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우리집 앞에는 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철물점이 있었다.
당시 하루 용돈은 '100원'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던 내가 그 철물점에 거금 100원을 투자해 쇠톱날을 구입한 이유는 다름아닌 낚시대를
만들 곧은 대나무를 자르기 위함이었다.
아버지의 녹슬은 철제 연장통엔 수도배관용 PVC관을 자르기 위한 쇠톱이 있긴 했지만 나만의 장비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내가 자르려고 하는
대나무는 우직하고 튼튼해서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A급 톱날이어야 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뒷편에 해발 100m의 '역마산'이라는 높지않은 산이 있었는데 그 산의 중턱에 대나무 밭이 있었다.
만 2년 미만의 아직 덜 자란 대나무 중 마디가 굵지 않고, 간격이 일정하면서 곧게 자란 놈을 골라 새로 산 쇠톱으로 밑둥을 자른다.
새 톱날이긴 하지만 어린 손으로 제법 시간이 걸렸다.
밑둥이 잘린 시누대는 어린 나의 손에 붙들려 반제품인 상태로 집까지 끌려오고, 마당의 아버지께서는 내가 잘라온 대나무를 거두어
나의 눈썰미를 확인하신다.
'짧아!'
낫을 이용해 곁가지들을 자르고 마디를 다듬어 주시면서 다음엔 더 긴놈으로 잘라오라 하신다.
사실, 진정한 낚시대가 되려면 사포질 후 3일정도를 응달에 건조시킨 다음 니스칠을 해 완성이 되지만 한시라도 빨리 낚시를
하고싶은 탓에 바늘채비를 구입하고 우선 개울가로 바쁜걸음을 재촉한다.
제철에 수확하지 않은 대파가 내 키보다도 부쩍 커 있었다.
파밭사이로 삼천리호 자전거의 페달 밟는소리가 부산하다. 뒤에 매달아 놓은 대나무낚시대가 바닥에 끌리는 줄도 모르고
쌉사름한 파꽃향기 그득한 논길 사이를 가로지른다. 좁은 길 가운데 높게자란 질경이를 피하려 작은덩치에 큰자전거를 휘두르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우리집에서 개울가에 가는 길에 서너개정도의 두엄더미가 있었는데 항상 지렁이를 채집하고 나면 파헤쳐 놓은 두엄더미를 원상복귀하지
않는 탓에 지렁이를 잡는일도 어른들의 눈을 피해 두근거렸다.
큰 붕어는 큰 지렁이를 먹을 것이다. 외손으로 코를 막고 오른손의 나무가지로 두엄을 열심히 헤치는 모습이 제법 능숙하다.
이어코 개울가에 도착하고 아버지가 큰 붕어를 잡던 바로 그 자리. 아버지의 발자국에 내발자국을 새로 밟으며 바늘에 지렁이를 달아
먼 물가로 날려본다.
장마철 큰비가 끝나면 늘상 낚시를 다니시던 아버지.
살림망대신 요소비료 포대를 돌돌말아 가셨다가 돌아오실때면 내가 목욕하던 그 대야에 한가득 씨알좋은 붕어를 쏟아 내신다.
어디에서 그 많은 붕어를 잡아오시는지..
한번은 낚시떠난 아버지 자전거의 바퀴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물론 대나무낚시대와 비료포대를 대신할 양파망을 휴대했다.
양파망은 붕어를 물에 살려둘 수 도 있으면서 거머리들로부터 붕어를 보호할 수 있지만 집 잃은 양파들 탓에 어머니께선 좋아하질 않으셨다.
아버지께선 잡은 붕어를 그냥 비료포대에 담으시지만 난 뭍에 나온 붕어가 숨 못쉬는게 불쌍해 개울가에 살려둘 요량으로 양파망을 이용했다.
한마리라도 잡는날엔 돌아오는 길이 바쁘다. 마치 숨죽어가는 그녀를 응급실로 업고 뛰기라도 하는 듯.
아버지의 낚시는 전형적인 스윙낚시로 의자와 받침을 사용하지 않았다. 입질이 없으면 연안을 따라 이동하시면서 연신 붕어를 뽑아내신다.
굉장히 긴 아버지의 낚시대에 걸린 붕어는 그 씨알을 막론하고 맥없이 뭍으로 휙 날아든다. 옆에서 아버지가 잡아 놓으신 붕어 구경만하던
나에게 아버지께서 가르침을 주신다.
지렁이를 꽤고, 채비를 드리우고, 찌가 움직이는 모양과 챔질해야 할 때등을 설명하시고서 내가 낚시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시는 아버지.
이내 입질이 들어오는 찰나, 머뭇거리는 내게 크게 호통하시듯 '채!!'
나는 깜짝놀라 젖먹던 힘을다해 힘껏 낚시대를 들어올렸다.
뭔가가 걸리긴 했는데, 뭔가 뒤로 날아갔는데..
개울가 도로를 따라 늘어서있던 아카시아 나무가지에 마치 제수를 위해 말리는 굴비처럼 깻잎만한 붕어한마리가 줄이 엉킨채 걸려있다.
한참을 대소하시던 아버지.
'그래 잘했다'
아버지의 글라스 롯드.
지금 생각해보면 4칸대 정도 되려나.
낚시다녀오신 후 늘 마당 한켠에 하늘을 찌를 듯 말려놓으시던 무겁고 긴 아버지의 낚시대.
아버지라는 이름의 높은 어깨만큼이나 길어보였고, 튼튼해보였다.
몇년 전,
동네에서 멀지 않은 어느 저수지.
여름휴가차 내려 온 내가 펼쳐드린 2.5칸의 낚시대로 걸어올린 작은 붕어를 손에들고 옅은 미소를 지으시던 아버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낚시였다.
그 날은 왠지 아버지가 작아 보였던 것 같다.
대나무처럼 마디 굵고, 부러지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의 아버지.
물가의 그믐달, 어둡고 옅은 물결에 드리울 때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힘든 농촌의 일상속에서 낚시의자에 앉을 새 없이 늘 그렇게 서서 물가를 응시하던 아버지의 눈빛.
큰 바다 한 가운데 우뚝서있는 등대처럼 우리가족을 지켜 주셨다.
공중의 바람을 가르는 아버지의 낚시대.
영화속 플라이피셔의 그 것보다도 더 아름답고 멋진 것이었다.
아버지의 스윙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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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추억을 가지고 계십니다
소중한 옛추억 잘 읽고
구경값 내고 갑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
머리속으로 한편의 무성영화가 지나갑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그리운..
그런 그늘을 이젠 자식들이 기억 하겠지요.
저도지금 2대걸처 가르키고 있습니다.
아버지, 멀리 있는듯 가장 가까운 분이죠.
그 아버님이 눈물나게 보고싶습니다.
옛 추억의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아름다운 글 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