원자탄~~
오랫만에 떠올려 봅니다.

어릴적 그라스 롯드 대의 추억이 생각나네요.
지금은 짧은 대인 2.4칸도 그때는 도저히 엄두가 안날정도로
무거웠으니..

어릴적 유년기가 그리운건지..
엄청난 자원의 순진한 붕어가 그리운건지...
암튼 ..잠시 추억에 젖어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추억가지고 계시네요 ..저도 아들낳으면 낚시 데리고 다니렵니다 ^^
붉은섬 저수지???

낚시춘추나 낚시지도에는 사리각지로 표시했던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열정조사님의 추억에 빠져들다보니 저도 옛생각이 납니다

45년전쯤 선친을 따라 안양까지가서 마이크로버스타고 지금의 고잔역 부근 버스종점에 내려서

지금의 화랑저수지에서 낚시하고 고잔역에서 협궤열차 타고 수원역까지

수원역에서 다시 기차타고 서울로 오던 생각이 나네요

그때는 협궤열차도 칙칙폭폭 석탄차였지요

기차를 기다리면서 철길에 서있을때 까마득히 보이는 저끝에 바다가 있다고 했었는데... ...


어릴때 생각했던 바다는 맑고 깨끗한 바다였는데

철들어서 회먹으로 놀러갔던 사리포구는 어릴때의 제꿈을 산산히 부셔버렸지요

뻘밭이 펼쳐진 작고 지저분한 포구... ...

그러나 그마저도 없어지고 아파트 숲으로 바뀌였으니

모든것이다 아련한 옛 추억이 되었네요



..
저도 안산 한 1년 살았는데 님들께서는 저보다 연배가 한참 위시군요. 처음 이사 오던때 안산 중앙역 뒤편은 기억이 안나고 사실 차가 없어서 가볼 엄두도 안나고 전철타고 시화쪽으로 일보러 갔을때 정왕역부터 지금 아파트 촌이 되어있는 시화호까지 다 논이었었는데... 그런 옛날 일이 있었군요. 하긴 그때는 민물낚시를 안했으니...



2024 Mobile Wolch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