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 좀 잡혀?”
내가 낚싯대를 펼 때 산으로 올라갔던 김 화백이 뒤에 서서 묻고 있었다.
사실 월척의 위용에 대한 흥분 때문에 사람이 접근하는 줄도 모르고 그냥 머릿속이 텅 빈 공황상태였다.
“아이고, 방귀 질이 나자 보리 양식이 떨어진다더니, 입질이 붙는데 미끼가 바닥을 보이네.”
김 화백은 언덕에서 내려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살림망을 들고
“야! 정말 이 형 낚시 기술 좋네. 그런데 이거 붕어인가 아니면 잉어인가?”
“잉어는 수염이 달린 것이고 요놈들은 모두 붕어다. 오늘 김 형 덕분에 손맛 진하게 보았어.”
“허 참, 물고기도 오래되면 저절로 수염이 달리는 줄 알았어. 그런데 낚시하면서 손맛이란 것도 있어?”
하고 묻더니 혼자 킥킥 웃었다.
“그럼. 낚시하는 사람은 손맛을 최고로 친다니까. 월척 손맛은 자갈논 세 마지기 하고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다니까.”
손맛이란 말에 의아해하면서 김 화백은 들어다 보던 살림망을 내려놓고
“과부는 그것(?)맛을 최고로 친다는 소리는 들었어. 그런데 낚시하면서 손맛 이야기는 처음 듣는구먼. 그럼 이번에는 이 형에게 내가 눈 맛을 한번 진하게 보여 줄게.”
하더니 내손을 끌었다.
이 산골저수지 가에서 갑자기 눈 맛을 보여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아해하면서 낚싯대를 걷어 받침대에 놓고 따라나섰다.
저수지 상류를 타고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칡넝쿨 사이로 포복 자세로 기어가다가 급경사로 인해 비틀대기도 했다.
좋은 길을 두고 영 조건이 좋지 않은 길을 골라 안내를 하는 것 같았다.
“이 형! 내가 밟고 온 발자국만 밟고 걸어와.”
저만치 앞서 가던 사람이 멈추어 선 채로 돌아보며 이야기를 했다.
의아해하며 곁에 다가서니 소나무 잎 사이로 진한 녹색의 춘란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눈 맛이라는 게 내게 춘란을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발자국을 밟고 따라오라는 건 문외한인 내가 싹을 발로 밟아 망칠까 우려하는 뜻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김 화백은 파카주머니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더니 연거푸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소나무 가지와 사리나무를 잡고 있으라는 시늉을 했다.
가지를 잡고 어깨를 낮추자 줌 기능으로 가깝게 찍고 다른 각도에서 다시 몇 차례 촬영을 했다.
김 화백은 잔뜩 흥분하여 상기된 표정으로
“이 형! 이곳이 바로 애란인 들이 꿈에도 그리는 그 춘란 단엽 밭이다. 정말 사람에게는 이 형이 최초로 감상할 수 있게 공개하는 실물현장이다. 눈이 부시게 눈 맛이 좋지?”
둘이서 쪼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둘러보니 소나무 잎 사이에 성냥알갱이처럼 작은 파란 난들이 바닥에 덩어리진 부분도 있고, 낱개로 있는 것도 보였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게 난인지도 식별하기 힘들 것 같았다.
“글쎄. 눈 맛에 대한 감이 오지 않고...... 그런데 이렇게 키가 작은 난들은 아직 덜 자라서 그런 게 아니야?”
“원래 품종 자체가 작은 개체이고 이런 종류에 피는 꽂은......”
설명을 듣고 있었지만 붕어를 잡을 때처럼 내 가슴에 확 와 닿는 무엇은 없었다.
“김 형! 이게 그리 대단하면 모조리 캐가지고 내려가서 화분에 심지?”
“아니, 아직 이곳에 있는 한두 촉짜리 생강근 덩어리를 채란하면 인공으로 배양하기가 아주 힘들어. 세력이 붙어야 데리고 가서 분에 올리지.”
이해하지 못하는 용어를 묻지도 않고 둘이서 다시 조심조심 산길을 타고 내려와 낚싯대 펴둔 곳에 도착했다.
김 화백은 배낭을 열고 음료수 PT병을 잘라 만든 벌집 모양의 통을 꺼냈다.
플라스틱 통에는 채집한 난이 들어 있었다.
뿌리가 상할까봐 한 포기씩 플라스틱 통에 담아 오는 모양이었다.
산을 오르내릴 때 배낭 속에서 병이 움직이지 않게 테이프를 감아 PT병 여러 개를 고정하여 한 덩어리로 만든 것 같았다.
플라스틱 통을 받아 눈 맛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아도 내 눈에는 그저 푸른 잎의 가장자리에 노란 색갈이 둘러쳐진 난초였다.
난초 잎에 벌레 똥이 묻은 듯 한 점박이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병든 난초 같아 보였다.
“김 형! 이건 병들어 곧 말라 죽을 것 같은데 왜 캐왔어?”
김 화백은 단엽인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만족한 얼굴로 감상하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게 뱀 껍질 무늬 같다고 보통 사피라고 부르지.”
“아니, 그럼 붕어비늘 같은 난도 있어?”
장난기가 발동하여 엉뚱한 질문을 했다.
내 주관의 눈 맛은 야간 낚시에 있어 서서히 상승하는 캐미컬라이트 불빛이 각인되어 있는데, 서로가 생각하는 눈 맛은 희열은 같더라도 개념의 차이는 있었다.
김 화백의 홍조 띤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얼굴 모습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잡은 두 뼘이 넘는 붕어처럼 노란 색 줄이 쳐진 난도 애란을 취미로 가진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전 한나절의 짧은 낮 낚시에 지렁이와 글루텐 미끼로 월척 두 마리와 다수의 준척을 잡은 황금 저수지는 임금님의 옥새를 찍어 놓은 나만의 낚시터라는 환상에 빠졌다.
사륜구동 차에 올라 운전대를 쥐고 있는 김 화백을 상기된 얼굴로 쳐다보며
“김 형! 저수지 저거 내거라고 인감도장을 찍을까?”
“응, 이 형이 인주 듬뿍 묻혀 가지고 팍 찍어서 접수해라. 시비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운전을 하면서 크게 웃었다.
화실로 귀가를 하는 차 안에서 흥분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생각에 빠졌다.
내년부터 나와 갑장인 김 화백의 화실 문지방이 닳도록 뻔질나게 이곳으로 올 것이다.
지금처럼 한번 다녀가라는 전화가 없어도 술병을 뀌어 차고 주말마다 올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밤낚시 삼매경에 빠진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초대받은 황금 저수지의 조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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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황금 저수지의 조행(3) 잘 읽었습니다.
아직 감이 덜 잡힙니다만 읽어갈수록 그 내용을 이해하겠죠...ㅎㅎ
늘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전 지금님의 글을 읽는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어서 좀 이어서....
낚시꾼과 선녀님!
상대를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에 늘 존경을 표합니다.
오프라인에서의 활동도 월척을 통해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길 빕니다.
골대리님!
한번 뵌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동호인끼리의 격려에 감사 드립니다.
2005년 을유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들이 만사 형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