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행기란을 보면 글잘쓰시고 띄어쓰기 잘하시고
정말 맛깔나게 글쓰시는 분들 많은대 감히 저도 마음이 울적한 조행기를 써보려 합니다.
올해 나이 37 결코 많은 나이는 절대 아닙니다.
제가 7살때 처음 서울 와서 tv에서 김일 선수의 박치기 재방송을 보고 이상한 상자에 놀랐으며
귤이라는 이상한 과일을 먹어본 그맛은 천상에 이런맛이 있었나 하는 놀라움 자체 였습니다.
저는 전남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집바로 앞은 방죽(심동지)이 있었으며 집뒤는 동석산이 있었죠. 하심동에서 상심동쪽 으로 향하다보면 방죽(심동) 중
간길에 물마름이 있으면 우물하나가 들어나는걸 봐서는 마을을 수몰시켜 방죽을 만든것으로 생각됩니다.
조금더 올라 상심동 초입우측에 멋들어진 소나무 가운데 무덤들이 모여 있었는대 어릴땐 그곳을 묘등이라 했었고 묫
등 좌측은 수영을 하던 골자리가 있었습니다.
묫등근처와 동석산 근처에서 꿩밥(?)을 캐먹곤했는대 울어머니가 너가 먹었언 꿩밥이 수백 수천만원대에 달하는 난초
종류라해서 동네가 꿩밥을 찾을수없을 정도로 초토화 되었다하며 뱀많던 심동은 뱀꾼들이 다잡아가 이젠 뱀찾아보기
가 하늘에 별따기라 더군요.
어머니 말씀대로라면 배고파 수시로 먹던 꿩밥이 수천개 이므로 제뱃속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뱃속임이 맞
는것 같습니다.
상심동고개 하나 넘어가면 바닷가 친척들이 있어서 바다 낚시를 할수도있는 천혜의 낚시
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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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집 처마밑은 통대나무에 요즘 낚시줄이 아닌 그냥 줄에 찌는 수수깡 그냥 대롱 대롱 달아놓고 봉돌은 쇠떵인지
돌덩이인지 달아 놓은 것이였고 살림망은 대나무 망태기였으며 파라솔은 예전 티비에서 나오던 암행어사 박문수의
수행요원이 쓰던 대나무로 만든 삼각형 삿갓이 전부 였습니다.
여기서 첨봤던 칸데라니 삐삐선이니 무슨말인지도 모릅니다.
낚시 형태는 민속화에서나 볼수 있는 그모습 그대로 였으니까요.
바다낚시를 마음껏 즐길수 있는 조건임에도 아버지는 낮에 농사 짓고
밤만되면 낚시대 두대에서 세대를 들고 어디론가 사라지시고 새벽녘에나 들어오시거나 아침이 되어서
망태기에 고기 몇마리 또는 볓짚에 고기 아가미를 연결한 붕어를 가져오셔서 직접 붕어회를 맛보게 해주셨죠
지금껏 먹어본 모든 회중에 붕어회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워낙 먹을것이 없어서 일까요? 아니면 정말
그맛이 일품이여서 일까요...
4살정도부터 틈틈히 아버지 따라 낮낚시를 다녔고 5살 정도에 하루는 아버지와 제가 밤낚시를 갔습니다.
밤낚시 방법은 모닥불을 피워 찌를 보는 방식이였지요...
찌맞춤 무시, 바늘 크기 무시, 봉돌무시, 미끼는 오직 두엄에서 캐었던 지렁이 10마리 이상 끼워 쓰기가 다였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가 대물낚시의 달인이 아니였나 추측해봅니다....^^
어떤 날은 무월광때 모닥불없이 찌만 보시고 고기를 많이 낚으신적도 있으신 기억을 되짚어보면 대단한 낚시의 고수셨음은 분명한것 같습니다.
아버지 낚시대는 칸수로따지면 3.2칸 정도의 길이. 저의 낚시대는 20안쪽의 낚시대 길이였던걸생각됩니다.
아버지 가 하시는 말씀이 "수수깡이 깜박깜박이거나 물속으로 들어가면 대나무를 들어올려라" 하셨습니다.
볕짚을 깔아놓고 낚시를 해서 그런가요... 잠이 옵니다. 한참을 자다 추워서 잠에서 깨어나니 새벽 안개를 헤치며 작은
아버지가 우리 곁으로 다가 오십니다 삼각 삿갓을 쓰시고 .... 한폭의 그림입니다.
저의 작은 아버지는 말을 못하십니다. 말이 오락가락, 정신이 오락 가락하신 장애를 가지신 분이시죠 ...
저는 중학교때까지도 작은 아버지가 장애가 있으신지 몰랐습니다. 그냥 말이 없으신분인줄 알았으니까요
항상 저를 보시고 부드럽고 인자하게 웃음 짓는 모습만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렇게 제 왼쪽은 아버지가 낚시대 두대로 수초옆으로 바짝 대를 붙이시고 저는 가운대 쪽으로 작은 아버지도 우측으
로 한대를 드리우는 모습은 그어떤 한폭을 그림보다 저의 가슴속에 가장 행볶한 모습으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동이 트며 안개가 서서히 걷힐 무렵 저의 수수깡에서 찌가 살살 움직이더니 살짝 들어가서 위로 쏙!하며 솟구칩니다.
챔질이 뭔지 도무지 모르는 저는 가냥 냅다 대나무를 후려쳤지요... 힘이 모잘라 작은 아버지가 같이 챔질을 합니다.
와~ 제가 본 물고기 중에 최고 큰녀석이 저의 얼굴쪽으로 날라오는걸 아버지가 손으로 막아 잡으시네요...
"아따 아그가 힘도 좋소 허허허~~~" 하시더니 붕어 엄청 크다며 제팔 손끝부터 가슴까지 닫을 정도로 엄청나게 큽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5짜 붕어가 더되지요. 그놈이 큰눈으로 저를 처다보던 생각을 하면 아직도 뜨끔합니다.
"요놈은 영물이니 놔줘야 되것다" 하시며 그놈을 그냥 놔주시며 회처먹을 준척 정도의 붕어만 2,3마리만 챙겨 집으로
왔습니다.
저의집앞또랑 은 비가 오면 붕어와 잉어 가물치들이 넘처났으며 심동의 물이 흐르는 보에서는 장마기간 물이 흐를때
망태기 갖다 놓으면 보로 넘어오는 미꾸라지 원없이 잡아 통미꾸라지 탕을 원없이 먹었습니다.
집앞 또랑은 아마도 봉암지에 연결되었거나 심동지에 연결된 수로로 생각되는대 폭이 1m터도 되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붕어는 횟감용정도로만 취했으며 잉어나 가물치를 최고로 쳤었지요.
요즘 들어 제가 항상 잡고 싶어하는 월척급 4짜급 붕어는 그냥 처다도 보지 않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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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만 보면 아버지와 제가 사이가 좋은것 같이 느껴지시죠? 대학 3학년때 아버지 돌아가실때 속으로 잘죽었다 웃었던
사연이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 제작년이전에 길가에 낚시하는 분들 뵈면 " 미X놈들 할짓이 없어서 저지X들이니 쯧쯧쯧...." 하며
살다 어느날 문득 아버지가 몸서리 치게 그리웠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던 것이 낚시... 그래서 혼자 독학을 하게 되어 지금 대물 낚시를 하고 있습니다.
작품조행기에 진도 봉암지가 나왔더군요... 사진을 보니 심동지도 나와있구요.... 제가 아버지와 그추억을 가지고 있
던 곳이 봉암지 였는지 심동지였는지는 잘모릅니다. 하지만 제기억속의 낚시터는 아니였던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제가 낚시하던 추억이 제가 살면서 가장 행복한 추억이여서 그기억이 새록 새록 나서 두서없는
추억의 조행기 아닌 조행기를 써보고 싶어 써봤습니다.
사진속에 동석산, 동네 아그들과 수영하던 뱀많던 심동지 상류 골자리 사진에는 없지만 하심동의 교회와 엥두 나무 한
그루 있던 우리집, 정미소 등이 무지 생각 많이 납니다.
지금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향과 모든것이 끊겨 서로 왕래는 없지만 친척들이 아직도 그곳에 사십니다.
특히 하심동의 우리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는 번들래(?)아주머니(할머니)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저를 비료 포대 깔고
받아주신 옆집 순미 아줌마...
저도 지금 아들이 8살이며 가끔가다 낚시를 데리고 다닙니다.
이래 저래 얘기도 하고 먹을걸 엄청 사주며 선물 공략하여 데리고 다니곤 하죠.
혹시나 제가 느낀것 처럼 울아들네미도 많은 추억속에서 아빠와 낚시다녔던 기억이 최고의 추억이 되어 줄수 있으리
란 저만의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보고싶은 우리 아버지, 작은 아버지 ... 아버지 살아계셨다면 주말마다 차에 모시고 낚시 다녔을 텐데.... 살아
계실때 효도 못한 마음이 너무 사무치는 밤입니다.
조행기 올려주신 operion 님 잊었던 추억을 되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서없이 써내려간 제글 읽어주신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진도 심동 방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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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아들이 있는데 지금은 엄마보다 더 잘 따르는데 커갈수록 저와 같아 질까봐 어떨땐 두렵네요..
맘은 안그러는데 ...... 과연 아버지와 아들 다 저와 같진 않겠죠...
마음이 찡해지는 글 잘읽었습니다
언제 한 번 가셔서 아버지의 숨결을 느껴보세요.
잘 읽었습니다....
나눠주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찡한 느낌을 받습니다.
아련한 추억이 많은 것이 살아감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 추억 먹다보면 새로운 각오를 다질수 있다고 하니...
''''' 좋은 추억 많이 가지고 사는 사람은 다들 잘 된다 ''''' 라는
카더라 통신이 있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저를 내려다 보고계실 아버님이 생각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뜨겁게 추천한번 눌렀습니다..
저의 집과 지척에계시고 연배도 비슷하시니
언제 쇠주나 한잔하시지요..
울아들도 8살입니다..
정갈한 글도 좋지만..... 이렇게 무뚝뚝하지만 속내가 느껴지는 글도 좋습니다.
글내용에 붕어회를 자주드신듯해서.... 슬쩍 걱정이 되는군요. ^^;
잘 읽었습니다.
한순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는 대목도 있네요
모든 걸 뭉뚱그려,
지금 아드님과 낚시가신다니
그걸로 흐뭇합니다.
저도 아버지와의 낚시 추억이 젤로 소중하고
그 추억 살리며 일년에 한 두번이라도 같이 가고 있습니다.
점점 출조 횟수가 년년이 줄고는 있지만...
내년에도 부자간의 즐거운 출조가 이어지길 기대하며 안출하세요.
지게에 나누어 지고와서 외가집 늘어놓고 마당에서 나누던게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엄청나게 크고 많았던 붕어, 메기, 참게, 새우 등...,
고기에 딸려왔던 장어는 외할아버지께서 삶아서 돼지에게 줬지요.
제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
이제부터라도 제아이들에게
좋은추억거리를 만들어줘야 겠네요 ~^^
아버지,,,
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난 후에 더 부르게 될까요???
아버지,,,
한번만이라도 뵙고싶습니다,,,,
지금은 잊혀져간 한세대전 우리 선인들의 낚시도구와 채비
한폭의 수채화 같은 잔잔한 그림이 떠오르게 하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잘 읽고 갑니다.
마지막 문단 "아버지 "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전 아직 생존해 계십니다
잘 해드려야 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하고 다짐함니다
다시한번 깨우쳐 주신 님게 감사드리고요
오늘 아버지 얼굴 보고 이렇게 외치고 십습니다
사랑합니다 :아 버 지
낚싯대 빙빙 돌리던기억이 아련하네요..
좋은글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