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왕숙천 방울낚시의추억
일때문에 오랜만에 구리시를 가게됐습니다.
하는일 때문에 전날 군산에서 일을 보고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 새벽에 구리시 농수산물
시장에 들려 개인적인 일을 봤습니다
시장에서 일을 끝 마치자 동이 트고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했습니다
시장 건너 인창동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었고
아침을 먹고 난후 집으로 가려고 차를몰고 출근 하는
많은 차량들 사이로 섞여서 교문 사거리 쪽으로
앞차를 따라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출근 시간이라 차는 내 생각 만큼 달려주질 못했고
앞차 때문에 신호 때문에 가다가 자주
멈추고는 하였습니다.
차가 교문 사거리에 다가 갔을때 내앞의 신호등은
황색빛 으로 내게 멈추라고 지시를 했고
나는 사거리에서 브래이크를 밟아
교문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멈춰섰습니다.
횡단보도 옆 버스 정류장에는 출근하는 시민들로
활기차게 북쩍이고 있었고 통학하는 한때의 학생들이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떠들며 웃고 있었습니다.
앞 신호가가 녹색으로 신호를 바꾸자
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너갔습니다.
건너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사거리 건너편 건물 하나가 내눈에 들어 왔습니다.
예전에 낚시 갈때나 지나 갈때 자주 들려서 먹고 가던
설렁탕 집이 있던 건물 이었는데
10년도 훨씬 넘어 찾아온 그 자리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던 설렁탕집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설렁탕이 참 맛있었던 집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없어진 설렁탕집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설렁탕집 옆쪽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희미한 기억속에 거기에 있던 옛날 가게들을 생각해 내며
옛 기억을 추스리는데 한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습니다.
계단 입구를 보자 갑자기 그 건물 밑에 있던
예전에 자주 가던 술집 이름이 생각이 났습니다 .
스텐드빠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당시에 교문리에서
제일 크고 화려했던 뉴 타운스텐드빠라는 술집 이었는데
지금은 전국 노래자랑 MC를 보고 계시는
코메디언 송해씨를 실물로 처음 봤던 곳 이었습니다.
또 사회자가 소개하던 5 인조 부라스 밴드에 맞춰
무대에서 대중앞에서 태어 나서 처음으로
노래를 해본곳이었습니다.
춤추고 노래하고 연예인 쇼를 보느라 시끌 벅쩍했던
홀안 분위기와 일자로 길게 늘어져 있던
스텐드의 높은 의자들과 그 안에서 억지 웃음을
지으며 손님들을 상대하던 어여뻤던
술집 여급들도 생각 났습니다.
그리고 얄팍한 주머니 임에도 맥주 먹는
주위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호기롭게
큰 소리 치며 주문하던 패스포드라는
국산위스키의 이름도 생각났고
무슨 생선인지도 모르면서
자주 시켜 먹었던 나막스라는 말린
생선튀김 안주도 갑자기 머리속에서
불연듯이 떠올랐습니다.
옛 생각이 하나씩 떠오르기시작하자
내 머리는 짧은 시간인데도 순간적으로
마치 영화 필름이 돌아가는것처럼
파노라마 같은 옛 기억들을
나에게 떠올려 주었습니다.
짧은 시간 횡단보도에서 만나는 옛 추억에
나는 예전에 내가 살던곳이
갑자기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밀려오는 궁금증에 고속도로를 향했던
직진길을 바꿔 옛기억을 따라 다음 신호에서
유턴을 하여 돌다리쪽으로 달렸습니다.
기억은 지나간 희미한 기억이고 길은
새로난 새길이라 옛 기억만으로
새길을 따라 옛 터 를 찾아가는 길이
쉽지 많은 않았습니다.
조금씩 가다 보니 길 건너로 예전에는
볼수가 없었던 거대한 대학병원의 간판이
큰건물 사이로 보였습니다.
저층의 낮은 서민들의 집들만 옹기종기 모여 있던
그 주변에는 수 많은 건물들과 함께
큰 농협이 자리 잡고 있었고 주변엔 많은 상가들이
새로아 지어져 있었습니다.
아침 출근 러시아워의 차량행렬에 끼여
조금씩 앞으로 밀려 교문 사거리를 지나
예전에 구리시 보다는 교문리로 많이 불리던 때의
제일 번화가였었던 돌다리에 멈춰섰습니다
기억 속의 옛 가게들을 찾아 보니 육교 옆 버스 정류장
낡은 저 층건물은 더 높은 새 빌딩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었던 가게 앞에 빨간 다라이를 내놓고
구더기와 지렁이를 신문지에 덜어팔던
인심좋던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던 낚시점도
그 옆에 있던 내가 양수리로 장자못으로 왕숙천으로
낚시를 갈때 마다 항상 들려서 라면 등 물건을 사고
우유를 하나 마시던 정신병이 걸린
아들을 돌보며 생활하던 노 부부가 운영 하시던
작은 슈퍼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감회에 젖어서 이곳 저곳을 쳐다보니
모든것은 너무 나도 변해있었고
예전에 초로의 노약사가 운영하시던 약국만이
겉모습과 그안의 사람들을 모두 바꾼채
대성 약국 이라는 옛 이름을 쓰며
유일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것이 달라진 구리시를 바라보니
옛것이 그대로 남아있길 바라면서
옛 일을 회상하는 나의 마음을
조금은 쓸쓸하게 만들었습니다.
길을 건너 수택동 옛 골목을 따라 내가 처음으로 사서
한동안 정붙치고 살았던 연립주택을 찾아갔습니다.
낮은 지붕으로 옹기 종기 모여있는
다세대 연립 주택촌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었습니다.
예전에 교문리에 아파트가 별로 없던 시절에는
당시에 교문리 에서 최고로 인기가 있었던
당시는 넓고 쾌적했던
교문리 최고의 인기 고급 주택 단지였습니다.
당시는 첨단 유행의 화려한 외향을 자랑했던
연립 주택촌의 모습은 세월이 많이 지나 찾아가 보니
벽면에는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베란다의 방범 창살에는 녹이 잔뜩 끼여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못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것 같은
슬럼가 주택 같은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맨 앞 동에 있는 내가 전에 살았던 2층집을 바라 보니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가 낚시 가방과 잡동사니 짐들을 대충 던져놔서
항상짐이 어지러이 쌓여있던 베란다 창가에는
하얀색의 아기 면 기저귀 빨래가 걸려 있었습니다 .
지금은 옛집에 젊은사람들이 살고있는것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옛집의 모습에 정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혹시 집안에서 아직도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를
내 젊은날의 추억을 안으로 들어가서 한번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내손은 낮설은 사람들의 부담감으로
차마 초인종을 누르지는 못하였습니다.
옛집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나는 차를 돌려 고속도로쪽으로 몰았습니다.
옛집 앞길을 빠져 나오는데 예전에는 그렇게도
넓었던 길이 세월이 지나니 아주 좁은 골목길처럼 느껴졌습니다.
큰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가니 신호등 옆으로
고속도로를 안내하는 입간판과 토평동과 장자못
호수 공원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한강변은 오른쪽 도속도로쪽은 왼쪽
각기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안내판을 보자
갑자기 내 마음도 둘로 나뉘어 졌습니다.
한쪽 마음은 어서 왼쪽으로 핸들을 돌려
온길을 되돌아서 집으로 가서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
지친 몸을 편히 쉬게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었고
다른쪽 마음은 옛 기억과 잊지못할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토평리와 한강변을 한번 보러
오른쪽으로 가보라고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집에가서 편히 쉬고싶은 마음이
옛 추억의 그리움을 그리는 향수에게 밀리자
내 손은 나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토평리라 불리었던 토평동에 진입 하니
나는 진정한 산전 벽해가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장마철만 되면 한강물이 넘치던 너른 들판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배추밭과 파밭이 끝없이 펼쳐지던
너른 벌판 자리에는 초 고층의 아파트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농가와 주택들이 몆집씩 모여서 만들어 졌던
작은 마을들은 원래의 자리 조차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 하던
큰 은행나무그늘 밑의 평상도 그 옆에서
막걸리와 과자를 팔던 벽에 검정 페인트 글씨로
마을 구락부 라고 써있던 작은 미니 연쇄점도
그 옆에 서 있던근면 자조 협동 이라고
녹색 글씨로 써 있던 작은 새마을 운동 표석비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시골 마을 답지 않게 마을버스 종점 옆에 있었던
가게 앞으로 언제나 사람들이 길게 줄을서며
기다리던 판잣집 같았던 외양과 달리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들었던
그 유명했던 맛집 토평리 할머니 보신탕집도
그 흔적이 영원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대 도시로 변해 버린 토평리의 모습에
깊은 실망을 하고 한강쪽으로 차를 돌려서 가다보니
한때는 수많은 서울 낚시인들의 꿈의 낚시터 였었고
한때는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었던 연세드신
수도권 낚시인이시면 누구나 알고 계시는 장자못이
거대한 호수 공원으로 변해서 그 자리에 복원 되어 있었습니다 .
홍수가 나거나 장마철에 한강물이 넘치면 항상
엄청난 대박을 보여줬던 장자못은 당시 있던
그 모습 보다 훨씬 커진 모습으로 복원되었는데
한강에서 물이 이어져 형성됐던 장자못은
1차 한강 개발로 한강 뚝이 정비가 되면서
매년 유입되던 한강물이 끊어지자
서서히 물이 오염 되면서주변이 마른습지로 변해
그 모습이 작은 물고인 썪은 웅덩이로 변해서
장자못이라는 명칭은 한때는 완전히 사라졌었습니다.
한강 개발로 완전히 사라졌던 자연 습지못이
대규모의 다른 택지 개발로 다시 살아난걸 보고 있자니
돌고도는 개발과 자연의 어이 없는
아이러니를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
장마철이 지나 한강물이 넘치면 돗대기 시장처럼
한꺼번에 몰려 들었던 낚시꾼들로 붐비던 장자못에는
지금은 두개의 다리가 물을 가로 지르고 있었고
너무나도 잘 지어진 야외 공연장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나무와 화초들로 꾸며진 잘 닦인 산책로에는
도로를 따라 츄리닝을 입고 운동하는 사람들과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로 북쩍이고 있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걷고 뛰고 타고 있는 저 많은 사람중에
이 자리에 원래부터 살던 사람은 몆명이나 될까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
대대로 정 붙치고 오손도손 정답게 살고 있던
고향에서 강제 수용이라는 미명하에
푼돈 몆푼에 땅을 뺏앗기고 정답던 고향에서
강제로 쫒겨 떠나 갔을 원주민들을 생각하니
그들 중 몆명을 친구로 뒀던 나에게도
그들의 망향가가 귓가에 들리는것 같았습니다.
대도시로 변한 토평동을 지나 한강변으로 가기위해
큰길로 나가니 예전에는 억새풀이 무성하던 강변
들판위로 큰 도로가 가로질러나 있었고
도로를 따라가는 강변 아래에는 길게 이어진
자전거 도로와 운동기구가
강을따라 끝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도로를 조금 더 가자 오른쪽에
한강변으로 내려가는 진입로가 보였습니다.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자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드넓은 한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차를 세워놓고 잘닦인 산책로로 운동하며 뛰어가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니 고속도로 다리 교각 밑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왕숙천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는 왕숙천은
달라진 구리시보다 더 크게 변해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시찾은 왕숙천은 옛날의 그 모습이 아니였습니다.
잡초와 야생화 꽃이 만발 하던 너른 천변 옆 공터에는
왕숙천 체육 공원 이라는 이름을 붙치고 거대한
체육 공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왕숙천 양쪽 옆으로 풀이 무성하던
둑 가운데 흙길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
주위의 동네 아이들이 뛰어 다니며 물 장난을 치던
천 가운데 징검 다리는 개발로 넓어진 강폭에서는
흔적을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분필로 S자 T자를 땅에 그려 놓고
운전 연습을 하던 왕숙천 둔치 공터에는
화장실 주차장 식수대 구리타워 가는길 같은 이정표가
군데 군데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윗길을 따라 작은 산책로가
끝도없이 이어져 있었고
그옆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산전 벽해를 생각 할수밖에 없는 모습에
옛 기억을 더듬으며 한강을 바라보니
강 위에는 추운 날씨인데도 모타보트들이 쉴세없이
파도를 일으키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
콘크리트 계단식으로 쌓아놓은 강 양안을 철석 대며
때려대는 물보라를 보고 있자니 예전 그시절
강 양안으로 끝없이 길게 이어서서
낚시를 하던 수많은 낚시인들이 생각났습니다.
왕숙천 과 한강이 만나는 곳에서 부터 시작되는
옛날의 일급 포인트는 지금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뒤덥혀 있었지만
왕숙천의 똥물과 그래도 깨끗한 한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물빛의 변화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았습니다.
한쪽에는 푸른 물빛이 다른 한쪽엔 씨꺼먼 물빛이
강 가장 자리에서 한군데로 섞이지를 못하고
각기 다른 물색으로 강주위를 넓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서로 대립하던 두 물 들은 아래로 서서히 흐르면서
조금씩 조금씩 섞이면서 한강 하류에서
완전한 한 몸이 되어 서해바닷가로 흘러갔습니다.
영원히 이곳에선 함께 섞이지 못할 왕숙천과 한강의
두물들을 바라보니 예전에 내가 서 있는 이자리에 지어져 있던
가마니가 위에 덥혀져있고 합판으로 얼기설기 지어져 있었던
움막이 생각났고 움막 앞의 낡은 드럼통위에 걸려서
나무 그을림을 온몸에 묻치고
펄펄 끓고 있었던 시꺼먼 양은솥이 생각이 났습니다.
솥안에서 설설 끓고 있었던 빨간 국물의 어죽도 어렴풋이 생각났고
나를 부르는 연세가 아주 많으셨던
세 어르신들의 목소리도 또렷하게 생각이 났습니다.
아주 오래전 서울에서 살던 나는 우연찮은 기회에
지금은 구리시로 더 불리우지만 당시는 누구나
교문리로 부르던 구리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양수리나 팔당으로 낚시를 갈때면 오다 가다
거의 매주 들렸던 교문리였지만
막상 서울 도심을 떠나 구리시로 이사를 와 보니
내 낚시인생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 처럼 황홀해졌습니다 .
오남리 저수지 아천리 장자못 한강 퇴계원 덕소
양수리 팔당 벼락소 임송등 주변에는 공짜 낚시터가 수두룩히
산재해 있었고 집에서 10분만 가면
왕숙천과 한강이 있어서 언제라도 짧은 시간만 있어도
동네 마실 가듯이 낚시대 한 두대 들고
간편하게 낚시를 즐길수가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살때에는 낚시를 한번 가려면 전날부터
준비하여 무거운 가방을 들고 긴 시간 차를 타서
긴 거리를 달려야했는데 비록 물은 그리 깨끗 하지는
않았지만 왕숙천이 바로옆에 있으니 언제든지
바로바로 짬낚시를 즐길수가 있었습니다.
가끔은 잠을 자다가 일찍 깨어나는 날이면 출근 하기전에
왕숙천으로 가서 한 두시간 새벽 낚시를 잠깐 즐기고는
아침에 출근 하고는 하였습니다
왕숙천은 포천에서 시작하여 남양주를 거쳐 구리시 에서
한강과 만났는데 여러도시를 거쳐 가며 길게 흐르면서
여러 군데의 지천으로 나뉘여 졌고
진접 임송등 수많은 지천중에서도
고기가 잘나오던 특급 포인트가 몆군데 있었습니다.
이사온후에는 근처로 낚시와 짬 낚시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가방을 메고 걸어 다니다가 중간에
자전거를 한대 사서 뒤에다 낚시가방을 묶어서 타고 다녔습니다.
나중에는 페달을 밟는것도 귀찮아서 좀 더 편하게 낚시를 다니려고
순전히 짬낚시용으로 오토바이를 한대 구입해서
구리시 인근의 이곳 저곳을 정신없이 누비고 낚시를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가까운곳에서 낚시를 하다가 나중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양수리 퇴촌 팔당댐 등
먼 거리 까지 낚시를 다녔습니다
집 주위에 한강도 있어서 가끔은 강낚시를 가서
파리 낚시나 흐르는 채비를 하고 구더기 미끼를 써서
돌고기 피래미 마자등 잡고기를 잡아서
집으로 가져 와서 어죽이나 튀김등의 요리도 자주 해먹었습니다.
당시는 전국에 산업화의 열풍이 거세게 불어 오던 때였고
우리나라 공업의 발전은 급속하게 이루어졌었습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관심은 무척이나 소홀했었던 때라
왕숙천이 흐르던 진접 퇴계원 남양주등의 천변을 따라
염색 공장과 가구공장 등 수많의 폐수등
오염 물질을 배출 하는 공장들이 수없이 산재해있었습니다 .
그 많은 공장들이 여과 없이 쏟아 내는 폐수는
왕숙천에 합류해서 흘러갔는데 긴거리에서 조금씩 흡수한
폐수의 양은 마지막으로 왕숙천의 끝에 다 다르면
물색은 검은빛이 나는 불투명 뿌연색으로 한강과 만났습니다 .
왕숙천과 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합류지점은
오염 때문인지 자리가 좋아서 그런건지
언제나 낚시가 잘 되었습니다.
물색이 더러운 왕숙천은 붕어꾼들로 항상 만원을 이루고 있었고
맑은 물빛의 한강 쪽으로는 항상 잉어를 잡는
방울낚시꾼이 진을치고 있었습니다.
왕숙천 붕어터에는 늘 사람들이 오고 가고 바뀌 였지만
잉어를 잡던 한강 쪽에는 텐트나 움막을 짓고
긴시간 장박을 하며 낚시를 하는 소위 장박꾼 몆팀이
강 연안을 따라 방울낚시를 길게 늘어놓고 매일 낚시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짬낚시를 자주가던 왕숙천에는 바로 옆 한강에서 올라온
많은 어종들이 천으로 유입되어 바늘을 물고 올라왔는데
붕어 잉어 끄리 누치 메기 쏘가리 장어 등
왕숙천의 연탄색 물빛과는 상관없이
강계에 사는 모든 어종이 골고루 입질을 했습니다.
항상 시간만 나면 왕숙천으로 가서 짬 낚시를 즐기니
거기 자주오시는 단골조사님 몆분들과도
친분을 쌓았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당시의 왕숙천은 잠시만 대를 드리워도
금세 살림망이 제법 묵직해질만큼 낚시가 잘되었습니다.
나는 고기를 잡으면 재미로 살림망에 잠깐 담았다가
낚시가 끝나면 모두 풀어주곤 하였는데
환경과 건강에 무지했던 당시라서그 똥물속 고기를 요리해 먹으려고
집으로 가지고가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습니다.
아주 오래전 휴일 오전 오랜 만에 쉬는 날이라
늦잠을 늘어지게 잤습니다.
자다가 허리가 아파서 잠을 깬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낚시대를 몆대 챙겨 집을 나왔습니다.
골목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 뒤에 낚시 가방을 묶고
집에서 5분거리 돌다리 낚시점으로 갔습니다.
낚시점문을 열고 들어가니 인상좋은 사장님께서
평소와 같이 웃으시며 반겨주십니다.
"어서 와요 "
"안녕하세요"
"그래 오늘은 어디로 가시려나"
"그냥 왕숙천이나 갈려구요"
"아 왕숙천 그냥 손맛 보기 좋지요 가깝고요"
"고기는 잘 나오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요 물도 드럽고"
"그래도 가까운데서 그리 고기가 잘 나오는곳도 없죠"
"예 고기는 잘 나와요"
"퇴계원이나 임송 아님 벼락소 근처로 가 보는건 어떼요 ? "
"우리회원이 얼마전에 거기서 월척을 몆마리 했는데"
"임송은 몆칠전에 다녀왔구요 벼락소는 일요일이라서
유원지에서 하루종일 밴드가 연주하고 노래들을 해대서 시끄러워서 낚시를 할수가없어요 "
지금은 상상할수도 없는 이야기지만 당시는 수락산과 벼락소 등
계곡과 물가에 자리 잡은 경치가 좋은 유원지에서는
물가에 간이 평상을 깔아 놓고 영업들을 하였는데
술집처럼 옆에서 술을 따라주는 똥꼬 치마를 입은
아줌마들도 있었고 전자올겐이나 기타같은 밴드들도
항상 상주하며 연주를 하며 영업을 하였습니다.
가끔 낚시하다가 옆에서 노는걸 구경해보면
물가 옆 평상에서 술먹고 춤추고 노래하고
여자들을 끌어안고 비비고 뽀뽀하며
정말 가관도 아니였습니다.
"거기가 주말이면 좀 시끄럽긴 시끄럽지요"
"자 오늘은 뭘 좀 드릴까요? "
주섬주섬 바늘과 낚시줄 소품을 진열대위에 올려놓고 말했습니다
"지렁이 좀 담아주시고
구더기도 조금만 담아주세요"
"견지낚시 하려고요?구더기는 왜 쓰시려고?"
"붕어낚시를 하다 나중에 한강쪽에 내려가서 튀김거리나 몆마리 잡으려구요"
"아~튀김 좋지요
튀김은 민물고기가 정말 맛나지요"
사장님께서 가게 밖으로 나가 빨간다라이에서 지렁이를 신문지에 덜어
비닐봉지에 넣고 사발로 구더기도 덜어 봉지에 싸서 가게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하니 캐미를 하나 덤으로 주십니다
"자~이건 써비스~"
"고맙습니다 사장님 안녕히계세요 "
낚시가게를 나와 바로 옆에있는 구멍가게로 들어갔습니다
한쪽 구석에 만들어논 평상에서 연세 많으신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냉장고 진열장 에서 우유를 하나 꺼내 마시고
낚시가서 먹을 빵과 음료수를 하나 샀습니다.
계산을 하다 보니 맨날 할머니곁에서 볼펜으로 하루종일 뭘 끄적이며
중얼 중얼 대며 혼잣말을 하던 정신병이 걸린 아들이 안보입니다.
"아드님이 안보이시네요 어디가셨어요?"
"그놈 방에서 자 "
"예? 맨날 와도 그분 낮잠 자는건 처음 보는데요"
"요즘은 늙었는지 간간히 낮잠도 자빠져 자 에그~웬수덩어리 "
"에이~아드님 아직 젊어 보이시는데요 ? "
"그놈이 그래 보여도 50 이 훨씬 넘었어 에그 나 보다 그놈이 먼저 죽어야하는데 "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아드님 차차 낳아지겠지요 뭐"
가게에서 계산을 마치고 남양주쪽으로 달립니다
오분쯤 달리니 왕숙천 다리가 나왔습니다
다리입구에서 좌측으로 틀어 왕숙천 뚝길을 달려 내려갔습니다.
다리 밑으로 군데 군데 파라솔들이 보였습니다
왕숙천을 가로 지르는 징검 다리를 지나 작은 다리를 지나니
한강과 만나는 두물머리가 보였습니다.
한강이 시작되는곳에서 부터 왕숙천을 따라
노랗고 빨갖고 파랑색의 파라솔 수십개가
천을 따라 끝없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휴일이라 평소보다 몆배는 더 펼쳐져 있는
수많은 파라솔들 사이에서 적당히
빈공간을 찾아 옆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끼어 앉았습니다.
2.5칸 로얄 그라스롯드대를 한대 펴서 한쪽 바늘엔 신장 떡밥을
다른쪽 바늘에는 지렁이를 몆마리 꿰어 물에 투척을 했습니다.
깜빡 깜빡 한두번 피라미 입질이 들어오다
곧 잠잠해졌습니다
점심때가 가까워오자 하늘의 했살은 뜨겁게 내리쬐었고
낚시하던 사람들이 한두명씩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낚시를 끝내고 장비를 접어 철수하는 사람들과
낚시대를 그대로 둔채 점심을 먹으러 걸어가는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자 어디선가 라면 냄새가 바람을 타고
솔솔 풍겨오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낚시하던 분이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더니 내게 같이 먹자고 말씀을 하십니다.
됐다고 맛있게 드시라고 말씀 드리고 나서
저분은 예의상 같이 먹자고 말했는데
만일 내가 예 하고 저 도시락을 같이 먹어버리면
저 사람은 얼마나 황당할까 생각하니 속으로 웃음이 났습니다.
주위를 둘러 보니 저 멀리 한강 쪽에는 한 무더기의 사람 들이
강가에서 고기를 구어먹고 있었습니다.
위쪽으로 왕숙천 개천옆 넓은 둔치에서는 누군가
땅바닥에 분필로 여러개 그려놓은 운전 시험용 S자 T자 코스에서
한여자가 땀을 뻘뻘 흘린채 지렁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차를 움직이고 있었고 그 옆에서 남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고함을 치는 바로 앞 개천 물안에는 동네 꼬맹이들이
옷이 젖는지 똥물에 몸에 피부병이 생기는지도 모르면서
웃으면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고
야생화와 잡초들로 절반이 뒤덥힌 둑길 위로는
운동하는 사람들과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작은 주전자와 버너를 꺼내 물을 팔팔끓여 커피를 타서
식사를 마치신 옆 낚시인에게 한잔 드리고
나도 한잔을 마셨습니다.
목 안으로 넘어가는 달콤한 따듯함이
온몸에 행복감으로 느껴졌습니다
커피 한잔에 작은 행복함을 만끽할때
갑자기 물에 잠겨있던 찌가 쭉~~~욱 올왔습니다
종이컵을 내려놓고 재빨리 챔질을 했습니다.
물컹~~~~!!!!!!!!
손안에 꿈틀대는 무언가가 느껴지며 낚시줄이 팽팽하게 당겨졌습니다
낚시대가 활처럼 휘여지며 온몸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낚시줄에 메여있는 찌가 오른쪽으로 쏜살같이 갔습니다
옆사람의 채비를 감을것 같아 온힘을 다해서 버텼습니다
낚시줄에서 쭈~~~~~욱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른쪽으로 뻗 대던 고기는 곧 왼쪽으로 째더니 가운데로 힘을쓰며 옮겨갔습니다
두손으로 낚시대를 어깨에 기대고 낚시대를 위로 들고 버텼습니다
옆에서 낚시하던 사람들이 우르르르 몰려 와서 구경들을 했습니다
한참 어깨에 기대어 버티던 낚시대가 조금 느슨해졌습니다
낚시대를 웅켜잡고 조금씩 뒤로 뒤로 움직였습니다
느슨했던 낚시대가 갑자기 또 다시 강력한 힘으로 앞으로 쳐박혔습니다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힘을 느낀 낚시대가 우드드득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힘을 주며 있는 힘껏 버티면서도 나는 낚시대가 걱정이 됐습니다
우득~ 우득 소리를 내는 낚시대가 부러질까 걱정을하며
차라리 줄을 터트려 버릴까 생각할때 거짓말처럼 낚시대가 느슨해졌습니나
있는 힘껏 낚시대를 잡아 다니니 뮌가가 물속에서 버티면서
조금씩 조금씩 물가로 끌려나왔습니다
잠시후 물살을 가르며 큰 물고기가 물위로 떠올랐습니다
물위에서 공기를 한번 먹이고나니 버티는 힘이 훨씬 더 약해졌습니다
뒤로 가면서 물가 얕은 곳으로 물고기를 살살 끌고 나왔습니다
끌려 나온 물고기가 얕은 물에서 아가미를 여닫으며 펄쩍펄쩍뛰기시작합니다
생전 처음 보는 두자 남짓한 물고기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물속에누워있었습니다
"잉어다!!!"
"아니야 잉어랑 틀린데?"
"잉어맞아!!"
"아니야 잉어처럼 노란색이 없잖아?"
"생긴것도 잉어랑은 틀려?"
옆사람에게 낚시대를 들게하고 물로 들어가서 수건으로
물고기의 눈을덥고 가슴으로안고 나왔습니다
땅위에서 퍼덕이는 고기를 보니 잉어 특유의 황금색 지느러미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 고기 알아!!!!! "
옆에 있던 안면이 있으신 영감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예? 이게 무슨 고기죠?"
"이거 물왕리 저수지 가면 많이잡혀 이거 초어야 초어"
"초어요?"
"그래 ! 초어야 초어 풀만먹고 산다는놈 이승만이가 외국에서 들여온놈"
"풀만먹고 산다는놈이 왜? 떡밥 먹고 나왔을까요?"
"물왕리 저수지에 가면 지금도 많이 잡혀 초어라구 이정도는 작은거야"
"예~~? 이게 작은거 라고요 ?"
"그래 물왕리에서는 몆미터 짜리도 잡혀 !"
"에이 ~ 영감님도 몆미터 짜리 물고기가 세상에 어디있어요? "
"진짜야 진짜!!!! 물왕리에 가서 물어봐!!!"
땅바닥을 치면서 뒤척이는 물고기를 보며 뛰는가슴을 진정시켰습니다
주위에는 생전 처음보는 물고기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힘이 빠 져서 땅에 얌전히 누워 입만 뻐끔거리는 초어를 보다가
옆에 계시던 영감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어르신 이 고기 어르신 께서 가져 가시지요"
"나 ? 내가 ?"
"예 가져다 해 드시든지 아니면 파시든지요 "
"왜 ? 자네가 가져다 해먹지 ?"
"저는 이곳 고기 안먹습니다 어르신께서 해드십시요"
"저는 살림망도 안가지고 왔습니다
어차피 누구 주거나 풀어줘야 하는데 이왕이면 어르신 께서 가져 가시는게 좋으실것 같습니다"
"젊은이 이건 왕숙천 고기가 아니야 한강에서 막 올라온놈이라 안심하고 먹어도 돼 괜찮어"
"아 ~예 어르신 그래도 저는 안먹으니 어르신께서 가져다 드십시요 "
"그래 그럼 고맙게 가져가겠네 초어는 나도 한번도 못먹어봤네"
그 어르신은 옆 한강변에서 텐트로 움막을 지어놓고
일년 내내 방울낚시로 잉어를 잡는분 이셨습니다.
텐트를 먼저치고 공사장에서 버린 합판을 주어 와서 덧대고
안에 스치로플을 대고 난방까지 한
밖에서 보면 노숙자 움막을 지어서 또래 친구분들
세분이서 번갈아 가면서 자리를 지키시며 방울낚시를 하셨습니나.
한겨울 얼음이 얼때만 그자리에 않계시고
나머지 계절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낚시를 하셨는데
방울낚시로 잉어잡는 실력들이 보통이 아니셔서
가끔 구경을 가면 낚시하시는곳 옆 물속에는
줄에 메여있는 잉어가 항상 몇마리씩은 꼭 있었습니다.
그분 들은 한강 주변 토평리에 사시는 원주민 분들이셨습니다
그분 들이 자리 잡은 곳은 왕숙천과 한강이 만나는
두물 머리 였는데 한강 최고의 잉어 낚시 포인트였습니다.
어르신이 계시던곳부터 위 아래로 강가에는
잉어 낚시하는 낚시꾼들로 항상 만원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중 세분이 제일 자리가 좋은곳에서낚시를 하셨습니다
친한 친구분들 세분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지키며
늘 낚시를 하셨는데 워낚 한자리에서 오래 낚시를 하신지라
주변에 소문이 나서 그분들께 잉어등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사러 오시는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석가탄신일이 끼어있는 오월달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사러 어르신들을 찾았는데 그자리에서 물고기를 사서
바로 그 자리에서 기도를하고
물고기를 방생하는 장면도 몆번 본적이 있었습니다.
영감님께서 물고기를 들고 가시고 다시 미끼를 달아 물속에 투척을했습니다.
워낚 큰놈이 물속을 휘저어 놓아선지 별 입질이 없었습니다.
중천에 걸려있던 해가 서쪽으로 반쯤기울어 가게에서 사가지고 온 빵을
간식으로 먹으려는데 영감님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우리집으로 가자구~ "
" 예?"
"밥 먹으러 가자구 우리집으로"
"저 밥 먹구 왔는데요? "
"이사람아 지금이 시간이 몆시덴 아침먹은거 가지고 그러니 어서 가자구"
"아니 저는 됐습니다 어르신 괜찮습니다"
" 자네 밥도 차려 놨어 어서 가~"
"저는 괜찮습니다"
"어른말 들어 이사람아~"
억지로 어르신의 손에 끌려 강가에 지어진 움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매일 낚시할때 오다가다 보던 움막은 겉으로 보기에는
판자로 얼기설기 엉성하게 지어논것 처럼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와 보니 바깥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하얀 스치로플로 도배된 움막안에는 벽에 선반도 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장판도 깔려있었고 이불도 깨끗히 정리되어있는
깔끔한 모습이었습니다.
움막안에는 작은 상도 하나 있었고 상 위 에는 풋고추와 김치 김
그리고 가운데에 잡어를 조려놓은 물고기 조림이 있었습니다 .
안에서 식사준비를 하시던 어르신 두분이
내가 들어가자 손을 흔드셨습니다
"어서오게 이리앉아"
고봉으로 푼밥을 내앞에 내미셨습니다
"아이쿠 어르신 밥이 너무 많습니다"
"많이 먹어 이사람아 젊은 사람이 많이 먹어야 큰일을하지"
"괜히 와서 신세만 집니다 어르신 잘먹겠습니다"
"신세는 이사람아 귀한 고기를 얻었는데 우리가 잘 먹겠네 "
"아이구 아닙니다 어르신 어차피 고기를 잡아도 매일 풀어주고 가는데요 뭐"
"자~찬은 없지만 많이 드시게 우린 매일 이렇게 먹네"
"잘 먹겠습니다"
앉아서 밥을 먹는데 밥맛이 꿀맛같이 기가 막혔습니다
감자를 깔고 양파 와 풋고추 밖에 안들어간 조림은 민물고기특유의 맛에
짭짤한 양념장이 어우러져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와 ~어르신 밥맛이 너무 좋습니다"
"그지~밥맛좋지? 나무로 불때서 밥해서그래 불때서 밥을 하면 참 맛있어"
"가스로 하시는게 아니고요?"
"이사람아 여기는 주위에 널린게 나무덴 비싼 부탄가스는 뭐하러 쓰나? 하루이틀도 아니고"
"제가 올때마다 어르신들을 뵈었는데 여기서 일년내내 계시나봅니다?"
"아냐 겨울에는 강이얼고 추워서 낚시를 못혀 추울땐 집에 있다 봄부터 나와"
"정말 부럽습니다 어르신들 신선처럼 사시네요"
"예끼 이사람아 늙은이들이 집에서 할일 없으니 시간 때우려고 이러고 노는거지"
"제가 보기엔 아직도 청년처럼 정정들 하신데요 뭐"
"이 사람이 말은 잘하네 허~허"
점심을 얻어먹고 바깥으로 나와 강가에 않이서
커피도 한잔 얻어 마셨습니다.
움막 옆으론 받침대에 대 낚시가 한대 놓여져 있었습니다
도장이 벗겨져 겉이 얼룩무늬로 변한 낡은 낚시대는
가운데가 군데군데 파여 있는 찌를 물위에 띄우고
강물위에 펼쳐져 있었고 그옆으로는 나무로 짜있는
방울낚시 받침대를 따라 하얀줄을 감은
깡통 방울 낚시가 한칸에 다섯개씩 두칸 열개의
낚시줄을 한강 물속으로 뻗은채 늘어서 있었습니다.
"여기 잉어가 잘 잡히지요 어르신?"
"그럼 근처 한강에서는 여기가 최고의 포인트야 잉어가 잘잡혀 여기가"
"근데 왜 방울 낚시를 열개만 던지셨어요 ? 세분이니 좀 더 던지셔도 되잖아요?"
"다른 분들을 보니 혼자서도 열개 스무개씩 던지던데요?"
"강낚시는 가운데로 다니는 잉어를 잡는거라 열개만 던져도 충분해 예전에 다섯개 쓸때나
지금 열개 던지나 고기 나오는건 거의 똑같아 복잡하니까 옆에 사람들이 붙지말라고 그나마 열개를 던지는거야"
"매일 낚시를 하니 익깝도 솔찬이 들어 열개 익깝값 들어가는것도 장난이 아녀"
강변에 앉아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물에 떠있는 겉이 깨져 물위에 떠있는 찌를 보다 낚시하던 자리에 가서
낚시대를 접고 가방에서 안쓰는 찌들을 몆개골라
간식으로 먹으려고 사왔던 빵과 음료수와 함께 어르신들에게 드렸습니다.
"아니~ 이사람아!! 뭘~ 이런걸 가져오나 이거 비싼 찌 같은데 ?"
"사놓고 안쓰는 찌니 어르신께서 쓰십시요 집에 가면 안쓰는 낚시대도 몆대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다음에 올때 갖다드릴께요"
"아니 괜찮여 이찌만 해도 너무 고마운디"
"너무 잘먹었습니다 어르신 안녕히계십시요"
오토바이를 타고 둑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길은
하늘에 저녁 노을이 붉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
다음날 일어나자 사놓고 무거워서 안쓰는 글라스롯드대를
몆대 챙겨서 왕숙천으로 다시 갔습니다.
낚시대를 받고 어린애들처럼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을 뒤로하고 왕숙천에서 낚시를 즐겼습니다.
한참 낚시를 하고 있는데 어르신께서
또 나를 데릴러 오셨습니다.
이번엔 나 말고도 어르신들과 친한
다른 낚시인도 한분이 계셨습니다.
된장찌게에 풋고추와 김을 작은상에 모여앉아
다섯명이 나눠 먹는데
밥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 후로 어르신들과 저는 많이 친해 졌고 거기로 낚시를 갈때 마다
항상 인사를 드렸고 하루이틀 가끔 어르신들께
밥을 얻어 먹는날도 많아졌습니다.
밥 얻어 먹는 숫자가 늘어나자 나도 가끔씩 쌀도 한푸대씩 사다 드렸고
집에 있는 밑반찬 거리도 갖다 드리고 가끔 삼겹살도 사다가
어르신들이랑 같이 구먹기도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낚시가 끝나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어르신들 움막에서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갔습니다.
하루 이틀 날들이 가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와서 움막이 철거되고
다음해에 다시 움막이 설치 되어도
나는 계속 어르신들께 밥을 얻어 먹었습니다.
움막을 지었다 부쉈다 번거로운데 그냥 놔두지
겨울에는 왜 움막을 철거 하냐고 어르신들께 물어 보니
움막에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가끔 관청에서 나와서 철거를 하고
비행 청소년들이 안에 들어가 본드를 불고 담배를 피고
움막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낚시를 안할때는 철거했다가
봄철에 다시 움막을 세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들께 밥을 얻어먹기 시작한 다음해 어느 봄날
그날도 나는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빵을 몆개 사들고
어르신들의 텐트 움막을 방문하였습니다.
언제나 항상 열려져 있었던 움막은 그날따라 문이 닫혀져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어디 볼일을 보러 잠깐 가셨나봅니다.
움막 옆에 앉아서 잠시 기다리다 안오시면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흘러가는 한강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방울낚시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울려댑니다.
팽~~~~~~~~~~~~~~~~~~~~~~~~~!!!!!!!
따라라라락~~~~~~~~~~~~~~~~~~~~~~!!!!!!!!!!!!!!!!!!!!!!!!!!!!!!
나무로 만든 받침틀에 꼿혀 있는 방울낚시가 무서운속도로 돌아갑니다
뱅글뱅글 돌아가며 감겨있던 낚시줄이 빠르게 물속으로 풀려갔습니다.
따르르르르륵~~~~~~~~~~~~~~~~~~~~~~~!!!!!!!!
얼른 뛰어가서 방울을 손에쥐고 뒤로 당겼습니다.
손안에 물컹하는 감촉이 느껴지고 묵직한 힘이 낚시줄을 앞으로 당겨댔습니다.
낚시줄이 끊어질것 같이 팽팽해졌습니다.
낚시줄이 끊어질것같은 불안감에 손을 앞으로뉘여 낚시줄을 조금 풀어줬습니다.
물속에 걸린 뭔가가 강저쪽을 향해 힘을 쓰면서 달아났습니다.
다시 손으로 줄을 조금씩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당겨오는 느낌이 나면서 줄이 깡통에 조금씩 감겼습니다.
줄이 방울낚시 깡통에 조금씩 감겨오고 줄이 감긴만큼
물속의 고기는 앞으로 조금씩 끌려오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줄을 감자 고기는 바로 앞까지 끌려나왔습니다.
한참을 얌전히 따라나오던 물고기가 앞에서 물위로 떠올랐습니다
누런 황금빛이 물살을 가르며 떠올랐습니다.
물위에 떠오른 잉어가 황금빛 누런몸체를 뒤집으며 다시 물속으로 처박혔습니다.
손안에서 다시 묵직한 느낌이 났습니다 .
팽팽하게 당겨지는 방울 낚시를 두손으로 잡고 힘껏 버텼습니다.
잉어가 다시 아래로 쳐 밖혔습니다.
다시 손에힘을 더 주려는데
뚝~~~~~~~~~~~~~~~~~~~~~~~!!
!!!!!!!!!!!!!!!!!!!!!!!!!!!!!!!!!!!!!!!!!!!!!!!!!!!!!!!!!!!!!!!!!!!!!!!!!!!!!!!!! ......................!!!!
갑자기 손안이 허전해졌습니다.
귓가에 아무 소리가 안 들렸습니다.
온 세상이 갑자기 고요해졌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아 힘없이 한숨만 쉬었습니다.
" 다 잡았는데~~~~다 잡았었는데~~~~"
방울을 감아보니 빈 낚시줄만 맥없이 딸려 나옵니다.
"다 잡았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땅바닥에 주저 앉아서 하염없이 한숨만 내쉬고있는데
그릇에 방금캔 냉이와 쑥을 가득담고 어르신들이 움막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 드리니 껄껄껄 웃으십니다 .
"그래도 손맛은 봤겠구먼 "
"허허 잉어낚시가 원래 마지막이 제일 중요한 벱이여"
한 말씀씩 하시는데 다른 어르신께서 말씀하십니다
"다음에 올때 나가 가르쳐줌세"
"예 ? "
"방울낚시하는 벱 나한테 배워 나가 가르쳐 줄팅께 "
"아~예! 알겠습니다"
얼떨결에 처음 맛 보게된 거대한 잉어의 짜릿한 손맛을
있지 못한 나는 바로 그즉시 낚시점으로 달려가서
물래방아 방울낚시를 4개사고
떡밥과 떡밥을 날릴때 쓰는 쏠채도 하나사서
다시 부리나케 한강변으로 돌아왔습니다.
"어허 ~ 이사람 성격도 급하구먼"
"방울꾼이 또하나 생겼구먼"
"한강 잉어들 이제 클났구먼"
어르신들의 농담소리를 들으며 떡밥을 개고
바늘에 뭉쳐 쏠채에 올려서 한강을 향해 힘껏 투척을 했습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주먹만한 덩어리는 물속에 풍덩 빠져들었습니다
처음 치곤 멀리 잘 던졌다고 자찬하고 있는데 어르신께서 말씀하십니다.
"에~그~ 고렇게 조금 던져서는 고기 못잡어 ~"
"예?이정도면 멀리 던진거 아닙니까?"
"기다려봐 "
어르신께서 당신의 쏠채를 가져오십니다
직접 제작하셨다는 어르신의 쏠채는 시중에 시판되던
내쏠채와는 비교가 되지않게 길고 튼튼하게 생겼습니다.
자그마한 키의 어르신께서 키의 두배나 되는 쏠채에
내가 뭉쳐논 떡밥을 올려서
쉬~익~ 한강으로 던지셨습니다.
쓔~~~~~~~~~~~~~~~~~웅
별로 힘도 들이지않고 쉽게 던지시는데도 떡밥 뭉치는
내가 던졌던 곳을 지나 그 세배쯤을 날아가더니
강 한가운데에 떨어졌습니다.
"우~와~~!!!!!!"
"봤지~ 던질때 어깨에 너무힘을주면 않돼~ 힘빼고 자연스럽게 던져봐!
그리고 담에 올때 집에 낚시대 장대 못쓰는거 있음 하나 가져와"
"예?장대요? "
"그랴! 저 쏠채 위것만 빼서 긴놈으로 내가 만들어줄께
저 쏠채는 너무짧어 저걸로는 익깝을 멀리 못보네"
"원래는 마디가 있는 릴 낚시대가 튼튼한게 쏠채론 최곤디
없으면 장대로도 괜찮여"
" 어르신 제게 릴대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낚시가방에서 얼마전 새로산
글라스스 롯드 릴대를 하나 꺼내 드리자
어르신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거 새건데 쏠채를 만들어도 되나?"
"예 ! 어르신 안쓰는 낚시댑니다 "
잉어 손맛에 정신이 나간 내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쏠채 윗부분만 뽑아 쏠채 윗부분을
윗칸을 제거한 릴대에 연결하시고
순접을 하고 손잡이에 손이 끄러지지않게 고무줄까지 감으셔서
2미터 50센치 짜리 긴 쏠채를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자 이걸루 던져봐"
어르신께서 만들어 주신 쏠채로 잉어밥과 원자탄 떡밥을
섞어 뭉쳐서 쏠채에 올려 한강을 향해 힘껏 뿌렸습니다.
슈~~~~~~~~~~~~~~~~~~~웅
아까의 쏠채와는 틀리게 긴쏠채는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떡밥은 아까보다 훨씬 멀리 갔는데 날아가다
허공에서 두조각으로 변했 물속으로 떨어졌습니다.
"줄이 중간에 꼬여서 그래!
"익깝이 너무물러 몆시간전에 미리 뭉쳐놔야혀 단단해지게"
"쏠채 쏠때 힘을 빼라니께"
뒤에서 영감님들이 차례대로 한마디씩 하셨습니다
불발탄을 다시 회수해서 바늘에
남은 떡밥을 다시 뭉치고 있으니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거 낚시점에 사온거지 월매나 줬나 ? "
가격을 말씀드리니 혀를 끌끌 차셨습니다
"아~내한테 물어보지 뭐하러 그 비싼걸 사온겨?
고렇게 익깝을 비싸게 사갖꼬는 잉어 한마리 잡으려믄 한살림 거덜나겠다 쯧쯧 "
"어디 따로 싸게 파는곳이 있나요 어르신?"
"낚시점에서 파는것은 돈만 많이 들지 효과도 별루 없어"
"그렇게 비싼 익깝 쓰다는 고기 몆마리 잡으면은 정주영이도 망하것네 "
"만원만 주고가 낼 우리 익깝살때 자네껏도 내가 사다 줄꺼구만"
"그러면 제가 고맙지요 어르신"
"고맙기는 뭘 그깟일로 그랴"
다시 딱밥을 올리고 쏠채를 쐈습니다
슈~~~~~~~~~~~~~~~~~~~~~~~~~~~~웅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떡밥뭉치는
어르신이 던진자리 딱 절반거리에 떨어졌습니다.
"처음치곤 잘던지네 "
"아이구 딱 어르신 절반인데요"
"오래 던져야 거리가 나와 첨엔 좀 힘들꺼여"
방울 낚시를 땅에 꼿아 놓고 방울대를 앞에 꼿고 줄을 통과시켰습니다.
"어르신들은 방울을 안쓰시네요?"
"우리건 우리가 만든 깡통이라 고기가 물면 소리가 커 방울이 필요없어"
"자네것도 방울 없어도 고기가 물고가면 소리가 나 "
"그렇게 약하게 땅에 밖아놓으면 잉어가 물면 뽑혀나가 순식간에 "
"예 그럼 어떻게 놔두죠?"
"받침틀을 하나 짜 튼튼하게
오늘은 줄이 잘 풀리게 비스듬이 꼿아놔둬 잉어가 물어도 줄이 풀리게끔 "
어르신 말씀대로 방울낚시를 비스듬히 세워놓고
앉아서 입질 올때만 기다렸습니다.
흘러가는 강물따라 나뭇 가지가 물살을 타고 떠 내려 왔습니다 .
시간이 계속 흘러도 방울소리는 울릴줄을 몰랐습니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맞춰 정육점에 들려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목살을 몆근사서 한강으로 나갔습니다.
부실하신 치아때문에 오돌뼈가 들어있는 삼겹살 보다는
뼈없는 목살을 어르신들이 더 좋아 하셨습니다.
" 고기다 고기 많이 사왔네 "
"뮐 이런걸 사오고 그러나"
"목살이네 맛있겠다"
불판을 올리고 고기를 구우려는데 후두두둑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지붕에 비닐올려 아침에 벗겨놨어~"
어르신한분이 나가시더니 움막위에 비닐을 몆장 올리고 들어오십니다.
"위에다 비닐을 왜 올리세요? 텐트가 비가 새나요?"
"비가 많이오면 위에 틈새 사이로 비가 좀 흘러"
"예 ? 그럼 움막을 아예 비닐로 싸지 그러세요? 내가 비닐 좀 사다 드릴까요?"
"아냐 평소에 비닐로 싸메면은 환기도 잘 안돼고 낮에 해 뜰때는 무척 더워 "
"비가 많이 올때만 비닐을 쳐 조금 올땐 위만 덥으면 물이 안새 틈새로 공기가 들어 오니 덥지도 않고"
우르릉 쿵쾅~ 천둥번개를 동반한 장대같은 비가 요란하게 쏟아졌습니다.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며 움막에서 구워먹는 목살의 맛은 꿀맛 같았습니다.
점심을 다 먹었을때 쯤 약해졌던 소나기는
커피를 타서 한잔씩 마실때 쯤엔 그쳐있었습니다.
점심을 다 먹자 어르신께서 사료푸대를 한자루 꺼내 오셨습니다.
"자 이건 자네 익깝이야 이거 말고 또 있는데
그건 우리가 공짜로 얻었응께 나눠 줄께"
곧 이어 커다란 푸대자루를 하나
꺼내 오시더니 그안에서 큰덩어리를 꺼내셨습니다.
"어? 어르신 이건 깻묵 덩어리네요"
"그랴 ~친구놈이 하는 기름집에서 공짜로 얻어왔지 이건 가두리용 어분이고 "
"이 어분은 제가 써본거라 잘 압니다 어르신 요즘 향어낚시 할때 많이씁니다"
"그래 이 어분이 잘 뭉쳐져 무거워서 물에도 잘가라 않고"
"어분을 잉어가 잘먹나요 어분은 향어만 좋아하는걸로 알았는데요 ?"
"어분은 냄새를 풍겨서 미끼역활을 하고 익깝이 잘 뭉쳐지라고 넣는거야"
어르신께서는 깻묵을 가루로 빻으시더니 큰 다라이에 어분과 함께 넣으셨습니다
섞고나서 움막에서 큰자루를 열고 뭔가 꺼내셨습니다
"요게 우리 비장의 무기야"
딴 사람들은 황토흙과 닭사료를 같이 섞는다는데"
"우린 그런거 안써 요것도 요앞 튀밥 공장에서 공짜로 얻어 온거야 "
자루안에는 옥수수 가루등 뻥튀기 찌꺼기가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옥수수 껍질과 쌀 튀긴것등이 섞여있는 뻥튀기 찌꺼기를 바가지로 푸셔서
다라에서 나머지 것들과 함께 버무리셨습니다 .
"요게 들어가면 물속에서 익깝이 녹으면서 뻥튀기가 살살 풀리면서 밑밥 역활을 하지
자네는 나중에 뻥튀기 가루를 못구하면 닭사료를 사서 쓰게"
"닭사료요?"
"그래 요즘은 닭사료를 많이들 써! 닭사료가 값도 싸고 양도 많고 물속에서 잘 풀리고 효과가 좋아"
"방울낚시가 상당히 복잡하네요 ?"
옆에있던 어르신께서도 비법을 전수 하십니다
"이도 저도 다 귀찮으면 기름집 가서 깻묵 사서 곱게 깨서 황토와 섞어~
둘을 7 대3 비율로 단단하게 말려 ~그러믄 쉽고 편해 예전엔 다 그렇게 했어 ~"
어분과 깻묵과 뻥튀기가루에 떡밥을 조금섞고 마지막으로 밀가루를 섞으셨습니다
"어르신 밀가루는 떡밥이 잘 뭉쳐지라고 넣는건가요?"
"어분이 들어가면 밀가루를안 넣어도 잘 뭉쳐져
옛날에 어분을 안썼을때 깻묵과 익깝이 잘 뭉쳐지라고 넣었는데
지금은 습관처럼 그냥 넣어 밀가루 냄시를 잉어가 좋아하는것 같기도 혀서"
큰다라이에 섞여진 떡밥을 세분들이 둘러 앉아
바늘에 뭉치기 시작하십니다.
나도 옆에앉아 같이 바늘에 떡밥을 뭉쳤습니다.
몆개를 손에힘을 주고 뭉치니
떡밥이 바늘에 잘 붙지도않고 힘을줘서 주무르니
엄지 손가락 옆이 땡기는것처럼 아파왔습니다 .
일어나서 손가락을 털어보는데 어르신께서 껄껄껄 웃으십니다.
"처음엔 좀 아퍼 너무 아귀에 힘을 줘서 그랴 하다 보면 잘 뭉쳐져 손에 힘을 빼고 해봐"
떡밥뭉치 수십개가 그늘에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떡밥만 뭉쳐놓고 한가로이 노시면서
떡밥을 던질 생각들을 안하셔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르신 떡밥 안갈아주셔요?"
"괜찮어 이따가 갈아줄거야 익깝도 말려놓으면 단단해져서 던질때 좋아"
"얼마나 말리나요? 그늘에서 한두시간만 말리면돼
햇빛에 말리거나 너무 오래말리면 익깝이 짜게져서 못써"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어르신들이 일어나셔서
한강에 던져 놓았던 방울낚시들을 다시 걷기 시작하십니다 .
강을 향해 길게 펼쳐져 있던 열개의 방울낚시를 다 회수해서
옆에 뭉쳐놓은 새 떡밥들로 바꿔 달고
그중 한 어르신이 쏠채를 잡고 앞으로 나서십니다.
자기 키의 두배가 넘는 긴 쏠채를 잡으시고 쏠채를 뒤로 기울이자
다른 어르신이 낚시줄에 메여있는 주먹만한 떡밥 뭉치를 쏠채안에 올려 놓으십니다.
자~~~~간다~~
쓔~~~~~~~~~~~~~~~~~~~~~~~~~~웅~~~~!!!!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라가는 떡밥이 강가운데에 떨어집니다
다시 쏠채를 뒤로 기울자
떡밥뭉치를 다시 올립니다
자~~~~~간다~~!!!
쓔우~~~~~~~~~~~~~~~~~~~~~~~~~~~~~~웅~~~
다시 날라간 떡밥뭉치는 강가운데로 날아가더니
아까 떨어진 바로 옆 2미터옆에 정확히 떨어집니다.
다시 쏠채를 기울고 다시 던지니 이번에도 여지없이 2미터옆에
자로잰듯 정확하게 그자리에 떨어졌습니다.
부채살처럼 같은 거리에 차례차례 옆으로 자로잰듯 떨어지는
떡밥을 보니 와~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한분은 던지고 한분은 뒤에서 떡밥을 올리고
마치 군대시절 에 보았던 박격포사수와 부사수를 보는것 같았습니다.
잠깐 사이에 방울낚시 10개를 금방 던지시고서 자리에 앉으셨는데
여유롭게 앉아계시는 모습에서 낚시 고수의 포스가 물씬 풍겨 나오셨습니다.
"자 이제 자네꺼 한번 던져봐"
떡밥을 들고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새로 만든 쏠채를 뒤로 눕히니 어르신이 떡밥을 쏠채위에 올려주셨습니다.
"갑니다 ~"
이를 악물고 쏠채를 잡고 앞으로 있는힘껏 뿌렸습니다.
슈~~~~~~~~~~~~~~~~~~~~~~~~~~~~~~~~~웅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내 떡밥은 어르신 거리의 절반도 못가서
가다가 중간에 힘을읽고 물속으로 떨어졌습니다.
다시 쏠채를 기울이자 어르신께서 떡밥을 올려주셨습니다.
아까보다 더 힘을내서 힘차게 쏠채를 뿌렸습니다.
앞으로 날아가야할 떡밥뭉치가 뭐가 잘못됐는지
옆으로 힘차게 날아가더니 강 연안 땅바닥위에 떨어졌습니다.
뒤에서 어르신들이 배를 잡고 웃으십니다
다시 쏠채에 떡밥을 담고 앞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습니다.
슈~~~~~~~~~~~~~~~~~~~~~~~~~~~~~~~웅
앞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떡밥뭉치는 날아가면서
방향을 틀어 어르신이 던져놓은 방울 낚시 줄위로 떨어졌습니다.
뒤에서 웃으시던 어르신 세분이 기겁을 하고 말씀하십니다.
줄~~~~~감지마 ~~!!!
그냥 나둬~~ !!!!!!!!!
어르신의 낚시줄을 횡으로 넘어간 내 낚시줄은 어르신이 던져놓으신
낚시줄 3 개를 가로로 질러 줄 세게위에 가지런히 내려 앉았습니다.
뒤에 느긋하게 앉아 계시던 어르신 께서 앞으로 뛰어 나오시더니 내손에있는
방울낚시를 뺏으셔서 펼쳐져있는 줄과 줄사이로 낚시줄을 재빨리 내리셨습니다.
내 낚시줄과 어르신 낚시줄은 다행히 한대만 엉켰습니다
실타래 처럼 엉망으로 엉켜진 낚시줄을 바라보시며 내게 한마디 하십니다.
"자넨 당분간 내 옆에선 투척 금지야 익숙해질때 까지 저쪽으로 가서 던져"
"연습 좀 더 해~ 잘못하면 사람 잡겠다"
어르신들 앞에서 하루종일 쏠채위에 돌멩이를 올려놓고
강을향해 던지며쏠채 투척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강물위로 던지는 돌멩이가 어느정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갈때쯤 옆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습니다.
팽그르르르~~~~~~~!!!!!!!!!
따라라라락~~~~~~~~!!!!!!.!
"왔구나~~!!! 왔어~~~~!!"
어르신이 달려가서 방울을 뒤로 힘껏 재끼십니다
팽팽히 당겨지는 낚시줄을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잡아 다니십니다.
열개를 펼쳐논 방울낚시중에서 맨가운데 것이 입질이 왔습니다.
뒤에서 보면 바로 옆 낚시줄과 서로 엉킬것 같은데도 어르신께선
귀신같은 솜씨로 엉키지않게 요리조리 잉어를 물가로 끌어내십니다
물가로 끌려나온 잉어를 다른 어르신께서 나무로 만든 거대한 뜰채로 건져내십니다.
"우와 뜰채가 끝내주네요 어르신 저런건 처음 봅니다"
"저거 우리가 그물을 사다가 직접 만들었지! 잉어 1미터짜리도 통채로 들어가지"
잉어를 한마리 건져내자 계속해서 입질이 들어옵니다
따르르르륵~~~~~~~~!!!!!!!!!!!!!!!!!!!!!!!!!!!!!!!!
왔구나~~또왔구나!!!
월척이 넘는 씨알좋은 붕어가 힘없이 한마리 달려나옵니다.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울려댑니다
"저건 자네거야 ~~ 가서 땡겨~~"
후다닥 내 방울낚시로 재빨리 뛰어가니 앞에 세워논 방울대가
낚시줄을 따라 까딱 까딱 흔들리고있었고
그 위에 방울이 낚시줄의 요동을 따라 딸랑딸랑 울어대고 있었습니다.
물래방아를 잡고 힘껏 뒤로 제껴서 낚시줄을 당겨보니
8치정도 되는붕어가 한마리 끌려나왔습니다
"어이~축하하네"
"방울낚시로 코뚫었구만"
"붕어를 잡았네 그려"
웃으시며 한마디 씩하시는 어르신들께 오토바이를 타고 앞마을 가게에 가서
빵과 음료수를 사다 드려서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하루 종일 가운데 걸려있던 태양이 서산쪽으로 기울때 쯤
어르신들은 움막 앞에 관솔을 줏어 모닥불을 피우셨습니다.
불이 적당히 타오르고 불씨가 약해지자
살림망에서 작은고기를 몇마리 꺼내 불옆에 올려 구우셨습니다.
움막안에서 지금은사라진 유리로된 4홉들이 댓병소주를
한병꺼내 내게도 한잔주고 한잔씩들 하셨습니다.
숯불에 구워진 민물 고기에 소금을 뿌려서 내게도 한마리 주셨습니다
고기에 묻은 시꺼먼재를 손으로 털어 소주를 한잔 마시고 고기를 먹었습니다.
겉은 노릿노릿 하얀 속살이 부드러운 민물 고기 구이는
생각처럼 비린내도 나지않고 맛이 매우 고소하였습니다.
사방을 뜨겁게 비추고 있던 햇빛도 시간이 가면서
그빛이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비가개인 오후의 한강에는 시윈한 강바람이 솔솔 불어왔습니다
부는 바람이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려 바람에 불씨가 허공으로 날라갔습니다.
모두들 소주 한잔에 즐거운시간을 보내는데
어느 순간 옆에서는 깡통 돌아 가는 소리가 또 났습니다.
팽그르르르륵~~~~!!!!!!
따라라라락~~~~~~!!!!!!!
그 후로도 나는 시간만 나면 한강을 찾았고
영감님들께도 계속 밥을 종종 얻어 먹었습니다.
나의 방울낚시 실력은 그후로 어르신들의 개인 과외덕에
조금씩 낳아졌고 한참후엔 가끔씩 눈먼 잉어도 한마리씩 잡았습니다.
그 후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한참후에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구리시에서
서울로 다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이사를 가야 한다고 어르신들께 말씀을드리니
모두들 무척 서운해 하셨습니다
이사를 가기 몆칠전에 나는 어르신들에게 마지막으로
식사나 대접해 드리려고 한강으로 어르신들을 찾아갔습니다
평소처럼 한강 가 움막 앞에 불을 피워서
음식을 준비하고 계시던 어르신들 손을
억지로 끌어서 토평리에 있는 할머니 식당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식당앞에는 점심 시간이 지났는데도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길게 줄을서고 있었습니다
다행이 동네 어르신들을 알아본 식당 주인 할머니의 아들덕에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빨리 다 쓰러져가는
학꼬방 같은 식당의 한귀퉁이에 앉았습니다 .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 만큼 유명했던 소문난 탕과 전골과
수육을 시켜서 양껏 드시게하고 나도 실컷 먹었습니다.
한잔 두잔 반주로 시작된 술이 한병 두병으로 늘어났고
시간이 흘러 우리는 소주에 흠뻑 취한 모습으로 식당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동네니 2차는 내가 쏜다는 어르신의 손에 끌려
할머니 보신탕집 옆에있는 마을버스 종점옆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 앉았습니다.
벽돌색 오래된 건물의 가게 벽면에는 검정색 페인트칠로
지금은 잊혀진 단어인 마을 구락부라고 커다랗게 써있었고
가게 바로 옆 옛 마을 입구에는 녹색의 새마을 운동
기호와 함께 근면 자조 협동 이라는
낡은 표석이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서 있었습니다.
가게에서 파는 막걸리와 도토리묵 등 안주를
어르신께서 사가지고 나오셨습니다.
우리는 술을 가져다 가게 앞 평상에 앉아서 마셨습니다
사기 그릇잔으로 주거니 받거니 한잔두잔 마시다보니
한병 두병 막걸리 빈병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늘어나는 빈병따라 어르신들의 목소리들도 점점 커져 갔습니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지고 짙은 어둠이 몰려왔습니다.
종점 옆 구락부 가게 앞에도 60촉 짜리 전구가 불을 밝혔습니다 .
모두들 전구불빛 아래서 한참을 웃고 떠들고 마시는데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한 어르신들께서 어느순간부터
술상을 젓가락으로 두드리시며 노래를 하셨습니다.
"홍도야~~우지마라아~~~"
"옵빠가아아~~~"
신나게 상다리를 두드리시며 노래를 하시는 어르신들 옆에서
박수로 박자를 맞춰 드리던 나는 갑자기 다른생각이 났습니다.
오밤중에 어딜 가냐고 물어보시는 어르신들을
무조건 나만 따라 오시라고 억지로 택시에 태워서
당시 오픈 한지가 얼마 되지않았던 당시로는
구리시 최고 최대의 술집 이었던
뉴 타운 스탠드빠로 모시고 들어갔습니다.
입구 부터 커다란 연예인 사진이 붙어있는 계단을 지나
부라스 밴드가 연주하고 사이키 조명이 번쩍 거리는
몆백평짜리 술집에 들어가자
어르신들 눈들은 다 놀라움에 휘둥그레졌습니다.
무대 가까운 스탠드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패스포트라는 양주를 시켰고 스탠드 건너에 앉은
가슴이 파인 옷을 입은 이쁜 젊은 처자가
술을 한잔씩 어르신들께 따라 드리자 어르신들께서는
넓고 화려한 홀안의 분위기에 놀라 잠시 잊고 계셨던
흥취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술을 드시며 어깨를 흔드시는데 마침 무대에선
일반인이 돈을주고 노래하는
오브리 타임이 끝이나고 가수의 공연무대가 시작 되었습니다.
"안녕하셔요 ~ 현숙 입니다 가슴이 찡하네요~~ ~~정말로~~~"
"와~ 현숙이다 현숙"
"진짜 가수다 가수"
옆에서 고함치시는 어르신의 목소리는 출연자가 바뀔때 마다 터져 나왔습니다.
"송해다 송해 "
"코미디언이 노래도 잘하네?"
"우와~지화자다 민요가수 ~아싸~~ ~~잘한다~~~"
민요가수의 등장에 어르신들은 일어나서 덩실덩실 춤도 추셨습니다,
무대에서 일반인을 상대로한 노래 타임이 시작되자
어르신 한분께서 주머니에서 꼬깃 꼬깃한 돈을 조금 꺼내시더니
스탠드안 여급에게 노래를 주문하셨습니다.
꺼내논 돈이 우리 모두가 노래할 정도의 돈이 아니라는걸
여급에게 들으시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제가 넉넉하게 노래비를 보태 드리니까
활짝 웃으면서 좋아하셨습니다 .
노래 순서가 되자 무대위의 사회자가 우리의 스탠드 번호를 지명했고
우리는 무대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밴드 음악에 맞춰 노래를 신나게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난뒤엔 스테이지에서 다른사람들과 어울려 춤도 추었습니다
어르신들이 흥겹게들 노시는걸 보니 내 마음도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다시 쇼 타임이 오고 이쁜 처자가 망사 같은 옷을 입고 나와
온몸에 물을 뿌려대는 물쇼와 커다란 뱀을 온 몸에 휘감고 나와
끈적끈적 흐늘흐늘 추는 뱀쇼를 보고는 무척이나 놀라워 하셨고
젊은 아가씨가 나와서 춤을 추다가 갑자기
옷을 홀라당 벗는 스트립쑈를 하자
어르신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셨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흥겹게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놀다가
가게가 끝날때쯤 우리들은 술집을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왔어도 도로가에서 흥겹게 어깨춤 추시며 노래하시는
어르신들을 택시에 태워서 강변까지 보내 드렸습니다.
택시를 타시는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하셨습니다.
"젊은이 고마워 ~ 잘 놀았네 잘 놀았어~~홍도야 ~~~"
"강으로 올꺼지 ? 강에서 보자구"
"잘가 ~ 바이 바이~~"
그것이 내가 본 어르신들의 마지막 모습 이었습니다.
몆칠후 나는 구리시에서 이사를 하였고
먹구 사느라고 바빠서
다른곳으로 낚시 다니느라 바빠서
오랜 시간 구리시를 한강을 찾지 않았습니다.
몆년이 흐르고 우연한 기회에
근처를 지나 갈일이 있어 왕숙천 길을 따라
어르신들의 움막이 있는 한강으로 찾아갔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마음 속으로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면서
다시 찾은 그곳에는 나무 움막도 어르신들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움막이 사라진 자리에는 전에 없었던 콘크리트 구조물이
강을 따라 연안을 뒤 덥고 있었습니다.
왕슥천으로 가서 낚시하는 사람들에게
어르신들의 근황을 물었습니다.
예전에 거기에 계시던 것은 기억들을 하는데
지금은 어디 계신지 다들 모른다고 대답들을 하였습니다.
진작에 한번 들릴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간 날들의 후회하는 마음을 품고
쓸쓸히 돌아서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왔었습니다,
그 후로 그 보다 훨씬 긴 세월이 흘러서
또 다시 찾아온 오늘날에는 한강뿐만이 아니라
왕숙천에도 낚시를 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왕숙천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묶여서 내가 생전 처음
초어를 잡았던 그 자리에서는 더 이상 낚시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
낚시를 하려면 한참을 위로 올라가 남양주시쪽으로 가야
그나마 낚시가 가능하다는것을 운동하는 시민들에게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왕숙천은 예전보다
물빛은 10배는 더 깨끗해졌고
주변 시설은 예전보다 100배는 더 좋아졌지만
나는 그래도 사람의 인위적인 손길으로
화려하고 세련된 공원으로 발전한 지금보단
그 옛날 야생화가 만발하고 천변에 잡초가 무성하던
자연 그대로의 왕숙천이 지금보다 훨씬
보기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것이 없었음에도 그저 조금만 가지고 있었어도
작은것 때문에 모두가 행복했던 그 시절이
불연듯 사무치게 그리워졌습니다,
강가에서 일년내내 움막을 짓고
잉어를 잡던 인심좋던 노인분들도
개천 둔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분필선을 따라 운전연습을 하던 여인도
그 옆에서 고함을 치던 그 남편도
왕숙천의 수많은 낚시꾼들의 추억과 함께
이제는 모두 강물위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지나간 추억으로 서글퍼졌습니다.
차를 타고 큰길로 나와 떠나기 전에
마지막 으로 왕숙천을 바라 보았습니다.
옛날처럼 변함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왕숙천에는
천변에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오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 수많의 사람들중에 왕숙천 위아래 어디를 봐도
낚시꾼들은 없었습니다.
그 옛날 왕숙천 물길을 따라 끝도없이 펼쳐져 있었던
파라솔의 물결들을 생각하니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옛 그리움을 만나지 못한 허전한 마음을 안고
다시 쓸쓸하게 돌아섰습니다.
앞으로는 내 추억으로만 기억될
왕숙천의 수많았던 낚시꾼들과
파라솔들 그리고 한강의 움막집과
그 안에 있던 선한 얼굴들을 생각하며
언젠가 우연이라도 길을 걷다가
한번쯤만 그들과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마주 친다면 세월따라 변해버린 내모습을
그들이 먼저 알아보기를 기원했습니다.
시간이 더 흐르기전에 ...........................................................
한강 왕숙천 방울낚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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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40
추억으로의 여행속에 함께 한 느낌입니다.
너무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 옛날 야생화가 만발하고 천변에 잡초가 무성하던 자연 그대로의 왕숙천이 지금보다 훨씬 보기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추억을 만들순 없지만.....이렇듯 어릴적 냇가에서 놀던때를 떠 오르게해 주심도 감사합니다.
봄바람이 찹니다...건강 유의 하세요
잘 읽구 가유 갑장님.
나두 해봤는디..방울던지는거,,어렵더만유.
뻥튀기나 옥수수튀긴거 넣으면 좀 밥뎅이가좀 차지더만유.
엥,,인사가 중간에 잇눼,,쩝
불현듯이 저도 예전 살던 동네를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드네요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동네도 디카에 담아 놓으면 세월이 지난다음에
추억거리가 될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음글 기다리겠습니다~~~
마법에 빠진거 같습니다.
참 글 잘 쓰십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그분들 어딘가에서 낚시를 하고있겠죠...옛날 그 채비 그대로...
이제는 모두 강물 위로 흘러가버렸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찡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옛날이 얼마나 그리우실지 눈에 훤하게 보입니다.
시간 되시면 한강변에 나가셔서 쏠채로 돌이라도 던져보세요.
슈~~~~~~~~~~~융
특별한 과외?를 받으셨으니 한강 건너편까지 날아갈지도..ㅎ
다시한 번 시간내서 정독하겠습니다...^^
읽다보니제가군생활중
왕숙천하구아차산으로수색정찰한
기억이나내요
리얼리티가 섬세하기에
글을 보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 착각에 빠져듭니다.
정과 베품에 인색하지않은
사람사는 정이 무엇인질 아시는 분이기에
지나간 세월에 더불어 추억이 물씬 묻어나네요.
긴 글이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않았습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꾸벅.
아름다운 추억의 글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리시와 인연 좋은추억 남다르게 잘 봤습니다
저도 90-95년 5년정도 살았지요 교문리 쌍용차영업소 뒤쪽 빌라단지
기아자동차옆 송해 스텐드바
처가가 교문리에서 오남리 진주아파트 이사(오남저수지 몇번 낚시한 경험)
요즈음 몰라보게 발전 했더만요!!
반가운 마음에 몇자 적었습니다^^
추억의 보따리속에서 하나하나 꺼내보는 영상조행기이군요.
저마다 돌아가보싶은 추억속장소는 다 있기마련인데 지금은 많이 변해버려 아쉬움 많습니다.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어쩜그리 맛깔스럽게 추억을 쓰셨는지요...
저는 예전사람은 아니지만 그때의 추억을 떠오르기에는 충분하다고봅니다.
소중한 추억 잘보았습니다...^^
그저 머라 표현을 할수가 없네요...좋습니다...좋다....
소박사님 앞으로도 종종 부탁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80년도로 돌아간 기분이네요
소박사님은 마법사 같으신 분~ㅋ
먼지묻은 방울낚시 창고에서 찾아
볼까합니다
글이 참 맛있니다
깊은밤 잠들지 못하고
소박사님에 추억에 한장을 맛보고 갑니다
긴글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읽는 우리는 재미있지만서도....^^~
푸~욱 빠져 아직도 못나왔슴니다.
저도 옛날의 쏠채의 추억에 같이 젖어 보았네요.
아산만 계양수로에서의 쏠체......
저는 물래방아를 한번도 사용해보지않고 릴로만 해봐서 ..
물래방아의 호기심과 상세한 주변풍경
내가 그 자리에 같이 있는느낌이었슴니다...
정말 잘 읽었고요 쓰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슴니다.
한강과왕숙천 두물머리상류 자전거다리위부터는
낚시합니다.. 대물터죠. 월척만 하룻밤에
10수 이상 나옵니다..저의아버님은 매일밤 출조하시지요..
잘 읽고 갑니다..
저는 가본적 없는 왕숙천이지만 이름도 정겹구요..옆에서 본듯이 그림이 절로 그려지네요.
좋은 추억 오래오래 간직하시고 항상 건강하십시요.
정성스레 올리신 글에 볼 때마다 추천과 댓글 드리고 싶지만
컴텨가 꼬져그런지 바가 안내려가 것두 힘드네요
추천은 벌써 드렷고
저도 소양댐 이야기 함쓰볼라고 멈먹는데 잘안되네요
다믕 글 염치없이 채근해 봅니다^^
또다른 글이 기대됍니다~
늘감사하구요~^^
입가에 진지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화려한 미사어구가 없음에도 참 글이 아름답습니다.
또 기다려봅니다.
근데 박사님글은 너무나 잼이있고 마치 공감이된다고해야하나 조금이나마나
느낌이팍옵니다 ~~ 왕숙천 좋죠 전 왕숙천에서 낚시 배웠습니다ㅎㅎ
하루에한번 이틀에 한번씩가서 어디가포인트고 어느계절에 어딜가야하고 거긴수심이얼마인지까지
전 퇴계원에서합니다 가끔 임송도가구요^^ 여름장마철때 물넘치면 아래한강에서 엄청올라옵니다
물도 지금은꺠끗한편이구요 주말에 낚시꾼들 십여명정도모입니다ㅎㅎ
지금도 가끔씩 가긴합니다 저에겐엄청소중하고 추억이있는곳이라..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부자간에 같이 낚시하고있을 그곳인데말이죠 에혀 엄청자주갑니다 ^^ 한번 같이만나서 낚시해요
아버지랑 20년전 충주댐 청평 마지막으론 왕숙천이 추억이네요
추억속의 낚시이야기.... 정말 재미 있습니다...
좋은글..정말 아름답다고 생각 드네요...건강 하시고 안출 하십시요~~~~
즐거운 글 잘읽고 갑니다 ^^
제가 국민학교 친구들하고 왕숙천 똥물에서 물놀이 했던 것이 87년이라서 그런지 비슷한 그림이 떠올라 한동안 추억에 잠겼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