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갑신년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 속에 지난 모든 추억들이
아련하게 녹아들고 있습니다.
좋았던 일, 생각하기조차 싫은 기억들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것입니다.
훗날 우리의 추억 속에 화석으로 변한 지난날을 들추어 볼 때도 있을 것입니다.
저의 허접한 “초대받은 황금 저수지의 조행”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희망의 2005년!!
을유년 새해를 맞이하여 월척회원님!!
낚시를 사랑하는 동호인 여러분!!
늘 건강하시고 복된 새해가 되시길 빕니다.
그리고 뜻하시는 모든 일들이 만사형통하시기를 바라며,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입질! 기다림 드림.
(최종회)
숙소인 랜드마크호텔에서 조반으로 먹은 베이컨이 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삼겹살을 연상하며 과일과 곁들여 배를 채웠다.
이국땅에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라도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는 현실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물병을 연신 입으로 가져가며 소변 해결을 미리 걱정했다.
계속 이어진 UBC대학의 빡빡한 수업 일정과 낯선 환경에 억눌러진 자아를 훌훌 털기 위해 금요일 수업을 마친 후, 시내버스를 타고 개스타운에서 내렸다.
증기 시계와 시가지 구경을 하다가 주말에는 빅토리아 섬 여행을 생각했었다.
페리호에서 내려 중식을 해결하고 뷰차드 가든으로 이동을 했다.
선컨 가든, 장미 가든을 구경하고 별 연못가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이는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켄 유 스피크 코리언?”
문득 반가운 생각에 습관화된 우리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예.”
대답과 동시에 뒤돌아보니 동양인 남녀가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 달라는 부탁과 함께 카메라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에 팔을 올려 다정한 포즈를 연출했다.
나는 순수한 우리말 “김치”를 지껄이며 셔터를 눌렀다.
이국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통성명을 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캐나다에 여행을 온 부부였다.
자연스럽게 세 사람이 어울려 구경을 하면서 사진도 몇 차례 같이 찍을 만큼 여유와 친밀감이 들었다.
소원성취가 이루어진다는 멧돼지 조형물의 코를 부인이 잡고 셋이서 기념 촬영을 하고 벤치에서 커피를 마셨다.
어떻게 내가 한국 사람인 줄 알고 말을 붙였느냐는 질문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동양인이 연못가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데 손에 들고 있는 담배 곽이 눈에 익은 국산담배라 말을 걸었다고 했다.
캐나다 담배 맛이 입에 맞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 가방에 넣고 다니는 여분 담배를 꺼내 선물을 했다.
귀국해서 질펀하게 술 한 잔을 쏘는 것으로 답례를 하겠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만난 우리는 같은 연령의 갑장이었다.
그리고 대구와 경북이라는 같은 지역의 고향 까마귀라는 동질성도 작용을 하여 쉽게 가까워 질 수가 있었다.
귀국 후 김 화백의 전시회에 우리 부부는 초대받았다.
전시회에 같이 참석한 우리 부부에게 담뱃값에 대한 답례로 귀한 작품 한 점을 선물로 받았다.
그 뒤, 김 화백이 대구에 왔다는 연락이 오면 자연스럽게 둘만의 술판이 벌어지곤 했다.
두 남자가 양가 아내들의 눈치를 살피는 사건은 한참 뒤에 일어났다.
그날도 둘이 앉아 한 잔 두 잔을 즐기다가 과음으로 시간의 개념도 잊고 말았다.
대리운전을 불러 귀가한다는 사람을 과음과 늦은 시간에 혼자 보낼 수 없어 취중에 우리 집에 반 강제적으로 끌고 왔다.
술에 만취한 선수가 화장실과 세면대에 먹은 것을 모두 반납하는 바람에 마누라는 새벽까지 청소를 하고 김 화백의 옷가지와 양말을 세탁한 적이 있다.
집에 들어온 두 남자가 완전 흉측한 몰골이지만, 아내는 김 화백의 부인이 걱정을 할까봐 바로 전화를 넣은 건 뒤에 알았다.
이튿날 연락을 받은 김 화백의 부인이 서방님을 모시러 오고, 두 집 아내들이 합동으로 북엇국을 끓이고 인삼즙을 만들고 꿀차를 타고 난리법석을 피웠다.
주는 대로 먹고 마시고 난 뒤, 눈까풀이 반쯤 떨어진 두 사내는 일곱 여덟 살 먹은 아이가 어머니의 꾸중을 듣는 것처럼 합동으로 핀잔을 받았다.
두 남자가 쩔쩔 맨 사건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사람은 실수할 수가 있고 자주 만남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있었다.
계속 한번 다녀가라는 초대를 받았지만, 일상에 쫓겨 실행을 하지 못하다가 큰마음을 먹고 어제 퇴근 후 내려오게 되었다.
처음 방문에 따른 선물은 나와 다른 예술가의 고상한 취향을 생각했었다.
식물원에 들러 잎이 빳빳하고 무성하며 우윳빛 예쁜 꽃망울에 반해 철골소심 한분을 구입을 했었다.
이곳에 도착하여 난실을 둘러보고 난 뒤에 생각한 것은 한국춘란에 심취한 사람에게 동양란을 선물했으니 도사 앞에 요령을 흔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겸연쩍어 하는 나의 표정을 보고
“이형! 우리 집에 없는 귀한 걸 선물로 주니 너무 고맙다.”
가식이 없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김화백과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평소 내가 걷는 길과는 다른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깊이와 앞자락이 넓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맛으로 표현을 하자면 칡뿌리를 씹을 때 느껴지는 은은한 단맛의 여운이라고 하고 싶다.
늦은 점심은 김 화백 부인의 정갈한 붕어찜 요리와 노란 가을 배추쌈으로 포만감을 느낄 만큼 먹었다.
김 화백은 난실에서 두 화분의 난을 포장해서 들고 나왔다.
물건의 진가를 모르는 사람에게 진주를 주면 가치가 돌덩어리로 격하되니, 훗날 난초 공부를 하고 난 뒤에 접수를 할 테니 보관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며 억지로 사양을 했다.
속이 꽉 찬 가을배추와 무를 담은 포대, 홍시 상자는 받아서 차의 트렁크에 실었다.
1박 2일 동안 황금 저수지의 조행과 한국 춘란의 눈 맛보기, 풍성한 음식대접을 뒤로한 채 출발 준비를 했다.
“이 형! 시간 나면 싱글로 오지 말고 부인도 모시고 같이 내려와.”
“겨울철은 가끔 오겠지만 물 철이 오면 문턱이 다 닳으니 제발 오지 말라고 사정할 것이구먼.”
김 화백은 무슨 뜻인 줄 단번에 알았지만 부인은 의아해하다가 낚시 동작을 취하는 김 화백을 쳐다보더니 웃었다.
“배추하고 홍시 잘 먹겠습니다.”
부인을 보고 인사를 건네자
“사모님하고 같이 한번 내려오세요. 봄에는 나물도 얼마나 많은데...... 안부 전해주세요.”
하고는 목례를 했다.
차에 올랐다.
차창을 내려서 손을 흔들며 출발을 했다.
김 화백 내외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개인이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 다르고 취미가 달라도 우리는 그저 갑장인 친구로 만남을 계속하면서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그렇게 삶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달리는 차창에 부딪히는 가을 햇빛이 눈부신 오후 시간에 황금저수지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상생활에 복귀하기 위해서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End)
초대받은 황금 저수지의 조행 (최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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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서 맺은 소중한 우정.
이세상의 삶이 다하는 날 까지 깊고 소중하게
이어가시기 기원합니다.
그리고 황금붕어가 사는 그 저수지는 오래 오래
그대로 고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작가나 주제가 삶의 지식에 눌려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지만 재미있어 한 기억은 있습니다.
특히 기행문에 가까운 수필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우연히 님의 수필을 보고 있자니 그 때의 기억이 잠시 났습니다.
오늘은 서점에 들러 재미난 수필집을 한 권사서 봐야 할 것 같군요.
재미난 글 잘 보고 갑니다.
그리고 좋은 글 자주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보름 동안 기대감 속 에 몇번 을 들락 거렸 습니다.
멋진 탈고 축하 드리며, 가슴 속 깊이 황금 저수지 간직 하시고,
항상 행복 하세요. 아름다운 글 감사 합니다.
골대리님!
한번 뵌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동호인끼리의 격려에 감사 드립니다.
2005년 을유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들이 만사 형통하시길 빕니다.
얼큰붕어님!
안녕하십니까?
정말 사랑의 체험수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지요?
월척사이트의 장점은 온라인을 통해 서로가 격려하는 미덕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 더욱 마음에 와 닿는 곳이지요.
얼큰붕어님의 활동을 월척을 통해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새해에도 하시는 모든 일들이 만사 형통하시길 빕니다.
말뚝이님!
허접한 저의 글을 읽으시고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2005년 을유년에도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