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釋迦牟尼)가 여러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이 가던 길옆에는 물빛 흐린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었고
마침 제철을 맞은 분홍빛 연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석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손을 들어 그 아름답고 향기로운 연꽃을 가리켰다.
모두들 의아해 했으나 오직 가섭(迦葉)만이 입가에 미소지으며 석가를 바라보았다.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도 저리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연꽃이
수행자가 추구해야 할 깨달음의 정수(精髓)가 아니겠는지요?
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한국 선종(禪宗)의 화두(話頭)의 하나로 깊이 연구되었고
마음이 통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지는 염화미소(拈花微笑)는
연꽃을 배경으로 우화(寓話) 되어 우리들 가슴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석가와 그의 제자들이 걷던 연 밭길을
만약 우리 낚시꾼들이 걷는다면 염화미소의 의미는 전혀 달라질지도 모른다.
굳이 꽃향기 가득한 연 밭이 아닐지라도
누군가가 손끝으로 줄기조차 온전치 못한 삭은 겨울 연줄기라도 가리켰을 때
미소 짓는 사람은 아마도 석가(釋迦) 앞의 가섭(迦葉)처럼 혼자가 아닌
그곳에 있는 모든 꾼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입을 모아 얘기 할 것이다.
'저곳에는 대물붕어가 살고 있지요.'
낚시꾼의 염화미소는 대물붕어의 비린내에서 비로소 피어난다.
몇 일 전부터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던 연 밭.
"형 나 어제 연화지(蓮花池)에서 월척 두수 했다우!
손맛도 손맛이지만 찌올림이 죽이던데. 붕어가 완전히 힘 탔는지,
몸통까지 쭉 밀어 올리는게!"
생색내는 것인지 약올리려는 것인지 지나가는 길에 집에 들러 툭 던지고
간 후배의 한마디가 몇 년째 잊고 살던 그 연 밭의 기억을 되돌려 놓았고
며칠간 이어진 포근한 날씨에 주말은 왜 그리 더디 오는지 기다리다 병이 날 지경이었다.
이 좋은 날씨에 나 일하는 동안 그 후배녀석,
동네 조무래기들 온통 끌고 가 큰 거 다 뽑아먹고
낚시터 쑥밭 만들어 놓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에,
한달 쯤 일 때려치우고 전문낚시꾼으로 전환해서 낚시터에서 살아 볼까 하는
망상(妄想)까지도 꿈꾸게 한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급기야 낚시가방을 열어 낚시대를 꺼내놓고 놓고
겨우내 깊은 수심(水深) 우려먹었던 콩알 채비를 거둬드리고 생 미끼 채비로 전환한다.
헌데 웬 심술인가!
시집갈 날 잡아 놓으니까 달거리 터지더라고 그 좋던 날씨가
토요일 아침이 되자 기온은 곤두박질하고 바람까지 불기 시작한다.
길 건너 우체국 앞에 걸린 태극기가 떨어져 나갈 듯 펄럭거린다.
추운거야 보온에 신경 쓰면 견딜 수 있다지만 강풍 속에서 연 줄기 사이를 노리고 긴 대를 친다는 것은
엘보우까지 맛이 간 상태라서 영 자신이 서지 않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러나 모처럼 출조에 우호적인 아내의 은혜(?)를 져버릴 수 없어
백배(百拜) 감사하고 자동차의 시동을 켠다.
그리고 정확히 십 오 분 후 물결 일렁이는 저수지 우안(右岸) 연 줄기 사이에
나는 대를 집어넣고 있었다.
생각보다 물빛은 맑았지만 연 줄기 사이로 밀생(密生)한 수초들이
강풍(强風)과 더불어 채비의 안착(安着)을 방해하고 있었다.
어렵게 지렁이 3마리를 꿴 3.2대의 세팅을 마친 후
조금 더 먼 곳 삭은 연 줄기 틈새를 노리고 3.6대의 무게, 강풍의 저항까지를
아픈 팔에 감내(堪耐)한 체 몇 번이고 대를 뿌려대며 슬쩍 훔쳐본 3.2대의 찌가
두어 마디쯤 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입질인지 바람의 영향 때문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시 한번 3.6대를 휘둘러 원하는 지점에 집어넣고 3.2간 대의 찌를 살펴보니
찌는 보이지 않고 낚시대 끝의 움직임이 물 속을 향해 쳐 박히고 있다.
아뿔싸!
대를 들어보지만 한참을 쏘고 나간 붕어는 연줄기 까지 감아버려 대를 세울 수가 없다.
뒤집어지는 모습은 제법 큰 씨알의 월척붕어임이 분명한데...
'워메, 얼마 만에 걸어본 월척인디,
저놈을 끄집어내서 카메라에 함 담아야 체면이 슬 것 같은디...!'
혀를 차며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서 붕어를 끌어 내 보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달려나온 것은 실처럼 늘어지는 연줄기가 남긴 섬유질 찌꺼기 뿐 이었다.
아! 첫 수부터 이 무슨 재변(災變)이란 말인가? 입맛이 썼다.
그러나 다시 투척한 3.2간 대에서 찌올림이 이어졌다.
강풍 속에서도 확실하게 구분되는 의연한 찌올림 이었다.
그리고 활달(豁達)한 여덟치 붕어가 올라왔다.
물 맑은 수초 밭 특유의 황금붕어, 머리 쪽 비늘이 조금 벗겨진 걸로 보아
산란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듯 싶었다.
가끔 입질은 보여주고 있었지만 낚시대가 받침대에서 자꾸 떨어질 만큼의
강한 북녘바람과 흔들리는 수면 때문에 붕어를 잡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후배인 y님은 금성지에 있었다.
이 호된 날씨 중에도 대물을 노리고 있는 그는 내노라하는 대물꾼임에 틀림없다.
그의 적극적인 낚시는 게으른 내게는 늘 경외(敬畏)의 대상이다.
호쾌한 너털웃음과 함께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가 정답다.
별반 조황(釣況)없이 시간을 보내던 그는 이곳의 입질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저수지 멋진 모습에 감탄을 하면서도 어느 사이에 한바퀴 돌아보는 전문가다운 세심함을 보인다.
바람은 낚시를 하기에는 너무 세어져 있었고 눈발까지 섞여 있었지만
낚시의 흔적이 거의 없어 옹색한 뚝 방 한 켠에 함께 온 그의 친구분과 y님은
대를 편다.
길 가던 인근 주민 한 분이 타고 가던 자전거를 저수지 둑에 세워두고 낚시 구경을 하던 중에
세워둔 자전거가 저수지로 박혀 버리는 해프닝까지 일어날 만큼 바람은 강했는데도...
한 시간쯤 상황을 살피던 y님은 미련 없이 대를 접고,
y님이 다음을 기약한 체 저수지를 떠나고 나서도
놓친 월척에의 미련 때문에 한참을 더 버티던 낚시에
몇 수의 붕어가 더해지긴 했지만 더 이상 대를 펴고 앉아 있다는 건
아집(我執)에 불과할 뿐, 이미 꿈꾸던 낚시는 아니었다.
바람 때문에 자꾸만 받침대를 벗어나는 대를 거두어 드렸다.
아직 점심때도 체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강한 바람이,
나를 돌려세우기는 했지만 삭은 연줄기 밑에는 분명 대물붕어가 있었다.
여름 내내 온 수면을 덮어버린 연꽃이 키워낸 낚시꾼의 화두(話頭), 대물붕어는
황금빛 자태를 뽐내고 그를 키워준 연뿌리 밑을 배회하며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 찬바람이 우리의 살갗을 매섭게 할퀴고 지나가고 두꺼운 옷의 무게가
우리의 움직임을 둔하게 할지라도 이제 계절은 언 물을 풀리게 한다는 우수(雨水)를 지나서
온갖 생물을 겨울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경칩(驚蟄)으로 가고있다.
머지않아 바람이 자고 따듯한 봄의 기운이 낚시하는 우리의 등허리를 따뜻하게 감쌀 때쯤이면
먼 곳에 사는 그리운 조우들과도 정답게 앉아 그 대물붕어를 기다리며
꾼들 만의 따뜻한 염화미소(拈華微笑)를 피워 올리고 싶다.
무자년 벽두의 낚시일기를
어유당(魚有堂) 올림
붕어의 미소(微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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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건강하시고 즐겁고 행복한낚시 기원드립니다.
무척이나 기다리던 님의 추억.. 되세김하며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너무 젬나게 잘 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요 행복하시고요..ㅎㅎ
돌이켜 보면 우리에게도 행복일 듯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출하소서,,,,
건강 챙기시면서
안출하시고 즐낚하시길 기원합니다^*^
물속을 뻔히 들여다보며 낚시를 한다면
붕어가 바늘에걸려 바둥거리는 저항감에 이토록 중독될수있을까
아마도 보이지않는 불확실이어서 더 본능을 자극하지않나 싶습니다
낚싯꾼은 들여다보이지않는 물속에서 끊임없이 물음표를 건져내려합니다
오래 즐기려면 건강해야죠
하루출조를 늦추지못하는게 낚싯꾼이지만 건강생각하셔서
병원검진 꼭 받으시고 보온장비 잘 활용하셔서 건강한 출조되시길 빕니다
늘 좋은추억을 되새기며 새로운 활력을 찾으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깊고 보기 좋습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낚시꾼은 고기를 그리는것 아닐까요
바람불면 바람부는대로 오늘같은날도 고기가 입질을 할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때가 있죠...
자기만족을 위해 낚시를 다닌다면 정답이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리고요 늦가을 추위에 출조길 건강유의하십시요.
케미히야 흔적남기고갑니다..
글 잘읽고 연꽃 사진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