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모 사이트에 올렸던 글인데 그때 기억을 더듬어 다시 적어봤습니다.
장기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으로 입사한 회사를 다닐때 일이었다.
우리 회사는 전자 부품을 제조하는 업체로 'T'라는 회사에 주로 납품을 하였다.
당시 'T'회사 자재구매 부서에는 '싸가지'란 별명을 갖고 있는 유명한 놈이 있었다.
'싸가지'라는 별명은 우리 회사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는데 그 놈의 싸가지 없는 행동이며
기생오라버니 같이 생긴 외모가 별명이랑 너무나 잘 매치가 되었다.
그 싸가지라는 놈이 얼마나 싸가지없는 행동을 하냐면……
납품한 물건 자기가 어디다가 정리해두고 없어졌다고 다시 납품하라고 개*랄 떨기.
부품 상하차시에 박스 살짝 찢어졌다고 박스 다 찢어서 바닥에 펼쳐 놓기.
날씨 더운데 빈손으로 왔다고 삐쭉거리는가 하면 갑질도 그런 갑질이 없었다.
목소리도 내시의 목소리같았으니 그놈의 행동거지와 말투는 하나같이 싸가지 없고
재수없는 놈이었다.
타 하청업체 직원은 그 싸가지라는 놈의 횡포에 시달려 원형탈모로 고생하다가 홀연히
퇴사했다는 소문까지 돌기도 했다.
그런데 소문을 듣자하니 이 놈이 낚시를 꽤나 좋아한다고 했다.
어느날 부품 납품하러 갔다가 그 놈을 만났는데.
"어이. 이과장님! 낚시 좋아한다고 소문 났던데 언제 낚시나 한번 추진좀 해보슈"
어이?' 나이도 나보다 두살 어린놈이 감히 '어이' 라고한다.
이런 얘기를 회사에 했더니 군대 선배인 이사님께서는.
"귀관. 귀관의 어깨에 우리 회사의 운명이 걸려있으니 회사를 위해서 이 한몸 희생…어쩌고 저쩌고…."
속으론 메스꼽고 아니꼽지만 나의 강한 애사심 덕분으로 네 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뒤 모 저수지…..
마치 저승길 가는 심정으로 낚시를 오는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여기서도 그 놈의 갑질이 시작되었다.
그놈은 낚시가방 하나만 딸랑 가지고 왔고, 나는 그놈 해먹일 식자재며 온갖 낚시장비에 낑낑거리며
좌대에 올랐다.
그놈과 나란히 대를 펴고 낚시를 하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내 낚시대에만 입질이 들어왔다.
아니 입질이 들어오는 정도가 아니라 찌 아래에 그 저수지 고기가 전부 몰려있는듯했다.
찌주변에서 잔 거품들이 보글보글거리며 연신 올라오고 어떤때는 고기 등짝에 채비가 걸려서 찌가
서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평소같았으면 쾌재를 부르며 열심히 낚고있을텐데 그날은 그 놈의 후환이 두려워 일부러 챔질을
안하기도 해보고, 커피를 타는척 자리를 비우기도하면서 저녘시간을 기다렸다.
그때 놈의 싸가지 없는 주둥아리는 여전했다.
자기는 고기없는 자리에 권하고 나 혼자만 잡는다는둥 자기 떡밥에는 붕어가 싫어하는 뭘 섞었다는둥…
저녘시간 삼겹살을 안주로 홀짝거리며 온갖 잔소리에 자식자랑, 마누라 자랑까지….
그냥 물속에 확 쳐넣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을 소주로 달래본다.
지긋지긋한 식사시간이 끝났고 이윽고 그 놈의 자리에서도 붕어가 올라와준다.
낄낄거리며 좋아하는 그 놈과 뜰채 대주느라 바쁜 나….세상이 참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새벽시간으로 가고 있을 무렵…
그 놈의 자리가 너무 조용해서 힐끗보니 의자에 쪼그려 졸고 있었다.
졸고 있는 꼴도 어찌나 미웠던지 속으로
싸가지 없는 놈. 저러다 물에 함 빠져봐야 정신차리지..'
입질이 뜸하여 나도 순간 졸고 있을 때쯤.
뭔가 풍덩하고 바위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놀라 깨보니 그 싸가지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수심은 대략 3m. 그간 군생활하면서 대한적십자사에서 취득한 인명구조자격증과 수많은
인명구조 지원활동…저 놈하나 건지는건 일도 아니었다.
순간 머리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저 놈의 인간을 오늘 이자리에서 보내버려야 하나 아니면 한번 용서를 해줘야 하나'
잠시 깊은 시름에 빠져든 후 2절 받침대를 뽑아들고 느긋하게 그 놈쪽으로 가서 뻗어본다.
"날 더운데 션 하겄슈???"
"에에휵. 더 더 긴거 없슈?? 꼬로록…
씩 웃어주며 이번엔 4절 받침대를 건네 주니 그놈이 헐레벌떡 잡고선 좌대위로 낑낑대며 올라온다.
그 순간 어찌나 고소하고 시원하던지 그 동안 받은 온갖 서러움을 한빵에 해소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젖은 옷을 입은채 발발떨고 있는 그놈 눈에서 찔끔거리는 눈물을….
아…천사같은 나는 그 놈에게 여벌로 가지고 온 바지와 외투를 갈아 입히게 한 후 조용히 불러 앉혀
라면에 소주를 병채로 권했다.
그 놈은 내가 건넨 소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훌쩍거리며
"형님. 나 오늘 물에 빠진거 암테두 얘기하지 마셔요. 집에서 알면 나 쫒겨날 수도 있으니께. 끙."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 싸가지가 나 한테 분명 형님이라고 말했다.
속으론 웃음이 나왔지만 난 태연하게 말해줬다.
"낚시꾼이 낚시하다 보믄 물에도 한번씩 빠지는게 예삿일이지 뭘 그걸같구…."
내 아무한테도 얘기안할테니 걱정하지 말게. 동생….
그날 이후 우린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우리 둘만 있을때는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회사일로 만날때도 예전에 싸가지없던 행동은 찾아볼수 없었고, 오히려 음료수 같은걸 대접받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내가 퇴사할때까지 낚시를 여러 번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손수 밥도하고
주변정리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 기특하기도 했다.
_ 끝 _
몇년전 고프로로 찍은 사진 하나 올립니다.
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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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6
낚시가 사람도 변하게하는군요~ㅎ
잼나게 보았네요~
무더위에 건승 하십시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B접점님이 새로운 사람 하나 만드셨네요~~
행간으로 갑질 냄새가 풀풀 풍기는 조행기 꽤나 있습니다.
협력업체 영업뛰시는 분들이 회사를 위해 휴일도 없이
힘들게 낚시하는거겠지요.
물에 빠져 황천길 앞에서 깨달음을 얻었네요.
재미나게 보고 갑니다.
사람은 평소에 잘 해야된다!
그래도 반전이 잇으니 잘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