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이 그대 곁에 스밀 때.
월드컵의 열기가 식기 전이니 2002년 겨울일 것이다.
거리로 몰렸던 악마들이 눈 내리는 거리를 벗어나 빈한한 방안 가득 우글거리고 있었다.
나는 새꼬막처럼 이불을 칭칭 둘러쓰고 열린 틈으로 빨간불이 들어온 보일러 경고등을 바라보았다.
기름 없음. 기름 없음. 희망 없음. 희망 없음. 작은 led전구는 악마들의 경고를 전달하기엔 너무 힘에 겨워 보였다.
나는 난파했음. 난파했음. 이라고 독한 냉기를 품고 방안을 떠도는 것들에게 구조신호를 보냈다.
더 이상 내어줄 희망이 없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그들에게 무릎 꿇고 길게 모가지를 내밀었다.
하지만 어둠의 시선은 싸늘했다. 어린 아이들과 아내가 있는 가장의 난파는 용납되어지지 않는 죄악임에 분명했다.
붉은 깜박임은 차라리 마지막 남은 삶을 끈을 끊어버리라고 자꾸만 손짓했다.
아무리 통곡해도 품어져 나오는 건 입김 뿐, 더 이상 이 비참함을, 굴욕을, 분노를 들어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걸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구원을 찾아 세 살난 딸의 손을 잡았을 때, 가슴을 데여버린 차가움. 가슴에 신호등만한 빨간 경고등이 들어 왔다.
시간은 새벽한시 햇볕에 의지하려 버텨보기엔 너무 많이 남은 시간.
혼자 견디기에도 버거운 절망인데 그 절망 속에 쓰러진 이가 세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실에 나는 더 절망했다.
나는 절망하고 절망하며, 절망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동안 어둠에서, 세상에서,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싸늘한 한기로부터 유일한 방어막이었던 꼬막껍질 같은
이불을 열어 젖치고 세상 밖으로 뛰쳐 나왔다.
장롱에서 이불을 전부 끄집어 내어 아이들과 아내에게 단단한 갑을 씌우고, 가스렌지 위에 물주전자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 유일한 희망이라도 되는 양, 집안에서 유일하게 금전을 품고 있는 돼지 저금통을 들어 올렸다.
가볍게 들어 올려지는 저금통의 무게만큼 희망의 무게도 작았다.
하나둘 동전들을 고르면서 백색의 희망과 동색의 절망사이를 오고 갔다.
팔천칠백원. 내 손에 쥐어진 삶의 마지막 끈이었다.
주전자 주둥이에서 품어져 나오는 열기가 방안의 온기를 가져다 주기를 바라며 물이 끓는 주전자를 방안에 가져다 놓았다.
아직 깨지 않은 아내와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깊이깊이 잠들어 지금 눈앞에 놓인 절망 앞에서 울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나는 낡은 통을 한손에 들고 주머니에 팔천칠백원의 동전을 담은 체 눈 쌓인 새벽길을 걸었다.
세상은 온통 순백의 눈으로 스스로 고립되어 있었고, 흰 눈 위로 한발 한발 찍히는 내 발자국은 한없이 욕되게 느껴졌다.
불꺼진 주유소를 몇 개지나 걷고 또 걸었다.
불 켜진 주유소 연탄난로 옆에 나이 지긋한 노인이 졸고 있었다.
졸린 눈으로 귀챦은 듯 바라보던 노인은 책상위에 쏫아 놓는 동전에 잠에서 확 깨어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물기가 도는 것은 내 눈이 아닌 그의 눈이었다. 입을 열면 울음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얼마인지 말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그가 고마웠다. 묵묵히 등을 돌리고 동전을 세어주는 그가,
통에 석유를 다 넣을 때까지 끝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아주는 그의 등이 너무 고마웠다.
인적 끊긴 새벽길을 되집어 오며 밀려드는 오한에 무섭게 몸을 떨었다.
처음으로 체온을 상실해버린 죽음이 얼마나 차가운 것일까 하고 덜컥 겁이 났다.
한줌의 온기도 남지 않은 공간속에 영겁의 시간동안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너무나 쉽게 생각하던 죽음의 실체를 처음으로 옅본게 된것 같았다.
보일러에 기름을 붓고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내가 깨어나 애들의 이불을 여미고 있었다.
보일러 작동 버튼을 누르고 다시 이불을 흠뻑 뒤집어 썻다.
방에 불을 켜지 않은 아내가 고마웠다.
밝은 불빛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게 해준 아내가, 내게 한마디 말도 걸어주지 않는 아내가 너무 고마웠다.
때론, 절망하는 이에게 침묵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동정의 눈빛보다 너른 등이, 어둠이 더 위안이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누군가의 희망인 이상 내 생명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것이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뱀대가리처럼 고개 뻣뻣이 처들고 세상에 달려들던
내 모험이 좌절로 끝이 난 서른 넷의 겨울이었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내게 내려지는 세상의 형벌은 가혹했다.
딱 죽지 않을 만큼 작게 숨쉬고, 눈에 띄지 않게 납작 업드려 살아야 했다.
들뜬 이리떼마냥 눈 번득이고 나를 쫓는 죽음의 눈길을 피해 살아 남아야 했다.
절망이 그대 곁에 스밀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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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고 싶었으나 이 놈의 사이트,
에러가 나서 내 인생처럼 또 버벅대더군요.
덕분에 우리님과의 통화로 연결 됐구요.
지난 밤, 지난 시절의 한 지점에서 서성댔습니다.
암울하고 암담했던 암흑 같던 나날이었죠.
우리님의 글에 가슴이 아려 추억하기도 힘들더군요.
새벽 안개 속의 캐미처럼 아스라한 지난 날을 낚아 낸 조행기.
우리님,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 번 봅시다. ^^"
절망의 끝에서 피어난 동전 팔천칠백원의 희망... 시린 사연이네요. ㅠ
스물아홉에서 서른넷이라면...
늦지 않는 시기이기에 오히려 신께 감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이 허해 보입니다. 하긴... 겨울 같은 늦가을이니... ㅎ
(지금 내가 너무 가벼워 보이는 건 아닐까..)
경아가 눈속에서 마지막 몸부림 치며
가물거리며 눈을 한움큼
집어먹든 장면이군요,,
ㅎㅎ후벼 팝니다 그려,,
조행기하고 상관 없는 글 다 읽고 나면 왠지 낚인 기분이 듭니다.
그저옆에 내가 사랑하는사람이 잇다는것만으로 나는 내인생의여행을 그렇게 시작해다 대충배운기타를 무기로 새로운 정착을위해 낮선땅에 발을디딘것이다. 더이상은 고해성사같아 못쓰겟네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