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늘 (3부)
<불무도의 비밀>
주왕산 동편 기슭에 위치한 문무암(文武庵)을 찾아 주지인 경봉 스님께 서신을 건네준
길호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불무도 라는 무예도 생경했지만 바늘 떨어지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작은 암자가
전해주는 위압감이 상당했던 것이다
"니 이름이 무엇이뇨?"
주지스님의 낮은 음성이 쭈삣하게 서 있던 길호의 심장을 훑고 지나갔다
"길호.....황길호 입니다"
"여긴 왜 왔느뇨?"
"네?. 저기.....불무도를 배우라 해서......요"
"니는 남이 죽으라고 하면 쉽게 죽을 놈이구먼"
"네?"
"까마귀가 백로 노는 데에 가봤자 왕따만 될 뿐이니라"
"......."
"니 올해 몇살인고?"
"열 여섯 되었습니다"
"근기는 있어 보이나 심기는 약해 빠졌는기라....얼마나 참아낼꼬"
주지 스님은 길호가 알아듣기 힘든 말들을 쏱아내며 뒷채를 돌아보고 누군가를 불렀다
"정법, 개 있느냐?"
그러자 뒷뜰에서 풍채가 좋은 젊은 스님이 나타났다
"주지 스님 부르셨습니까"
"오냐. 애가 달마선사가 남기신 공부 좀 하겠다고 찾아왓으니 장법이가 한 동안 데불고
다니면서 근기를 시험해 보거라"
행랑채의 작은 방을 배정받은 길호는 불현듯이 눈물이 쏱아졌다
고아원에 버려진 것도 서러운데 어딜 가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신의 기구한 팔자가
갑자기 복 받쳐 오른 까닭이었다
그 때 방문이 열렸다.
"얼래? 니 와 우노?"
생경한 사투리 말이 길호의 가슴을 찌르며 늑골 사이로 빠져 달아났다
암자 뒷 편 대나무 슾에서 청량한 새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울긴요...."
길호가 팔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게면쩍은 표정을 짓자 정법이 카랑한 쇳소리로 말했다
'니 맴 안데이....나도 첨엔 그랬으니까 잉? 하하"
"....."
"조금도 걱정 말그래이. 니 불무도 배우러 왔담서?"
"네..."
"우얄꼬. 불무도 배우기는 쉬은 게 아잉기라.그래도 내가 있으니 걱정 말그래이 내 말만
잘 들으믄 절에서도 괴기는 먹을 수있느니라"
"네? 절에서도 고기를 먹나요? 스님은 고기를 안 먹는다고...."
"겪어보믄 아느니라. 이 옷으로 갈아입고 퍼뜩 나온나"
첫 날부터 해우소 청소를 하며 길호의 고된 절 생활이 시작되었다.
"길호 니 주먹에 굳은 살이 단디 박혀 있네. 니 뭘 배웠었나?"
"택견을....."
"오호라. 택견이러고라? 좋은 걸 배웠구마 잉 몇 년이나 배웠노?"
" 4년 되어가던 중이었어요"
"그럼 니는 품밟기 7절까진 익혔겟고마 잉"
"7절이라뇨 그런 말은 택견에 없고...."
"시끄럽다 잉. 세속에서 배웠던 단어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다 지워버리고 새롭게
배워야 한다 아잉가"
정법스님은 껄껄 웃으면서 투박한 몸짓이지만 길호를 잘 다독여 주었다.
그렇게 길호는 암자에 도착한 날 부터 행자 생활을 해가면서 정법 스님으로 부터 불무도를
배워 나갔다
오전에는 불법을 공부하고 오후엔 불무도를 배워나가며 암자 생활에 익숙해 지려고 노력했다
"무예는 마음에서 나오니라. 마음이 정화되지 않으면 암만 배워도 소용 없느니...."
정법 스님은 불무도 입문 전에 마음부터 정화해야 한다며 길호에게 하루에 한 개씩 화두를
던쟈주었다.
암자 생활은 고되었지만 길호는 참고 또 참아내며 시키는대로 했다
그렇게 암자 생활 육개월이 지나자 본격적인 불무도 수련을 하게 되었다
"모름지기 무예라는 건 자기 방어에 목적을 두어야 하니라. 과시하며 살생을 수단으로 삼다간
부처님이 천발을 내리신다는 거 니도 알제?"
머리까지 빡빡 밀고 스님이 다 된 길호는 묵묵히 정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택견은 다리를 구할이나 쓰는 무예지만 불무도는 다리와 팔을 반 반씩 쓰는 무예다. 두 손은
상대를 견제하고 두 다리는 제압을 할 때 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의 급소를 단 한 번
공격으로 제압하여 속전속결로 끝내는 무예이니라"
문무암에서 불무도를 배우는 스님은 모두 다섯 명 이었는데 궁,상,각,치,우 라는 불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 정법 스님이 가장 막내인 우 스님이었고 우 스님을 통과하면 다음 단계로 치 스님에게서
배우는 식이었다
지금은 치 스님에게서 배우는 중이었다.
"서양에서 무예가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는 우주 만유의 모체 즉, 모든 존재의 근원을 파악할 때
그 모체에서 일어난 우주만유는 모체화 되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 다른 것이 되고
만 가지 다른 것이 한 가지 근본이라 하여 우주 만물 하나하나가 각각 태극의 진리를 갖추었고
우주 전체를 통합해 보면 태극의 진리일 따름이라는 철학에 근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 스님이 호탕하고 시원하게 가르쳐 주었다면 치 스님은 문무를 겸비한 스님답게 즉각적인
철학 강의를 통하여 날마다 길호의 지식창고를 부풀려 주고 있었다.
" 천부경은 다 외웠느냐?"
"네. 다 외웠습니다"
"날마다 조석으로 암송하고 틈만 나면 경건하게 암송하는 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
"네 명심하겟습니다"
"불무도는 달마선사가 시초이지만 우리의 선조들이 남기신 세계 최고의 경전인 천부경을 바탕으로
조금씩 변형시켜 온 것이 현재의 불무도다. 불무도는 하나에서 시작해서 끝남이 없는 하나의
무예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를 제압하 되 상대로 하여금 어떻게 제압당한 건지를 모르게 하는 무예가 불무도였다
길호는 날이 갈수록 불무도의 깊이에 신천지가 열리는 기분을 맛보며 새로운 무예의 세계에
눈을 뜨고 있었다.
힘든 하루의 수련이 끝나면 달콤한 휴식 시간에 우 스님은 특유의 너스레를 떨어대면서
길호의 긴장을 풀어주고 웃음을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런 우 스님을 친형처럼 따르며 길호는 고된 암자생활을 이겨내고 있었다.
"길호야 니는 마술을 뭐라고 생각하뇨?"
과자 봉지를 한 아름 안고 길호 방으로 들어온 우 사형은 대뜸 그렇게 물었다
"마술요? 그런 건 다 눈속임 아닌가요?"
"맞다 다 눈속임이지. 근데 그런 눈 속임들을 보며 사람들이 열광하고 놀라고 그러던디 말여
요술을 부리는 사람들 눈엔 애들 소꿉놀이처럼 보인단 말이제 하하"
"요술이라뇨? 그런 것도 다 무협지에나 나오는 지어낸 이야기 아닌가요?"
" 아니다. 요술은 실제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아무나 하는 건 아니지 수련이 깊어야 하고
내면을 자유자재로 사통팔달 하는 사람은 오슐을 부릴 줄 안단다"
"도대체 요술이란 게 뭔가요?"
"음.....한 마디로 말하자면 요술이란 대상의 기 (氣)를 끌어와서 형체를 순간 보이게 만드는 것인데.....
그 형체가 오래 가지는 못하지만 분명 실제하는 존재다.
마술이 눈 속임이면 요술은
기력(氣力)이 깊어지면 행할 수 있는 마법이란다"
"그러면 우사형은 요술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당년히 본 적이 잇으니까 너에게 말해주는 것이지"
"본 적이 잇다고요? 그게 누군데요?"
"몇 해 전에 열반하신 우리 큰 스님은 요술을 부리셨던 분이란다"
"......"
"하하하. 요술이 만능은 아니다. 요술 위엔 또 도술이란 게 있으니까"
"도술요? 대체 뭐가 뭔지....."
"길호. 너 장풍이니 축지법이니 하는 말들 들어는 봤나?"
"들어봤지만 그것도 무협지에나 나오는 하무맹랑한 것들 아닌가요?"
"아니다. 현대인들은 옛 선조들 보단 약하긴 해도 장풍이나 축지법을 하는 사람이 있단다"
길호는 머리가 극심하게 혼란스러워 지고 있었다.
20세기를 살아가는 시대에 요술이니 도술이니 장풍이니 축지법이니.....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쏱아놓고 있는 우사형이 갑자기 낮선 타향의 이방인처럼 생각 되어서 한 차례 몸을 떨어댔다
"니가 지금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불무도를 배워 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되는 날이 올거다
믈론,. 니가 나중에 장풍이나 축지법을 할 수 잇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일심을 다해 수련하고
공부하다 보면 너의 기가 강해지면 그 때 조금이라도 깨닫는 날이 올게다"
주왕산 문무암에 온지 일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열일곱 살이 된 길호의 몸은 훌쩍 커져 있었다 키는 180 센치 가까이 자랐으며 불무도로 단련 된
몸은 근육질 투성이였다.
낙수와는 간간히 전화를 하며 안부를 주고 받앗으며 주지 스님은 반야월 이란 법명도 지어주셨다
절 생활에 녹아들어 스님이 다 된 길호는 일취월장 하는 불무도 고수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주왕산의 사계는 아직은 어린 길호에게 더없는 아늑함을 주었다
그렇게 세월은 유수와도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새벽 세 시에 눈을 뜨면 탑돌이를 하며 반야심경을 낭송했고 천부경을 암송하며 기력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산경이 주는 고요함을 벗삼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불무도를 배우면 배울 수록 그 깊이와 신묘함에
무예의 경지를 조금씩 터득하고 있었다
수련을 마친 초여름의 밤이었다.
그 무렵 길호는 각사형에게 불무도의 유래와 세계 최고의 경전이라는 천부경 강의를 사사받고 있었다
" 각사형. 81자가 전부인 천부경이 세계 최고의 경전이라는 데.....저는 아무리 암송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평소 품었던 궁금증을 그 날 길호는 각사형에게 물었다.
"천부경은 해석을 하는 경전이 아니니라. 해석을 하려 하지 말고 자나깨나 암송을 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 너를 지켜 줄 것이니라"
각사형은 온화한 얼굴로 길호를 보며 말했다
"천부경은 해석이 어렵고 난해하다고 하는데.....천부경을 해석하신 분이 계시나요?"
"계시고 말고.....단 두 명 만이 해석을 하셨단다"
"누구신데요?"
"해동공자 최치원 선생과 격암 남사고 선생이시다"
"각사형께서도 해석을 못하시나요?"
"당연하지. 천부경 81자는 아주 쉬운 글로 엮어져 있지만 그 뜻을 풀이하다 보면 항상 막히게 된다
사람들마다 내가 풀이 했다며 중구난방 식으로 갔다 붙이지만 천부경을 진정 해석하신 분은
최치원과 남사고 뿐이라는 것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주지 스님도 해석을 못하시나요?"
"하하하. 그것은 나도 알 수는 없다. 몇 해 전에 성철 큰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천부경은 해석을 했다 치더라도 남에게 알려줄 수 없는 해석이라고....."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다. 스스로 터득하고 해석을 하는 수 밖엔 없다는 뜻이겠지"
"음......"
"길호 너, 반야심경은 부처님의 모든 말씀이 함축되어 있는 경전이라 배웠지?"
"네"
그런데 그 반야심경을 다시 축소해 놓은 것이 바로 천부경이다"
"아....."
"겨우 81자로 된 경전이지만 세계의 석학들도 함부로 해석을 못하는 게 천부경이다"
"음....."
산사의 밤이 깊어 갈 수록 밤별들은 초롱하게 빛났다
고아로 자라온 길호의 마음에 쌓여있던 형체없던 한 (恨)이 녹아 내리고 있었다.
길호는 행랑채를 나와 문무암 뒷산으로 올라갔다
멀리 마을의 불빛 몇 개가 길호의 눈에 들어왔지만 길호는 눈을 지긋이 감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천부경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일시무시일 석삼극무
진본천일일 지일이인
일삼일적 십거무궤화
삼천이삼 지이삼인이
삼대삼합 육생칠팔구
운삼사성환 오칠일묘
연만왕만 래용변부동
본본심본 태양앙명인
중천지일 일종무종일
새로운 길이 열리고 있었다
문득 낙수가 보고 싶었지만 길호는 이를 앙다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 두번다시는 한을 갖지 않겠어. 세상은 나 하기 나름인거야
그리고 반드시 풀어내고야 말겠어 내가 가는 길과 무예의 길과 천부경이 주는 의미를.....'
황금비늘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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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0
갈수록 흥미진진 해집니다
빨리 4부 보고 싶습니다
미안하네요
글작업이 쉽지 않은데
너무 편하게 님의글을 기다리기만해서요
한편한편....잘잃고
다음편 기다리겠읍니다
여기에서 듣게 되네요....ㅎㅎㅎ
고맙습니다
심장박동소리가 귓전까지 들립니다
덕분에 잘보고 있읍니다
덕분에 잘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4부 기다립니다.
수고 하세요
4부는 조금 기다려 주셔야 겠습니다
졸업 시즌이고 조카 놈들이 많아서 졸업 축하 턱 내라고 해서뤼....^^;;
게다가 곧 정월 대보름이죠
금산의 4대 축제 중 하나가 (겨울철) 정월 대보름 축제가 있어서
나가봐야 합니다
그래서 4부는 좀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살다보면 벼라별 것들 다 생기고 부닥치는 법인지라....
이해하여 주시고 차분히 기다려 주세효^^;;
재미없는 글이지만 부담없이 읽어주시면 그것으로 족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정월 대보름 날에 소원을 적고 쥐불놀이라도 하시며
재미있는 시간들 보내세효...
편하게 보기도 죄송할 따름 입니다
은근과 끈기를 가지고 기다리겠습니다
넘넘 재밋게보구 있읍니당
고맙습니다ᆞ
박수드리고 갑니다~~
추억의 조행기에 요즈음은
글이 잘 안올라와 자주 못들어
왔었는데 이제는 무심코님의
황금비늘 때문에 자주 기웃거리게 됩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