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 이건 먼데예"
검은봉지 안에서 쏟아진것들은
분명 낚시할때 쓰는 것들이다
"조오-립 낚시"
잠깐 멈추는듯 했으나 단숨에 읽어내렸다
"허허~ 인자 학교 가도 되근네~"
조부는 한글을 틈틈히 가르친 보람을 느끼며 아이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마루에는 투명한 비닐에 포장된 조립낚시라는것이 서너개
그리고 크기가 작은 낚시바늘이 포장되어 묶여져 있었다
제일 궁금하면서도 알것같은
분명히 낚시줄이긴한데
"2묵"
분명히 숫자 2 와 "묵"인데 이상하게 생긴 글자다
더 신기한것은 조립낚시에 들어있는 오색 낚시찌
상급학교를 다니는 동네 형들이 낚시할때 쓰던.
먼발치서만 보다 처음 코 앞의 찌는 정말 수수깡 찌와는 비교되지않는 아름다움이다
반짝이는 납추와 절대 휘어지지 않을듯한 바늘 . 한번물면 빠져나가지못할 미늘
중간에 붙어있는 노란 무시고무
그리고 조립낚시라는 글자 아래 붕어 그림이 아이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아이가 낚시채비에 빠져있는 동안 조부는 대밭을 살피러 갔다
비온후 습진날의 연속이라
낚시대로 쓰일 대나무가 걱정이다
다행히 볕이잘드는곳에 대들을 새워 놓았나 보다
가지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눌러 꺽어 제법 낚시대 모양을 만들고 몇몇을 추려모은다
그중 곧은 대를 하나둘 살펴본다
한손으로 들어 시선과 일직선상에 놓고 낚시대로서의 곧음을 판별한다
적당한 무게와 흔들었을때의 낭창거림
조부는 마음에 드는 대를 취했다
그리고 손주의 대 또한 가늠한다
대밭의 잎들사이로 바람이 팔랑거리며 지나간다
"스 스 스스"
대잎들끼리 마찰되어나는 대밭의소리는
음산하기까지하다
빽빽한 대밭은 시원할지도 모르지만
모기와 후덥지근한 습도는 오래머물수없는 요소이다
"허허 마이났네"
조부의 혼잤말
고개를 숙여 뭔가를 뽑아든다
하나 ..둘 셋 .
3명이면 3개만 뽑아도 충분하다
죽순꼬투리를 쥐고 대밭을 나선다
"아따 덮네"
크~~~~퉤!!
삽작문 밖에서 침뱉는 소리에 누렁이가 뛰쳐나오다 넘어진다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조부의 손에 들려진 죽순에 관심을 보이며 킁킁 거리다 이네 자기 관심사는 아니라는것을 아는지 조부의 걸음을 맴돈다
"나온나 올 가실에 된장발리기 싫으문"
웃음기 가득한 조부의 말뜻이 뭔지도 모르는 누렁이
조부는 정지앞 문턱에 죽순을 내려놓고 마루에 걸터 앉았다
"할배~이거로 낚시하면 잘 잡을수있습니꺼"
여느때 같으면 조부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일 아이지만 오늘은 낚시채비에 모든 걸 잊고있다
조부는 빙그래 웃으며 먼지묻은 대나무를 걸래로 닦는다
"고기가 물어주모 잡고 물어주도 지가 몬건지내모 몬잡지"
여전히 대나무를 손질 중이다
아이는 자세를 고쳐잡고 조부가 하는 것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거칠한 손에 쥐어진 작은 칼.
대나무를 지날때마다 모진곳은 깎여나가고 대나무는 금새 낚싯대로 변한다
"초릿 초릿"쉬~잇"
조부의 오른손에 뻗어진 대나무에서 마당을 가르는 울음이 들린다
"이만하문 ..."
조부는 만족스런 얼굴로 아이에게 낚시대를 건낸다
"자 ~ 됐다"
몇번을 닦고 깍아서 낚싯대가 만들어졌다
아이는 입이 벌어진체 다물지를 못한다
가볍다
아이가 생각했던 무게보다 훨씬 더
무슨 보물이라도 된듯 작은 두손으로 잡고선 한동안 멍해져있다
"허이고~ 그리 좋나?"
"함 흔들어바라"
조부의 말에 아이는 대가부러질까 조심스레 흔들어본다
"슈 ~웅~ 슝~"
아이의 열린입이 서서히 귀에 걸리기 시작한다
"할배 이거 찌~인 짜로 가뱁고 좋아예"
아이의 입은 닫힐줄 몰랐다
지금껏 아이가 사용한 낚시대는 투박할 뿐 아니라 무겁기까지해서 두손으로 오랫동안 들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연신 마당을 가른다
제법 날카롭게 가르는 소리가 날때마다
마당저편 누렁이가 움찔거렸고 그때마다 아이는 더 신이나 힘있게 휘둘렀다
얼마간 휘두르던 아이도 익숙해진 누렁이의 태연함에 놀이를 멈춘다
그새 조부의 낚시대도 마무리가 되었다
"부~웅~ 붕~ 슈~잇"
아이의 낚시대보다 무거운 소리가 마당을 가른다
누렁이는 다시 움찔거린다
"아따 그만하소 도꾸 새끼 떨어지구로"
조모께서 누렁이 밥을 가지고 정지를 나섰다
"도꾸 ~도꾸~ 이리온나 밥묵자"
누렁이의 이름은 "도꾸"다
물론 "도그(dog)"지만 요즘 저런 촌스런 이름이 있을까?
아이는 그게 영어인줄 몰랐다
조부가 된장바른다며 놀릴정도로 누렁이는 살이 올랐다 교미를시켜 가을즘 새끼가 나올것이다
"아 하고 낚수가따 오끄마 죽신좀 삶아놔라"
조부는 낚시대를 추려잡으며 퉁명스럽게 말을한다
드디어 조부의 손에 조립낚시 채비가 들려졌다
빳빳한 세로종이 양끝중앙에 칼집이 나있고 거기에 투명한 원줄과 납추 그리고 바늘두개 찌스토퍼 오색찌로 구성되어 있는 조립 낚시
조부는 원줄의 끝부분을쥐고 조금씩 채비를 풀어간다
아이의 낚시대보다 두발이나 여윳줄이남는다
초릿부분에 여유줄을 말아감고 원줄을 낚시대 길이보다 조금짧게 채비했다
조립낚시채비의 특성상 채비를위해 풀어보면 원줄이 일정하게 꺽여 있다
조부는 원줄을 살며시당겨 바늘을 대나무 손잡이끝에 걸었다
목적지즘 도착하면 나일론 원줄은 곧게 풀려 있으리라
"할배 ~ 이거는 와 하는데예?"
아이의 손가락이 방금 바늘을 걸어둔 손잡이 끝부분을 향한다
"다친다"
낮고 짧은 음성
금새 아이는 팔을 거둔다
그리곤 붕어가 그려진 빳빳한 종이를 주머니에 챙겼다
"일로 멀찌기 떨어져 앉아라"
조부는 마루 저쪽으로 낚시대를 밀었다
"줄이 구불구불하몬 괴기 몬잡는다 아이가"
"그래서 줄을 땡기가 꾸부라진거 펴 주는기라"
아이가 자리를 옮겨앉자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궁금증에 답하는 조부였다
당신의 낚시대에도 채비를를 마치고 손주의 낚시대 옆에 내려 놓는다
"자~ 인자 그~시(지렁이) 잡으로 가야쟤"
"니는 할매한테 호미 달라케서 온나"
조부는 그렇게 뒷짐을 지고 마당을 나선다
"캬~~ 퉤!!"
"도꾸야 그~시 후비로 가자"
삽작문을 나서는 조부와 누렁이
"할매~"
.....
"할매~ 호미! 호미 호미이!!"
시야에 사라진 조모를 바삐 부르는 아이
"할매 뒤양간에있다 일로온나"
아이는 사랑채를 사이에둔 뒤양간으로 뛰어간다
"이거 찾나?"
조모는 이가 나간 사기그릇과 호미를 들어보인다
사기그릇 안에는 빨간 누런 지렁이들이 굼틀거린다
뒤양간 습진곳은 이미 조모의 호미질에 불규칙한 고랑이 나있었다
"와~~~ 윽시 마이잡았네예!!"
" 할배가 호미가꼬 온나카던데예"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사기그릇과 호미를 건내 받았다
"이~ 바라 낯짝이 이기 머꼬 "
"까마귀가 보몬 행~~님~~ 카긋다"
아이의 꼬질해진 얼굴이 조모님을 안스럽게한다
"가자 낯짝좀 씻으가 가그라"
조모의 완력에 아이는 뿌리칠수가 없다
빨리 조부를 따라 가야하고 무었보다 조부가 누렁이를 데리고 나서서 뭔지모를 경쟁심에 아이는 내심 불안하다
부억옆 장독들앞 우물
한손엔 도망할려는 아이를 잡고 한손으로 지저분한 아이의 얼굴을 씻어준다
"애미애비 집에 없따꼬 추접해가 댕기문되근나 "
연신 아이얼굴을 씻어내는 조모는 혼잣말을 한다
"비단옷은 못입히도 칼컬케 해서 댕기야지"
" 자 인자 다됬다 닦자~"
머리에두른 수건을풀어 아이의 얼굴을 훔쳐준다
조모의 손길을 뿌리치듯 아이는 한걸음에 대문을 나선다
"할배~.. 할배~ 할매가 그~시 마이 잡아났으예~ "
아이가 집을 나서고
멀어지는 손주녀석의 들뜬 목소리가 조모의 귓전을 울린다
집안이 휑~하다
양동이에 물을 마당에뿌리는 조모
허리를 세워 이마의 땀을 닦아낸다
"우째 지새키 아이라 칼까바 저리 똑같노"
"큰아 쪼맨할때하고 똑같네"
조모는 연신 이마의땀을 닦아낸다
아이의 달음질이 빨라졌다
주위의 초목도 작은 돌다리도 아이의 눈을 피해갔다
호미와 사기그릇을 들고 뛰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돌다리건너 비닐로 덮어놓은 거름 무더기에 조부와 누렁이가 뭔가를 뒤지고있다
코끝으로 거름향이 전해질무렵 아이의 발걸음은 숨을고른다
"할배~ ... 할매가~~ 그시 마이 잡아났으예"
"이거 보이소~"
아이는 자기가 잡은냥 들고온 사기그릇을 내민다
"호미 줘바라"
사기그릇에 눈길한번.
받아든 호미질을 시작한다
"거름 무디 속에있는 그~시가 잘문다아이가"
몇차례 호미질에 지렁이들이 쏟아진다
간혹 누애처럼생긴 애벌레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한쪽으로 모아둘뿐 사기그릇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할배~ 이만큼이몬 인자낚시가도 안대예~"
아이는 지렁이를 잡는 시간이 지루하다
빨리 물가에서 조부가 만들어준 낚시대를 드리우고 싶을 뿐
조부는 말없이 호미질만 한다
누렁이가 거름무더기위를 뛰어다닌다
나비한마리가 누렁이를 유린하고있다
누렁이와 나비의 잡기놀이에 넋이나간 아이를 의식해 재쳐놓은 애벌레들을 슬며시 챙겼다
분명 유년기때 먹어본 정체모를 튀김중 하나였을 것이다
"자~ 인자 고만 잡고 가보자"
제법 많은 양의 지렁이를 잡았다
바람이분다
조부의 긴수염이 흔들리듯 바람이분다
아이의 깨끗해진 얼굴에도 누렁이의 북슬거리는 꼬리털에도 후덥지근하고 습기가득한 바람이분다
할아버지와의 추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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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갑니다.
T.V 문학관을 보는듯 합니다.
이제 몸서리치게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주말만 되면 조바심나는 꾼의 계절이 오고있네요.
읽는 내내 꼭 같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나른한 편안함을 느껴집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다음편에 대물이 덥석 물어 줄거 같네요
빨리 고기잡아야 하는데
기다려 집니다
추억의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듯...
정겨움에 취해 미소짓고 갑니다.^^
뒷이야기 빨리 올려주세요~~~~~
읽고 있으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생기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