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선형'이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처럼
여성스럽게 조그맣고 하얀 얼굴을 한 아이였다.
말이 없고 수줍음 잘 타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작은 아이,
같은 방향에서 통학을 하던 그에 대해서 나는 스쳐지나가며
겨우 얼굴이나 알고 지나 갈 정도의 사이였을 뿐 별반 아는 것이 없었다.
중학교 이 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한 반에 편성이 되었고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술시간에 그가 그린
물고기 그림 한 장 때문이었다.
연과 갈대 밑 둥에 자리하고 있는 한 마리의 붕어를 그린 그림,
감탄하는 미술선생님의 칭찬에 그의 주위에 모여든 우리들은
사진으로 착각 할 만큼 할만큼 정교한 그의 그림 솜씨에 모두
경탄을 금치 못했고 마치 살아있는 붕어를 떠오르게 하는 비늘조차도 선명한
그가 그린 붕어 한 마리는 내 가슴에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중학 이 학년 때쯤
나는 이미 동네인근 에서는 솜씨 있는 낚시꾼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강변에 자리한 마을,
지천으로 널린 대나무 밭과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고기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낚시라는 놀이 문화를 제공했고
학업보다는 노는데 더 적합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저 학년 시절부터 낚시를 비롯해서 구슬치기, 제기차기, 자치기 등
공부를 제외한 놀이 종목에서는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동네 어른들은 물천어 생각이 나면 언제나 나를 찾았고
심지어는 낚싯대를 짊어지고 영산강을 찾는 내게
'양어장에 가느냐'고 놀리는 경우까지 있기도 했다.
그런 내 눈에 비친 그의 물고기 그림,
그것은 놀라움을 지나쳐 신비로움이기까지 했다.
'선형'은 모든 그림을 다 잘 그렸지만 특히 그 백미(白眉)는 물고기였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했으며 그가 그림에서 표현하는 잉어나 붕어
그리고 가물치며 메기를 비롯한 온갖 고기들은 그 특성이 정확히 파악되어 있었고
그림을 통해 나타나는 물고기들의 역동감이나 사실성은
상상만으로는 쉽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낚시꾼인 나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잘 그린 그림으로 잠깐동안이지만 반 아이들간에
화제의 중심부에 머물렀던 '선형'.
그는 부모가 없고 할머니와 삼촌 밑에서 자라는 아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삼촌이 고기잡이를 해!
우리 집 앞에 '소소리방죽'이라고 부르는 큰 저수지가 있는데 고기가 엄청 많거든.
삼촌은 그곳에서 쪽배를 타고 그물을 치는데,
가물치도 잡고 잉어도 잡아서 시장에 내다 팔곤 하지,
우리 삼촌이 그러시는데 큰 고기는 항상 같은 장소에서 나온다던 데...'
어느 따뜻한 봄날 점심시간,
교정 잔디밭에 앉아있는 내 곁으로 다가오며 그가 들려준 말이었다.
나는 학교 친구들 간에도 낚시꾼으로 잘 알려져 있었고
물고기 이야기는 언제나 내가 즐기는 대화의 주제였다.
수줍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은 그가 갑작스럽게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넨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물고기이야기는
곧 나의 관심을 끌었고 의외로 물고기에 관해
제법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학교에서 십리쯤 떨어진 우리 집을 지나쳐서도
이십리쯤을 더 가야하는 거리를 그도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고 있었다.
내가 선형의 마을 곁에 있는
'소소리방죽'을 처음 찾은 것은 제법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초여름 어느 일요일이었다.
별별 구실을 붙여 어머니를 조르고 온갖 잔머리 써가며
구두쇠 할아버지 비위맞춰서 타내고 모은 돈으로 힘들게 사서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아끼는 비장의 꼽기식 대나무 낚싯대 두 대가
비닐 비료부대에 잘 싸여 자전거에 실려있었고
간식용 누룽지 한 움큼과 미끼겸용 미수가루 한 봉지에
군용수통에 물 한 통, 그리고 두엄자리 헤집어 캔 지렁이 담긴
깡통이 등에 맨 니구사쿠(룩색) 담겨 있었다.
어쩌다 지나치는 자동차의 흙먼지와 휘발유 냄새조차 달콤했던
비포장길 이 십리를 달려 도착한 '소소리방죽'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고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친구는 이미 저수지 둑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상류를 기점으로 연과 줄 풀이 잘 어우러져 있는 저수지는
그 당시의 내가 처음 겪어보는 큰 저수지였다.
저수지를 보는 순간부터 나는 가슴이 뛰고 있었다.
강(江)낚시와 보(洑)낚시,
그리고 마을 근처의 작은 소류지 낚시에만 길 들여져 있던 내게
그렇게 큰 저수지와의 상면은 가슴을 뛰게 하는 설레임이었고
당장에 라도 대를 담그면 수면의 크기에 어울리는 대형어가 물어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때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심취해 있었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사는 처지였지만 엉뚱하게도 책 읽는 것을 즐겼다.
카리브해의 짙푸른 바다에서 겨루는 노인과 청새치와의 사투는
낚시꾼인 내게는 절정의 대리만족을 맛보게 하는 로망이었다.
자기 삼촌에게 저수지에 대한 일련의 정보를 습득한 친구 '선형'의 안내와
내 나름대로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방 좌안(左岸)을 더듬어 올라가다
수초가 시작되는 공간에 대를 폈다.
노란 광목의 낚시집에서 대를 꺼내 한 마디 한 마디
끼워 맞추면서 느끼던 희열과 기대감,
그러나 기대만큼 큰 입질은 쉬 오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도 지렁이와 떡밥은 잔챙이들에게 시비의 대상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큰물에서 큰고기와의 거침없는 일전의 꿈은
빛을 바래갔다.
오후 햇살이 뜨거워지고 집으로 귀가하기 전 '선형'의 권유로
잠깐 그의 집에 들렀을 때,
맨 먼저 '선형'이 보여 준 것은 그의 삼촌이 잡아놓은 고기들이었다.
가물치, 잉어, 장어, 등 어종별로 구분해서 담아놓은
대형 물통들을 자랑스럽게 열어 보여주던 '선형',
그가 붕어가 담긴 통이라며 뚜껑을 열었을 때 나는 숨이 멎고 말았다.
많은 붕어들 사이에 그 길이가 대형 물통 바닥을 가득 채우는
차마 붕어라고 믿기 어려운 물고기 한 마리가 몸을 흔들고 있었다.
'저게 붕어라고...?'
나는 부지런히 고기의 주둥이 언저리를 살피고 있었다. 없었다.
있어야할 수염이 분명 없었다.
'그럼 정말 저것이 붕어란 말인가?
붕어가 저렇게 까지도 크게 자랄 수 있단 말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내 머리 속은 조금 전 보았던 붕어의 모습으로
꽉 차 있었다.
'그렇게 큰 붕어를 낚시로 끄집어 낼 수 있을까?'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저수지 가에 쭈그리고 있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낚시를 위한 왕복 사 십리 자전거 낚시통근이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선형의 물통을 가득 채우던 붕어는 강한 유혹으로
나를 저수지 가로 잡아끌었고
변변한 의자 하나 없이 저수지가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나를 위해 친구는
틈틈이 감자며 옥수수를 가져와 내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낚시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고
서툴지만 나름대로의 이론이 적립되기 시작하면서
내 가슴속에는 많이 잡겠다는 양의 욕심보다는
대물을 추구하는 질의 낚시본능이 서서히 싹트고 있었다.
"새우나 피리를 미끼로 한번 써보지 그러냐!"
큰 붕어를 잡겠다고 안달이 나있다는 내 얘기를 '선형'을 통해 들었는지
어느 날 내 곁에 다가와 낚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선형'의 삼촌이 내게 해준 훈수였다.
"예, 붕어가 새우나 피리도 먹어요?"
(남도에서 피리란 참붕어 납자루 송사리 등 작은 물고기를 총칭하는 말이다)
"큰 붕어를 잡아 뱃속을 살펴보면 새우나 피리가 많이 들어 있거든.
그리고 가물치를 잡기 위해 피리를 끼워놓은 주낚에
가끔 큰 붕어가 걸리는 경우도 있고..."
지렁이와 떡밥만이 붕어낚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내게
삼촌의 이 조언은 미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신지식의 습득이었고 내 낚시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것은 직감이었다.
찌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순간 예사입질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던 것은,
방학이 되고 저수지를 찾은 지 이십 일도 더 넘긴 어느 날,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한 오전 열 시경 줄 풀 옆에 붙여놓은
세 칸 대의 찌가 미동하는 순간,
전신을 타고 흐르는 아연한 긴장감에 나는 몸이 얼어붙었다
새우에 받은 첫 입질이었다
작은 꿈틀거림으로부터 시작된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
그 미끼가 새우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더욱 경직된 내 감각의 틈을 비집고
찌가 오르기 시작했다. 애가 타도록 느린 솟음이었다.
숨막히는 긴장감의 파장이 전신을 휘감고 환각처럼,
엄마의 반짇고리에서 훔쳐온 불란사 수실로 마디마디 감아놓은
색동의 수수깡 찌 톱이 더딘 움직임으로 그 마디를 조금씩 높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느리게 오르던 찌가 미끄러지듯
줄 풀 쪽으로 향해 움직이기 시작 할 때
나는 강한 손짓으로 대 끝을 퉁기며 줄을 끌었다.
바늘 끝이 둔턱에 걸린 느낌이었다.
경험으로 보아 어지간한 고기라면 첫 챔 질에 바로 저항하진 않았다.
그러나 녀석에겐 턱도 없는 소리였다.
줄과 대에 강한 휘파람소리를 만들어주며 챔 질에 맞받아 돌아서는 저항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어수룩한 대나무 낚싯대로 강에서 두 자 반 짜리 잉어를 걸었을 때도
그렇게 당황하진 않았었다.
처음부터 오지게 잡아끄는 녀석의 힘에 대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게
고전의 원인이기도 했다.
대를 뺏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맘을 알기라도 하듯
1.5미터의 제법 깊은 수심에 파문까지 일으켜가며 녀석은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대의 휨 새가 걱정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삐꺽거리는 대의 이음새가 자꾸 불안했다.
사람이 고기를 끄는 게 아니라 대와 줄을 사이에 두고
사람과 고기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가끔씩 솟구치며 모습까지 보이는 붕어는 점점 힘을 내고 있었고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을 가리며 소나기구름 한 무더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저수지를 바라보며 분노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곁에는 부러진 낚싯대와 흐트러진 줄이
패배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었다.
꼽기 식 대나무대의 이음새가 쪼개지면서 대가 꺾이기 시작했고
당황한 나는 줄을 잡고 버티었다.
그러나 그것은 패자(敗者)의 추태(醜態)에 불과했다.
붕어는 유유히 사라져갔다. 서두르지도 않고 유연한 몸짓으로,
'넌 아직 멀었어!'
저수지 어디에선가 조금 전 떨치고 나간 붕어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더 신중하게 대응하지 못한 자신의 바보스러움이,
한낱 붕어에게 졌다는 패배감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방울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때 먹거리를 들고 나를 찾아오던 '선형'은 울고있는
나를 보고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난 '소소리방죽'에서 낚시를 하지 않았다.
4짜가 마릿수로 잡히고 5짜를 보았다는 소문이 떠돌 때도
나는 결코 그곳을 찾지 않았다.
어려서는 붕어에게 졌다는 자존심이,
나이 들 면서는 나를 이기고 떠나간 붕어에 대한 경외감이
나로 하여금 '소소리방죽'가에 앉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상급학교에 진학하게되고
선형과는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는지는 기억해낼 수 없지만
중학시절 이후로 그를 본적이 없었고 낚시를 가다가 라도
가끔씩 '소소리방죽' 곁을 지날 때 면 어렴풋이 떠올렸던 게 전부였던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쉰을 바라보던 어느 해 가을이었다.
불현듯 고향이 생각나 찾아왔다는 그는
낚시와 축구로 새카맣게 그을린 나와는 달리 도회(都會)스럽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이제는 연고도 없는 땅이지만 나이 들수록 못 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다네!
할머니와 삼촌도, '소소리방죽'도 그리고 그 방죽의 물고기들도...'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는 푸념처럼 말했다.
그는 미술을 전공했고 교사가 되었다고 했다.
'할머니와 삼촌이 돌아가시고 막막한 세월이 있었지!
힘들고 어려울 땐 가끔씩 자네를 생각하곤 했다네.
한 여름 땡볕아래서 스무날이 넘도록 붕어를 노리던 집념이랑
붕어를 놓치고 억울해하며 눈물을 떨구던 그 투지를 떠올렸지!
지나간 세월이 모든 걸 변화시켰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가슴에 새겨진 고향의 모습이라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소소리방죽'가에 쪼그리고 앉아
붕어를 노리던 자네의 모습도 함께 있었지!
선형은 떠나가면서 내게 그림 한 점을 남겨주었다.
연과 갈대 밑 둥에 큰 붕어가 노니는 그림,
그 그림에는 '소소리방죽'이라는 화제(畵題)가 붙어 있었다.
소소리방죽 이야기
-
- Hit : 8030
- 본문+댓글추천 : 0
- 댓글 22
참으로 잘쓰셨고 전 잘읽었습니다.
잔잔한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그림이 사뭇 궁금합니다.
많이 그리웠습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출조 되십시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이 빈말은 아닌듯 합니다.
오랫만에 접하는 선배님의 주옥 같은 추억의 편린들..
잠시 머물다 흔적만 남기고 갑니다.
내내 건강 유의 하시길 바라오며..(_._)
그림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잔잔한 감동이 전해오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랫만에 좋은글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한번 탐복해봅니다. 어유당님.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자주 좋은글 올려주십시요
건강하시죠 어유당님
늘 낚시하시며 행복하시고 또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잠못자는 악동님 댓글처럼~ "출조가 3" 이후..... 이제나 저제나.... 정말~ 많이 그리워했고.... 기다렸습니다. ㅎㅎ
다시 기다림이 시작되는.......... 오늘입니다. ^^;
좋은글 접하고가니 마음이즐겁습니다......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소설 한권 다읽은 느낌입니다
자주 좋은글 올려 주십사 부탁 말씀드리며
어유당님의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즐감 햇읍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 행복 하세요~~!!
뜨거운 뙤약볕과 흐르는땀 그가운데 불어오는 한줄기 시원한바람
보릿대를태우는 내음 바람에실려오는 에전시골에서 맡았던 정겨운 소리 내음
어유당님 글속에 추억이 있고 어린내가있고 그리움이있네요
아련한추억을 컴퓨터 앞에서 느껴봅니다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이였네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요
항상 다음글을 기다리게 만드십니다
추억. 그아련한옛일을 소설처럼담아내는 어우당님의 수채화는 정감이넘쳐납니다.
추억을 그림처럼 소리없이 가슴속에 묻어나게하시는군요.
아름다운글 잘보고갑니다. 소소리방죽........ 행복하십시요.
아련한 마음을 가지고
함 깊은 생각에 푹 잠겨 보았슴니다.
잘 보았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