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리 약지 못할까?’
서서히 김노인의 울음이 잦아들어갈 무렵 갑자기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설픈 말로 김노인을 달래려다 감정의 뇌관이나 폭팔시켜 버리고,
결국 17년전 그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들어볼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었다.
김노인은 자신의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렸는지 얼굴을 들며 게면적은
웃음을 지었다.
“나잇살이나 묵어갔고 추한꼴을 보였네 그려.”
김노인은 얼굴에 번진 눈물을 투박한 손으로 닦아 냈다.
손가락에 깊게 패인 주름들,
손끝마디마다 박힌 굳은살과 굽은 손가락 마디가
클로즈업된 한 장의 사진처럼 강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의 삶을 굳게 이끌어 오던 그 강한 손이 오늘은 볼에 젖은
눈물을 닦고 있는 것이었다.
저리 투박해 보이는 삶에도 여린 살이 있고 깊은 세월 속에서도
새로 돋아 나는 여린 감정들이 있는 것이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태연한 표정을 찾아가던 김노인이 긴 한숨을 내품었다.
전염이라도 된것처럼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품어져 나왔다.
내 한숨의 의미는 가슴 깊이 맺힌 생채기들과 아픔을,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그들과 예전 같은 만남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때론 모르고 살아야 되는 것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적당히 감추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과거와 미래는 적당히 추스르고, 현재 내 앞의 사람에게만 집중하며
현재의 만남에 충실하는 만남이 더 가치있는 만남이다.
내가 이곳 소류지에서 만난 그들과 그리 오랜 기간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과의 만남에서 즐거웠던 것도 다 그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속에서 맺어진 인연들,
상대방은 나의 과거를 알고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고,
나는 상대방의 과거를 알고 상대방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만남들....
이런 만남들은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를 주곤 했다.
상대방과 나는 서로의 과거를 바탕에 깔아 놓은채,
미래를 비추워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현재 즐거워도 과거의 그의 아픔이 머릿속에 덧입혀졌고,
현재 즐거워도 미래에 그가 겪게 될 아품들이 투영되고는 했다.
서로 과거와 미래, 현재의 삶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부담 없는 유쾌한 만남....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 구지 애쓸 필요가 없는,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도, 그들이 내게 바라는 것도 없는,
지금 그 자리에서 현재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면 돼는 만남!
나는 이런 만남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그들과의 만남에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곳을 떠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켠에 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일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깊은 사색을 깨뜨리며 ‘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웬일인지 자꾸만 눈길이 가길래 평소펴지 않던 2.0칸대로 연안뗏장에
붙여 놓았던 낚시대 총알이 뒤꽃이에 걸려 있었다.
한손을 뻣어 급히 챔질을 했다.
갑자기 손목에 통증이 느껴졌다.
놈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차고나가는 바람에 손목에 무리가 간 것이었다.
두손으로 대를 잡고 낚시대를 세우려고 힘을 더했다.
하지만 한번 뺏겨버린 대를 세우기가 버거웠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를 잡고 겨우 수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낚시대를
버티고만 있었다.
이미 이번대까지 물속으로 끌려 들어간체 ‘북북’ 물을 가르는 소리를 비명처럼 내고 있었다.
다행이 짧은대는 향어대라 낚시대는 버텨줄거 같았는데 오랫동안 갈지 않은
원줄이 불안했다.
놈은 기선을 제압한걸 아는지 맘껏 물속을 헤집고 있었다.
잉어나 가물치 일거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대물붕어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가물치라면 수면을 한번 정도 박차고 올랐을 것이고,
힘쓰는 폼세가 잉어가 힘쓰는 폼은 아니었다.
놈이 좌우로 정신없이 째면 쨀수록 대물붕어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놈은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고 계속해서 힘을 썻다.
오히려 짧은대라 놈과의 싸움이 유리한거 같았다.
긴대였다면 이미 주변 대들을 다 걸어버리고 그 무지막지한 힘으로
수초속으로 파고 들어버렸을 것이다.
낚시대는 대물 향어들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대라 그런지 잘 버텻고,
짧은대라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다.
놈이 힘이 빠진건지 서서히 대가 세워지며 놈과의 거리가 가까워 졌다.
그 틈에 헤드렌턴을 켰다.
만약 놈을 놓친다구 해도 놈의 정체는 확인해 보고 싶었다.
놈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낚시대를 세워 놈을 내쪽으로 끄집고 왔다.
놈은 항복이라도 한듯 내쪽으로 끌려왔다.
연안 가까이 다가오자 놈을 물위로 띄우기 위해 최대한 대를 높이
들어 올렸다.
놈이 서서히 떠오르며 흐린 물속에서 슬핏 놈의 옆모습이 보이는듯 했다.
물속엔 쟁반만한 보름달같은 하얀 어체가 비춰졌다.
가슴이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놈의 슬핏보여준 옆모습은 붕어의 체형이 분명했다.
어쩌면 오늘밤 나는 늘 꿈꿔오던 대물붕어를 품안에 안을 수 있을거 같았다.
하지만 놈은 항복 한것이 아니었다.
놈은 수면가까이서 몸을 한번 뒤집더니 방향을 틀어 앞으로 차고
나가기 시작했다.
수면 아래로 쟁반만한 보름달이 지나가듯이 놈이 차고 나가는 모습이
비춰졌다.
대가 높이 들려 탄력의 여유가 있었던 탓인지, 놈의 차가나가는 속도에
가속이 붙는 느낌이 들수록 버티기 힘들거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찰라의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번 가속을 붙여버린 놈의 힘은 대단했다.
이미 나는 놈과의 승부에서 패배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치켜세운 낚시대가 탁력의 한계까지 도달한 느낌을 받는 순간 '툭'하고 낚시대가
긴장감을 상실했다.
역시 우려했던대로 원줄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낚시대를 들어보니 원줄과 봉돌의 결합부분이 터져 나갔다.
긴장감이 풀린탓인지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의자에 털석 주저 앉았다.
놈과의 승부를 너무 서둘렀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놈의 힘을 충분히 뺀뒤 견인을 해왔어야 했다.
두어번 공기도 먹이고,
이쪽 저쪽 힘을 쓰도록 충분한 시간을 싸웠어야 했던 것을
놈이 항복한듯 딸려오는 것에 속았던 것이다.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를 서두르다 놓쳐버렸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그것은 단순히 오늘 대물붕어를 놓쳐버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또. 또.....’
가슴속엔 내자신에 대한 심한 힐란이 일었다.
인생에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성공의 기회를 조바심으로 서두르다
망쳐버린 과거의 사업실패가 떠올려 졌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성공의 기회,
그 앞에서 엉거주춤한채 당황하며 주체할 수 없는 조바심으로
모든 일을 망쳐버린 내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더니 점점 짜증이 밀려들었다.
‘왜 나는 이렇게 하는 일마다 이모양일까?’ 하는 생각까지 도달하자
짜증이 극대화 되고 누구를 향한지 모를 분노가 일었다.
잡고 있던 낚시대를 꺽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뭔 그런걸 가지고 그렇게 상심을 하나?”
내 일글어진 얼굴을 보던 김노인이 말을 건넸다.
그말을 듣는 순간 퍼뜩 정신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놈의 출현으로 잠시 김노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아, 예 어르신 제가 잠시 딴생각이 들어서....”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김노인의 눈빛에서 그도 내 얼굴에서 가슴속에 품어진
삶의 생체기를 봐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알았네. 나는 갈라네...., 오늘 들었던 이야기는 알아도 모른척,
봤어도 못본척.... 알았제.“
“예 어른신.... 술도 드셨응께. 조심해서 내려가셔요.”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으잉 알았네. 자네도 너무 속상해 하지 말고 일찍 자. 나 감세.”
그가 등을 돌리고 건네 말의 웬지 마음에 와 닿았다.
그 말의 뉘앙스가 마치 놓쳐버린 붕어가 아닌 그가 들여다본 내 마음속
생체기를 위로해주는 말인거 같았다.
김노인이 떠나고 나도 바로 차로 들어갔다.
놈이 헤집어버린 물속에서 다시 입질을 기대하는건 무모한거 같았다.
휴대폰 알람을 새벽 다섯시에 맞춰 놓고 운전석에 몸을 뉘운채 눈을 감았다.
감겨진 눈의 어둠속에 그녀의 얼굴이 떠올려졌다.
그리고 코끝에서 그녀의 향기가 느껴졌다.
떠나버린 그녀,
더 이상 기억하지 말아야 될 그녀의 모습과 체취가 생생하게 떠올려 졌다.
나는 기분 좋은 느낌에 빠져들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다섯시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아직 밖은 어둠에 쌓여 있었다.
잠시 밖으로 나갈지, 더 잘지 고민이 일었다.
더 자는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지만 다시 잠이 들지 않았다.
복잡했던 어젯밤 일들이 새벽녘에 하나둘씩 머릿속에 떠올라 다시 잠을 들수가 없었다.
차문을 열고 나가 숨을 깊게 마셔보았다.
상쾌한 새벽공기가 정신을 맑게 해주는거 같았다.
‘과거는 과거일뿐 현재에 충실하자’
늘 주문처럼 머릿속으로 외우던 말을 속으로 되네였다.
어젯밤 나를 괴롭히던 많은 상념들이 말끔히 정리된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자리로 돌아와 걷어놓았던 낚시대에 새우를 끼워 던져 놓고,
혹시나 있을 입질을 기다려 보았지만 찌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서서히 동쪽하늘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캐미 불빛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을 무렵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낚시를 나온 낚시꾼이려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뚝방쪽을
바라보았다.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셨다.
차가 제방을 올라와 저수지 옆을 지날 때 어렴풋이 차의 융곽이 드러났다.
그 차는 딱정벌레를 닮은 폭스바겐 이었다.
갑자기 이유조차 알지 못한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저수지 측면을 지나는 차가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는듯 느리게
인식되었다.
그차가 미루나무 근처로 다가올수록 가슴은 더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리고 슬로우 모션처럼 다가오던 그 차가 멈추지 않고 미루나무를 지나칠때에
심장은 터져버릴듯이 뛰고 있었다.
그녀가....
그녀가 다시 온 것이다.
영원히 다시 보지 못할거라 생각했던 그녀가....
새벽여명처럼 그렇게....
p.s 너무 늦게 올려서 죄송해요. 앞으론 빨리 올리게요.
저수지의 그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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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38
기다리다 숨넘어 가겠습니다 ㅋㅋ
잘보고갑니다.
많이 기다렸습니다
잘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다
기대 합니다.
역시...기다린 보람이 큼지막하게 다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날 되세요.
아름다운.............,
그나저나 그녀가 왔는데 이제는 우짤꼬..
드뎌 그녀가 출현!!!!!!!! 기대 만땅입니다^^
빨리좀 올려주세요~~
그디어 그녀가 등장했군요 !!
담편엔 어떤 반전이 일어날지 사뭇 기대됩니다.
언능언능~`올려주세용~
원줄터진 속상한 마음이 한번에 날아가버립니다
다음편 기대하구 있겠습니다
딱정벌레속에 ...
그녀이길 기대해봅니다...ㅎ
속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기다려 집니다..
잘읽고 갑니다...
항상 잘 읽고 있어요 화이팅!!
추천하고갑니다 다음편 빨리올려주세요.
그녀는오고..ㅎㅎ
기대만땅!!
잘보구갑니다
감사합니다.
울마나님한테 사주기로 약속한차인데???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못사주고있네요>ㅎㅁ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