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상각치우의 출현 -
일본으로 다시 건너온 비로는 스승이 메일로 알려준 록뽄기 6정목 근처의 쓰쓰미 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서 배달철공소 라고 써 있는 간판을 보자 한차례 심호흡을 한 후,
안으로 들어섰다
“저기 실례합니다. 배갑철 사장님을 찾아 왔습니다”
철공소 안은 사람이 안보이고 쥐죽은 듯 고요했는데 잠시 후,
안의 쪽문에서 70은 넘어 보이는 한 초로의 노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내가 배갑철인데 어떻게 오셨소?”
“네. 실례하겠습니다. 현도진 스승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이미 말씀이 다 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젊은이의 이름은”
“신비로 라고 합니다”
“틀림없군. 그래. 스승님께선 잘 계시는가?”
“네. 옥체 강녕히 잘 계십니다”
“허헛...궁상각치우만으로도 모자라서 자넬 또 제자 삼았나보군. 총기가 넘쳐 보이는 젊은이로다”
배갑철 사장의 야릇한 말에 비로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자 배사장이 싱긋 웃으며
비로에게 의자를 권하고 잠시만 기다리라 말하더니 쪽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나왔는데 손엔 잔뜩 뭔가가 들려있었는데 그것은 비로가 쓰는 표창이었다.
“어젯밤 새워 급히 만드느라고 만들긴 했는데...그럭저럭 쓸만할걸세”
“아,,고맙습니다. 제가 쓰던 표창과 감이 똑같습니다”
“다행일세. 도합 33개네 부족하진 않겠는가?”
“충분합니다. 그런데 돈은 얼마를 드리면....”
“돈은 이미 받았네. 염려 말고 뜻 한 바를 이루고 무사히 돌아가길 바라겠네”
표창을 가방에 넣고 철물점을 나온 비로는 안사장을 만나기 위해 파라다이스 호텔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안사장이 알려준 1214호실로 들어가자 안사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비로를 맞아주었다.
“비로군. 이거 심각하게 되었네”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내셨습니까?”
“아직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동경을 잡고 있는 조직 중에 하나인 다케시타조 야쿠자가 연관이 된 것 같네”
“야쿠자가....말입니까?”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안사장에게 비로가 재촉하 듯 말을 이었다.
“아니. 야쿠자가 이 일과 무슨 연관이.........”
“나도 그게 이상해서 각 방면으로 채널을 돌리며 알아보았지만 지금으로선 다케시타도
서책을 찾으려는 건 분명하고 다케시타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하는 일이라면
일이 더욱 복잡해진다는 것 뿐일세”
“으음...”
묵직한 비음을 토하는 비로를 보며 안사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다케시타는 무시 못할 거물 야쿠자지만 어떻게 이 일과 연관되어 있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없네
분명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서책을 찾다가 소년이 걸려든게지”
“누군가가 사주를 했다면......”
“서책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가 또 있다는 증거겠지”
“소년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요”
“다케시타 회사의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는 것 같네”
“알겠습니다. 안사장님은 저에게 다케시타의 회사 약도를 적어주고 그만 이 일에서 손을 떼십시오”
“무슨 말인가. 소년이 저렇게 된 데는 내 책임도 있는거네.
나도 자네를 도울테니 빠지라는 말은 하지 말도록”
“하지만 상대는 거대조직의 야쿠자라는데 잘못되기라도 하면....?
“염려 말게. 나도 나름대로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세. 걱정말고 함께 움직이자고”
안사장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에 들어간 비로는 소년이 겪고 있을 고초를 생각하자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하는 기운이 새어나와 눈가가 뜨거워졌다
미치꼬는 간 밤에 맥주를 너무 마신 탓에 소변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벽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2시가 되는 시각이었다. 목이 마른 미치꼬는 방을 나서 아래층으로 가려는데
다케시타의 목소리가 들리자 발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곤도. 그 꼬마는 밥은 먹고 있는가?”
“전혀 먹고 있지 않습니다 오야붕”
“그 꼬마놈이 그대로 뒈지기로 작정했나”
“간간히 물과 음료수와 빵은 먹고 있습니다만”
“그래? 조센징들이 독하다는 건 알지만 그런 꼬마 놈이 그런 독기가 있을 줄이야”
“여하튼 이번에 슌스케의 공이 지대하니 상이라도 내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오야붕”
“그래. 그래야겠지...슌스케가 아니었으면 그 서책을 고스란히 조센징들에게
빼앗길뻔 했으니까 으하하핫”
다케시타와 곤도가 주고받는 말을 들은 미치꼬는 거대한 햄머로 머리를 강타당한 듯한 충격을 받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간신히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머리를 쉴 새 없이 흔들며 소리로 나오지 않는 말을 되뇌어 보았다.
‘기봉 오빠가 아빠한테 잡혔구나....잡혔구나......’
갑자기 정신이 든 미치꼬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생각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자 조용히 집을 나서 밖으로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고 슌스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초조하게 슌스케가 오기를 기다리던 미치꼬는 공원 입구에
슌스케의 차가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슌스케, 기봉 오빤 지금 어디있어?”
“........”
“슌스케, 말해줘 부탁이야”
“말 할 수 없습니다 아가씨”
“아빠가 잡아놓고 있다는 거 알아. 부탁이야 마지막 부탁이야 슌스케, 말해줘”
“전 모릅니다 아가씨”
미치꼬의 눈가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고 마침 공원의 숲 저편으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바라보던
슌스케는 눈이 부신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눈물을 흘리는 미치꼬를 바라보자 순스케는 이를 악물었다.
“슌스케, 이번 부탁만 들어주면 뭐든지 해줄게 슌스케가 해달라는 건 다 해줄게”
“아가씨......그 조센징 꼬마는 도둑놈 이었습니다. 여기 일본까지 원정와서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회사에 몰래 침입해서 국보급 보물을 훔친 도둑놈 이었단 말입니다”
“기봉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오빠는........
슌스케도 알잖아. 공원에서 양아치 세 놈에게 강/간당할 뻔한 나를 구해준 은인이야.
그 때 내가 강/간당했다면 아빠가 슌스케를 어찌 했을 것 같아.
아마 슌스켄 불구라도 되었을거야. 생각해보면 슌스케도 기봉 오빠가 은인이 되는 셈이야”
“아가씨, 난..........”
“슌스케, 이번만 도와줘. 슌스케는 내가 엄마를 잃은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방황하지 않도록
항상 나를 보살펴줬지. 난 그런 슌스케를 오빠처럼 생각했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
그래서 난 양친이 다 계신 친구들한테도 기죽지 않고 지낼 수 있었어.
슌스케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난 언제나 당당하게 행동 했던 거야”
미치꼬가 격하게 눈물을 흘리며 슌스케의 팔에 매달리며 애원을 하자 슌스케는 잇새로 짧은
비음을 토해내며 이를 악물었다. 태양이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며 불타고 있었고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공원의 비둘기들도 이른 아침부터 먹이를 찾으려고 스산한 날개짓으로 연신 허공을 때리고 있었다.
“이봐, 곤도!”
“넷, 오야붕”
“그 꼬마 놈은 기력 좀 찾았나”
“오늘 아침부터 밥을 먹는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좋아, 내일은 꼬마놈의 일행으로부터 빨간 서책을 돌려받는다 .
부하들을 정예급으로 20명 정도 쓰죠 공원 숲 속에 잠복시켜라”
“알겠습니다. 오야붕”
이때, 곤도의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는 곤도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며
곤도의 목소리가 면돗날처럼 날카롭게 찢어지며 실내를 진동시켰다.
“뭐얏!, 뭐라고? 이런.....”
전화를 끊고 다케시타를 바라보는 곤도의 얼굴빛이 검붉은 색을 띄었다.
“저기....오야붕!”
“무슨 일이야”
“그 꼬마놈이 탈출했다고 합니다만”
다케시타가 눈을 뜨며 멀뚱히 곤도에게 시선을 주자 곤도가 재차 말했다.
“복면을 한 웬 놈이 나타나서 지하실을 지키고 있던 우리 애들 두 명을 각목으로 제압하고
꼬마를 데리고 나가는 모습이 감시 카메라에 찍혀있다고 합니다.”
신조형사는 노무라 수사반장의 부름을 받고 지하 사격장을 나오면서 손목의 시계를 보았다.
밤 9시가 막 넘어선 시간이었다.
“반장님, 아직 퇴근하시지 않았군요.”
반장실로 들어서며 신조가 다소 끌끌한 목소리로 말하자 의자에 푹 파묻혀서 눈을 감고
뭔가 생각에 골몰하던 노무라 반장이 눈을 뜨며 신조에게 자리를 권했다.
“조금 전......신타로 형사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는데 다케시타 조직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하더군”
“상대 조직끼리의 전면전이라도?”
“그건 아닌 것 같네. 조직의 다툼이 아니고 뭔가 개인적인 일로 부산을 떠는 것이라고 하는군”
“저번의 오오사카 건도 그렇고 다케시타가 좀 수상은 합니다.
오오쿠라 사장의 건물 근처를 배회한 것도 그렇고.......반장님.혹시,,,,”
노무라 반장이 머리를 끄덕이며 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야쿠자가 도둑질이나 한다는 게 이상했지만 다케시타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그렇다면.........”
신조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한마디 하려 할 때 노무라 반장의 핸드폰이 정적을 깨고
방 안을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
“어.신타로 형사? 응...그래.....알겠네. 계속 지켜보도록”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반장이 활기를 찾은 듯 신조에게 말했다.
“다케시타가 집에서 나와 회사 쪽으로 가고 있다는 신타로 형사의 전화네.
무척 다급한 표정들이라는군”
“지금 시간이 9시가 넘었는데 회사로 간다고요?”
“뭔가가 터졌다고 봐야겠지”
“반장님, 저도 신타로 형사를 도와주러 가겠습니다”
“좋아, 다케시타의 회사 주변을 보면 신타로의 차가 보일걸세. 오늘 밤 수고 좀 해주도록”
“네. 지금 가보겠습니다”
서둘러 나가려는 신조 형사의 뒤에 대고 노무라 반장이 한마디 한다.
“이봐, 신조! 일이 벌어지려는 조짐이 보이면 전화하도록”
“오야붕! 각목에 맞아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간 두 놈에게 물었지만
복면을 한 모습 이었다고.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합니다만”
“병/신같은 새/끼들.....”
“오야붕, 내일 계획은 어떻게....”
“계획이고 뭐고 다 수포로 돌아갔지 않아. 제길..”
이때 곤도의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는 곤도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돋는 듯한 표정이 보였다
“오야붕. 먹을 것을 사러 마트에 다녀오던 켄지 형제가 웬 복면인이 꼬마를 부축하고
승합차를 타고 떠나는 것을 목격하고 지금 뒤를 추적 중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 좋아 절대 놓치지 말고 미행하라고 하고 수시로 보고하라고 전해라”
“오야붕. 그런데....”
“뭐야”
“복면인의 옆쪽에서 꼬마를 부축해 준 여자가.....미치꼬 아가씨라고 합니다”
“뭐얏!”
다케시타가 이를 악물더니 곤도를 보며 칼칼한 목소리로 말했다.
“곤도. 슌스케를 찾아봐라”
핸드폰을 꺼낸 곤도가 다이얼을 누르고 한참을 기다려보지만 상대 쪽에선 받지 않는지
곤도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오야붕! 슌스케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곤도, 켄지에게 전화를 걸어라”
“켄지입니다 오야붕.”
“이봐 켄지. 지금 어디냐? 응..그래..좋아....녀석들의 차량이 멈추면 즉시 전화 할 것, 알아듣느냐?
좋아. 절대 놓치지 말라. 그래...알겠다”
통화를 끝낸 다케시타가 곤도를 보며 급하게 말했다.
“곤도. 복면인은 슌스케다. 부하들을 승합차에 태우고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출동할 수 있도록 지시해 둘 것”
“알겠습니다. 오야붕!”
소년을 태운 승합차가 국도로 접어들어 쉬지 않고 달린지 약 3시간 정도 흘렀을 때
소년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미치꼬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치꼬, 나를 빼내줘서 고마워. 허나 미치꼬의 아버지가 알면.....”
미치꼬가 소년을 안쓰럽게 바라보더니 눈물을 떨구고 고갤 흔들었다.
“아니야 오빠. 오빤 아무런 죄도 없는데 나 때문에.....”
“미치꼬 때문이 아니야. 그러니 자책감 갖지 않아도 돼”
“아빠가 한국 사람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몰랐어. 그래도 그렇지 나를 구해준 은인인데
잡아 가둬놓고 폭력을 행사하다니...전부 내탓이야”
“미치꼬, 그런게 아냐. 난.........”
여기까지 말한 소년이 가슴을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리자 미치꼬가 놀란 눈을 하며
소년을 살펴보며 말했다.
“오빠.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어?”
“괜찮아. 견딜만 해.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나면 다 나을거야”
“많이 아파보이는데...”
“괜찮데두.근데 미치꼬. 운전하는 저 분은?”
“슌스케야”
“아...”
밤공기를 가르며 한없이 달리던 승합차가 네온싸인이 하나씩 꺼져가는 어느 도시의
한적한 곳에 이르자 멈춰섰다.
슌스케가 돌아보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리십시오”
미치꼬와 소년이 승합차에서 내리자 밤깊은 바람이 소년과 미치꼬의 폐부를
깊이 찌르고 밤고양이처럼 멀어져갔다.
인적은 드물었고 술집인 듯 한 포장마차가 달빛에 겨운 졸음을 쫒아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취객꾼이 흐느적 거리는 목소리로 엔카를 부르고 있었다.
슌스케가 소년을 바라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였다.
“이것으로 빛은 갚았소. 두 번 다시 보지 않기를 바라겠소”
“나는......어쨋든 고맙습니다. 이제 미치꼬를 데리고 돌아가십시오. 잊지 않겠습니다”
“여기는 도쿄와 오오사카의 중간지점인 츠바라시 입니다.
모텔에서 눈이라도 붙이고 날이 밝는대로 오오사카로 가서 한국으로 떠나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소년이 미치꼬를 돌아보니 미치꼬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범벅이 되다시피 하였다.
소년이 미치꼬에게 핸드폰을 빌려서 어디론가 통화를 시도하였는데 안병국 사장의 전화번호였다.
“ 아..안사장님....”
“소년? 소년인가?”
“네. 접니다”
“아니..이런....거기 어딘가 몸은 괜찮고? 가만...비로를 바꿔주겠네”
“네? 대장이 거기 있나요?”
“기봉이니?”
“아..대장.....”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면 소년이라고 부르지 않고 꼭 기봉이라고 이름을 부르던 대장.....
자신의 대장 신비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년은 이를 악물고 눈물을 쏱았다.
“기봉아. 지금 상황을 말해줄래”
“나.....나를 탈출시켜준 사람들이.....지금은 안전해 대장. 여긴......
츠바라시 라는 곳이고.....몸도 괜찮아 대장.”
“안사장님을 바꿔 드릴테니 그곳 위치를 자세히 말해다오”
통화를 끝낸 소년이 미치꼬에게 핸드폰을 건네주며 말했다.
“미치꼬, 슌스케와 그만 돌아가도 좋아. 잠시 후에 나의 보호자가 이리로 올거야.
그러니 염려말고 돌아가도록 해”
“오빠....”
미치꼬가 눈믈을 글썽이며 소년을 바라보자 소년은 미치꼬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슌스케는 시선을 돌려 담배를 빼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 하나 없는 칠흑의 어둠이 순스케가 내뿜는 담배 연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가끔씩 자동차가 밤의 침묵을 깨기라도 하려는 듯 경적을 울리며 지나쳐갔다.
포장마차의 불빛들이 바람따라 허무의 공간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밤고양이 울음소리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처럼 들려왔다.
슌스케와 미치꼬가 돌아가자 소년은 안사장이 알려준 기츠마사 공원을 찾아 털레털레 걸어갔다.
긴장이 풀려지자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왔고 각목으로 맞은 곳들이 욱신거리며 쑤셔오고 있었다.
기츠마사 공원에 다다르자 소년은 벤치에 앉아 긴 숨을 토해내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두 세 개의 별빛들이 반짝일 뿐,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보던 소년은 애처롭게 눈물을 쏱던
미치꼬의 얼굴을 떠올리자 알 수 없는 연민을 느꼈다.
지하실에 감금 당했을 때, 쓸데없는 행동을 한 미치꼬에게 악담도 퍼부었지만 미치꼬는
내가 염려되어 보호를 해주려던 것일 뿐......미치꼬가 무슨 잘못이 있으랴...
그렇게 생각하니 쓰린 속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대장인 비로의 얼굴도 떠올리고 안사장님, 스승님,
그리고 불무도를 가르쳐 준 스님들 얼굴도 떠올리다 까무룩 잠이 든 소년은 새벽의 한기에 몸을 떨다가
주변의 어수선한 발자국들 소리에 눈을 떴는데........
“조센징 꼬마놈, 여기에 있었군”
낮익은 목소리에 소년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두 세 걸음 물러나며 눈을 비비며 일단의 무리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케시타와 그의 부하들이었다.
정신이 번쩍 든 소년은 ‘뭔가 잘못됐구나’ 생각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는데 이미 소년의 주위를
다케시타의 부하들이 차단시켜 놓았다. 소년은 심장이 뛰었다.
“이봐, 꼬마. 얌전히 따라오면 몸에 손대지는 않겠다”
곤도가 카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거야. 비열한 쪽바리들아”
소년이 자세를 낮추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앙칼지게 대답하자 곤도가 부하들에게 눈짓을 주니
일단의 야쿠자들이 소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대장과 안사장님이 올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한 소년은 천천히 호흡을 내쉬며
불무도 제 삼장 팔극선을 취한 동작을 하고 앞으로 나서는 거구의 야쿠자에게 앞으로 달려들 듯 모션을 취하다가
한 발짝 옆으로 돌아 제비공중돌기로 거구의 야쿠자 면상을 정확히 내지르고 땅에 착지하자
이단 옆차기로 옆에 있던 야쿠자마저 알격에 쓰러뜨렸다.
이 장면을 보고있던 다케시타의 얼굴에 의미모를 미소가 피어났다 사라졌다.
그러나 중과부적 이었다. 불무도로 단련된 소년이라 할지라도 머리수로 압박해오는 야쿠자들을
당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막 여명이 눈을 뜨는 시각이었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던 소년은 점점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차례 허공에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소년은 야쿠자가 휘두른 각목에
다리를 맞고 고통의 신음을 뱉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꼬마놈이 용기는 가상하다만....”
곤도가 소년에게 다가오며 독사의 눈으로 소년을 한차례 째려보더니 부하의 각목을 받아들고 소년을 향해 내려치는데...
갑자기 곤도가 각목을 쥔 오른손을 부여잡고 고통의 비명소릴 토해내었다.
곤도의 오른 손등엔 어디선가 날아온 표창이 박혀있었다.
“아,대장.......”
소년이 다급히 표창이 날아온 쪽을 바라보니 대장과 안사장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비로가 계속해서 표창을 날리자 소년의 주위에 있던 야쿠자들이 단발마의 신음소릴 토하며 길바닥에 주저앉고 있었다.
“뭐얏! 저놈들은”
다케시타가 양미간을 좁히며 비로와 안사장을 바라보며 병이 깨지는 목소릴 냈지만 비로는 소년의 안위부터 살핀 후,
소년에게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자 소년을 안사장에게 맡기고 다케시타 쪽으로 천천히 걸어와서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당신이 전화를 한 다케시타?”
“그럼 네놈은.....”
“말버릇이 고약하시군. 그렇소 나는 신비로 라고 하오”
“그래,,이것봐라. 다 틀려진 줄 알았는데 제발로 걸어나오다니”
“한국인은 쪽바리들처럼 비겁하진 않거든”
“빨간 서책은”
“쪽바리들 좋으라고 내가 책을 가져올 리가 있겠나”
“이 조센징이 뒈지려고 작정을 했구나”
“다케시타! 뒈지는 건 내가 아니고 너야. 그리고 일본이지”
다케시타가 눈을 부릅뜨며 부하들에게 사시미를 꺼내 비로를 공격하라고 지시했고 비로는
다케시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좀 떨어져있던 야쿠자들을 향해 표창을 내던짐과 동시에
가까이에 있던 야쿠자들을 향해 비호처럼 몸을 날리며 빠르고 강한 발차기로 야쿠자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순식간에 15명 정도의 야꾸자를 거꾸러뜨린 비로가 지친 기색도 없이 다케시타와 대 여섯명 정도 남은
야쿠자들을 바라보자 곤도는 비로의 눈이 마치 최배달 최영의의 눈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 열도를 휩쓸었던 최강의 파이터 최배달......
“대단하군. 조센징이지만 정말 대단해”
다케시타가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비로도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이걸 어쩌지. 나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보다 쎄고 쎈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말야”
“건방진 조센징. 네 녀석이 대단하다곤 하나 숫자 앞에서도 대단할까?
곧 츠바라시 지부에서 내 부하들이 몰려올거다”
“이봐, 다케시타. 명색이 야쿠자 두목이라는 놈이 부하들만 희생시키지 말고 둘이서
맞장 한번 뜨는 것이 어떤가? 내가 지면 서책을 주겠다”
그때 공원 정문 길가에 승합차들이 여러 대 급히 멈추더니 차에서 내린 깍두기들이 공원으로 내달리듯
다가오더니 다케시타를 보고 허리를 굽혔다. 다케시타의 부하들이었다.
대략 30명 정도의 야쿠자들이 몰려오자 비로도, 소년도, 안사장도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다케시타가 빙긋이 웃으며 비로를 보고 말하였다.
“이봐 조센징. 서책만 내놓으면 네 놈들을 건드리지 않고 이대로 돌아가겠다”
“이봐 쪽바리...늦었다 서책은 이미 한국의 국가기관에 넘어간지 오래다”
“빠가야롯. 저놈들을 쳐라”
다케시타의 말이 떨어지자 비로는 심호흡을 하며 불무도 제 칠장 단심권 자세를 취하고 두 눈에 독기를 뿡어내었다.
그 모습을 본 소년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려고 했지만 안사장이 웬일인지 웃는 모습으로
소년을 안심시키며 가만히 지켜보라는 눈짓을 주었다
비로가 다시 다섯 명의 야쿠자를 제압했지만 점점 기력이 딸리는지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을 때,
공원 정문으로 다섯의 사내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비로는 그 사내들을 보자 화색이 돌며 입가엔 의미모를 웃음이 번졌다.
“드디어 나타났군 궁상각치우.....”
안사장이 다섯의 사내를 보며 두 주먹을 움켜쥐자 소년은 영문을 몰라 두 눈만 동그랗게 뜨며
안사장을 보고 말했다.
“궁상각치우라뇨? 누군데요”
소년이 안사장을 보며 대꾸하자 안사장은 그런 소년이 귀엽다는 투로 일급비밀이라도 되는 양
장난스런 표정으로 소년에게 말해주었다.
“소년의 스승님을 근거리에서 보좌해주는 수박도(手搏道)의 전통 계승자들이지”
“네. 수박도요? 그게 뭔데요”
“고구려시절을 거쳐 신라 때까지 활발히 성행하던 최고의 호신술이었다.
허나 호신술이라기 보다는 정신과 몸을 道에 합일시키려는 무도로 발전해 나갔으며
온 몸이 살인병기나 다름없는 최고의 무도다. 지금 북한의 특수부대원들이 배우는 무예가
수박도라는 설도 나돌고 있지”
“음...불무도보다 더 강한가요”
“하하핫...이제 곧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다섯의 사내가 의아했던지 다케시타가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놈들은 또 뭐얏! 이놈들도 쳐라”
다케시타의 말이 떨어지자 다섯 중에 한 명이 비로를 보고 말한다.
“비로군은 이제 빠지도록”
비로가 고갤 끄덕이며 소년 쪽으로 걸어가자 다섯의 사내들은 비로에게 말을 건넨 사람의
지휘를 받으며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오오....다섯 사내의 몸이 정녕 인간의 몸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사시미를 들고 설치는 야쿠자들이 다섯 사나이들의 절제되고 빠른 동작에 힘없이 나동그라졌고
보다못한 곤도가 붕대를 감은 손으로 니뽄도를 쥐고 대적해 봤으나 곤도는 1분도 안돼서 명치에 정권을 맞고
게거품을 쏱으며 혼절하고 말았다.
얼굴 빛이 변한 다케시타가 부하에게 니뽄도를 넘겨받고 대적해 보았지만 다케시타마저 인중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앞니 두 개가 부러지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입이 온통 피범벅이 된 다케시타가 니뽄도를 땅에 짚고 가까스로 일어났으나 이미 전의를 상실한 뒤였다.
아침 태양이 희끄무레 하게 한 쪽 귀퉁이를 쫑긋이 내미는 시각이었다. 이침 운동을 나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있어봐야 경찰이 출동하면 시끄러워 질테니 부하들을 철수시킨 다케시타는
궁상각치우를 비롯한 비로의 일행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 졌소. 당신들도 한국인?”
다섯 중에 한 명이 가만히 고갤 끄덕이자 다케시타가 다시 잇새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당신들이 사용한 무도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소. 무슨 무도인지 알려줄 수 있소?”
“수박도라고 합니다”
“수박도....”
말을 해준 사내가 고갤 끄덕이자 다케시타는 눈에 각인이라도 새겨두려는 듯 궁상각치우 다섯 명을
차례로 쳐다보고는 신비로를 보며 말했다.
“이봐, 신비로..내가 졌으니 서책은 잊겠다. 하지만 우리는 또 볼 날이 있을거다”
그렇게 말한 다케시타가 남은 부하들과 함께 공원을 빠져나가자 비로소 공원은 예전의 평화스런 분위기를
찾은 듯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시끄러운 소음 속으로 침잠되고 있었다.
비로가 소년을 보며 말했다.
“소년, 다친데는”
“각목으로 좀 맞기는 했지만 난 괜찮아 대장”
소년이 멋쩍게 대답하자 안사장이 그제서야 길게 숨을 토해내며 소년에게 면박을 주었다.
“자세한 건 일단 호텔로 돌아가서 이야기 하고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네”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아 그리고 궁상각치우 사형들께선........”
그렇게 말한 비로가 다섯의 사내들에게 다가가더니 한사람씩 뜨겁게 포옹을 나누었다.
“스승님께서 저를 미행토록 시키셨군요”
비로가 말하자 몸이 제일 육중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그렇다네 비로 동생. 스승님께서 예감이 좋지 않으셨던게지”
"막내 사형께선 몸이 여전하시군요. 살 좀 빼시겠다더니.....“
“아, 글쎄 그게....뜻대로 돼야 말이지”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사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스승님 몰래 고기를 사먹는 일이 부지기수니 살이 빠질리 없지”
“하하핫..그렇게 말씀하시는 셋째 사형께서도 고기 좀 드시지 그러세요.몸이 너무 호리호리 하잖습니까?
“중이 고기 먹는 것 봤나. 난 고기는 싫다네”
“그럼 막내 사형은 땡중이니깐 고기를 먹는거구나”
“그러게 말야”
그렇게 말한 일동이 유쾌하게 웃더니 비로가 비로소 생각났다는 듯이 소년을 부른다.
“소년, 너에겐 큰 사형 되시는 분들이시다 이 분이 제일 큰 궁사형. 이분은 상사형.....”
비로가 인사를 시켜줄 때마다 소년은 예의바르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이 분이 제일 막내사형인 우사형......”
그러자 우사형이라는 사내가 싱글벙글 거리는 얼굴로 소년을 포옹하며 번쩍 들더니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허헛.....네가 말로만 듣던 춤추는 소년이구나. 앞으로 이 막내 사형만 잘 따라 댕기그라
그러면 먹을거리는 떨어지지 않느니라 니 참말로 말랐구나 잉”
소년이 상기된 표정과 게면쩍은 얼굴로 다섯의 사형에게 인사를 마치자 일행은 서둘러 공원을 나섰다.
차를 타고 츠바라시를 떠나며 소년은 중얼거렸다.
‘아,, 미치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슌스케는 무사할까...“
- 제 9부 끝 -
세상의 모든 것들은.....(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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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의 하루하루는 조용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평화로운 나날들이 오래동안 지속되었음 합니다
저는 오늘도 천래강으로 피라미들과 놀러 갑니다
휘리릭~~~~~~~~~~~)))
부럽기만 합니다
천래강 또한 어디인지 궁금하구요
늘 새로운듯 싱그런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