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옮기기 위해 두어번 차와 포인트를 왕복하며 곁눈질로 차안의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가늘게 내리던 보슬비도 서서히 멎어가고 멀리 지평선 근처의 하늘은
구름이 열려 햇살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늘 앉던 상류포인트에 낚시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우측 말풀과 부들경계쪽으로 짧은 대부터 긴대까지 네 대의 낚시대를 편성하고,
중앙과 우안으로 이어진 말풀대의 군데군데 빈자리에 다섯 대의 낚시대를 편성했다.
늘 같은 자리를 공략하다보니 수심과 바닥 상황, 포인트에 넣어야될 낚시대의 칸수까지
정확히 꿰고 있는 터라 낚시대를 편성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돼진 않았다.
삭은 부들사이로 새순들이 막 돋기 시작한 부들밭 포인트나,
아직 물속에 그림자처럼 펼쳐져 있는 말풀대도 금방이라두 대물들이 연신 입질을
해댈거 같은 좋은 물빛과 분위기를 자아 내고 있었다.
이미 두어주 전부터 호조황을 보였을 곳인데, 올핸 주말일정들이 너무 많아 이제야
오게 된것이 못내 아쉬웠다.
낚시대 편성을 마치고 낚시텐트를 설치하고 있을때, 차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낚시대를 편성하는데 몰입하다보니 그녀의 존재를 잠시 놓치고 있었다.
차쪽으로 시선을 돌렸을때 이미 가방까지 내린 그녀가 내쪽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보냈다.
나도 목례로 대답했다.
그녀는 그렇게 인사를 마친후 느리지만 단호한 걸음걸이로 노인의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텐트 설치를 끝내고 그녀가 오르던 그 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노인의 집거름에 서 있었다.
그렇게 잠시 서있던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 갔다.
웬지 모를 안도감이 가슴속에서 일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이던 일 하나가 해결된 듯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한숨을 돌리고 의자에 앉아 늘 해오던 습관처럼 주위의 경관을 훑어보았다.
낚시를 가면 늘 이순간이 가장 편안한 순간이었다.
낚시대 편성을 끝내고 주변정리를 마치고 잠시 의자에 앉아 주변을 감상해 보는 시간......
일상에서 떠나와 새로운 세계와 접하는 그 시간이 가장 마음이 평온하고 온화해지는 시간이었다.
멀리 지평선엔 열린 구름들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내리 쬐고 있었고,
비갠 연두색 산들의 능선마다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눈길 닫는 곳 어디든 아름답지 않은 풍광이 없었다.
물기 머금은 고사목의 삭은 줄기마져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산새들은 지저귐이 바로 귓전에서
혹은 아주 멀리서 화모니를 이루며 청각의 감미로움까지 더해주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과 귀전을 어지럽히는 새들의 지저귐과
코 끝에 아직도 기억이 가시지 않은 그녀의 체취가 더해졌다.
그녀의 체취는 봄을 닮아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순간을 느끼고
오래 각인시켜 놓고 싶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이런 상념들을 깨뜨리며 제방 옆 오솔길로 자전거를 끄집고 강노인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난 초겨울을 끝으로 몇 달만에 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미루나무 아래 자전거를 세우자 마자 강노인은 그 순박한 얼굴에 웃음을 한껏 머금은채 다가왔다.
“어르신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다.
“어이” 하며 얼굴에 만연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니 자랑거리를
가득 품고온 품세였다.
역시나 바로 옆에 다가서더니 흥분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이야기를 쏫아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삼주 전부터 터져서 난리가 아니었는디....”
“그때 터진다는걸 알고는 있는디 일이 바뻐서 이제야 왔네요.”하고 다시 인사를 정식으루 건넸다.
“난리가 아니었어, 이주전에는 망태기를 들두 못하게 잡었어.
나오믄 대감잎 사이즈루다가 낚시대 세대 다 펴지두 못하구 한 대만 가지구 했는디,,,,,
느믄 나오고, 느믄 나오고....
나중엔 심이 딸려서 못잡것드만.....“
강노인은 흥분된 목소리와 과장된 몸짓으루 한참동안 현장상황을 실감나게 표현해 나갔다.
나두 짐짓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큰놈은 보셨어요? 최고로 큰놈은 몇이나 돼던가요?”
강노인은 눈에 힘을 주고 의미심장하게 팔을 뻣더니 아무말도 없이 팔관절을 지나쳐
어께에 다 다가선 곳에 손을 대고는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였다.
“그렇게 큰놈을 네 마리나 잡으셨어요?”
하고 짐짓 놀란척하며 대꾸를 했다.
“글세 이런 놈들이 나오더라니깐....”
강노인은 다시 붕어 크기를 팔로 가름해 보이며 말했다.
그대로 있으면 강노인의 이야기가 한없이 길어지리라는 걸 알기에
일단 강노인의 말을 적당히 잘라야 했다.
“그래요. 그 좋은 때를 다 놓쳐버리고 이제야 왔네요. 어르신 빨리 낚시대 까세요.
저두 빨리 미끼 넣어야 돼것네요. 오늘이라두 그런놈 한 마리 봐야 될껀데....”
하고 열심히 미끼를 끼우며 강노인의 시선을 피했다.
강노인은 그런 내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미루나무 아래 자전거 짐칸에 실린 자그마한 낚시짐을 가지고 왔다.
내 자리는 상류 초입부에 위치한 부들밭과 말풀대의 경계지점이었고
강노인의 자리는 내자리를 지나 논둑으로 30미터정도 더 걸어들어가는 말풀지대였다.
낚시짐을 들고 내자리 근처까지 온 강노인은 뭔가 더 자랑하고픈 것이 있는 사람처럼
내눈치를 살폈지만, 나는 짐짓 못본척 열심히 미끼를 바늘에 꿰고 투척만 하구 있었다.
강노인은 조금 아쉬운 기색으로 자신의 포인트를 향해 논둑길을 걸어갔다.
그런 강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입가에 언제부터 머물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즐거운 미속가 가득 머금어져 있었다.
강노인은 언제 보아도 미소가 지어지는 분이었다.
‘팔관절까지 손이 오면 월척급이니 어께까지 간걸보니 허릿급은 넘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도 모르게 입술을 비집고 튀어 나왔다.
탐색을 위해 두 대엔 지렁이를 나머지 대엔 낮이지만 새우를 미끼로 꿰어 놓았다.
역시나 수온이 오른 탓인지 지렁이를 꿰어 놓은 대에선 연신 잡어들이 건드는 방정맞은 입질이
계속 되었다.
두 대를 모두 새우로 교체 한후 잠시 낚시에 집중을 해보았지만 아직 큰놈들이 들어오지 않은건지
슬적 건드는 입질외엔 뚜렸한 붕어의 입질은 보이지 않았다.
버너에 물을 올리고 강노인을 바라보았다.
단촐히 세대만을 펴서인지 이미 세팅이 끝나 있었다.
양옆으론 두칸대 정도의 짧은 그라스롯드대 두 대,
그리고 가운데 3.2칸 길이의 카본대....
그 카본대 한 대가 강노인과 나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처음 그 저수지에 출조를 했던 삼년전 강노인은 지금 그 자리에서 짧은 낚시대 두 대를
펼쳐 놓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눈인사를 건네고 낚시를 편성하는데 강노인의 심기가 좋지 못한거 같았다.
자신의 영역안을 다른사람이 침범했다는 경계심이 었는지,
아니면 낯선이에 대한 반사적인 본능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헛기침이나 중얼거림으루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고 있었다.
그런 강노인의 심기를 읽어서 인지 낚시대를 펴면서도 여간 불편하고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류지의 모습이 너무나 강렬한 호감으로 다가왔던 탓에
그곳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대 편성을 마치고 사가지고 온 간식중에 커피와 빵을 들고 강노인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이것좀 드셔요.”
나는 최대한 살가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강노인의 경계심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강노인의 경계심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살갑게 묻는 질문에도 차갑게 툭툭 쏘는 말투로 짧게 대답했다.
강노인의 포인트를 살펴보니 짧은대를 편성해 놓은 곳보다 정면 말풀사이에 형성된 구멍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변에 둔덕이 있는지 갈대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고 한눈에 보아도 붕어의 회유로가
형성될만한 말풀사이 구멍이었다.
“어르신 저 구멍이 제일 포인트 같은데 거기 한 대 더 펴지 그러세요?”
하고 말했다.
강노인은 경계심 품은 눈빛으로 나를 올려보더니
“붕어가 거기서 놀기는 하는데, 나는 긴대는 않써....” 하고 대답했다.
나는 강노인의 말 끝이 약간 흐려지는 느낌을 감지했다.
뭔가 둘러대다 자신감이 약해진 모습.....
곁눈으로 살펴보니 강노인이 가진 낚시대는 짧은 그라스롯드대 두 대가 전부인듯 했다.
낚시를 오래한 사람이라면 그곳이 포인트라는 걸 모를리 없을 정도로 포인트 여건이 훌륭했다.
아마 강노인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에이 세칸대 정도믄 들어가겠는데요. 세칸대는 장대도 아니죠.”
“세칸대는 쫌 부족하고 3.2칸이 딱 맞게 들어간다구 지난번 다른 낚시꾼이 말하던데.....”
하고 대답하는 강노인의 말에는 경계심이 많이 풀려 있었다.
그 타임을 놓쳐서는 않된다는 생각이 번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르신 않쓰는 대가 한 대 있는데 한번 쓸수 있겠나 한번 해보셔요.
3.2칸대믄 그리 긴대도 아니여요.”
하고 말하고는 말릴틈도 주지 않고 차를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차 트렁크를 열어 실제로 쓰지 않고 있던 대중에서 3.2칸대를 꺼냈다.
그리고 삼절 앞받침대 하나와 뒷꽃을대 하나를 꺼내들고 강노인에게 돌아갔다.
강노인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어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서둘러 앞받침대를 꼽고 낚시대를 펴서 캐스팅을 해보았다.
찌가 정확히 원하는 포인트에 안착이 되었다.
나는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어갔다.
“딱 맞네. 이거 좀 낡기는 했어도 좋은 대여요. 않쓰는 대라서 버릴까하다가
아까워서 가지고 있었는디 잘됐네요. 어르신 쓰셔요.”
강노인은 어찌 해야 될지몰라 난처한 표정을 짖고 있었다.
“어쩐지 버리기 뭐해서 가지고 다녔더니 이렇게 임자를 만날라구 그랬나 봐요.”
그제서야 강노인도 내 심중을 느낀 탓인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좋은데 대 담굴려고 드리는 뇌물인거 아시죠?"
하고 강노인에게 미소를 보냈다.
강노인도 더이상 경계심을 갖지 않고 펼쳐놓은 낚시대를 만져보았다.
낚시대의 감촉을 느껴본 그의 입가에 흐믓한 미소가 번졌다.
그것이 강노인과 인연의 시작이었다.
p.s 이번엔 좀 길게 가볼까 생각중입니다.
한편한편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이해해 주셔요.
원하시는 핑크빛 무드가 없는 편이라 실망하실까 싶네요
밥두 뜸을 들여야 맛있쟎아요....ㅋㅋ
저수지의 그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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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31
다음편 학수 고대 합니다.....수고 많으십니다.
소시적에 여자들 좀 울렸겠습니다.
이리 밀고 당기기를 잘 하시니..ㅎㅎ
왜가리 목으로 다음편 기다립니다.
4짜를 강노인이 잡으시면?
아마 머리꼭대기까지 팔이 가야 하시것네요. ㅎㅎㅎ
잘보고 갑니다.
왠지 따사로운 봄볕이 묻어나는 글입니다.
ㅋㅋㅋ....어여 핑크 찐한것으로 넣어주세요.
궁금해라
덕분에 잘읽고 추천 흔적 남기고 갑니다
뜸들인 보리밥이 맛있듯
3편도 기다려지네요 ^,^
한편으론 기대를 가지는 시간이 길어져서 좋고요
정겨운 글 읽을 기회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주인공이 된 것 처럼 느껴집니다
너무 긴~~~시간 기다리게 하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잘 읽고갑니다
저도 낚시가방에 안쓰는 낚시대
몇대 준비해 다녀야 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사실감있는 글들이 사뭇 긴장되게 하는군요..
잘읽고 갑니다^^
어려서 백일장, 대학때 문학청년으로 신춘문예에
여러차례 도전한 이력이 있을거라 짐작가는데요^^ 맞죠
한편의 그림같은 소설에 낚시를 소재로하니 공감백배입니다.
다음편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