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정원 7.
한 장의 사진처럼 사각박스안에 놓인 그녀의 모습이 가슴에 선명히 투영되었다.
먼훗날 내가 비밀의 정원을 떠올리거나 그녀를 다시 떠올릴때면
이 모습이 한장의 사진처럼 떠오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은밀한 곳으로의 초대장일 거라는 나는 알고 있다.
그녀는 지금 손을 들어 내게 손짓하고 있지 않지만
내게 와달라는 신호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알면서도 그걸 부정하고 있었다.
초대임을 알고도 모른체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감정과 이성사이의 싸움에서 결코 감정이 이길수 없음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길은 너무도 길고 먼거리였고,
방문손잡이를 돌리고 방문을 열어야 하는
그 숨막히는 고뇌에서 결국 패배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또 다시 못난 내자신에 대한 비참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것과
나를 동앗줄처럼 칭칭 옳아맨 굴레만을 뼈져리게 느끼게 될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차갑게 되찾은 이성을 뜨거워진 감정이 서서히 덮어나가기 시작했다.
실행할수 없는 욕정이기에 더 뜨겁게 불타올랐다.
쪽창의 불이 꺼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가 마루로 나왔다.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파란 케미하나가 어둠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묘한 상징처럼 느껴졌다.
나는 빨갛게 빛나는 강한 담뱃 불빛을 내고 있어고,
그녀는 조용한 초록의 케미 불빛을 내고 있었다.
그것은 내 뜨거운 욕정과 그녀의 순수함을 대신 대변하고 있는듯 했다.
나는 간절히 그 케미불빛이 나를 향해 다가와 주기를,
좀전처럼 내옆에 다가와 앉아주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 순간만큼은 나를 둘러싼 굴레를 끊어버릴수 있을거 같았다.
하지만 케미는 어둠을 벗어나지 않고 그렇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내가 다가와 하늘까지 끝까지 들어올려주길 바라고 있는 것처럼.....
그녀가 내게 신호라도 하는듯 자꾸만 케미를 놈이 올리던 그 속도로
들어 올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멋번이나 강한 챔질을 했는지 헤아릴수도 없어다.
그리고 강한 챔질 끝에 전해질 그 짜릿한 역동의 순간들을 머리속에
수도없이 그려보고 있었다.
'용기를 내야 한다'
'세상 어떤 끔찍한 일이 뒤에 버티고 있더라도 이순간만은 용기를 내어
힘찬 챔질을 들어가야 한다'
'주저하며, 망설이며 흘려버린 그 시간들이 원망스럽지도 않은가?'
'오늘 밤만은 내게와준 모든 것들을 결코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 않았는가?'
나는 못난 내자신을 끊임없이 질책하고 있었다.
한없는 나약함과 두려움으로 점철된 삶에 대한 자책과
칡덩쿨처럼 칭칭 감고있는 도덕적 굴례를 끈내 끊어버리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더이상은 내안의 모든 감정을 절제시키고,
아무런 감정이 없는듯 그렇게 살아가는 위선을 간절히 벗어버리고 싶었다.
모든 감정중에 분노란 놈은 참으로 놀라운 놈이다.
결코 깨지 못한는 이성의 굴레조차 깨어버릴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조금전 30cm의 거리도 극복하지 못했던 나에게
그 먼 거리를 극복할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오기와 반항의 마음이 동시에 일었다.
내가 절대로 할수 없을거 같은 그 일,
나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그 일이,
왜 나에게만 금지되어 있는 것인가에 대한 오기와 반항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와서 나에게 무슨 보상이 있었는지?
어떤 삶의 성취가 있었는지?
끝없는 희생만을 강요하며 아무런 보상도 없는 이 굴레를 더이상
용납할수가 없었다.
나는 그 먼 거리를 극복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내가 그쪽으로 건너가겠다는 의사표명을 하고 싶었다.
파라솔 밑을 벗어나 가로등 불빛에 모습을 노출 시켰다.
그렇게 반듯이 서서 뚫어질듯 그녀가 숨어있는 어둠속을 바라보았다.
이런 내 모습이 부담스럽다면 그녀는 방안으로 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어둠속에 그대로 있었다.
그녀를 향해 극복하기 힘들거 같은 멀고먼 길을 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나는 길을 걸어 그녀에게 다가갈 것이고,
만약 그녀가 나의 접근을 허락치 않는다면 스스로 방안으로 피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를 향한 첫발거름은 의외로 쉽게 떨어졌다.
하지만, 그 첫발을 떼자마자
대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바로 파라솔 그늘 밑으로 숨어들었다.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리고 살집좋은 아주머니의 실루엣이 보였다.
술을 마신탓인지 조금 흐트러진 걸음으로 마당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마당 가운데 선채 조금전 그녀가 들어간 방문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미동도 없이 그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선 어떤 비장함마져 느껴졌다.
잠시후 아주머니의 실루엣이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몸을 돌려 반대쪽 장독대쪽으로 다가간 아주머니가 장독대 축대위로 무너져 내렸다.
가끔씩 그녀의 입을 비어져 나온 오열이 들려왔다.
폐부깊은 곳에서 솟아오른 너무나 서러운 오열이 틀어막은 입을 비집고 자꾸만 새어나왔다.
그 오열속에 묻어 있는 슬픔과 한이 너무 커서 내 가슴마져 먹먹해졌다.
무엇일까?
무엇이 어느 시골을 걷든 쉬이 볼수 있을거 같은 이 촌 아낙에게
이리 큰 슬픔을 줄수 있을까?
무엇이 그녀에게 폐부를 칼로 도려내는 아픔과 눈물로도 막아낼수 없는
이리 큰 한을 심어 줄수 있을까?
늙은 아낙의 오열은 한참동안 지속되었다.
스스로 울음을 멈추려 몇 번이고 애를 쓰는 것이 보였지만,
그럴때면 어김없이 더큰 한으로 밀려 올라오는 슬픔이 다시 터져 나오곤 했다.
이 늙은 아낙은 지금 그녀가 잠들었을거라구 생각하고 있으리라.
그녀에게 울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장독대 귀퉁이에 숨어 입을 틀어막고 있으리라.
울음마져 마음껏 토해내지 못하고 멍든 가슴만 때리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이 시골아낙의 울음이 그녀와 연계되어 있음을 직감할수 있었다.
아마 그녀도 이 오열을 듣지 않으려 이불을 뒤집어 쓴채
함께 오열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순간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일까?
얼마나 견디기 힘든 아픔일까?
아낙의 오열이 얼마나 큰 비수로 그녀의 가슴을 난도질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녀가 한없이 가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의 오열이 너무 깊어서였을까?
그녀에 대한 연민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업실패의 고통으로 눈물짓던 십수년전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다짐한 후
막혔던 눈물샘이 다시 트여버려서 일까?
자꾸만, 자꾸만 시야가 흐려왔다.
쉬익’.
나는 입질도 없는 낚시대를 힘껏 챔질했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때문이었으리라.
챔질소리에 놀란 탓인지 아주머니가 울음을 멈췄다.
‘쉬익’
또 한대의 낚시대를 힘껏 챔질했다.
나의 존재를 느낀 아주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정신을 수습하더니
마당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제어할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낚시대 손잡이를 잡은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눈은 치켜 떠지고 어금니가 앙당물어 졌다.
마치 손잡이를 부셔버릴듯 손아귀에 믿기힘든 힘이 가해졌다.
너무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 안의 분노가 일시에 터져 나왔다.
사업실패후 나를 비웃고 조롱하던 사람들의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속을 스치고 지난갔다.
'쉬익'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과 그 싸늘한 미소들
'쉬익'
나를 끊임없이 상처입히던 사람들의 잔인한 얼굴들
'쉬익'
그렇게 지나버린 청춘과 독기를 품고 살아왔던 세월과
'쉬익'
나를 포기하고 살아 왔던 그 질곡의 세월들,
'쉬익, 쉬익, 쉬익,....'
십수년동안 내 가슴에 고스란히 쌓여 있던 울분과 분노들이 그렇게 뿜어져 나왔다.
더 이상 챔질할 낚시대가 없을때 겨우 흐려지던 시야가 다시 또렷해졌다.
나는 어금이를 앙당물고 눈을 치켜뜬채 한참을동안 치솟아 오르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다 잊고, 다 용서했다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이렇듯 가슴속에
고스란이 남아 있음을 나는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
이리 큰 분노와 증오가 한뼘 가슴속에 가득차 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응어리질데로 응어리져진채 이리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비밀의 정원과 그곳에서 만난 두명의 여인이
내 가슴속에 닫아 두었던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열어 버린 것이었다.
새벽예배를 알리는 조용한 교회의 종소리가 들으며 잠에서 깨었다.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잠시후 아주머니와 그녀가 마당으로 나왔다.
그녀는 교회를 가는 아주머니를 대문까지 배웅하고는 돌아섰다.
방으루 돌아가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내쪽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웬일인가 싶어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차밖으로 나와 그녀와 마주친 후에도 그녀는 그렇게 한참동안
물끄러미 내쪽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나는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간 후에야 비로소 그 의미가 무엇인지 가름이 되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깨어 있음과 혼자 있음을 나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제밤의 초대장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가슴이 뛰지도 몸이 뜨거워 지지도 않았다.
아주머니의 오열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낀탓인지 밤새 치열했던 내면의 싸움들로
지쳐버린 것인지는 정확히 알수 없엇지만,
나의 의식은 새벽 여명처럼 차갑고 맑게 빛나고 있었다.
엉클어진 채비를 정리하고 짐들을 다 꾸렸을때 푸르스름한 새벽 여명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짐들을 차에 싣고 살림망을 들어올려 붕어를 방생하려는 순간,
어젯밤 붕어를 바라보던 슬픔에 찬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집옆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살림망을 들고 낮은 담을 넘어 마당으로 올라갔다.
어쩌면 큰일날 상황이었지만 내집 마당에 들어서듯 자연스럽고
어색하지가 않았다.
수돗가에 늘 봐오던 빨간 고무대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에 어젯밤 낚았던 붕어들을 쏫아 넣었다.
잠시 혼란스러워 하던 붕어들이 안정을 찾고 멋진모습으로 자리들을 잡는다.
놈의 위용은 대단했다.
30중반의 월척들이 마치 새끼붕어처럼 여겨졌다.
그녀가 놈의 생명을 걱정하지 않았음 하는 바램이었다.
그녀의 손으로 놈에게 다시 활기찬 생명과 자유를 되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방문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는 깨어있을 것이다.
어쩌면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정도의 소란이면 놀라 문을 열어볼만도 한데 그녀는 내가 왔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문고리에 시선을 고정한채 그렇게 물끄럼히 서서 내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만약,
어제 놈이 그렇게 오니 않았다면 나는 그녀의 몸에 손을 댈수 있었을까?
어제 아낙이 들어 올지 않았다면 나는 이 담을 넘을수 있었을까?
바로 지금 내가 저 문고리를 돌릴수 있을까?
한줄 웃음이 핏하고 입에서 터져 나왔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으리라!
그것이 바로 못난 나인 것이다.
입가에 자꾸만 이유를 알수없는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나는 그날 비밀의 정원을 빠져 나오며,
긴 고통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긴 시간동안 낯선 곳을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탕아처럼 모든 것이 아련했다.
8부로 이어집니다.
비밀의 정원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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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6
다음편 너무 기다려 지내요
빨리요~~8부 잘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구요..추천 날리고 8부서 기다립니다.
숨막히게 이야기와 8부로 이어지는 긴장감을 가지고 다음을 기다리겠습니다.
오늘도 즐감에 감사를 드립니다. 꾸벅!
가다려 짐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8부 기다립니다.
재미있게말입니다
우리월님들에영화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아들을 생각하면 안됬지만 젊은것이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면 새로운 길을 가라고 이제 놓아줘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아닐른지..
또 일주일을 기다려야한다는 말인가요? ㅎㅎㅎ
긴장감이 최곱니다..ㅎㅎ
1부 2부 3부 말고 상 하로 합시다
죽겠습니다
일을 못하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건강하세요
최고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