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집이 목포 못미쳐 임성역 근처 시골이었습니다.
아직 시골살림들이 정리되지 않아, 국민학교 6학년때 저만 광주로 전학을 하여
이모님댁에서 살며 도회지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어느정도 적응해가던 무렵
반장이던 녀석이 제게 "너희 시골동네에 저수지 있어"하고 묻습니다.
"당연히 있지 저수지없는 동네가 어디있어?"하고 대답했습니다.
"고기 많아?"
"가끔 청년들이 그물치는데 엄청나게 큰 잉어들도 잡혀?"하고 대답하니
"그럼 낚시 가자?" 합니다.
이렇게 하여 초가을 "낚시원정대"가 꾸려집니다.
시골에서만 살던 촌놈이라 문화가 너무 달랐습니다.
일단 부모님들이 하룻밤 여행을 허락한다는 것을 이해할수 없었구,
그당시 고가품이었을 텐트, 버너, 코펠, 낚시가방을 선뜻 가지고 갈수 있게 허락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애 부모님이 교수님이었는데, 상당히 생각이 깨어 있던 분이었던거 같습니다.
처음 가기로 한 애들은 저포함해서 여덟명, 결국 부모님 허락을 받아낸 5명만이
밤낚시 출조를 했습니다.
30년전 국민학생 다섯명이 광주에서 목포까지 밤낚시 출조를 했습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몰랐던 시골아이는 낚시를 가게 되면 저의 시골집에서 잠을자고
밥을 먹고 아침에 낚시를 가는 것인줄 알았습니다.
임성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서 부모님께 인사드리구 친구들이 저수지를 가자고 합니다.
짐을 다 놔두고 가자고 하니, 다 가지고 가야된다구 합니다.
집에서 꽤 거리가 되는 저수지까지 걸어가서, 상류쪽 평편한 곳에 도착해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가방을 열어 천을 펼치구, 긴막대기를 조립하구 애들끼리 한참 부산을 떨더니
텐트가 펴집니다.
시골서 집단을 쌓아서 본부나 만들던 시골아이에게는 놀라운 광경이 아닐수 없습니다.
안을 들여다 보니 생각보다 넓고 좋습니다.
반장은 능숙한 솜씨로 물가로 가서 낚시가방을 열더니 낚시대를 세팅합니다.
으까번쩍한 낚시대와 장비들이 낚시가방에서 쏫아져 나옵니다.
대나무 낚시대로 영상강 하구쪽에서 운저리(망둥어)나 잡던 시골아이는 모든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생전 처음본 석유버너, 부피는 적은데 여러개의 냄비와 그릇들이 쏫아져 나오던 코펠
그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동네 친구며, 형, 동생들이 몰려옵니다.
텐트속에 들어가 보기도 하구, 이것저것 신기한듯 기웃거립니다.
시골친구들에게 의기양양한 생각도 들구, 광주 친구들에게 챙피한듯한 느낌도 들구
묘한 느낌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밤낚시는 해질녘에 겨우 두어시간 했을까 싶습니다.
친구녀석도 아빠따라 낚시하는거 눈으로 본정도인지
어설프게 낚시대 던진다구 근처 나뭇가지에 다 걸리구,
떡밥은 맞게 깬건지 던지다 다 떨어져 나가구
나중에 지쳐서 낚시포기하구 텐트안에서 렌턴켜고 놀던 기억이
제 첫밤낚시 입니다.
한참을 텐트안에서 놀다 소변누러나간 친구가 나와보라구 소리쳐서
밖에 나가보니 밤하늘이 온통 별천지였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삼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때 그친구들은 모두 연락이 끊겼지만
어디선가 멋진 조사로 변해 밤을 하얗게 새우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고싶은데 이름도 얼굴도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들도 그때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거여요.
첫번째 밤낚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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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님두 이제 나이가 들어가시는 모양입니다....아련한 추억이 그리우신거보니....
자주 올려주세요....잘읽구 갑니다....^^
지금도 옛날에 머물러 있는 중늙은이가 아닌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때도 있네요~
이직 여물지 못해서 어르신 흉내 내보나봅니다.
붕어성아님 말씀도 마음한켠에..맞아 그렇구나
아직도 생각은 여전히 어릴때 같은데..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아련합니다...모든것이..
추억이담긴 글 자주올려주시면 눈팅하겠습니다요 ㅎ
글제주가좋은시네요..잘읽었습니다
마치 내가 그 곳에 있었던것같은 착각, 좋은글 감상하고 갑니다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