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쇠다리
경기도 광명시 철산1동
유년의 다리 아래를 지나
강물은 흘러갑니다
서울시 강서구 염창동
염창교를 향해
한강으로 흘러갑니다
오래된 다리 난간에 기대어 나는
저멀리 사라지는
물줄기를 바라봅니다
윤슬로 반짝이는 수면에는
어린날의 노을같은
따뜻한,아쉬운,그리운 것들이 떠가고
그대와의 사랑과 이별처럼
포근하고 애틋한 것들이 흘러갑니다
늘 기다리는 그대의 세월은
지금 어디쯤 흘러가고 있는지요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은
언제 쯤이 될른지요
찬바람 불어 허전한 어느 가을날
나는 뱀쇠다리 난간에 기대어
그대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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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대를 잡은지 어언 46년이 지나간다.
나는 지금 낚시의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까?
잠시 짬이 나서 납회후에 낚시가방을 정리하다가 삶의 여정을 함께 해 온 나의 낚시, 그 첫번째 낚시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1975년 중학교 2학년 때인 늦가을의 어느날, 일요일로 기억되는데 꽂이식 대나무 낚시대 2칸 짜리를 2대 사서 안양천 둑방 너머 뱀쇠마을 둠벙에 오색찌를 드리운 것이 생애 첫 출조였다.
당시 내가 살던 서울 구로1동 구로역 부근의 동네에서 그 곳 둠벙까지는 꽤 먼 거리여서 자전거를 타고갔다.
자전거의 뒷 짐칸에 낚시대2대와 받침대2대를 갑바천으로 싸서 끈으로 묶고 그위에 대나무 바구니를 실었다.
동립산업을 지나 고척교 검문소에서 좌회전 안양천 둑방길을 달려 지금은 사라진 옛날의 뱀쇠다리를 건넜다.
추수가 끝난 논 가운데에 100여평 정도의 둠벙이 있었는데 가장자리에는 부들과 갈대가 자라고 수면 전체를 마름이 덮고 있었다.
수초 사이로 물방개가 오르락 내리락하고 물장군,소금쟁이 같은 수서 생물도 많이 보였다.
마름 사이의 빈 공간에 지렁이를 바늘에 꿰어 던져두면 그림처럼 오색찌가 올라와 수면에 드러 누었다.
낚시를 처음 해보는지라 어설프게 천천히 낚시대를 들었는데 손바닥 만한 이쁜 붕어가 제법 힘을 쓰다가 달려 나왔다.
가끔씩은 크지 않은 메기도 나오고 가물치며 동자개가 손님처럼 찾아들기도 했다.
추수가 끝난 넓은 들녘에는 가을 햇살이 눈 부시게 부서져 내리고 한 해의 행복한 비행을 마무리하는 잠자리들이 그 공간속을 느리게 떠다니고 있었다.
눈둑가에서 시들어가던 들국화와 코스모스,
찬 바람에 섞여 코 끝을 스쳐가는 낱알갱이 냄새,
보푸라기 처럼 일제히 떠올랐다 내려 앉던 참새떼, 먼 하늘에 구름을 따라 흘러가던 철새들의 행렬, 노을에 물드는 수면에서 불어 오던 물의 향기....
...아....콧날이 시큰했다.
낚시가 너무 좋았다.
그해 늦가을, 아무도 없던 들녘의 연못가에서 경험한 혼자만의 낚시는 가슴 시린 고독감과 달콤한 자유의 정서를 나에게 선사해 주었다.
그 날 대바구니에 수초와 함께 담아온 붕어는 어머니가 깨끗이 손질해서 맛있는 조림으로 저녁밥상에 올려 주셨다.
어디서 이렇게 귀한 것들을 많이 잡아왔느냐며 어머니의 반가운 칭찬도 들었다.
먹을거리가 넉넉치 않던 시절, 붕어는 아주 훌륭한 반찬거리였다.
아버지의 흐믓한 술안주거리기도 했고.
오늘은 벗님들과 어제 잡아온 붕어로 맛있는 찜을 만들어 함께 한잔 하기로 했다.
낚시 후에는 잡은 붕어를 항상 방생하지만 특별히 붕어를 좋아하는 나의 오랜 벗들을 위하여 보시하기로 하였으니 이것도 낚시가 가지고있는 큰 덕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 오늘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가을 붕어찜에 소주 한잔하며 유년시절의 추억에 빠져볼까?
첫낚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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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추억이 아련하네요~~감사합니다 ^^^
님의 글은 한편의 영화네요 만남 이별 슬픔과기쁨 과거와 미래 등등 모두 글에 녹아있네요
아침 일찍 부터 님으 글을 찿아 읽느랴 고생이 많았읍니다
너무 좋은 글 감사히 읽고 감니다
돌아보면 긴세월을 오직 한가지 취미로 살아왔지요.
물가에 앉으면 마음이 참 평온했어요.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과 향기도 자연의 깊은 정감으로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구요.
수많은 추억과 인연들.
미곰님처럼 마음 깊이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허접한 글이지만 올리는 즐거움이 있네요.
늘 건강하시고 즐낚하세요^^~
공감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돌아보면 옛추억들이 힘겨운 세상을 이겨내는데 큰 힘이 되어주는것 같아요.
늘 건강하시고 좋은 추억 많이 만드는 행복한 낚시하시길 바랍니다^^~.
여름에는 큰 홍수가 나서 방문턱까지 물이 찰랑거리고. 칠십년대 초반에 목동에 살았었습니다.
여름이면 큰 연못 골창에서 쪽대로 미꾸라지 잠자리 잡고 겨울이 되면 스케이트 날 갈아주던 아저씨가 어김없이 찾아오고
여름이면 언덕너머에서 양쪽어개에 긴막대끝에 방개떡상자 달아맨채로 떡 팔고 다니던 떡장사 아저씨 기다리던 곳
겨울에 얼면 썰매타던 곳. 동네아이들은 염창초등학교까지는 걸어서 다녔습니다.
이제는 아파트 숲이라 어디인지도 찾지도 못할 테지만 올리신 글 보고 잠시 생각나 적어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57년생이니 님보다4~5살정도 차이날것 같습니다 10살정도(국3년)때부터 그곳에서 낚시를 했더랬죠 ㅎㅎ
낚시라고 해바야 학교마치고 오는길에 구로동에서 낚시가게 들러 낚싯줄 5미터 정도사고 돈 남어면 바늘 몇개사서 적당한 길이의 대나무
잘라 다듬어서 줄메고 찌는 수수빗자루 에서 한뼘정도 되게 잘라 가운데 칼집넣어 줄에끼우고 봉돌은 쇠조각이나 작은 돌 주워서 했어도그때의
순진한 붕어들은 잘 물어 주었죠 까맣게 잊고 살아는데 님이 저의 추억을 살려 주었네요 감사합니다
안양천 부근에 사셨군요.
구로동,고척동,목동....
80년대 개발되기 이전에는 안양천 변 양안에 판자집도 많았고 가난한 변두리 동네였지요.
님이 말씀하신것 처럼 하천 주변의 연못과 웅덩이에서 물고기 잡고 새도 잡고 말잠자리 잡으며 놀던 생각이납니다.
방개떡 장수,자전거 타고 다니던 이발사 아저씨,엿장수,...
우리 어릴때 추억이 다 정겹네요.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카님.
세상에...^^~
뱀쇄마을 사시던 선배님이셨군요.
저는 뱀쇄다리 건너 벌동네에 살았어요.
당시 행정구역이 서울 영등포구 구로동 690번지였죠.
뱀쇄다리 건너면 철산리,모세마을,뱀쇄마을 산골동네였죠.
아궁이에 불때고 농사짓던 집의 친구들도 있었어요.
제가 낚시하던곳을 기억하시니 너무 반가워 눈가가 시큰하네요.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향복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즐낚하소서^^~
저는 중학교때 처음으로 구로동 무역 박람회를 철길건너 정말 먼길을
구경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낚시를 늦게 시작하여 오류동에 물이 시커먼 광산밑에
저수지에 낚시갔던 생각이 어렴풋 합니다.
그 저수지 이름은 전혀 기억에 없구요.
그나마 두발로 내짐들고 낚시갈날이 얼마나 남았을지.....................
첫 키스 처럼 짜릿하죠
첫 낚시에 47.7cm 낚아서
지금 까지 환자로 살아요
장마 때면 양평동과 철산리를 연결해주는 나무다리인 오목교가 잠기고 아주 작은 때배를 타고 건너야 했던 때였지요...
그렇게 깨끗했던 물이 얼마 후부터 갑자기 오염되기 시작해서 거의 똥물이 되고 악취가 진동하게 되었는데,
고기들이 숨을 쉬지 못해 주둥이만 물밖으로 내밀고 뻐끔뻐끔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들려오는 소식이 안양천에 아이가 빠져 실종되었단다...
아주 부자집 아들녀석인데 아이들과 함께 매미채를 가지고 고기를 건지다가
마침 커다란 잉어가 펄쩍 뛰어 오르는 것을 보고 매미채를 휘두르다 그만 안양천에 빠져 휘쓸려 갔단다...
시체를 찾지 못했는데, 시체만 찾아주어도 엄청 큰 사례를 한다더라...하는 소문이 돌았지요...
그날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함, 함께 자취하던 형님들과 방에 누워서 ...
그때는 한 달에 두번 쉬는 것도 감지덕지 한던 때...
주일에도 특근이라 하여 출근을 해야 하는데,
제가 형님들~! 우리 내일 출근하지 말고 그냥 그 얘나 건지러 갑시다...했지요...
그때는 네분의 형들과 함께 자취를 했는데, 형들이 시끄러 임마~! 그냥 잠이나 자...하고 핀잔을 해서
에이 아쉽다 그냐ㅕㅇ 우리가 한줄로 딱 바닥을 훝으면 금방 찾아낼텐데 하면서 그냥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이 되니 갑자기 형들이 야~! 그냥 오늘은 쉬자 합니다.
그래서 그럼 오늘은 빨래나 하자고 해서 모처럼 속옷까지 다 빨아서 발래줄에 널어 놓았는데...
그때 속옷도 몇개 없던 가난한 시절이라 몇개 안되는 속옷을 모두 빨아서 널어 놓고...
흐흐~! 완전 노 펜티.로 바지만 입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형들이 뒤 개천으로 고기 잡으러 간다며 양동이를 들고 모두가 나가네요...
어~! 나도 가요..하면서 따라 나섰는데...
형들이 얀마 너는 그냥 집에 있어...하는 것을 부득불 우기며 따라 나섰는데...
그때도 아이들이 매미채를 들고 물 위로 떠오른 고기들을 건져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한 형님이 야 그 매미채줘봐 하면서 고기들을 몇마리 건져 주고 있는데...
갑자기 저 아래쪽 한강쪽에서 안양쪽으로 50대쯤 된 아재가 막 뛰어 오면서 사람이 떠내려 온다...
하며 소리를 치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물살이 상당히 빠르게 한강쪽에서 안양쪽으로 흐르고 있었는데...
정말 강 가운데로 사람이 떠내려 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시는지요?
보통 사람이 죽으면 여자는 드러누워서 뜨고 남자는 엎드려 뜬다는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저도 잘 모르지만 어쨋건 떠내려 오는 것은
머리 꼭대기와 발가벗겨진 궁댕이만 ㄷ더서 흘러오고 있었지요...
그때 형들이 하는 말이 야 저게 어제 그 아이인가보다 건지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두 형들뿐,
그런데 그 형들도 뭔가 무서운 듯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영에는 자신이 있었던 제가 얼른 아 빯리 가서 건져요...하고 재촉하며 주변을 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 놓고 바지를 벗었지요...
후후..당연 완전 벌거숭이....ㅋㅋ
하지만 아무도 없으니 용감하게 강 가운데로 돌진...
가서 붙들고 보니 어린아이...
시골에 있는 동생들 생각이 불현듯 들어 옵니다...
그래서 물살이 거셋지만 기를 쓰고 그 아이의 시신을 붙들고 물가로 나왔지요...
그리고 막 물가로 그 아이를 들고 나오려는데...
제가 그 아이의 팔을 잡고 다른 형님 두분이 발을 들고 물밖으로 나오려 하는데...
그때 물때가 잔뜩 묻은 그 아이의 팔이 미끄덩~! 하면서
그 아이의 꼭 쥔 손이 내 팔에서 미끄러지는데,
그 아이의 손톱이 내 오른 쪽 팔목을 쓰윽 스치고 미끄러지는데...
정말 소름이 오싹했었지요...
꾹 참고 물밖으로 그 사체를 들고 나오려 하는데...
허걱~! 웬 사람들이 새까맣게 몰려 있습니다...
그 아이의 사체를 건져오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이제야 보니 ..
사람들이 수십명이 몰려들어 구경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벌거벗은 저는 물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형 ~! 빨리 이 아이 저쪽으로 데려가요...
소리를 지르니; 그때서야 형들이 내 곤란한 사정을 알고 저만큼 들고 가고...
사람들은 그 사체를 따라 우르르 몰려 갔지요...
그 틈을 타서 얼른 나와 옷을 입으니 형들이 하는 말 야~! 이제 우리 횡제한거다...
야 몇달치 봉급은 넉넉히 받게 될거다 합니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조금 지나니 꿈에 부풀어 있던 형들의 안색이 별로입니다...
알고보니 그 아이는 재벌집 아이가 아니라 근처 고물상집 아이라네요...
형들의 푸념소리에 고향의 동생들 생각이 다시 난 제가 에이~!그냥 좋은 일 햇다고 생각해요.했더니 그러잡니다...
그리고 잠시후에 형들은 그분들에게 목욕비를 받아왔는데..
제 기억에 2000원이었던가? 200원이었던가?
아리송 한데...
하여간 그 돈은 댓병 소주 몇병하고 수박 두덩어리....
그리고 세수비누두어장 쯤은 살 수 있는 정도 였지요...
그렇게 소주와 과일을 사서 제2한강교 쪽으로 넘어간 우리는 한강물에 첨벙 뛰어 들었고...
난 한강에 들어 갔다 나왔다 하며 팔목을 닦고 또 닦아도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피가 나도록 닦아 대었지요...
50여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때의 느낌은 생생하기만 합니다....
그때 함께 똥물 속에 들어가 함께 그 아이의 사체를 건져왔던 왕눈이 형이나 수철이형은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지...
잘 살고 계시겠지요....
막내가 많이 보고 싶네요...형님들...
전 아버지께서 어렸을때부터 자주 데리고 다녔던 곳이..
물왕리,방농장,보통리,고잔지,고삼지,송전지등등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저수지명)
많이 데러고 다니셨던 기억이나네요,,,
심지어 지금의 잠실 롯데월드호수...그때는 이름이 없었던거
같은데 온통 비포장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