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대략 13년전쯤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임하댐 상류 용계은행나무에서의 기억입니다.
9월말경 태풍으로 250밀리 이상 큰비가 내리고 소위 말하는 새물찬스를 노리고
저와 절친한 형님께서 서울에서 그때만해도 상당한 고급차인 포텐샤를 끌고 새벽 2시에 출발하여
대략 아침6시 전후에 용계은행나무골에 도착하여 매우그럴싸한 상류 포인터를 잡아
신수향 6대를 펼치고 낚시를 시작했습니다.
그당시 저는 직장인으로 낚시를 좋아했지만 오름수위찬스는 별루 생각도 못했지요.
관심이 없다는게 아니라 봉급쟁이가 오름수위 찬스를 맞추기는 힘들어 아예 생각지도 않았는데요.
서울에 계신 형님이 먼길을 달려왔는데 오후늦게라도 먹거리와 대충 준비물을 챙겨
용계은행나무지나 커브진곳(주로 차를 많이 대던곳)에 도착하니 바로 앞에 검은색 포텐샤가
눈에 뛰더군요. 순간적으로 자동차만봐도 반가운 마음이 들어 차쪽으로 가니
이게웬걸, 자동차 키가 트렁크에 그대로 꽃혀 있는것 아니겠습니까? 먼길 달려와 급하고 설레는 마음에
얼마나 조급한 마음이었으면 자동차키도 내팽기치고....
일단, 제차를 주차하고 포텐샤키를 빼서 문을 제대로 잠그고 가방을 짊어지고 밑으로 내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보기에 매우 그럴싸한 곳에 형님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계시더군요.
뒤에서 큰소리로 " 형님! 저왔습니다. 입질좀 들어 옵니까?"
제법 크게 인사를 했는데 답이 없어 다시 큰소리로 반복하니 그제서야 앉은채로
뒤로 슬거머니 돌아보며 몹시 시무룩한 표정으로 " 아이, 되도 않하겠어 씨이~"
가까이 가서 보니 6대 낚시모두가 찌가 호사키 끝에 메달린채 서있더군요.
순간적으로 상황을 짐작하게되니 얼마나 웃음이 나오던지 꾹,꾹 참고 있는데
" ㅆㅂ, 새벽에 도착해서 6번을 뒤로 물러앉아 전빵을 채렸는데 한시간도 않되 또 호사키 끝에
물이 차네. 고기는 잔뜩 모여 있는데 당채 물때문에 !"
그때 형님의 몰골을 보니 참으로 과간 이더군요. 낚시복은 하의는 믈에 젖고
상의는 땀에 절어있고 모자를 쓰긴 썼는데 휑하니 얼마나 초라하던지 순간
수건을 내어 닦아드리고 약좀 올렸죠. " 누가 밤잠 않자고 먼길 오라캅디까?"
" 아! 임하댐 처음와서 손바닥 만한 놈들이 얼마나 손맛이 당차든지 그맛 때문에 기대 만땅하고
왔더니 야, 이럴수가 있나?"
대를 피면 아니나 다를까 고기가 붇는데 미쳐 손쓸 겨를도 없이 물이 불어나니
자리를 뒤로 물러나면 물은 또다시 금방 불어나니 낚시는 못하고 계속해서 자리도 못잡고
아침, 점심식사도 못하고 자리잡는데 얼마나 약이 올랐으면 그 좋으신 양반이 씹원짜리를 계속 찾더군요.
가지고 간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떼우고 뒤로 4,5미터 물러나 뒤쪽이 매우 경사진곳에 전을 펴고
낚시대를 던지니 돌이나 맨땅에 물이 차는곳에 낚시를 던지게 되는 셈이던군요.
서너시간 앉아 기다려도 입질은 없고 수초 우거진곳은 분명 고기는 노는데 찌를 세울수 없는곳이니
낚시를 포기하고 장짐을 꾸리고 가파른 경사를 올라 차있는곳으로 갔는데
" 어, 어 내키 내자동차 키가 없다. 이, 이거 우짜지?"
당황하여 나를 쳐다보길래 아무일 없다는 듯이 " 형님 키 여기 있지요. "
하며 키를 건네니 얼굴에 화색을 뛰며 " 야, 내가 오늘 완전히 혼이 빠졌다. 붕어한테 제대로 홀맀따"
하시더군요. 얼마나 낚시가 좋고 즐거우면 오름수위 찬스를 맞춰 400리 먼길을 밤길을 달려 내려와
대를 펼칠게 될까요? 형님의 성격이나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하기에 계속 옆에서 약을 올리다가
안동역앞에서 따끈한 우동한그릇 같이하고 다시 서울로 출발하시는것 보고 저도 집으로!
낚시란 이런건가 봅니다. 가끔씩 사람을 엉뚱하게 돌게 하는것, 이런 헤프닝이 있기에 더욱
좋은것이 낚시입니다. 아래글에 다른분이 자동차키를 주제로 한 글을 읽으니 옛생각이 나는군요.
지금도 가끔 그때 얘기하며 차키 꽂아 놓고 안다니냐 물어면 형님은 시치미 뚝 뗍니다.
"야,내가 언제 그래 니자꾸 지어낼래? ㅍㅎㅎㅎㅎㅎㅎ~
임하댐과 자동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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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장마철이면 꾼이라면 누구나가 겪었을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를 해주셔서 현장감이 100% 입니다
소류지인님 한가위 행복하게 보내시고 언제나 안출에 가을붕순이 대구리로 상면하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잘 지내시고 계시겠죠...
두분 변치 않으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새물찬스 안노리시는지
안출하세요
추억이 새롭죠.
인연이 행복하게 합니다.
보통 키는 꼭 주머니에 넣어두죠. 덥다고 점퍼 벗어 아무생각없이 차속에 점퍼 벗어놓고
문을 잠그고 닫으면~~~~~~~~~켁이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새물찬스는 거의 안되더군요..
제가 하란데로 한 친구넘은 대물을 건지는데 ........
어복이 따라야지...ㅋㅋ
생생한 현장중계입니다....차키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지금은 보험회사에서 날라오니 그나마 걱정이 쪼매 덜하답니다..
9ㅇ년대 초입 ... 임하댐이 담수를 마치고 마침내 준공되자 반변천을 거슬러며 힘을 키운 강붕어들이
줄줄이 올라와 그야말로 몇년간은 넣어면 나오는 호황으로 수만은 꾼들의 로망이 되었지요
꾼의 가슴을 설레게하던 수많은 포인트중에서도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수백년된 은행나무가 굽어보고
창창히 우거진 기암절벽으로 둘러쌓인 용계골은 그 수려한 경관과 수몰나무에 드는 떼고기로
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지요
내려가기전 은행나무에 합장하면 넉넉한 목신의 음덕으로 못잡는 허접채바도 몇수씩은 건졌더랍니다
다들 떡밥에 지렁이로 신나게 걸어올리는데 미련한 채바는 꿋꿋이 새우지렁이 짝밥..
(그땐 영남지방에도 뻘탕에선 가지바늘 많이 썼었지요)
획 ~ 채바가 고긴 못잡아도 한스윙하는지라 ...
풍덩하는 순간 쏘가리가 쉐앸 ~~~ 아차하면 대 뺏깁니다
황쏘가린지 천연기념물인지도 모르고 바로 코펠로 슝덩 ..
관계자님들 무지의 소치니 이자리를 빌어 사죄합니다
용계골 은행나무는 억나무라고도 불렸는데 .... 이나무가 댐건설로 수몰되려던 운명에 놓였을 때
마을의 수호신이라면서 마을 어른들이 진정하여 새로운 공법으로 그자리에 들어올려졌으며
그당시 전국제일이라는 조경전문회사가 삼억에 (지금은 삼십억도 넘겠지요) 단독입찰하였는 바
그조건이 향후 삼년간 살아남아야 공사대금을 지불한다는 조건이라
누구도 선듯 입찰에 임하지 못하였더랍니다.
이후 은행나무는 지금까지 생생히 살아 남았고 임하댐의 꾼들과 관광객들에게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며 사랑받고 있지요
소류지인님 덕분에 간만에 용계골의 옛추억에 젖어 보네요
엥 ~ 쓰구보니 이거머야 댓글이 본문보담길어졌네용^^;;;
(소류지인님 죄송 구벅)
임하댐에서 관고기 잡을때가 기억납니다
잘보고 갑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출조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