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전 지인들과 서해안 바다가두리 양식장 낚시를 갔다온적이있습니다.
바다 가두리낚시란 바다위에 떠있는 가두리에서 하는낚시를 말하는데
가두리란그물을 사방으로 둘러친 사각의틀밑에 부력이있는
부표를 달아 사각그물을 물위에 띄워 물고기를 양식하는 일종의 수상양식 시설인데
가로세로 10미터가 넘는 그물사각 가두리를 수십개씩 엮어 그옆에 인부들이 숙식을 해결할수있는
수상가옥과 넓은 작업공간을가진 항상 물위에 떠있는 수상 양식시설입니다.
가두리낚시는 육지에서 가두리양식장주인이 배로 자기가두리로 낚시인들을 데려가
주로 가두리밖의 바다쪽이나 아니면 가두리와 가두리연결부분 사이의 공간에서 하는낚시법인데
가두리바깥쪽으론 갯지렁이나 크릴등을 써서 흔한 우럭이나 놀래미등 바다고기를 노리는 낚시법이고
가두리와 가두리를 노릴때면 일자로 밀으로 공간사이의 틈으로 채비를 내렸는데
가두리에서 흘러나온 사료를 먹으려고 몰려든 숭어때를 노리고
민물잉어채비와 민물떡밥을써서 하는 낚시법인데 주로 숭어가 잘 나왔습니다 .
서해안 가두리낚시가 시작된 초창기때부터 바다낚시 좋아하는 지인을 따라
서해안 가두리 이곳저곳을 다녀봤는데 처음에는 가두리 주인들도 시골사람들처럼
순박했었고 인심도 좋았으며 가두리에 낚시인도 별로없어 가족낚시로도 참 좋았습니다.
또 가두리위에서는 흙을 묻히지않고도 편하게 낚시를 할수가있었고 숭어 우럭등의 물고기도 제법 잘 나왔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가두리낚시터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편하고 물고기가 잘낚인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날이 가면 갈수록 고기는 안나오고
가두리는 점점 더 시장통처럼 변해갔습니다.
하도 어수선한 가두리 양식장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한동안 가두리낚시를 끊었다가
몇년만에 지인들과 오랜만에 한번 가보니 이제는 완전히 가두리양식장이가 아니라
바가지 돗대기시장 유로낚시터로 변해 있었습니다.
작은 가두리위에 사람을 얼마나 많이 올려놨는지 사람들이 움직일때마다
가두리는 출렁출렁 꼬맹이 애들은 가두리위를 소리치고 뛰어다니며 조용히 낚시해도
집어하기 힘든고기를 전부 쫒아내고 있었고 다닥다닥 붙어않은 낚시꾼들은
고기는 한마리도 못잡고있었고 가두리속에서 양식하던 고기를 가두리양식장주인이
횟집보다도 더 비싸게 회를쳐서 술과함께 낚시인들에게 팔고 있었습니다.
애들은 떠돌고 어른들은 술먹고 고성방가에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습니다 .
철수하면서 다시는 이런곳에 절대로 오지말자고 지인들과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시간이흘러서 사진들을 정리하다 그때 찍었던 사진을보며 사진속에 있는가두리를 쳐다보니
예전 소양호 가두리위에서 낚시하던 시절이 아련듯히 떠올랐습니다.
예전 소양호에는 동면 산막골 신진 물로리 오항리 조교리등 물깊은 골짜기마다
가두리양식장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
당시는 향어잉어등 민물고기가 인기가 있었던때라
전국에 향어 잉어 송어등 민물고기 횟집들이 무척 많았었고 민물고기소비량도 많았었는데
그중에 특히 이스라엘에서 개발되어 수입된 이스라엘잉어 소위 향어의 인기가 좋았습니다.
민물고기가 잘 소비되니 물고기양식업도 돈이되는 큰사업으로 발전했는데
육상 양식장보단 물위에서 키우는 가두리산업이 특히 발전하였습니다.
전국의 댐과 저수지에 우후죽순처럼 가두리양식장이 생겨났는데
개인이 하는 가두리양식장도 있었고 신진양어장처럼
큰회사가 가두리를 대규모로 여러군데서 운영하는곳도 있었습니다.
보통 소앙호가두리에는 모든일을 총괄하는 양식 전문가인소장과 배를모는선장
그밑으로 사료를주고 일을하는 인부들이 있었는데 당시 소양호 가두리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춘천시내의 현지분들이 많으셨고
그외에는 전국 각처의 수산고등학교와 해양고등학교등를 졸업한
먼곳에서 온 아주 젊은친구들이 많았는데 수산고등에는 양식과 처럼 양식업과 물고기치료등
수산에 관런된학과들이 있었고 공고처럼 고3때 실습을 나왔다가 현지에서 채용이되어
가두리에서 일을하게되곤 하였는데 주로 대천과 여수처럼
수산고나 해양고가 있었던 바닷가출신들이 많았습니다.
배선장과 소장등 현지민들은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들을 하였고
나머지 타지에서 올라온 젊은직원들은 가두리에서 24시간을 지내며 먹고자며 숙식을 해결하고
교대로 가끔씩 휴가를받아서 춘천시내로 나가고는 했습니다.
가두리에는 사료창고 작업대등 물고기를 키우는 작업시설과 함께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수있는
주방과 화장실 직원들숙소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전기가 들어오지않아 경운기 엔진을돌려 전기불을 밝히고 기본적인 전기시설들을 사용하였습니다 .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소양호에 어둠이 찾아오면 경운기엔진에 시동을 걸었는데
우당탕탕 탕탕탕탕~ 아주 요란한 굉음소리가 소양호에 울려 퍼져 나가면서 물위를 밝은전구불빛이
밝혀주었는데 깜깜한 호수가에 불이 들어오면 멀리 불빛이 퍼져나가 정말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저는 거의 소양호에서 살다시피하게 소양호로 낚시를 자주다녔는데
소양호를 하도 자주 가다보니 가두리 직원들과도 안면을 트고 나중에는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소양호는 일몰후에는 배운항이 전면 금지되는데 가두리의소장과 현지민 일꾼등이 퇴근하고나면
마지막으로 사료를 한번 더주고 가두리양식장 직원들의 일과도 모두 끝이 났습니다 .
남아있는 젊은직원들은 일과후 가두리에서에서 밥을해서먹거나
운동을하거나 아니면 티비를 보곤했는데 젊은친구들답게 술들을 자주마셨는데
술들을 엄청많이들 마셨는데 아주 자주 말술들을 마셔댔습니다.
가두리에서 술을마시다가 술이떨어지거나 아니면 심심하면 가두리에있는 쪽배를타고
내가 머물고있던 골짜기 매점으로 놀러왔는데 몇번만나서 같이 어울리다보니
골짜기 장밖꾼들중에 가장어렸던 나와 같은세대라서 그런지
서로 말도잘 통했고 나중에는 서로 무척 친하게들됐습니다
.
이친구들이 소개해줘서 나중에는 선장과 소장과도 많이 친해졌는데
당시 가두리소장은 나보다 나이가 몇살이많았고 일하는 직원들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어렸습니다.
계속 낚시를 들어가니 한번 만나고 두번 만나고 계속 여러번을 어울리다보니
나중에는 형 동생하며 친하게 말을하는사이가 되었고 같이어울려서
춘천시내 술집들을 밤새같이 헤메는 사이로 발전 하였습니다.
서로 친한 사이가 되니 가두리에 갇혀서 외롭게 지내는 그들을위해
서울에서 야한 에로비디오도 구해다주고 또 헌책방에 가서 날짜지난
야한 잡지들과 만화책 무협지등을 구해서 잔뜩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
당시 소양호 낚시는 골짜기에서 가두리쪽을 마주 바라보고 하였는데 내가 출조를하여
가두리건너편에서 조용히 낚시를 하고있어도 이친구들은 건너편에서 금방 나를 알아보고는
"형 있다가 데리러갈께 건너와" 하고 소리치곤 하였습니다 .
덕분에 남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가두리를 수시로 드나들었고
거기 모인 낚시인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당시 내가 자주 드나들던가 가두리에는 향어와 메기와 향어와잉어를 교잡시킨F1 이라는
물고기를 양식했는데 한쪽에는 치어들을 키우는칸이 있었고 중간쯤에는
어느정도 큰 고기들이있는칸이 바깥쪽가두리에는 출하를 앞둔 고기들이있는 칸이 있었습니다
치어가있는 가두리는 위쪽을 그물이 감싸고 있었는데 그건바로
가두리에서 키우는 물고기와 치어들를 수시로 노리는 백로나 왜가리등의
물새 피해를 막기위한것이었습니다.
여러새중들에서도 특히 때로 몰려와 긴부리로 치어든 다큰고기든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왜가리의피해가 가장 컸는데
당시 가두리에 근무하던사람들은 수시로 쥐덧에 물고기등을 미끼로올려서
계속해서 왜가리를 잡아내고는했는데 잡아내고 또 잡아내도 왜가리는 끊임없이 몰려 왔습니다.
어느 날 가두리에서 직원들과 어울려 술을먹다가
줘덧에 걸려 퍼덕꺼리는 왜가리를보고 호기심이동해서
술김에 구어서도 먹어보고 닭도리탕처럼 요리도해서 먹어봤는데
세상에 그렇게 맛없는고기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습니다.
도저히 글로는 설명할수없는 최악의 맛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느Tv다큐프로에서 갈매기 왜가리 백로 가마우지 등 물고기를 잡아먹고사는
왜가리계통의 물새종류는 외국원주민들도 맛이없어서 잘잡아먹지 않는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그들과 같이 어울려서 일도 도와주고 먹을것도 같이 먹다보니 당시 소양호에서는
최고의 특권충들만이할수있었던 가두리에서의 낚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소양호가두리마다 가끔 가두리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당시 가두리낚시는 주로 가두리 관계자 가족들이나 친분있는 사람들이나 할수있는
정말 소양호에 출조하는모든 낚시인들이 바라는 꿈속의 낚시 었습니다 .
막상 해보면 생각했던만큼 그렇게 재미진는 않았지만
멀리서 보이는 가두리위에서의 낚시풍경은
뭍에서보면 정말 해보고싶었던 선망의낚시였습니다.
가두리는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양의 사료를 매일 투여하기 때문에 그시간만 되면
가두리에서 흘러나온 사료를 먹기위해 주변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는데
가두리밖의 물속도 위에서보면 새까맣게 보일정도로 물고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
그럼 고무줄이 끼어있는 어분짜게하나를 낚시바늘에 꿰어 그속으로 던지면 하나 둘 셋 세기도전에
엄청난 힘으로 낚시줄이 빨려들곤 하였습니다 .
찌도 필요없고 낚시대도 필요없었습니다.
웬만한 낚시대는 열번을 던지기전에 부러지곤하였습니다.
소양호뭍에서 하는 일반 낚씨와 틀린점은 당시 일반적인 소양호
기본채비는 5호줄에 4~5 합사목줄 12~15 호 바늘을 일반적으로 많이썼는데
뭍에서하는 낚시는 물속이라도 땅바닦이 있으니까 고기가 물고들어가
바닥으로 파고드는힘이 한계가있어 재수만 좋으면 아주 큰놈들도 가끔 꺼낼수도있지만
가두리위에서는 밑으로 내리꼿아 처박는힘이 육지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
수십 수백미터 깊은 물위에 떠있는가두리에서는 고기가 미끼를물면은 바로 깊은물로
쳐박어서 왠만한 낚시대로는 감당이 안되었습니다 .
당시 소양호에서 흔히쓰던낚시대는 은성 카본대나 그라스룻드대
당시에는 각광받던 반카본 낚시대나 소위 로얄막대라고 불리던 로얄그라스롯드대를 최고로 쳐줬습니다.
나도 위의 낚시대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위에 말했던 낚시대들을
종류별로 가두리에서의 전투에서 모조리 부러트린후 튼튼한 낚시대를 찾다가
향어낚시전용대가 나왔다길레 서울 남대문낚시점까지가서 당시 처음으로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최신형향어낚시대인 은성 파워와인드를 사가지고도
가두리로 들어가 도전했으나 가지고 들어간낚시대들도 몆칠도 안돼서 모두 다 작살이나고야 말았습니다.
그후에도 바다장대를비롯해서 튼튼하다는 웬만한 낚시대는 다 써봤는데
시판되는 낚시대의 초릿대로는 소양호 미터급 괴물들을 당해낼수없었습니다.
그럼 낚시대를 쓸필요없이 그냥 낚시줄로만 잡으면되지않느냐는 의문을 가지신분도 계실겁니다.
낚시대를 안쓰고 낚시줄로만 하면 주로바늘이 쭉쭉 뻗거나
바늘이 부러지거나 낚시줄이 맥없이 터졌는데
15호 17호 잉어바늘정도는 3초면 낚시바늘이 뚝 부러지거나
진짜 바늘처럼 일자로 낚시바늘이 쭉 뻗어서 나오고는했습니다.
정말 상상할수도 없는 대물들때문에 당시에는 제일 튼튼하다는 이두바리바늘과
바다낚시용 큰바늘 주낚용 장어바늘등 당시에 존재하는 모든 튼튼하다는 바늘들은 안써본게 없었습니다.
적당히큰 3 .4K정도의 고기까지는 그래도 그럭저럭 건저냈는데 그보다더 큰놈이나
아주 괴물같은놈이 물리면 낚시대를 아예 세워보지도 못하고 낚시대가 몆동강이나곤해서
낚시대없이 그냥 낚시줄에 미끼를 달고하면 여지없이 줄이 터지거나 바늘이 나가고는했습니다.
튼튼하고질긴 낚시줄을 구하고구하다 나중에는 10호줄도 구해다 써봤지만
괴물같은놈이 물리면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
나중에는 튼튼한 나일론끈에 바늘을 직접묶어 던져도봤지만은
바늘을묶은 이음새부분이 힘을못받고 힘없이 터져버리고는 하였습니다 .
그래도 낚시대초릿대 휨새탄력을 이용하는게 낚시줄로만 하는거보다는 조금 더 낳아서
그중에 튼튼한글라스롯드낚시대를 계속 사용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은 정말 꿈같은 일이지만 그당시 가두리근처에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메다급 괴물들이 우글우글 하였습니다 .
나중에는 매점하시는 형님이 춘천에서 작은 Frp보트를 한대 사가지고오셨는데
그때부터 저랑 2인1조로 그작은쪽배를 타고 사료주는 시간에맞추어
가두리바깥으로 보트를 몰고가서 가두리옆에 바싹붙쳐서 낚시를 자주 했는데
시간만 잘 맞추면 낚시줄을 던져넣고 하나둘셋하면 금방 고기가물고 나오고
잡은후 바로 던지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둘이서 맘 먹고낚으면 한시간이면 정부미 쌀포대로
향어와 잉어를 하나가득 넘치도록 잡곤하였습니다.
그렇게잡은고기는 여러장밖꾼들이 나눠도 먹었고 매점에서도팔았고
그래도남으면 철수하는배안의 다른곳에서 낚시하던낚시인들에게도 팔았는데
나중에는 그렇게잡은고기를파는게 매점수입의 중요한일부분이되었습니다.
당시에 고기가 얼마나풍족했는지 가두리에서고기를잡아 골짜기로돌아오면
배타는곳에서 꼬리치고 기다리고있던 개들에도 작은놈으로 향어를한마리씩던줬는데
당시 매점에서키우던개들은 어렸을때부터 낚시터에서낚시인이 버리거나
한마리씩 주는걸 얻어먹고 큰놈들이라서 향어등 물고기를 기가막히게 뜯어먹었읍니다.
이놈의개들은 가끔 낚시꾼이 자리를 비울때면 어설프게 얕은물에 던져놓은 살림망도 털어 먹었는데
고기를 훔쳐먹고 살림망도 이빨로 물어뜯어 살림망도 작살내곤 하였습니다
향어잉어는 매일실컷 먹으니 향어회와 잉어찜 매운탕은 매일 물리도록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두리에서 탈출한놈과 바닥향어를 가리지않고 무조건 회부터떴는데
나중에 가두리에가서 낚시한후 고기가 흔해지자 사료를먹고커 맛이떨어지는
가두리고기는 매운탕과 찜으로해먹고
맛이휠씬좋은 바닥향어만 회를뜰만큼 고기가 정말 풍족해졌습니다
고기가 풍요해지니 나중에는 먹다먹다 향어를구워도먹고 튀겨도먹고
곰국도끓여먹어보고 하여간 향어로 할수있는 모든요리를 다 해먹어봤는데
그중에 제일 히트쳤던게 바로 향어를소금뿌려 바짝말린 향어굴비였습니다.
전기도없고 가게도없어서 매일 기본 밑반찬이라야 기껏 김이나 짱아치에 된장찌게 김지치게
정도만 먹는 낚시터에서 배를갈라 소금을뿌려서 꾸덕꾸덕하게 말린 향어를 바삭하게
기름에튀기거나 숫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반찬으로 먹었는데
그맛이 바짝말린 굴비맛과 비슷한게참말로 맛있었습니다.
매일 부실한 식사를하던 장박꾼들에겐 기름기많은 향어로만든 쫀득 쫀득 짭쪼롬한 향어굴비의맛은
영광굴비 10배보다 더 맛있었던 최고의 반찬중의 반찬 이었습니다.
제가그후 일때문에 전국을 돌면서 수없이많은 유명한 생선구이집에서
소문난 생선구이를 다 먹어봤어도 그때 그 소양호 골짜기에서 먹던 향어굴비만큼
맛있는 생선구이는 없었던것같습니다 .
지금이라도 향어 파는곳이있다면 향어를 사다가
집에서 옛날처럼굵은소금을 술술뿌려 바짝말려서
향어굴비로 직접 만들어 먹고싶은마음은 굴뚝같은데 아파트에 사는터라
말리는 향어 비린내에 집에서쫒겨날까봐
무서워서 눈물을 머금고 꾹꾹 참고있는중입니다.
가두리에는 하루에 엄청난양의 사료를 투여하고 엄청 많은양의 고기를 밀집사육 하다보니
폐사하는 고기들도 무척 많았습니다.
밀집사육을 하니 가두리에는 항상 일정량의 물고기들이 죽어나갔는데
죽은고기는 가두리에 설치된 소각로에서 소각했는데 양이많으면
죽은고기를 배로 뭍으로 반출해서 과수원이나
밭등의 비료나 퇴비원료로 제공 되었습니다.
여름에 날이아주뜨거워져 수온이 높게 올라가거나 가두리에 어병이돌면
가두리에서 일하는친구들이 엄청 바빠지기 시작하는데
고기들이 폐사하기시작하면 엄청난양의 고기들이 삽시간에 죽어 나갔습니다 .
심할때는 하루에수천마리씩 죽어나갔는데 일하는 사람들은 죽은고기를
건져내고 육지로 실어나르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커다란 배에 산더미처럼 죽은고기들을 가득실어서 뭍으로로 반출하곤 했는데
그때가되면 눈치가보여 한동안 가두리낚시를 전혀하지 못해
골짜기가 낚시가 안될때는 고기흉년에 시달리고는 했습니다.
지금의 루어낚시인들은 전혀 해보지 못하시겠지만
가두리는 루어낚시도 기가막히게 잘되었습니다 .
사료 때문에 항상 고기들이 몰려있어 그 고기들을 잡아먹으려는
육식어종도 항상 몰려들었는데 주로 쏘가리와 끄리가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복잡한채비와 루어미끼들은 쓸 필요도 없이 그냥아무 릴대에 웜이나 스픈루어를
달아 던져서 대충 몆번릴링만하면 끄리나 쏘가리가 아주쉽게 걸려들고는 하였습니다.
복잡하지않게 그냥 가두리 그물에 바늘이 걸리지만 않게 가두리옆쪽에 바짝붙쳐서 던지기만하면
가두리고기를 노리고 항상 물위에 떠있던 쏘가리끄리등이 쉽게쉽게 걸려들었습니다.
주로 향어 잉어낚시는 새벽이나 아침나절 해질녘에 잘됐고
쏘가리루어 낚시는 오전이나 해가 저물무렵에 잘됐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은 비싸서 못먹는 쏘가리를 정말 손쉽게잡아서 원없이 먹어봤습니다 .
가두리양식장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시간 맞춰서 그저 사료나주고 대충 일하는것 같아도
노동의 강도가 아주센 정말 힘든일중의 하나였습니다.
아침새벽 일찍 일을시작해 하루종일 사료주고 고기 선별하고 죽은고기 건지고
배로 매일매일 가두리로들어오는 엄청난양의 사료도지고 날러야하고 하루종일 쉬지않고일을하였습니다 .
일이 힘드니 일하는 사람들은 술을 아주 많이 마셨는데 술김에 일어난 사고들도 많았습니다 .
술먹고 가두리에 빠져죽거나 종종 사고를 당하는 일들이 많았는데
소양호 가두리사고가 신문에 종종보도되곤 하였습니다.
가두리건너편에서 밤낚시를하다보면 가두리에서 젊은직원들이 술을먹다가
자기들끼리 싸우는것도 여러번봤는데 어느날인가는 달도없는깜깜한밤에 낚시를하고 있었는데
젊은녀석하나가 술이취해서 칠흑같이깜깜한밤에 가두리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며 고래고래 노래를 하고있었는데
잠시후 갑자기 조용해지더니 풍덩하며 뭔가물에빠지는소리가났습니다 .
아이쿠 저놈 물에빠졌구나 생각했는데 잠시후 물이 퍼덕거리는 소리와함께
다급하게 동료를부르는 고함소리가났습니다.
하지만동료들도 술을먹고 뻗었는지 한참이 지나도록 애타게동료를부르는 소리가 계속되어
할수없이 매점보트를 타고 가두리로 가봤더니 제가도착할때쯤 어찌어찌해서 물에서나왔는지
가두리 바닥에서 헥헥대며 추워서 개떨듯이 떨고 있더군요 아주 운이좋은 친구였습니다.
가두리에는 물고기를 봄부터 가을까지 집중적으로 사료를 주고 고기들을키우는데
한자리에 고정적으로 떠있는 가두리위에서 다량의사료를 집중투여하다 보니
바닥에 물고기 배설물과 사료 찌꺼기가 쌓여서 물이오염되기 시작하는데 그때가되면
주기적으로 가두리를 배로끌고 옆으로이동시켰는데 이때가 사고가 가장많이 났습니다.
가두리를끌고 가다가 부딪히거나 그물이 찢어지면은 가두리속의 물고기들은 다 도망가고
소양호 낚시인들은 대박을 맞았습니다 .
일반적으로 가두리가 터져서 물고기들이 도망가면은 그걸로 끝이라고 알고들 계시고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중에 가두리친구들에게 들은 말로는 빈가두리그물에
고기들어올곳을 열어놓고 계속 사료를 투여하면 도망갔던 고기들이 대다수는 돌아온다는군요.
많은수의 물고기들을 회수한다는데도 나머지 도망간 고기들만 가지고도
소양호 낚시는 한동안은 기가막힌 호황을 누렸습니다 .
가두리가 터졌다는 소문이 들리면 전국에서 낚시인들이
춘천으로 춘천으로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 많은물자들을 현지에서 소비해주니
춘천시도 좋고 낚시점도 좋고 낚시인도 좋았던
정말 꿈같은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리도록 파랗게 아름다웠던 어느봄날의 소양호가
지금도 꿈속에선 가끔 아련듯이 떠오르곤합니다.
긴겨울이 끝나고 송화가루 노랗게 넘쳐나던
어느화창한 산란기의봄날
아카시아향기를 맡으며
정든사람들이 반겨주는 골짜기에 내려서
반가운분들과 회포를 풀고 땀을뻘뻘 흘리며
낚시할자리를 삽으로 닦아 받침대를 꼿을때쯤
건너편가두리 위에서 웃통을벗고
사료를 주고있던 젊은친구가 나를 알아보고는
나를향해 두손을입에다대고 소리칩니다
"형~ 이따가 데릴러갈께 기다려"
멀리떨어져있어 잘보이지도 않는데
배에서내린 나를한눈에 알아봅니다.
얼굴은 햇볕에타서 까무잡잡한데
밀집모자속에서 웃음짓는 치아만은 하얗게 빛납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무렵 퇴근하는사람들을
모두 태운배가 마지막으로 떠나가면은
저멀리가두리에서 작은쪽배한척이다가옵니다.
싱긋 웃으며 다가오는 젊은친구에게
청계천 헌책방에서 산 만화책과 무협지를 내밉니다.
활짝 웃으며 받는 그 친구와 함께
작은 쪽배에올라 가두리로 향합니다.
가두리에서 다른 젊은 친구들이
나를 반기는지 책을 반기는지 환호하며 반겨줍니다 .
가슴속에 몰래 숨겨가지고 있던
야한잡지 책을 몇 권 건네니 환호소리는 더 커집니다 .
사가지고 들어간 삼겹살을 꺼내주니
한 친구가 뜰채를 들고 가두리로갑니다
커다란 향어를 한마리꺼내고
옆 가두리에서 메기를 몆마리 잡습니다
능숙한 솜씨로 향어회를 뜨고 메기살을 얇게저며
고추장 양념에 양파와 마늘과 함께 버무립니다.
널따란 후라이판에 양념입힌 메기를 올리고
지글지글익혀냅니다.
투명 프라스틱병 커다란 막 소주를 한병 꺼내서
술잔대신 스텐으로된 밥그릇에
하나가득 술을따라 나에게 건냅니다.
술을 마시기도전에 너무많이따른 술의양에
기가질려 내인상은 나도몰래 찡그려집니다
입속에서는 침이가득 고입니다.
술이가득찬 스텐 밥그릇들을 들고 건배를 외쳐됩니다.
할수없이 같이 따라마십니다
평소에 먹던것과 틀린 많은 양의 쓴맛들이
식도를 따라 뱃속으로 뜨겁게 흘러들어갑니다 .
입에서 크~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
얼른 향어회를 한점 초장에 찍어 입에 넣어봅니다 .
쫄깃쫄깃 사각사각한 회맛이 매콤하고 새콤한
초장맛과 어우러져 입안에 감돕니다.
술을한잔 다시 따르고 후라이판에서 지글지글 익고있는
메기를 한점집어서 먹어봅니다.
달콤매콤하고 고소한 양념맛속에 하얗부드러운
메기살의감칠맛이 혀끝에서 느껴집니다.
건배 외치는소리에 다시 한잔 마셔봅니다.
아까의쓴맛은 이미 사라지고 없읍니다.
신기하게 마시면 마실수록 술잔은 작아보이고
쓰디 쓴 소주에선 단맛이나기 시작합니다.
한잔두잔 스텐 밥그릇을 부딛히는 쇳소리가
건배소리와 함께 어우러질때마다
내 기분은 달을향해 달려갑니다.
어느덧 사방은 어둑어둑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경운기 엔진 손잡이를 힘차게 잡아돌립니다.
퉁퉁퉁퉁퉁~ 입에서 하얀연기를 뿜으며
경운기엔진이 돌아갑니다.
물위로 이어진 전기선을 따라서
등대 불같은 전구 불빛이온 세상을 비춰줍니다.
얼마나 더마셨는지는모릅니다.
불빛에 취하고
물냄새에 취하고
사람들에 취해서
통통거리는 경운기 엔진 소리를
눈을감고 듣다가 스르륵 잠이 듭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정답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습니다...............................................................!
방금전 꿈속에서 활짝웃던 그얼굴도
눈을뜨니 기억속에서 안개처럼 형체만 뿌옇습니다.
꿈이 점점 희미해져가듯이
남은 추억마저도 언젠가는 잊혀지는날이 오겠지만
그 깊고푸른가슴속에 흘러간사람들과
다시한번 불러보고 싶었던 그 이름들을
영원히 간직하겠지요
그리운 소양호는..................................................................................................
소양호 가두리낚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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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어도 귀소본능이 있는가 보네요
추억의 조행기 재밌게 보고 갑니다
옛날에는 저수지에 향어나 비단 잉어, 금붕어를 양식하는 곳이 많았지요.
향어나 비단 잉어 가두리 양식장이 한번 터지면 저수지 주위에 낚시꾼이 꽉 차곤 했었지요.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에도 입소문은 어찌나 빨랐던지....
정감어린 글을 읽고 나니 향어 낚시가 그리워집니다.
제 직업쪽 일중의 하나라 .....가두리를 너무 정확하게 묘사하셔서....
즐거운 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눈 괜찮을때 다시 ...
그래도 한방은 잊지 않습니다
한편의 소설입니다
좋은추억이 연기같은 기억으로 모락모락~~~
그 기억한편에 머리긴 매점집 딸얘기정도 나와주면
신춘문예 당선감인데..
어찌 편집해서 출간할까유~~~~~~~`````
추억의 조행기 소양호 가두리낚시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ㅎ
또다른 글을 기대하는 염치없슴을 용서하세요.
역시나 마지막에는 또 술 생각 나는 말씀을 남겨주셨네요
소주한잔이 생각납니다
역쉬 ~ 꾼은 추억을 먹구 산단말이 맞네요
배타기 만만찮아 부귀리 율로 진입하라꼬 차바꿨답니다
길패여 집채만한 바위 메우고 치워가면서...
조용할 때 함더읽어보겠심더^^
그 때의 소양호에 대한 낚시패턴과 풍경을 짐작해 봅니다.
....깊고푸른가슴속에 흘러간사람들과
다시한번 불러보고 싶었던 그 이름들을....오래도록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연재해 주신 소양호 추억을 잘 읽고 갑니다.
맛깔스런 글,,,,잘 보고갑니다.
낚시춘추 사보면서 언제가 함 가야지 하면서도 못가보고만 소양호..
소박사님으로부터 예전 이바구 들으니 ....
그때 그시절이 생각나네요.^^*
이미 입안에는 비릿한 내음이 한가득...
벌써 소양호 구석구석을 누빈듯 정겹네여^^
감칠맛나는 글귀, 정감어린 표현 잘 보고 갑니다
성장통을 앓을까 염려가 됩니다..
조금씩...아주 조금씩.. 기억의 문을 열어갑니다~^^
소박사님의 글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그곳에 저두 있었던것처럼 그립네요
가두리낚시는 생각도 못해본 일이였는데 이렇게 눈에 그려지듯이 써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