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영천 청못과 장천의 오로못은 내가 떡밥낚시를 할 때 주로 가던 저수지이다.
청못은 초보시절 줄기차게 갔었고, 오로못은 청못에서 갈고 닦은 기초를 마음껏 발휘하던 곳이다.
오로못은 친구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70년대 말쯤 축조되었으며 그로부터 17,8 년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우리가 다니던 그 때가 아마 90년대 중반쯤이라 여겨진다.
처음 거기를 갔을 때 못둑을 마주하고 내려오는 큰 골과 좌측 골로 나누어지는 특이한 형태에
주로 가던 평지형 저수지와는 또 다른 마치 댐을 연상케하는 호쾌한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물은 또 얼마나 맑았던지, 그 물로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낚시꾼의 마음을 끌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깊은 수심층에서 올려주는 깨끗한 찌올림과
당찬 손맛, 그리고 붕어의 눈부신 때깔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있으랴.
초창기엔 주로 친구와 동출한 편이었는데, 낚시대를 처음 잡아본 것이 그 친구를 통해서 였다.
낚시가 고기 잡는 것인줄은 알았지만 낚시대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던 시절,
고 2의 여름방학을 기하여 그 친구와 나를 포함한 너댓명의 까까머리들이 난생 처음 낚시간다고 교련복 입고
대구 서부정류장에서 현풍 가는 버스를 타고 현풍 들어가기 전의 낙동강 언저리에 내려 사공이
노 저어 건네주던 나룻배를 타고 가서 8월의 이글거리던 뙤약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사장을 터벅터벅
걸어가며 말통에 가득 들어있던 막걸리로 번갈아가며 목을 축이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조과는 기억이 나지 않고 밤새도록 간델라 불 비춰가며 이놈 저놈 번갈아 자리를 지켰고
나머지는 주위 어른들 눈치도 보지 않고 술마시고 노래부르고 놀다 새벽에 좁은 텐트안에서 골아떨어졌으니
이런 싹수없는 벌꾼들이 또 어디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곳이 지금 생각하니 바로 고령 개진의 진촌늪인데 지금은 '박석진교'라 이름지어진 다리가 놓여있지만
그 땐 다리가 없어서 배를 타고 갔었던 것 같다.
그 친구가 어떻게 낚시대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난 그 친구로 인하여 낚시를 접하게
되었고, 그가 20대 초반에 릴낚시를 시작하는 바람에 그로부터 낚시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가 나의 낚시스승이나 다름없었는데, 남매지와 청못에서 나름 열공하였던 나와는 달리
친구는 릴에만 전념하다가 다시 들낚시로 전향하다 보니 오히려 내가 그 스승격이 되어있었다.
오로못은 언제 가도 낚시꾼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았다.
가끔 우리는 오로못을 배반하고 군위나 의성쪽으로 가기도 하였으나 '꽝'을 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둘 다 동시에 머릿속에 오로못을 떠올리곤 할 정도였고, 정 손맛이 아쉬워 집에 가는 길에 들리면
어김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5월의 어느 날 오후, 우안 아스팔트길 중류쯤 미류나무가 못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포인트로 갔는데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오로못의 수위가 크게 내려가 만수위 기준으로 포인트까지는 50미터 이상의
거리를 걸어서 내려가야 되었다.
물이 그렇게 많이 빠진 상태에서도 우측 발아래로 바로 내려꽃히는 직벽지역은 26대나 30대를 던지면
찌를 초릿대 근처까지 올려야 할 정도요(못 조성 전부터 있던 물골자리가 아니었나 생각됨)
좌측으로는 만곡진 지형의 상대적으로 수심이 덜 나오는 곳부리에 자리를 잡기로 하고
항상 나의 조과는 씨알의 크기나 마릿수 면에서 친구보다 우위에 있었기에 떡밥낚시 스승의 아량으로
그 날도 친구에게 청출어람의 대성을 기원하며 자리 선점권을 주었다.
곳부리를 기준으로 하여 친구는 우측 직벽지역을 택하였고, 난 당연히 좌측의 만곡진 지역에 자리하였다.
5월의 오로못은 해가 넘어가면서 서늘해지기 시작하였고 우리는 아니 친구는 그날 오로못에서 뿐만아니라
내가 그와 같이 낚시다닌 수 년 동안을 통틀어 최고의 조과를 올리게 된다.
처음 시작하여서는 한 시간 가량 나만 홀로 연거푸 6,7치 붕어와 정신없이 달려들던 쭈래기(일명 발갱이;어린 잉어)
를 잡아내어 오늘도 역시나 하고 있었는데, 해가 완전히 기울고 어둠이 점점 짙어져 가고서부터 내 자리에서는
쭈래기만 간간이 올라올 뿐 붕어는 구경하기 어려웠고 친구자리에서는 8,9치 붕어들이 연신 올라오고 있었다.
9시가 넘어가자 내 자리에는 아예 쭈래기조차 입질이 없었고 친구는 여전히 큼직한 붕어를 걸어내고 있다.
친구가 잡아내는 붕어를 구경하며 응원만 하고 있기를 한 시간여...
골이 길고 물이 깊은 오로못은 더 이상 앉아있기 어려울 정도로 추워지고 한여름 외에는 밤낚시를 잘 하지
않던 때라 손맛을 볼만큼 본 친구도 지쳤는지 그만하고 가자고 하였다.
친구 장인께서 민물매운탕을 워낙 좋아하시는지라 내가 잡은 고기를 친구의 살림망에 같이 넣고 들어보는데
두 손으로도 들기가 힘들 정도로 묵직하다.
친구는 그날 잡아 가져간 고기로 인하여 장인 장모로 부터 '대단한 낚시꾼'이란 인정을 받고, 차후 장모께서
낚시갈 때 쓰라고 동네 야산에서 캔 고운 황토를 비료푸대에 담아서 주실 정도로 열렬한 후원자가 되었다.
오로못 1--떡밥낚시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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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밭 지킴이를 몇번 출조한 가벼운 워밍업으로 첫날 6대빵으로
잠재우셨으니 그런 사부를 둔 제자는 행복한 꾼입니다
고속도로를 상행하다보면 늘 눈에 밟히는 말풀이 듬성 듬성난 상류 골자리......
아이들 어렸을때 한번 들렸는데
블루길 성화에 아이들만 좋아라 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무지하게 많았는데...쩝..
위풍당당님 저도 거의 독학(?)입니다. 짬짬이 가던 낚시방 사장님을 코치로 모시고...
봄형님 그 날 재수가 좋았을 뿐일겁니다. 가벼운 채비도 한 몫 한거 같고요
어찌 감히 띄밭지킴이를 제가..
친구분은 좋겠습니다
든든한 후원자가(장모님)계셔서.
까마득한 옛날 애기지만 위천늪과 쌍벽을 이루어
접근이 어렵던 객기늪을 젖히고
큰물이라도 진뒤에 칸대 달랑들고 벽치기로 (수초붙임 고수1편에 나오는 것처름 ..)
덩어리 뽑아내던 시절이있었지요
강을 거슬러 힘을키운 붕어의 힘이 얼만나세던지 ....
조삼님 역시 추억은 좋은거군요 ^^
오로지는 이번 여름 한번 터졌답니다
배스터라 걸면 덩어리라 기록경신을 꿈꾸는 꾼들이 한바탕 전쟁을 치룰 때
허접채바는 남잡아놓은 넉짜붕어 귀경하러 갔었지요
젤할일 없는 잉간이 남낚수하는데 귀경하는늠이라면서용 ㅋㅋ
고마운곳입니다.
내년에 또 들이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벌렁댑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러한 경험이 있습니다..
어찌나 절벽인지 붕어를 잡고도 올리지못하는 절벽..
ㅎㅎ
못을막았고 그당시는 바늘숫자만큼 고기가 잡히던 곳이였지요
못안의 길을 지금도 선명히 그릴수있는 곳이지요
이상하게 도시에 나와서는 고향못에선 낚시를 안하게 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