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중층낚시와 내림 낚시기법을 배우다가 그만두었습니다.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올려주는 짜릿한 찌맛의 매력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젊었던 시절까지, 마릿수 조황이 최고인 줄만 알았던 낚시가
이제는 단 한 번의 멋진 찌올림이 기다려지는 낚시로 취향이 바뀌는 것을 보면
연륜이 쌓였다기보다 욕심을 하나씩 버리는 진정한 꾼의 길로
한 걸음 다가서는 듯 느껴진다면 지나친 교만이겠지요.
아직은 사짜는커녕 허리급도 낚지 못한 허접조사라는 아쉬움보다
마흔 이후 제대로 된 밤낚시 한 번 못한 아쉬움이 더 클 것입니다.
그리고, 주로 저녁 시간 짬낚 독조를 즐기다 입질 한 번 못 보고 돌아설 때의 허탈함보다
새벽녘 들어올 것 같은 기대감을 뒤로한 채 일어서야 하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아 있지요.
그러나 그 또한 욕심이라 생각하며 다음 낚시가 더 기다려짐이 익숙해진 요즘입니다.
씨알 좋은 준척급이나 월척의 찌올림,
몇 시간을 기다리거나, 며칠을 기다려, 혹은 몇 날을 기다리며 맞이한 찌올림,
그때마다 미세하거나 확연한 차이의 또 다른 찌올림의 묘미,
결코 지울 수 없는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 찌맛...
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조급증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짜릿함으로 흥분시켰던 지난 찌올림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너덧 대의 대를 마음에 드는 포인트에 펼치고
그중 제일 기대를 거는 한두 대에 더욱 집중을 하게 됩니다.
예측한 그 자리에서 입질을 받으면 그 기쁨은 배가 되고
의외의 자리에서 나오면 아직도 한참을 더 배워야 함을 깨달으며
또 다른 하나를 배울 수 있음에 미소를 짓습니다.
늘상 저녁 짬낚시이다 보니 거의 대를 피면서 케미를 꺾습니다.
오늘은 어떤 녀석이 얼굴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에
눈빛은 케미와 함께 빛이 납니다.
까아만 평면 위에 점점이 박힌 찌불은 어둠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제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는 지울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근한 벗이 됩니다.
벗님네 같은 찌불을 바라보며 옛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지요.
아! 잠깐만요.
입질, 입질... 미세한 입질이...
에이, 잔챙이 잡어가 깔짝거리고 지나 갑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님,
하릴없는 담배 연기만 내뿜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한 마리만, 씨알 좋은 한 마리만 올라와주면 좋은데...
아! 그런데,
찌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이 느낌은...
작은 놈은 아니고 분명 씨알 좋은 놈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모든 동작은 멈추어지고,
세포마저 닫혀 버리는 긴장감이 그놈과 함께 찾아듭니다.
먹이 사냥을 포착한 맹수의 눈빛처럼 시선은 온통 찌에 꽂힙니다.
찌불은 육중하게 깔린 어둠을 가르기 어려운 듯...
아주 힘겹게 조금씩 조금씩......
순간 숨이 멎습니다.
그리곤 침을 꿀꺽 삼킵니다.
그래, 올려 주라. 조금만 더...
조오금마안 더어......
애간장은 더욱 타들어 가고...
그 짧은 시간은
생명탄생을 위해 겨우내 얼었던 땅에서 숱한 인고의 시간을 보낸
새싹의 숭고함이 드러나는 응축된 찰나의 시간이었으나,
가녀린 뿌리를 지탱하며 힘겹게 서서히 뚫고 올라오는 순간은
태곳적부터 이어져 온 억겁의 시간과도 같았습니다.
한 마디 올리고는 힘에 버거운 듯 숨을 고릅니다.
산고의 고통을 감내하듯 다시 한 번 힘을 내라고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고
이 녀석은 제 심정을 읽었는지 사력을 다하여 마지막 힘을 쏟습니다.
무겁게, 아주 천천히 밀어 올리며
알을 깨고 나와 아프락사스를 향하는 새의 절박함으로
어둠을 뚫고 서서히 하늘 끝 정점을 향하고...
아~~~!
가벼운 신음소리와 함께
언제나 신혼 첫날밤 같은 말할 수 없는 짜릿함이 몽환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래! 지금이다!!
'찌리ㄹ~리잇~'
손끝으로 짜릿하게 전해오는 붕어의 입맞춤
아~!
이것은 어린아이의 볼 키스가 아닌
첫 키스의 달콤하고 황홀한 바로 그 맛입니다.
결코 질리지 않는 늘 처음 느낌 같은 상큼하면서 찌릿찌릿한 맛,
한 번 맛보면 결코 헤어날 수 없는
뇌리에 아주 깊게 각인되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바로 그 손 맛!
바르르.ㄹ.ㄹ.ㄹ~~~
쉽게 안기지 않으려고 앙탈하는 첫사랑 그녀처럼
더욱 애간장을 태우다가 몇 걸음 휘~익 돌아서 버립니다.
안길 듯 안길 듯하지만, 쉽사리 허락지 않고 은근히 튕기는 녀석,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짜릿함은 더하여 가고
마지막 남은 힘이 포물선 그리며 낚싯줄을 타고 초릿대로 쭈---욱
그리고 손끝으로 강렬하게 전해집니다.
이내 몸 전체를 휩싸고 도는 감전된 듯한 전율로
클라이맥스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휴~~~~~
안도의 긴 한숨을 몰아쉬며,
님네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띱니다.
기다림에 대한 보답, 알 수 없는 성취감으로
온갖 시름을 잊어버리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입니다.
한낱 미물에 불과한 붕어지만
제 추억과 함께 언제나 변하지 않는 즐거움을 주는
고마운 붕어,
예쁜 붕어입니다.
찌올림의 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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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가 축축합니다
책임지이소........
늘 강령하세요~!!
참고로 전문가적 입장에서 볼때 채비가 좀 무겁지 싶습니다,,,
쿠하하~♥
지는 이렇게 끝납니다
붕어를 너무 힘들게 잡으십니다>•<
♥ 삶의미학님, 논문 발췌하셨는감유ㅠㅠ 한 줄 읽으며 10분은 생각했심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뵈야죠.
♥ 달랑무님, 님은 채비가 무거우나 가벼우나 매 한가지일터…. 늘 '꽝'인거 잘 압니다.^^
♥ 지.나.가.는.꾼
지나치면 될 것을 무엇이 궁금한가요.
나부끼는 바람에 살짝이 물어보던지
가을빛 한 자락에 조용히 묻어두던지
는개비 내리는 날 물가로 나가보소
꾼이라면 세월속에 붕어만 보면될 것을
※는개비: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
늘...돌아서면 찌올림은
아쉬운 추억인 저는
한참 멀었습니다.^^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낮에 꾸어던 꿈의 대물을 다시
한번 더 만날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길 소망하며 안출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물나그네님, '어떤 만남을 읽고 바로 댓글 쓰려고 하였습니다만 참 많이 망설여지더군요.
몇 번의 갈등 속에 차마 쓰지를 못하였습니다. 쓰신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풍운유수(風雲流水) / 곤륜선인
달빛이 없이 흐르는 물은
너무 서럽다
별빛이 없이 나르는 새는
너무 외롭다.
구름따라 떠도는 바람처럼
그렇게 또 길을 떠난다.
퍼렇게 멍든 바위 길을 막아도
혹여 부서지는 포말소리 들릴까보아
무심한 산자락을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서 간다.
읽는듯 합니다
새해부터 자알 읽고
그리고 음미하고 갑니다
새해에도 덩어리 하시고
안전운전하시길 ㅆㅆ
집중.손아귀에 힘이들어갑니다
어찌 이리 생생하게 쓰실수있는지
대단하십니다
등단하셔도 되시겠어여
숨막히는 긴장속에 온몸을 감싸는 설레임.온몸을 떨게하는흥분
절정을 향해 치달려가는 클라이막스
대물 참붕어님이
빤쮸를 버릴만두 합니당
ㅋ
님께서도 올해는 어복충만하여 기록 갱신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두개의달님, 님의 대명을 보면 경포호의 달이 생각납니다.
하늘에 떠 있는 달, 바다에 떠 있는 달, 경포호에 내려앉은 달,
술잔에 담긴 달, 그리고 앞에 앉은 임의 눈에 맺힌 달....
늘 따뜻하신 댓글에 고마운 마음입니다.
♥ 一當百님, 반갑습니다. 님의 말씀은 채찍으로 듣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더욱 분발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일께요. 감사합니다.
마릿수나 사이즈로 낚시를 즐기시는 분들도 있지만 이렇게 찌올림 맛을 위해 낚시를 즐기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때의 순간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소중한 댓글 고맙습니다.
굼실 굼실 솟는 찌맛의 황홀함에
흠뻑 빠져 봅니다.
올 해 이 글의 내용과 같은 찌 맛을
우야든동 보고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글을 읽는동안 지난 가을 만났던 찌올림이 생생히 떠오르네요..
짜릿한 찌르가즘.. 감사합니다 !!
가까이 계시면 동출이라도 한 번 했으면 좋으련만…
♥ 숲을이루다님, 찌올림 맛은 보아도 보아도 늘 새롭게 다가서지요.
늘 보아도 결코 질리지 않은 짜릿한 맛, 그래서 '찌르가즘'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 ⌒
신기합니다...
조행기방에 오래간만에 왔나보네요.ㅠ
자주 좀 오세요~*
낚시 안가고 님의 글로 대신해도 될듯....
잘 읽고 갑니다
소설은 자신 없고요, 님께서도 추억의 조행기 한 번 올려주시면 안될까요?ㅎㅎ
♥ 독도는울땅님, 반갑습니다.⌒ ⌒
저하고는 다니시는 방이 달라 처음 뵙네요. 칭찬 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